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 제30화

어둠이 짙게 깔린 서재에는 낡은 종이와 먼지 냄새, 그리고 째깍거리는 벽시계 소리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훈의 귀에는 그 모든 소음이 닿지 않았다. 그의 심장만이 불규칙하게, 그러나 맹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해묵은 탁자 위에 놓인, 기묘한 금속 문양으로 뒤덮인 낡은 회중시계를 응시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 지난 수십 번의 실패와 좌절,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해 온 유일한 벗이자,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 저주였다.

지훈의 손은 가늘게 떨렸다. 창백한 얼굴에는 깊은 그늘이 드리워 있었고, 눈은 꺼져가는 촛불처럼 희미하게 빛났다. 그의 머릿속은 수많은 기억의 조각들로 뒤엉켜 있었다. 어느 것이 진짜 현실이었는지, 어느 것이 시계를 통해 조작된 허상이었는지 이제는 분간하기 어려웠다. 소라, 그의 소라. 그녀의 환한 웃음, 장난기 어린 목소리, 따뜻한 손길… 그 모든 것이 마치 안개처럼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매번 시간을 되돌릴 때마다, 조각난 현실의 파편들이 그의 존재마저 잠식해 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그녀를 되찾기 전까지는.

수첩에는 지난 5년간의 기록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특정 버스 노선을 바꾸려 했던 시도, 갑작스러운 비를 내리게 해 약속을 취소시키려 했던 노력, 심지어 그녀의 신발 끈을 풀리게 해 발목을 삐게 만들려던 기이한 발상까지. 그녀가 그날, 비극적인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리고 매번,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비극은 찾아왔다. 버스 대신 택시를 타 사고가 나거나, 약속을 취소한 대신 다른 길에서 불의의 사고를 당하거나. 시간의 섭리는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의 개입을 거부하고 비웃는 듯했다.

“이번엔… 다를 거야.”

지훈은 갈라진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의 손가락은 수첩의 한 페이지에 멈춰 있었다. 며칠 밤낮을 새워가며 파고든 그날의 흔적들 속에서, 그는 마침내 하나의 실마리를 찾아냈다고 확신했다. 아주 사소한 것. 소라가 집을 나서기 전, 현관 앞 쓰레기통에 무심코 버렸던 낡은 전단지 한 장. 그 전단지 때문에 그녀의 발걸음이 1분 늦어졌고, 그 1분이 그녀를 사고의 현장으로 이끌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시계’가 희미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결심을 알아차린 듯, 혹은 한숨을 쉬는 듯한 낮은 웅웅거림이었다. 지훈은 시계를 들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그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이 시계는 그에게 삶의 목적을 주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앗아갔다. 친구도, 가족도, 자신의 원래 삶마저도.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소라를 되살리려는 맹목적인 집착뿐이었다.

뇌리에는 과거 어느 날 들었던 경고가 스쳐 지나갔다. 분명 그는 누군가와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시간의 실타래는 단단히 엮여 있어, 한 올을 바꾸려 하면 전체가 뒤틀린다는 경고. 그리고 그 뒤틀림은 가장 가까운 것을 먼저 파괴할 것이라는… 하지만 그 경고를 한 사람이 누구였는지, 언제 어디서 들었는지조차 이제는 희미했다. 어쩌면, 그것은 그의 닳아버린 정신이 만들어낸 환청이었을지도 모른다.

지훈은 심호흡을 했다. 그의 눈빛에 다시금 결연한 의지가 타올랐다. 마지막 기회였다. 더 이상 물러설 곳도, 되돌릴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는 시계의 뚜껑을 열고, 용두를 힘껏 감았다. ‘그 시계’의 문양이 밝은 푸른빛으로 섬광처럼 번뜩였다. 차가운 금속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그의 손목을 관통하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서재의 모든 사물이 물감처럼 번져나갔다. 그의 몸은 마치 폭풍 속의 돛단배처럼 격렬하게 흔들렸다. 끔찍한 멀미와 함께, 존재의 근원이 뒤흔들리는 듯한 고통이 전신을 휩쓸었다. 수많은 시간의 파편들이 그의 의식을 스쳐 지나갔다. 과거와 미래,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거대한 소용돌이 속에서 그는 오직 하나의 얼굴만을 붙잡고 있었다. 소라, 나의 소라.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도 영원 같았고, 동시에 찰나 같았다. 모든 고통과 혼돈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지훈은 휘청거리며 몸을 바로잡았다. 심장이 목구멍까지 치솟을 듯 격렬하게 뛰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의 기억 속 그대로였다.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 작은 방. 낡은 벽지, 볕에 바랜 커튼, 책상 위에는 그녀가 즐겨 읽던 시집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창밖에서는 새들이 지저귀고, 평화로운 아침의 소리가 들려왔다.

이곳은 소라의 방이었다. 그녀가 집을 나서기 불과 몇 분 전, 바로 그 시간이었다. 지훈의 눈에 벅찬 감동이 일렁였다. 공기 중에 그녀의 향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숨을 들이쉬자, 희미한 꽃향기가 그의 폐부를 가득 채웠다. 살아있는 그녀의 흔적. 그 순간, 문이 열리고 그녀가 들어왔다. 그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오빠…?”

