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79화

강우진은 낡은 SUV의 시동을 끄고 차창 밖을 응시했다. 해 질 녘의 산은 검푸른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있었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스산한 바람에 흔들리며 으스스한 소리를 냈다. 그의 눈앞에는 폐허가 된 ‘햇살 요양원’이 마치 거대한 괴물처럼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수십 년 전, 고아원에서 짧게 머물렀던 서연의 기록에 박 여사의 비망록에서 스치듯 언급된 그곳이었다. 혹시나 하는 실낱같은 희망이 그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희망이라기보다는, 지쳐 쓰러지기 전 마지막으로 붙잡는 넝마에 가까웠다.

철문은 녹슬어 비명을 질렀고, 덩굴식물들이 건물을 온통 집어삼킬 듯 뒤덮고 있었다. 우진은 낡은 손전등을 켜고 폐허 속으로 발을 들였다. 발밑에서 깨진 유리 조각들이 사그락거리는 소리가 그의 심장 박동처럼 크게 울렸다. 한때 환자들의 웃음소리와 간호사들의 다급한 발걸음이 오갔을 복도는 이제 먼지와 거미줄, 그리고 정체 모를 곰팡이 냄새로 가득했다. 그의 손전등 불빛이 벽에 붙은 희미한 벽화를 스쳤다. 아이들이 그린 듯한 어설픈 그림들. 그 중에는 햇살 아래 웃고 있는 소녀의 모습도 있었다. 서연이었을까? 그의 가슴 한편이 욱신거렸다.

각각의 병실을 지날 때마다 과거의 잔상이 아련하게 스쳐 지나갔다. 병상에 누워 창밖을 바라보는 서연의 뒷모습, 책을 읽어주면 조용히 미소 짓던 그녀의 옆얼굴. 그 모든 환영들은 먼지 낀 공기 속에서 아롱거릴 뿐, 손을 뻗으면 사라져버리는 신기루 같았다. 우진은 텅 빈 공간을 헤매며, 서연이 남겼을지도 모를 흔적을 필사적으로 찾아 헤맸다. 그녀의 향기라도 맡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체온이 남아있는 곳을 찾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하로 내려가는 낡은 계단은 더욱 음산했다. 철제 난간은 부식되어 손에 닿는 순간 차갑고 꺼끌한 녹물이 묻어났다. 지하실은 마치 세상과 단절된 고립된 공간 같았다. 습한 공기가 코끝을 찔렀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를 갈랐다. 우진은 발소리를 죽이며 한 걸음씩 나아갔다. 다른 병실들과 달리 잠겨 있는 문이 눈에 띄었다. 오랜 세월의 흔적에도 불구하고, 마치 누군가 의도적으로 잠가둔 것 같은 단단한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우진은 준비해 온 도구로 낡은 자물쇠를 부쉈다.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안에서 묵직한 공기가 훅 끼쳐 나왔다. 방은 작고 비좁았다. 창문도 없어 어둠이 깊게 잠들어 있는 곳이었다. 손전등 불빛이 방 안을 쓸자, 벽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 같은 낙서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어린아이의 필체 같기도, 누군가 절박하게 남긴 암호 같기도 했다. 그리고 방 한가운데, 낡은 나무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 안에는 먼지 쌓인 인형 몇 개와 함께, 작고 낡은 스케치북 한 권이 들어 있었다.

우진의 손이 떨렸다. 표지를 넘기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림들이 나타났다. 그가 서연에게 선물했던 조약돌 모양의 작은 나무 새,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밤하늘을 보며 꿈을 키웠던 어린 시절의 풍경들. 서연의 그림이었다. 그는 확신했다. 그림들 사이에는 빛바랜 종이 한 장이 끼워져 있었다. 종이를 조심스럽게 꺼내 펼치자, 흐릿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밤의 장미… 그림자… 숲 너머의 집…”

단편적인 단어들이었지만, 우진의 심장을 강하게 울렸다. ‘밤의 장미’는 서연이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노래의 가사였다. 그리고 ‘숲 너머의 집’… 그것은 그들의 비밀 아지트를 뜻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이 요양원에서 ‘숲 너머의 집’이라니? 서연은 이곳에서 탈출하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누군가 그녀를 그곳으로 데려갔던 것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때였다. 콰앙! 머리 위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 폐허의 지상층으로 진입한 소리였다. 발소리가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규칙적이지만 어딘가 모르게 위협적인 발걸음. 우진은 급히 스케치북과 종이를 품에 안고 몸을 웅크렸다. 어둠 속에서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요동쳤다. 서연의 흔적을 발견한 기쁨과 함께, 미지의 존재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이 폐허에 자신 말고 또 누가 서연의 그림자를 쫓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서연의 사라짐과 관련된 진실을 숨기려는 자가 나타난 것일까?

발소리는 점점 더 가까워졌다.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 그리고 마침내 그의 방문 앞에서 멈추는 소리.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문고리가 움직였다. 우진은 숨을 멈췄다. 낡은 문틈으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그는 손에 쥐고 있던 손전등을 꽉 움켜쥐었다. 드디어, 그는 서연의 흔적을 찾았지만, 동시에 지독한 위험에 빠진 것 같았다.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