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공기를 가르며 고소한 빵 냄새가 골목을 감쌌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 유리창 너머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고, 지우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막 오븐에서 꺼낸 식빵들을 식힘망에 올리고 있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빵들 사이로 새벽의 한기가 스러지고, 빵집 안은 어느새 봄날처럼 온기로 가득했다. 매일 반복되는 이 의식은 지우에게는 평화였고, 빵집을 찾는 이들에게는 작은 설렘이었다.
오늘은 유난히 ‘그’ 빵에 손이 많이 갔다. 따뜻한 우유와 부드러운 반죽으로 만든, 촉촉하고 폭신한 고구마 빵. 은은한 단맛과 부드러운 식감으로 어르신들이 특히 좋아했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평소보다 더 정성을 들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위로할 준비라도 하는 것처럼.
아침 7시. 빵집 문이 열리자마자 익숙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김 여사님이었다. 고운 한복 치마에 단정하게 빗어 넘긴 백발, 언제나 온화한 미소를 띠던 얼굴에는 오늘따라 깊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지우는 김 여사님의 모습을 보자마자 문득 고구마 빵에 유난히 마음이 쓰였던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여사님. 오늘도 일찍 오셨네요.”
지우가 인사를 건넸지만, 김 여사님은 희미하게 웃을 뿐이었다. 늘 그렇듯 고구마 빵이 놓인 진열대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녀는 매일 아침 남편에게 전할 것처럼, 가장 따뜻하고 먹음직스러운 고구마 빵 두 개를 골라갔다. 하나는 당신 몫, 하나는 언제나 함께하는 남편의 몫. 지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여사님의 남편은 3년 전, 이맘때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오늘은… 그냥 하나만 주세요.”
김 여사님의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빵을 고르는 손길도 평소와 달리 힘이 없었다. 지우는 아무 말 없이 김 여사님의 손이 가리킨 빵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아주 잠시, 망설였다. 평소 같으면 그저 포장해서 건넬 일이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김 여사님이 계산대 앞에 서서 지갑을 여는 사이, 지우는 재빨리 뒤를 돌아 오븐 앞으로 향했다. 마침 오븐에서 마지막으로 구워져 나온 고구마 빵이 김을 뿜고 있었다. 지우는 그 중 가장 노릇하고 큼직한 빵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비장의 재료처럼, 작은 통에서 계피가루를 아주 조금만 집어 들었다. 김 여사님의 남편이 계피 향을 특히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예전에 빵집에서 우연히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아주 희미한 기억이었지만, 오늘따라 선명하게 떠올랐다.
“여사님,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지우는 평소보다 조금 더 신경 써서 종이봉투에 빵 하나를 담았다. 그리고는 새로 꺼내든 뜨거운 고구마 빵 위에 아주 미세하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계피가루를 솔솔 뿌렸다. 뜨거운 빵 위에서 계피 향이 순식간에 피어올랐다. 그리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 빵을 이미 포장된 빵 옆에 조용히 넣어드렸다. 두 개의 고구마 빵.
“여사님, 오늘은 특별히 막 나온 따뜻한 빵으로 바꿔드렸어요. 어떠세요, 아직 온기가 가득하죠?”
지우는 살짝 미소 지으며 포장된 봉투를 김 여사님께 건넸다. 김 여사님은 의아한 표정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손끝에 전해지는 따뜻한 온기가 봉투 안에서 느껴졌다. 그리고 코끝을 스치는 은은한 계피 향. 그녀의 눈이 순간 크게 뜨였다.
“두… 두 개네요?”
김 여사님의 목소리에 당혹감과 함께 옅은 떨림이 묻어났다. 지우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네. 오늘 아침 빵이 너무 잘 구워져서요. 이 중에서도 특별히 더 잘 나온 아이로 골라 넣어드렸어요. 하나는 여사님께서 맛있게 드시고, 다른 하나는… 오늘 같은 날,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할 것 같아서요.”
김 여사님의 눈가에 촉촉한 물기가 어렸다. 그녀는 지우를 한참 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그 눈빛에는 놀라움, 감사함, 그리고 깊은 감동이 담겨 있었다. 그저 따뜻한 빵 하나를 더 넣어준 것뿐인데, 김 여사님에게는 마치 마음에 드리워졌던 무거운 커튼이 걷히는 듯한 순간이었다. 봉투 안에서 피어나는 계피 향이 잊고 지냈던 남편과의 추억을 소환했다. 남편은 언제나 따뜻한 고구마 빵에 계피가루를 뿌려 먹는 것을 좋아했다. 그 작은 습관 하나까지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에, 김 여사님은 그제야 비로소 홀로 남겨진 듯한 깊은 고독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지우 씨.”
김 여사님의 목소리가 메었다.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두 손으로 봉투를 꼭 그러쥔 채 빵집 문을 나섰다. 평소보다 훨씬 가벼워진 발걸음이었다.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 하나를 내려놓은 듯, 그녀의 뒷모습은 조금 더 희망적으로 보였다.
지우는 문을 나서는 김 여사님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빵집 안은 다시 평화로운 고요함으로 채워졌다. 지우는 따뜻한 온기가 남은 오븐을 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빵 하나가 누군가의 마음에 기적처럼 따뜻한 위로를 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은 오늘도 그렇게, 말없이 소박한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어느새 햇살이 스며들며, 새로운 하루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