그녀가 말했다. 그의 기억 속보다 조금 더 어리고, 조금 더 생기 넘치는 얼굴이었다. 그녀의 눈은 맑고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지훈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그녀의 모습을 온전히 눈에 담으려 애썼다. 이렇게 살아있는 그녀를 다시 보게 될 줄이야. 그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다. 그의 손이 그녀에게 닿으려는 순간, 그는 탁자 위를 보았다. 전단지.

지훈은 순간 망설였다. 전단지를 치우기만 하면 된다. 그녀의 발걸음을 1분만 늦추면, 그녀는 사고를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재빨리 손을 뻗어 탁자 위 전단지를 구겨 쓰레기통에 넣었다. 그녀는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고개를 갸웃하며 미소 지었다. 그의 행동이 다소 이상했겠지만, 그녀는 그저 사랑하는 오빠의 작은 장난쯤으로 생각하는 듯했다.

“오빠, 왜 그래? 울어?”

그녀의 목소리. 그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유일한 음성이었다. 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 싶었어, 소라야.” 그는 울먹이며 대답했다. 그녀의 눈이 더욱 커졌다. “뭐야, 오빠. 나 어제도 봤잖아?” 그녀는 웃으며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의 손에 닿는 그녀의 온기, 부드러운 손길.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는 해냈다. 이번만큼은 성공했다. 그녀는 이제 사고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 순간, 지훈의 눈에 방 한쪽 벽에 걸린 가족사진이 들어왔다. 언제나 그랬듯, 환하게 웃고 있는 부모님과… 그리고 소라. 하지만 그 옆에 있어야 할 자신의 모습이 없었다. 사진 속에는 부모님과 소라, 단 세 명만이 있었다. 액자 속 소라의 팔은 비어 있었고, 그 옆 공간은 마치 원래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지훈은 심장이 얼어붙는 것을 느꼈다.

“소라야… 저 사진… 왜… 나 없어?”

그의 목소리는 미약하게 떨렸다. 소라는 고개를 갸웃하며 사진을 바라보았다. “응? 원래 세 명 사진이잖아. 우리가족은 셋인데?” 그녀의 말은 너무나도 태연했다. 너무나도 자연스러웠다. 마치 지훈이라는 존재가 처음부터 그들의 가족 구성원이 아니었던 것처럼.

지훈의 머릿속에서 거대한 퍼즐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아니, 제자리를 잃고 산산조각 나는 듯했다. 그녀의 눈빛. 그의 눈물을 닦아주던 손길. 그 모든 것이 ‘사랑하는 오빠’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낯선 사람이 갑자기 울고 있는’ 것에 대한 순수한 걱정과 친절이었다. 그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혹은, 그를 알긴 알지만, 그와의 관계가 그의 기억 속 관계와는 너무나도 달랐다.

“소라야… 너… 내가 누군지 알아?”

그의 목소리가 절박하게 터져 나왔다. 소라는 잠시 멈칫하더니, 작은 미소를 지었다. “어… 지훈 오빠 맞지? 엄마 친구 아들? 예전에 한번 왔었잖아.” 그녀의 대답은 비수처럼 지훈의 심장을 꿰뚫었다. 엄마 친구 아들. 그는 그녀의 오빠가 아니었다. 그녀는 그와 아무런 추억도, 사랑도 공유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삶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전단지를 치우고 1분을 늦추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가, 그녀의 목숨을 구원했지만, 동시에 그의 존재 자체를 그녀의 삶에서 지워버린 것이었다. 시간의 섭리는 잔인했다. 그는 그녀를 구했지만, 그 대가로 그녀의 기억 속에서, 그녀의 세계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가 그토록 필사적으로 되찾으려 했던 사랑과 유대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그 시계’가 그의 손에서 떨어져 바닥에 부딪혔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시계의 유리 부분이 산산조각 났다. 시계는 더 이상 푸른빛을 내지 않았다. 침묵 속에 갇힌 낡은 금속 조각일 뿐이었다. 지훈의 눈앞에 있던 소라의 방은 서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웃음소리도, 햇살도, 모든 것이 안개처럼 사라져 갔다. 그의 몸은 다시 한번 격렬한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눈을 떴을 때, 그는 다시 어둠이 깔린 서재에 홀로 앉아 있었다. 깨진 시계가 그의 발치에 놓여 있었다. 서재는 여전히 낡고, 먼지 냄새가 났지만,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벽에는 텅 빈 액자 자국만이 희미하게 남아있었고, 그의 책상 위 수첩에는 소라에 대한 기록 대신, 알 수 없는 기호들과 수식만이 가득했다. 그의 머릿속은 텅 비어 있었다. 소라의 얼굴이 희미하게 떠올랐지만, 그것이 누구인지, 자신과 어떤 관계였는지 명확하지 않았다. 가슴 한구석에 설명할 수 없는 깊은 통증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는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를 썼다. 수십 번, 수백 번. 사랑하는 사람을 되살리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를 구원했지만, 그 대가로 그는 자신을 잃었고, 그녀는 그를 잃었다. 모든 것이 지워진 텅 빈 공간에서, 지훈은 오직 깨진 시계를 응시하며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그의 눈물 속에는,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는 사랑의 상실과,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비통함이 가득했다. 시간을 되돌리는 시계는, 결국 그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고, 외로운 그림자만을 남겼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