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75화

바람의 끝자락, 해오름 마을

오랜 기다림과 수많은 단서를 쫓아 헤맨 김현우의 발걸음은 마침내 해오름 마을의 작은 언덕길 끝에 닿았다. 낡은 SUV에서 내려선 그는 차가운 바닷바람이 실어오는 비릿한 내음을 깊게 들이마셨다. 75화에 걸친 추적. 그 모든 시간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지만, 동시에 심장을 주체할 수 없는 설렘으로 가득 채웠다. 마지막 제보자가 남긴 말은 선명했다. “그녀는 해오름 마을에서 도예 공방을 한다오. 이름은… 김서연이라고 했던가?”

김서연. 이름마저 그대로라니. 현우는 떨리는 손으로 코트 주머니 속 오래된 사진을 움켜쥐었다. 흑백 사진 속 스무 살 서연의 미소는 여전히 그의 세상 전부였다. 이 사진 한 장으로 버텨온 세월이었다. 이제, 그 긴 세월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온 것이다.

도예 공방 ‘흙꽃’

마을은 고요했다. 바닷가 마을 특유의 잔잔함 속에 사람들의 일상이 스며들어 있었다. 골목을 따라 한참을 걸었을까, 파란 대문이 인상적인 작은 건물 앞에 멈춰 섰다. ‘흙꽃’이라는 상호가 정갈한 글씨체로 나무 현판에 새겨져 있었다.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현우는 숨을 고르며 공방 안을 들여다보았다.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작업실이 눈에 들어왔다. 물레가 놓인 작업대, 선반 가득 놓인 소박한 도자기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햇살을 등지고 앉아 흙을 빚고 있는 한 여인.

뒷모습이었다. 얇은 팔뚝, 살짝 숙여진 고개.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묶여 있었지만, 움직일 때마다 살랑이는 잔머리, 나긋한 어깨선, 가끔씩 들리는 작은 기침 소리. 모든 것이 현우의 기억 속 서연과 일치했다. 마치 시간이 멈춘 듯, 그녀는 그의 기억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곳에 있었다. 아니, 조금 더 깊어진 시간의 흔적이 그녀를 더 아름답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현우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수십 년을 찾아 헤맨 그리움이, 마침내 눈앞에 나타난 현실 앞에서 터져 나오려 했다.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려 했다. 지금 당장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지난 세월의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었다.

엇갈린 시간의 조각들

그때였다. “엄마!”

맑고 청아한 아이의 목소리가 공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작은 몸으로 달려와 여인의 허리를 껴안았다. 여인은 손에 묻은 흙을 닦지도 않고 아이를 돌아보며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 현우가 평생 그리워했던, 그의 꿈속을 맴돌던 바로 그 미소였다. 다만, 그 미소는 이제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 서윤이 왔어? 유치원은 재밌었어?”

서윤. 아이의 이름이 서윤이라니. 서연의 이름을 본떠 지은 듯한 이름에 현우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그는 숨죽여 유리창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서연은 아이의 볼에 입을 맞추고, 작은 손으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다정한 몸짓, 그 따뜻한 눈빛은 완벽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현우는 비틀거렸다. 다리가 후들거려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었다. 그는 공방 옆 작은 화단 가장자리에 주저앉았다.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동시에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는 서연을 찾았다. 분명히 찾았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다른 세상에서, 그가 알지 못하는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녀의 삶에는, 그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였다.

“여보, 서윤이 왔어?”

뒤이어 공방 문이 다시 열리고, 훤칠한 키의 남자가 들어섰다. 그는 서연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아이에게 눈인사를 건넸다. 다정하고 편안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완벽한 가족처럼 보였다. 현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찾아 헤맨 서연은, 시간 속에 멈춰있던 스무 살의 첫사랑이었지만, 눈앞의 서연은 시간의 강을 건너 새로운 인연과 가정을 이룬, 현실 속의 여인이었다.

눈물이 터져 나왔다. 뜨거운 눈물이 차가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토록 찾아 헤맨 그녀를 만났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아픈 걸까. 수십 년간 품어온 순수한 사랑이, 이토록 잔인한 현실 앞에서 무참히 부서지는 기분이었다.

그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 수 없었다. 그녀의 행복을, 그녀의 새로운 삶을 감히 방해할 용기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녀의 완벽한 행복 앞에 자신의 존재가 초라하게 느껴져 도망치고 싶었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비틀거리며 골목을 빠져나왔다.

바닷바람이 더욱 거세게 불어왔다. 그의 낡은 코트 자락을 흔들었다. 현우는 자신이 돌아온 SUV에 몸을 싣고도 한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핸들을 움켜쥔 손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그녀를 발견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무엇을 해야 할까? 그의 첫사랑은, 그에게는 여전히 애틋한 그리움이었지만, 그녀에게는 이미 오래전 지나간 추억의 한 조각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잔인한 진실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 길고 긴 탐정의 여정은, 과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