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46화

낡은 조수석 창문을 비집고 들어온 바닷바람이 지훈의 얼굴을 쓸고 지나갔다. 짭조름한 비린내가 코끝을 간질였지만, 그의 마음속에서 요동치는 파도에 비하면 잔잔한 미풍에 불과했다. 수많은 밤을 새워가며 쫓았던 단서의 끝이, 마침내 이곳, 한적한 어촌 마을에 닿았다. 십수 년의 세월을 긁어모아 겨우 찾아낸 그녀의 흔적, 서연.

핸들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쳐 해진 그의 영혼은 이제 겨우 희미한 빛을 찾아 헤매는 나비 같았다. 그녀를 찾기 위해 탐정이라는 직업을 선택했고, 모든 재능과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진실과 거짓, 배신과 재회를 목격했지만, 정작 자신의 첫사랑을 향한 길은 미로처럼 얽히고설켜 있었다.

‘정말… 이번에는 맞는 걸까?’

수없이 되뇌었던 질문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몇 번이나 희망에 부풀어 도착한 곳에서 실망만을 안고 돌아섰던가. 이름만 같거나, 얼굴만 닮은 다른 이들을 마주하며 겪었던 좌절감은 그의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녀의 어린 시절 친구이자 유일한 혈육의 지인을 통해 얻은 정보는 너무나도 구체적이었다. 작은 바닷가 마을, 오래된 서점. 그리고 그녀가 즐겨 쓰던 특정한 필체로 쓴 손편지 한 장. 심장이 터질 듯이 울렸다.

푸른바다 마을의 낮잠

차는 ‘푸른바다 마을’이라는 표지석을 지나 조용하고 한적한 길로 접어들었다. 낡은 어선들이 정박해 있는 작은 항구, 고즈넉한 돌담길을 따라 늘어선 낮은 지붕의 집들. 도시의 번잡함과는 거리가 먼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모든 것이 느리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 평온함이 오히려 지훈의 불안감을 고조시켰다. 이토록 고요한 곳에서, 그녀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의 찬란했던 첫사랑은, 과연 그가 기억하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할까?

네비게이션이 목적지에 도달했음을 알렸다. 작은 마을의 중심가, 오래된 가옥들이 늘어선 골목 어귀에 낡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추억의 서점’. 간판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지만, 투명하게 닦인 유리창 너머로 빼곡하게 꽂힌 책들이 정돈된 느낌을 주었다. 지훈은 차를 길가에 세우고 심호흡을 했다. 손끝이 저릿했고,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기분이었다. 이제 겨우 몇 걸음만 더 내디디면 되는 것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안을 살폈다. 카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한숨을 내쉬며 안으로 들어서려던 찰나, 서점 안쪽, 햇살이 쏟아지는 창가에 기대어 서 있는 한 여인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긴 머리카락을 느슨하게 묶은 채, 책장 사이를 손가락으로 더듬으며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선, 가늘지만 단단해 보이는 등. 그 모습은 지훈의 기억 속에 박혀 있던 서연의 뒷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했다.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것 같았다. 드디어, 드디어.

엇갈린 그림자

지훈은 문을 열었다. 낡은 종소리가 ‘딸랑’ 하고 울리며 서점 안의 고요를 깼다.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햇살을 등지고 선 그녀의 얼굴은 역광에 가려져 희미했지만, 그 윤곽만으로도 지훈은 온몸의 세포가 춤추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흐려졌던 시야가 선명해지면서, 그녀의 얼굴이 또렷하게 드러났다. 눈가에 희미하게 드리운 주름, 입가에 번진 옅은 미소. 스무 살의 풋풋함 대신, 세월의 깊이가 더해진 아름다움이었다. 서연이었다. 분명히, 서연이었다.

지훈은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토록 그리워했던 얼굴, 꿈속에서 수없이 반복했던 재회의 순간. 하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수많은 대사를 연습했건만, 지금 이 순간 그의 입술은 차갑게 굳어버린 돌덩이 같았다. 그녀의 눈빛은 여전히 깊고 투명했다. 그 투명한 눈동자가 천천히 그를 향해 움직였다. 그의 존재를 인식한 듯한 찰나, 그녀의 입술이 살짝 벌어졌다. “어서 오세….”

그때였다. 작은 발소리가 서점 안쪽에서 빠르게 다가왔다. “엄마!”

파스텔톤의 스웨터를 입은 어린아이가 닫힌 문을 부수고 달려 나오는 듯한 기세로 서연에게 달려왔다. 서연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아이를 받아 안았다. 아이의 작은 팔이 그녀의 목을 꼭 감쌌고, 서연은 아이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에 얼굴을 비비며 환하게 웃었다. 그 미소는 지훈이 기억하는 어떤 미소보다도 따뜻하고 행복해 보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세상의 모든 사랑이 담겨 있었다.

지훈은 그 자리에 박제된 듯 멈춰 섰다. 아이는 서연의 품에 안겨 지훈 쪽을 바라보았다. 호기심 가득한 맑은 눈동자. 그리고 그 눈동자가 지훈의 심장을 꿰뚫는 듯했다. ‘엄마’라는 단어,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 그녀의 행복한 얼굴. 모든 것이 현실임을 잔인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지훈은 고통스러운 경련을 느끼며 숨을 들이켰다. 십수 년 동안 그를 지탱했던 모든 환상이 산산조각 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녀는 이미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 없는 곳에서, 그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행복한 가족을 이루고 있었다. 그의 오랜 탐색은, 결국 이 잔인한 진실을 마주하기 위함이었던가.

새로운 미로의 시작

서연은 아이를 안은 채, 여전히 지훈을 향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표정에는 희미한 의아함이 서려 있었다. 낯선 손님에 대한 작은 호기심.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녀의 눈빛에 과거를 기억하는 어떤 섬광도 없었다. 지훈은 가면을 쓴 듯 아무런 표정도 짓지 못한 채, 급하게 고개를 돌려 책장 뒤로 숨었다. 그녀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더 큰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찔러왔다.

그는 서둘러 책들 사이로 몸을 숨겼다.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꽂혀 있는 책의 표지를 더듬었다. 손끝에 잡힌 책은 ‘잊혀진 계절’이라는 제목이었다. 잊혀진 계절. 그들 사이의 시간은 이미 잊혀진 계절이 된 것인가. 그는 서연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와 함께 책을 고르는 그녀의 모습, 아이의 질문에 다정하게 답해주는 그녀의 목소리. 모든 것이 너무나 완벽하고 평화로웠다. 그 평화는 지훈에게는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는 왜 여기에 온 것일까. 그녀를 찾아서 무엇을 얻고 싶었던 걸까. 그녀의 삶을 망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삶 속에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 명백한 사실은 견디기 힘들었다. 수십 년을 찾아 헤맨 끝에 얻은 것이 겨우 이것이란 말인가. 그는 그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해야만 할까?

지훈은 서둘러 서점을 빠져나왔다. 종소리가 다시 한번 ‘딸랑’하고 울렸지만, 그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울부짖고 있었다. 차에 몸을 싣고도 그는 한동안 움직일 수 없었다. 주차된 차 안에서, 그는 멍하니 서점 건물을 바라보았다. 서연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그의 첫사랑은, 그가 없는 곳에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은 것이었다.

이제 그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대로 모든 것을 포기하고 돌아설까? 아니면, 그녀의 행복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그림자처럼 그녀의 곁에 머물며 그녀의 삶을 지켜봐야 할까? 새로운 미로가 그의 앞에 펼쳐진 듯했다. 탐정 이지훈의 잃어버린 첫사랑을 향한 여정은, 이제 겨우 다음 장을 넘긴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