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86화

안개가 자욱한 숲이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싸늘하고 축축한 기운이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서윤은 익숙한 풍경 속에서 낯선 불안감을 느꼈다. 잎사귀 하나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손가락처럼 뻗어 있었고, 그 사이로 희미한 달빛조차 스며들지 못했다. 발밑에 깔린 낙엽은 눅눅하게 젖어 밟을 때마다 스산한 소리를 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낡은 램프만이 유일한 길잡이였다.

“지우…”

나직이 부르는 그녀의 목소리는 짙은 안개에 흡수되어 허공에서 흩어졌다. 이곳은 ‘백영감의 꿈 상점’에서 얻은 ‘기억의 조각’ 속에 갇힌 공간이었다. 잃어버린 동생, 지우의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영원한 잠에 빠진 지우를 깨우기 위해, 그녀는 그가 마지막으로 꾸었던 꿈의 파편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86번째의 시도였다.

이 미로는 매번 형태를 바꾸었다. 때로는 어린 시절 함께 뛰어놀던 공원이었다가, 때로는 학창 시절 지우와 비밀 이야기를 나누던 낡은 다락방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공통적인 것은 늘 짙은 안개와 스산한 고요함이었다. 그리고 지우의 흔적이 아주 희미하게 남아있다는 점이었다. 이번에는 잊혀진 숲이었다. 언제쯤 이곳을 벗어날 수 있을까. 백영감은 매번 경고했다. “꿈의 깊숙한 곳에는 잊혀진 진실이 숨어있을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망각의 늪이 기다리고 있단다.”

얼마나 걸었을까. 램프의 불빛이 흔들리며 주변을 비출 때마다, 나뭇가지에 걸린 낡은 천 조각들이 마치 손짓하듯 흔들렸다. 그때였다. 저 멀리, 안개 너머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는 것을 서윤은 발견했다. 조그맣지만 확실한 빛. 그녀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희망이었다. 수십 번의 실패 끝에 찾아온, 마침내 지우의 흔적일지도 모른다는 희망.

빛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눅눅한 낙엽이 그녀의 발밑에서 으깨지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지고, 대신 희미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아주 오래전, 지우가 흥얼거리던 자장가였다. 서윤은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이 노랫소리는… 꿈속에서도 그녀를 괴롭히는 가장 아픈 기억이었다. 지우가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들려주었던.

빛이 있는 곳에 다다르자, 안개는 걷히고 작은 오두막 한 채가 모습을 드러냈다. 허름하고 낡은,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정겨운 오두막. 오두막의 작은 창문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분명히 지우의 노랫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윤은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차갑고 녹슨 쇠붙이의 감촉이 그녀의 손끝에 닿았다. 망설일 틈도 없이 문을 열었다.

“지우…?”

오두막 안은 놀랍도록 따뜻하고 아늑했다. 벽난로에서는 장작이 타닥타닥 타는 소리가 들렸고, 그 옆 작은 나무 탁자 위에는 낡은 그림책 한 권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벽난로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작은 그림자가 있었다. 웅크린 어깨가 들썩이며 노랫소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지우였다. 어린 시절의 지우.

서윤은 한 발자국, 또 한 발자국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눈앞의 현실이 믿기지 않았다. 몇 년 동안 찾아 헤매던 동생의 모습이 아닌가. 그녀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지우야… 누나 왔다…”

그림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지우가 아니었다. 낯선 아이의 얼굴이었다. 눈은 텅 비어 있었고, 표정 없는 얼굴에서 노랫소리만 기계적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의 등 뒤로, 검고 거대한 그림자가 일렁였다. 형체가 없는, 모든 빛을 집어삼킬 듯한 어둠의 기운. 망각의 늪의 현신이었다. 서윤은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누구야… 너… 지우는 어디 있어?”

아이의 노랫소리가 갑자기 뚝 끊겼다. 그리고 텅 빈 눈동자가 서윤을 향했다. 아이의 입술이 천천히 움직였다. 그것은 지우의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알 수 없는 슬픔과 공허함이 가득했다.

“누나… 여기는… 내가 만든 꿈이야…”

등 뒤의 그림자가 오두막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다. 벽난로의 불길이 푸른색으로 변하고, 따뜻했던 공기가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버렸다. 탁자 위 그림책의 그림들이 비명을 지르듯 일그러졌다. 오두막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꿈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무슨 소리야? 지우야, 정신 차려! 누나야!”

서윤은 아이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의 길을 막아섰다. 그림자 속에서 수많은 손들이 뻗어 나와 그녀를 잡으려 했다. 망각의 그림자였다. 이곳에 갇힌 채 자신을 잃어버린 수많은 꿈의 잔해들이었다.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번에는 더욱 희미해지고 멀어져 가는 듯했다.

“누나… 나를 찾아 헤매지 마… 이 꿈은… 누나를 위한 게 아니야…”

갑자기 아이의 품에서 빛나는 작은 구슬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투명하고 영롱한 구슬. 그 안에는 어릴 적 지우와 서윤이 함께 웃고 있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행복하고 찬란한 기억의 조각이었다. 그것은 지우가 서윤에게 남기고 싶었던 마지막 선물이었다. 망각의 늪에 완전히 잠기기 전에, 서윤을 위해 남겨둔.

서윤은 망설임 없이 구슬을 움켜쥐었다. 손끝에 닿는 차가운 감촉은 슬픔의 무게를 고스란히 전했다. 그림자들의 손이 그녀의 팔을 붙잡아 끌어당겼다. 오두막은 이제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고 있었다. 그녀는 지우의 모습을 한 아이를 향해 필사적으로 소리쳤다.

“지우야! 이 꿈이 누나를 위한 게 아니라면… 대체 누구를 위한 건데?!”

아이의 형체가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가는 마지막 순간, 그녀는 그의 입술에서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들려오는 속삭임을 들었다. 그 목소리는 차마 믿을 수 없는 진실을 담고 있었다.

“…나를… 이 꿈속에 가둔… 그를 위한…”

그녀의 손에 쥐어진 구슬이 눈부신 빛을 내뿜으며 터져 나갔다. 동시에 서윤은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꿈의 세계 밖으로 내던져졌다. 그녀의 눈앞은 아득한 어둠으로 변했고, 귓가에는 지우의 마지막 말이 메아리쳤다. ‘나를 이 꿈속에 가둔 그를 위한.’ 서윤은 눈을 번쩍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자신의 손에 꽉 쥐어진, 투명한 조약돌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방금 그녀가 얻은, 지우의 기억 조각이었다.

“서윤 아씨, 괜찮으신가요?”

백영감의 근심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백영감의 꿈 상점, 평소 그녀가 꿈을 빌려 잠이 드는 아늑한 방에 누워 있었다. 땀으로 축축한 이마를 쓸어 올리자, 그녀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지우가 꾸고 있던 꿈이, 단순한 기억의 파편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만들어진 감옥이었다는 것. 그리고 그 감옥에 지우를 가둔 ‘그’가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차가운 조약돌이 그녀의 심장처럼 뜨겁게 느껴졌다. 백영감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모든 것을 짐작한 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

“찾으셨군요…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큰 진실을 마주하신 듯 보이는군요.”

서윤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빛은 혼란과 분노로 이글거렸다. 지우를 가둔 존재는 누구인가? 왜 지우는 그런 꿈속에 갇혀 있어야만 했는가? 이 모든 미스터리의 실타래는 이제 백영감의 상점으로 다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물었다.

“백영감님. 알려주세요. 지우를 가둔 ‘그’는… 대체 누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