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105화

도시의 밤은 깊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불빛들은 밤하늘의 별들을 삼킬 듯 반짝였지만, 유나의 방은 늘 고요했다. 창문을 살짝 열자, 싸늘한 밤공기가 뺨을 스쳤다. 고층 아파트의 십육 층, 이곳에서 보는 별들은 몇 개 되지 않았지만, 유나는 희미하게 빛나는 그 작은 점들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어쩌면 그 별들이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간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 때문이었다.

낡은 탁상용 라디오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지지직거리는 잡음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유나가 이 불면의 밤을 견디는 유일한 동반자였다. 오늘은 왠지 평소보다 더 차분하고 깊은 목소리였다.

“별밤 가족 여러분, 깊어가는 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저는 진행자, 김민준입니다. 오늘따라 유난히 별이 맑게 빛나는 밤입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삶도 이 별들처럼, 때로는 혼자 반짝이고, 때로는 무리 지어 은하수를 이루며 빛나고 있다는 것을요. 오늘은 익명으로 보내주신 사연 하나로 문을 열어볼까 합니다.”

유나는 침대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사연이 시작되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졸지에 낯선 시골 마을로 이사하게 된 한 소녀의 이야기였다. 소녀는 모든 것이 낯설고 외로웠지만,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별들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낡은 라디오를 주워들었고, 그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이야기에 위로를 받으며 다시 꿈을 꿀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이었다. 소녀는 이제 어른이 되어 도시에서 살아가지만, 여전히 힘든 날에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라디오를 켠다고 했다.

사연을 듣는 내내 유나의 가슴 한켠이 저릿했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 유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스무 살, 꿈에 부풀어 서울로 올라왔던 그 해,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낯선 사람들, 삭막한 도시, 홀로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과 좌절감은 그녀를 짓눌렀다. 그때마다 그녀는 라디오에 기대어 밤을 지새웠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그녀에게 작은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한밤중의 라디오는 마치 멀리 떨어진 누군가가 조용히 건네는 속삭임 같았다.

김민준 DJ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이 사연을 보내주신 분께,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별밤을 듣고 계신 모든 분들께, 저는 이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길을 잃고 헤맬 때, 혼자라고 느껴질 때, 부디 하늘을 올려다보세요. 그리고 귀 기울여 보세요.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걸요. 수많은 별들이 여러분의 길을 비춰주고, 이 작은 전파가 여러분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겁니다. 다음 곡은 그런 여러분을 위한 노래입니다.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듣겠습니다.”

낯익은 멜로디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기타 선율은 가슴속 깊은 곳을 건드렸다. 유나는 자연스레 눈을 감았다. 그녀의 기억 속 한 조각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것은 어린 시절, 그녀의 손을 잡고 동네 어귀를 걷던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그날도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할머니는 유나의 작은 손을 꼭 잡고 밤하늘을 가리켰다. “유나야, 저기 봐라. 저 별들은 다 이유가 있어서 저리 반짝이는 거란다. 너도 언젠가 저 별처럼 빛날 거야.” 할머니의 목소리는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할머니는 낡은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늘 곁에 두셨다. 밤마다 그 라디오에서는 유행가와 함께 아련한 사연들이 흘러나왔고, 할머니는 무릎에 유나를 앉혀 놓고 함께 라디오를 들으며 웃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훔치기도 하셨다.

할머니는 유나에게 세상의 모든 별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품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다. 때로는 멀리 떨어져 홀로 빛나는 별이 더 아름다울 때도 있고, 때로는 수많은 별들이 모여 거대한 은하수를 이룰 때 더 장엄하다고. 중요한 건, 저 모든 별들이 제자리에서 묵묵히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이라고.

노래가 절정에 이르자, 유나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혔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도 벌써 십 년이 넘었다. 그녀는 할머니가 떠난 후에도 여전히 삶의 중요한 기로마다 할머니의 따뜻한 조언을 떠올리곤 했다. 특히, 혼란스럽고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할머니의 말을 되새겼다.

김광석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김민준 DJ의 목소리가 다시 밤을 채웠다.

“오늘밤, 혹시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오래된 이야기나, 잊었던 추억이 다시 떠올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때로는 익숙한 멜로디 하나가, 잊고 살았던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데려오기도 하죠. 우리의 삶은 그런 시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기쁨과 슬픔,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모든 순간들을 함께했던 사람들. 그 모든 기억들이 모여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슬퍼하거나 아파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세요. 그 모든 감정들이 여러분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고, 더 깊이 있는 사람으로 성장시킬 겁니다.”

유나는 눈을 떴다. 창밖의 별들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아까보다 더 또렷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어쩌면 밤하늘의 모든 별들이 할머니의 눈빛처럼,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그녀의 손을 잡아주는 듯했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마음속 깊은 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힘들 때마다 별을 보고, 라디오를 켜세요. 그러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 밤이 다 가기 전에, 여러분의 마음에 작은 위로와 희망이 가득 차기를 바랍니다. 저는 김민준이었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라디오에서 잔잔한 마무리 음악이 흘러나왔다. 유나는 미소 지었다. 할머니의 말씀처럼, 그녀는 그녀의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다. 비록 눈부시지는 않더라도, 자신만의 빛으로. 그리고 그녀의 곁에는 여전히 밤하늘의 별들과 함께하는 라디오가 있었다. 그녀는 이제 다시 걸어갈 힘을 얻은 듯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그렇게, 또 한 사람의 마음에 작은 등불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