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95화


지아는 숨이 막히는 듯한 통증에 눈을 떴다. 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고, 심장은 마치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처럼 격렬하게 쿵쾅거렸다.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천장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 꾸었던 꿈의 잔상이 끈적한 거미줄처럼 그녀의 의식을 휘감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꿈이 아니었다. ‘꿈을 파는 상점’에서 사 온, 잊고 싶었던 과거의 조각.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지아는 차가운 물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시원함이 뜨겁게 달아오른 몸을 겨우 진정시켰다. 꿈은 선명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초등학교 운동장, 고작 열 살 남짓이었던 자신과, 두 살 어린 동생 혜진. 운동장 한쪽 낡은 벤치에 앉아있던 혜진이 울음을 터뜨렸고, 자신은 그런 혜진의 손을 놓고 도망치듯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갔던 순간. 그 기억은 지아에게 늘 아물지 않는 상처였다. 혜진을 홀로 두고 떠났다는 죄책감, 그리고 혜진이 자신을 원망했을 거라는 어두운 확신. 그날 이후로 자매는 멀어졌고, 결국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별이 되었다.

지아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왜 하필 이 꿈이었을까? 상점의 할머니에게 자신은 분명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아름다운 꿈”을 원한다고 했었다. 그런데 돌아온 것은 칼날처럼 날카로운 과거의 조각이라니. 분노와 절망감이 한데 뒤섞여 그녀의 가슴을 후벼 팠다.

잊힌 기억의 조각

동이 트기도 전이었지만, 지아는 더 이상 침대에 누워 있을 수 없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잿빛 새벽 공기가 폐 속으로 스며들 때마다 찢어진 심장이 아우성치는 듯했다. 그녀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꿈을 파는 상점’을 향했다. 낡은 간판은 희미한 불빛 아래 여전히 쓸쓸하게 빛나고 있었다.

상점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오래된 나무와 옅은 인향이 섞인 익숙한 냄새가 그녀를 감쌌다. 카운터 뒤에 앉아있던 할머니는 언제나처럼 고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오랜 강물처럼 깊고 평온했다.

“일찍도 왔구나, 지아야.” 할머니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어쩐지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지아는 참았던 분노를 터뜨리듯 소리쳤다. “할머니! 이게 대체 무슨 꿈이에요? 전 아름답고 편안한 꿈을 원했어요! 그런데 저에게 이런 악몽을 주다니요!”

할머니는 천천히 뜨거운 차를 한 잔 내밀었다. 찻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이 그녀의 주름진 얼굴을 부드럽게 감쌌다.

“악몽이라고 생각하느냐? 꿈은 때로 잊고 싶은 진실을 보여주기도 한단다. 어쩌면 너의 마음속 깊이, 정말로 필요했던 건 그 진실이었을지도 모르지.”

“진실이요? 그날의 진실은 제가 혜진을 버렸다는 거예요! 고작 열 살짜리 동생을 비 오는 운동장에 혼자 두고 도망쳤다는 끔찍한 진실요!” 지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날의 비와 혜진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다시 생생하게 울리는 듯했다.

할머니는 말없이 찻잔을 바라보다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네가 본 꿈의 마지막은 무엇이었더냐?”

지아는 잠시 숨을 골랐다. 꿈은 그녀가 건물 안으로 뛰어들어간 후 혜진이 울고 있는 모습에서 끝났었다. 하지만…

“아니, 뭔가 이상했어요. 제가 달려들어간 복도에서… 혜진의 목소리가 들렸던 것 같아요. 제가 들었던 건 혜진이 저를 원망하는 소리가 아니라, ‘언니, 가지 마!’ 하는… 그런 울음소리였던 것 같아요.”

“그래, 바로 그거란다.”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기억하는 꿈은 너의 시점에서 멈춰버린 조각이었을 뿐. 하지만 너의 무의식은, 어쩌면 너의 동생도 그 순간 얼마나 외롭고 두려웠는지를 알고 싶어 했을 게다. 네가 떠난 후, 혜진이 울었던 건 너를 원망해서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 오히려 곁에 있던 유일한 언니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어린아이의 순수한 공포였을 수도 있다는 것을.”

지아의 심장이 멎는 듯했다. 혜진의 울음소리가, 비에 젖어 홀로 남겨진 벤치 위 혜진의 작은 모습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때 혜진의 눈물이 자신에 대한 원망이 아니라, 언니의 부재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열 살 지아의 눈에 보이지 않았던, 어린 혜진의 진심. 그날 이후로 혜진은 줄곧 자신을 미워했을 거라 확신했던 지아의 세상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혜진 역시 상처받은 아이였고, 자신만큼이나 그날의 기억에 갇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뒤늦게 그녀를 덮쳤다.

시간을 넘어선 화해의 씨앗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동안 쌓아 올렸던 모든 오해와 자책의 탑이 무너져 내리는 아픔이었다. 하지만 그 아픔 속에는 차가운 돌멩이 같았던 그녀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것은 후회와 함께 피어나는 연민, 그리고 뒤늦은 이해였다.

“그럼… 혜진도 아팠겠네요. 저 때문에… 아니, 그날의 일 때문에… 혜진도 저만큼이나 아팠겠네요.” 지아의 목소리는 흐느낌에 섞여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할머니는 지아의 손을 조용히 잡았다. 할머니의 손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지아의 얼어붙은 심장에 조금씩 스며들었다.

“꿈은 과거를 바꾸지는 못한단다. 하지만 과거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할 수는 있지. 너는 이제 그날의 꿈을 과거에 묶어둘지, 아니면 미래로 가져갈지 선택해야 할 때다.”

미래로 가져갈 꿈. 그 말에 지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아직 눈물로 젖어 있었지만, 그 안에 새로운 결심의 빛이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수십 년간 굳게 닫혀 있던 문을 이제야 열어볼 용기가 생기는 듯했다.

지아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상점 밖으로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더 이상 불안하거나 흔들리지 않았다. 새벽의 어둠은 옅어지고, 동쪽 하늘은 희미하게 보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집으로 돌아온 지아는 낡은 서랍장을 열었다. 오래된 상자 안에는 먼지 쌓인 앨범과 함께, 색 바랜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운동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어린 지아와 혜진의 모습이 있었다. 혜진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지아의 손가락 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혜진아…” 그녀의 입에서 오랜만에 동생의 이름이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지아는 잠시 망설였다. 수십 년간 끊어졌던 인연의 끈을 다시 묶는다는 것은 두렵고 어려운 일일 터였다.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로 했다. 상점에서 얻은 ‘꿈’은 단순한 기억의 재현이 아니었다. 그것은 상처를 치유하고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작은 씨앗이었다.

지아는 떨리는 손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오래된 연락처 목록을 천천히 훑어 내려갔다. 희미한 혜진의 이름 앞에 멈춰 선 그녀의 눈에는, 이제 더 이상 과거의 아픔이 아닌, 새로운 희망의 빛이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깊이 숨을 들이쉬고, 마침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어쩌면 이 꿈을 통해, 수십 년간 멈춰있던 자매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