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발명가의 실패담 – 제39화

연구실 안은 습기와 땀, 그리고 며칠 밤낮으로 끓여낸 커피 찌꺼기의 눅진한 냄새로 가득했다. 허 교수님의 최신작, 일명 ‘시냅스 부활 투영기’가 중앙에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고대 유물을 발굴하다 만 듯한 너저분한 구리 파이프와 반짝이는 크롬 도금 부품들이 어지럽게 엉켜 있었지만, 그분의 눈에는 우주를 품은 별처럼 빛나고 있는 듯했다.

“미란! 드디어! 드디어 이 허 교수가 인류의 난제를 해결할 걸작을 완성했다네!”

교수님은 흥분으로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외쳤다. 그의 길고 하얀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고, 연구 가운에는 알 수 없는 얼룩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의 옆에서 전선의 연결 상태를 마지막으로 확인하고 있던 미란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들었다.

“교수님, 이번엔 또 어떤 ‘난제’를 해결하실 건데요? 지난번엔 ‘음식물 쓰레기 자동 소멸기’가 아니라 ‘음식물 쓰레기 자동 증식기’였고, 그 전엔 ‘만능 수면 유도기’가 아니라 ‘초강력 불면증 유발기’였잖아요.”

미란의 목소리에는 포기 반, 애정 반의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수년간 허 교수님의 조수이자, 때로는 비서, 때로는 간병인, 때로는 재앙 수습 전문가로 일해왔다. 그녀에게 허 교수님의 ‘성공’이란 어쩌면 다른 이들의 ‘평범한 실패’보다 더 큰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늘 상존했다.

허 교수님은 손을 휘저으며 미란의 회의적인 시선을 일축했다.

“이번엔 달라! 미란! 이건 기억!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는 장치라네! 삶의 가장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 눈앞에 펼쳐줄 수 있다고! 특히 박 할머니처럼… 소중한 기억들이 흐릿해져가는 분들에게는 한 줄기 빛이 될 걸세!”

박 할머니는 교수님과 미란이 사는 동네의 터줏대감이었다. 언제부터인가 할머니의 기억은 연기처럼 희미해져 갔고, 때로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잠겼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오래전 돌아가신 남편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허 교수님은 그런 할머니를 보며 늘 안타까워했고, 그것이 ‘시냅스 부활 투영기’를 만들게 된 직접적인 동기였다.

마침내, 문이 열리고 박 할머니가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들어섰다. 그녀의 눈빛은 마치 안개 낀 호수처럼 뿌옇게 흔들리고 있었다. 미란은 할머니의 손을 잡고 부드럽게 의자로 안내했다. 할머니는 그저 순하게 웃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할머니, 안녕하세요. 오늘은 교수님이 할머니를 위해 특별한 걸 준비했어요.” 미란이 속삭였다.

“특별한 거라니…? 여기가 어디지? 내 집은 어디로 갔누?” 할머니는 불안한 듯 미란의 손을 꼭 잡았다.

교수님은 심호흡을 하고 스위치 패널 앞에 섰다. “자, 박 할머니! 이제 할머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들이 눈앞에 펼쳐질 겁니다! 이 장치는 뇌파를 분석하고, 잊혀진 시냅스의 연결을 활성화하여… 아, 너무 어려운가? 쉽게 말해, 할머니의 오래된 사진첩을 머릿속에 그대로 펼쳐주는 거지!”

미란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교수님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그저 빙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표정은 아이처럼 천진난만했다. 교수님은 거대한 레버를 잡아당겼다. 웅장한 기계음이 연구실을 가득 채웠다. 파이프를 따라 전기가 흐르는 듯 푸른빛이 번쩍였고, 중앙의 거대한 투영판에서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시작합니다!” 교수님이 외쳤다.

투영판에 박 할머니의 뇌파 패턴이 그래프처럼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흐릿한 영상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마치 오래된 영화 필름처럼 뿌옇고 끊겼지만, 점차 선명해졌다. 어린 시절의 박 할머니가 해맑게 웃으며 뛰어노는 모습, 앳된 모습의 남편과 손을 잡고 걷는 모습, 갓 태어난 아기를 품에 안고 행복하게 미소 짓는 모습… 미란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정말 성공한 걸까?

