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대 정상은 거친 바람과 자욱한 안개에 갇혀 있었다. 낡은 철문은 삐걱거리는 신음소리를 내며 밤의 심연 속으로 이끌었다. 지우는 어깨를 움츠린 채 희미한 랜턴 불빛 아래에서 망원경 덮개를 닦았다. 희뿌연 유리창 너머로 세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짙은 먹물 같은 어둠만이 온 세상을 집어삼킨 듯했다. 벌써 며칠째였다. 은하수 혜성이 가장 선명하게 관측될 것이라는 예보가 무색하게, 하늘은 좀처럼 그 모습을 열어주지 않았다.
“이러다 정말 끝까지 못 보는 거 아니야?”
지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온 삶을 바쳐 쫓아온 꿈의 끝이 이런 허망한 안개 속일까 봐 두려웠다. 그들의 전부였던, 아니 어쩌면 그들의 존재 이유였던 그 별을 놓친다면, 자신들의 삶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나가 지우의 옆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손으로 지우의 어깨를 토닥였다. 그녀의 얼굴에도 피로와 실망감이 역력했지만, 억지로라도 미소를 지으려 애쓰는 듯했다.
“괜찮아. 아직 시간 있어. 어제보다 바람도 좀 잦아든 것 같고.”
하지만 하나의 목소리에도 확신은 없었다. 그녀의 시선은 망원경 대신 지우의 얼굴에 머물러 있었다. 지우는 어릴 적부터, 유성우가 쏟아지는 밤하늘 아래에서 헤어진 가족의 영혼이 별이 된다고 믿었다. 그리고 은하수 혜성은 그 별들 중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약속의 상징이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우와 하나는 모든 것을 걸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지우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낡은 지도 한 장과 망가진 나침반 하나로 시작했던 여정. 밤하늘을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굶주림과 추위 속에서도 서로의 온기로 버텨냈다. 사람들의 비웃음과 포기하라는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들은 묵묵히 각자의 별을 쫓아왔다. 이제 그 모든 고통과 인내의 끝이 보일락 말락 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 하늘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이러다 정말… 영원히 못 보는 거 아닐까?” 지우가 고개를 떨구었다. “그 별이 우리에게 오지 않으면, 우리는 대체 뭘 위해 여기까지 온 거지?”
하나의 눈빛이 흔들렸다. 지우의 깊은 절망은 그녀에게도 전염되는 듯했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낡은 별자리 지도를 꺼냈다. 빛바랜 종이 위에는 지우와 하나가 어릴 적 서툰 글씨로 그려 넣은 은하수 혜성의 궤도가 선명했다. 지우의 어린 동생이 가장 좋아했던 별이었다.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난 동생은 언제나 지우에게 말했다. “형아, 나중에 은하수 혜성 오면 같이 보러 가자. 거기서 반짝이는 별이 될 거야.”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지우는 그리고 하나는 자신들의 삶을 던졌다. 하나에게도 그 별은 단순히 천체가 아니었다. 지우의 절망 속에서 함께 가라앉지 않기 위한, 그녀 자신만의 등대였다.
“우리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지우야.” 하나가 나직이 말했다. “아직 기회는 있어.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잖아. 포기하지 않는 한, 끝난 게 아니야.”
그녀의 말이 메아리처럼 천문대 내부에 울렸다. 지우는 고개를 들어 하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희미한 불빛 아래에서도 하나의 눈은 흔들림 없이 빛나고 있었다. 그 빛 속에는 과거의 아픔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동시에 담겨 있었지만, 결코 꺼지지 않는 작은 불씨도 함께 타오르고 있었다.
갑자기 밖에서 거센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천문대 전체가 흔들리는 듯했다. 지우는 망원경의 고정 장치를 다시 확인했다. 모든 장비가 습기에 젖어 있었다. 하나는 차가운 손을 비비며 낡은 보온병에서 마지막 남은 따뜻한 차를 따랐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컵을 지우에게 건넸다.
“마셔. 몸이라도 녹여야지.”
지우는 컵을 받아 들었다. 온기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듯했다. 그 따뜻함은 단순히 차의 온기만이 아니었다. 하나가 자신에게 건네는 변치 않는 믿음과 위로의 온기였다. 어쩌면 그들이 쫓는 별은, 거대한 밤하늘 저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서로에게 의지하며 나누는 작은 불씨 속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였다. 쩌렁하는 소리와 함께 천문대의 낡은 창문 너머에서 순간적인 빛이 번쩍였다. 둘은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먹구름으로 뒤덮였던 하늘 한 귀퉁이가 아주 잠깐, 손바닥만 한 크기로 갈라진 것이다. 그리고 그 틈으로,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박힌 작은 다이아몬드처럼, 하나의 별이 반짝였다.
지우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숨이 멎는 듯했다. 그것은 은하수 혜성이 아니었다. 너무나도 작은, 이름 모를 별 하나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 작은 빛은 세상의 모든 어둠을 뚫고 그들에게 말을 거는 듯했다.
“지우야…” 하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의 눈가에 뜨거운 것이 맺혔다.
지우는 손에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고 망원경으로 달려갔다. 빗방울이 맺힌 렌즈를 조심스럽게 닦아냈다. 마음이 급했지만 손은 떨렸다. 혹시라도 그 작은 틈이 다시 닫힐까 봐 두려웠다. 렌즈에 눈을 가져다 댔지만, 아직은 흐릿했다. 초점을 맞추기 위해 조절기를 돌렸다.
그 짧은 찰나, 지우는 깨달았다. 자신들이 여기까지 온 것은 단지 약속 때문만은 아니었다. 포기하지 않는 마음, 서로를 믿는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반짝이는 별이었음을. 그리고 그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갑자기 먹구름 사이로 작은 빛이 하나 더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또 하나. 하늘은 여전히 거칠게 울부짖었지만, 아주 조금씩, 작은 구멍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마치 거대한 장막이 조금씩 찢어지는 것처럼.
지우와 하나는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빛에는 오랜 기다림과 희미한 희망, 그리고 변치 않는 굳건한 약속이 담겨 있었다. 그들의 별을 쫓는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작은 서광이 비치기 시작한 것일지도 몰랐다.
하나가 망원경 옆에 놓인 의자를 지우에게 건넸다. 그리고는 지우의 옆에 나란히 서서 흐릿하게나마 별들이 보이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작은 희망의 불씨가 다시금 그들의 가슴속에서 타오르기 시작했다. 다음 순간, 어둠 속에서 거대한 천문대 돔이 서서히 열리는 소리가, 마치 오랜 침묵을 깨고 울려 퍼지는 승리의 팡파르처럼 들려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