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122화

지훈의 손에 들린 낡은 사진 한 장이 희미하게 떨렸다. 수년, 아니 십수 년에 걸친 고통스러운 추적의 끝이 이 사진 한 장에 담겨 있었다. 옅은 갈색빛으로 바랜 사진 속에서, 스무 살 설아는 수줍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의 앞에 펼쳐진 골목 끝, 낡은 이층 건물 앞에서 그 웃음을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미약한 희망과 거대한 불안감이 동시에 들이닥쳤다.

가을 오후의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졌지만, 지훈의 심장은 서늘한 한기에 감싸인 듯했다. 미로 같은 세월을 헤치고 여기까지 왔다. 수많은 오해와 절망적인 단서들, 때로는 그녀의 흔적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번번이 좌절로 끝났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이제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지점이었다. 마지막 퍼즐 조각은, 바로 이 주소였다. ‘연화랑’. 낡은 간판이 햇빛을 받아 흐릿하게 빛났다.

지훈은 숨을 고르며 건물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좁은 골목은 한낮인데도 한적했다. 건물 외벽에 그려진 추상화 한 점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슬픔이 깃든 색채.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설아… 네가 여기에 있구나.

화랑의 나무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문고리를 잡으려던 지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너무나 오랜 시간 염원했던 순간. 하지만 막상 마주하게 되니, 어떤 표정으로 그녀를 봐야 할지,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녀는 그를 기억할까? 기억한다면, 반가워할까? 아니면, 그저 잊고 싶은 과거의 그림자로 여길까?

그때, 문틈으로 비어져 나오는 낮은 목소리들이 들렸다. 두 사람의 대화 같았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몸을 숨겨 건물 옆 벽에 기댔다. 마음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했다. 훔쳐듣는 것은 비겁한 일이었지만, 이 순간 그의 이성은 마비된 상태였다.

“이 작품은… 아직 완성되지 않은 것 같아요. 설아 씨의 마음이 아직도 떠다니는 것 같아서.” 남자의 목소리였다. 부드럽지만 단단한 어조.

“네. 아직… 어떤 형태로 마무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모든 것을 쏟아부었는데도, 채워지지 않는 공간이 있어요.” 익숙하지만 낯선 목소리. 설아의 목소리였다. 수십 년간 꿈속에서만 들었던 그 음성. 조금 더 낮아지고, 어딘가 모르게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했지만, 틀림없는 그녀였다. 지훈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심장이 발작하듯 뛰었다. 그녀가 살아있었고, 가까이에 있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지훈의 머릿속에 과거의 설아가 스쳐 지나갔다. 늘 작은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며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담으려 애썼던 소녀. 그의 첫사랑 설아.

지훈은 조심스럽게 문 가까이 다가갔다. 낡은 문틈으로 살짝 벌어진 틈 사이로 안이 보였다. 정갈하게 정리된 화랑 내부, 캔버스들이 여기저기 놓여 있었고, 한쪽 벽에는 완성된 듯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중앙에 놓인 이젤 앞에 두 사람이 서 있었다.

한 사람은 그녀였다. 어릴 적 꿈꾸던 얼굴 그대로, 세월의 흔적은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길게 늘어뜨린 머리칼은 과거보다 차분해졌고, 그녀의 눈빛은 무언가 깊은 고뇌를 담고 있는 듯했다. 지훈은 심장이 멎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녀를 본 순간, 모든 시간이 정지했다.

하지만, 그녀의 옆에 서 있는 남자의 존재가 지훈을 다시 현실로 끌어내렸다. 키가 크고, 깔끔한 정장 차림의 남자. 그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듯한 그 남자의 눈빛은 설아를 향해 있었다. 단순한 고객의 시선이 아니었다. 깊은 유대감이 느껴지는 듯했다.

“시간이 필요할 겁니다. 하지만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를… 다시 만날 수 있도록.” 남자의 말에 설아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빛에 찰나의 흔들림이 스쳤다.

그? 그를 다시 만나? 지훈의 온몸에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그 남자가 말하는 ‘그’는 누구일까? 설아는 다른 사람과 가정을 꾸린 것일까? 아니면, 자신을 잊지 못하고 과거의 어떤 그림자를 아직 붙들고 있는 것일까? 지훈의 머릿속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그때, 설아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이 문 쪽으로 향하는 듯했다. 지훈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여 몸을 숨겼다. 숨소리마저 죽였다. 이대로 그녀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의 오랜 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전혀 예상치 못했던 불안한 조각이 끼어들었다.

지훈은 굳게 닫힌 화랑의 문을 다시 한번 응시했다. 그 문 너머에, 자신의 첫사랑 설아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혼자가 아니었고, 그녀의 삶은 지훈이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길을 걷고 있는 듯했다. 수십 년의 추적이 끝나는 순간, 지훈은 또 다른 미궁의 입구에 서 있음을 직감했다. 이대로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할까? 아니면, 그녀의 삶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까? 그의 손은 다시 한번 굳게 쥔 사진을 놓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