박 할머니의 얼굴에도 미묘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녀의 눈가에 주름이 잡혔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어… 저것은… 저것은 내 고향집 마당인가? 저기 저 매화나무는…”

교수님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글썽였다. “성공이야! 미란! 성공했어! 박 할머니의 기억이 돌아오고 있어!”

그러나 그 환희는 오래가지 못했다. 갑자기 투영판의 영상이 지직거리며 왜곡되기 시작했다. 아기를 안고 있는 할머니의 품에 웬 털 달린 외계인이 안겨 있거나, 남편과 걷는 길에 난데없이 거대한 로봇이 나타나 ‘지구를 지켜라!’를 외치는 기괴한 장면들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영상은 점점 더 빨라지고, 내용은 더욱더 난해해졌다.

“이게 대체…!” 미란이 경악하며 외쳤다.

결정적으로, 투영판에 거대한 글자로 이런 문구가 나타났다. `

오늘 저녁은 치킨! 양념 반 후라이드 반!

`

그 순간, 기계는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과부하로 꺼져버렸다. 연구실은 다시 어둠과 정적으로 가득 찼다.

허 교수님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멈춰버린 기계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서 희망의 빛은 사그라지고 깊은 좌절감이 번졌다. 결국 이번에도 실패였다. 그것도 너무나도 어이없는 실패였다.

“아니… 그게… 분명 할머니의 뇌파를… 근데 왜 내 잠재의식 속 치킨 주문이 투영된 거지? 시냅스가 너무 강하게 연결된 건가? 아니면 어제 야식으로 먹었던 치킨의 잔상이 남아있던 건가…?” 교수님은 중얼거렸다.

미란은 허탈하게 웃으며 박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는 여전히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허 교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활짝 웃으며 말했다.

“치킨? 치킨이 뭔가? 옛날에 우리 엄마가 해주던 닭백숙이랑 비슷한 건가? 그거 참 맛있었지… 흐흐…”

할머니는 자신의 기억이 아닌, 방금 투영된 엉뚱한 이미지에 자극받아 또 다른 기억의 조각을 더듬고 있었다. 그것은 교수님이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찌 보면 또 다른 의미에서의 ‘기억 연결’이었다.

허 교수님은 고개를 떨궜다. 이번 실패는 이전의 실패들보다 유독 아프게 다가왔다. 할머니에게 작은 희망이라도 주고 싶었던 순수한 마음이었기에, 그 좌절감은 더욱 컸다.

미란은 교수님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괜찮아요, 교수님. 할머니는 괜찮으세요. 어쩌면… 그냥 평범한 일상이 제일 좋은 기억일 수도 있죠.”

그녀는 할머니의 손을 다시 잡고 달래듯 말했다. 할머니는 미란의 손을 잡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그녀는 조용히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그녀는 치킨을 먹는 것일까, 아니면 닭백숙을 먹는 것일까. 혹은 그 모든 것에서 벗어나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는 평화로운 공간에 머무는 것일까.

허 교수님은 멍하니 망가진 기계를 응시했다. 거대한 발명품은 이제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이내 다시 번뜩이기 시작했다. 투영판 옆에 놓인 스케치북을 집어 들더니, 새로운 디자인을 끄적이기 시작했다.

“아니야! 문제는 시냅스 연결의 세기가 아니었어! 아마도 투영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거야! 이 ‘기억’이라는 건 단순한 영상이 아니었군. 감각과 감정이 뒤섞인 복합적인… 좋아! 그렇다면 다음엔 ‘오감 동기화 기억 재현기’를 만들어 봐야겠어! 냄새와 촉각, 심지어 맛까지!”

미란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실패는 허 교수님을 좌절시키지만, 결코 꺾지는 못했다. 어쩌면, 저 엉뚱한 열정이 바로 허 교수님의 가장 위대한 발명품일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날 밤, 연구실의 불은 또다시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동네에는 수상한 냄새가 진동할 예정이었다. 과연 어떤 냄새일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