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138화

오후의 불안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언제나 따뜻한 온기와 고소한 빵 굽는 냄새가 가득했다.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이곳의 주인 지우는 매일 똑같은 루틴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마무리했지만, 그 속에서 매 순간 새로운 마음으로 빵을 만들었다. 오늘은 특히, 갓 구운 슈크림 빵의 달콤한 향기가 유난히 진하게 퍼지는 오후였다. 창가로 쏟아지는 노란 햇살 아래, 손님들은 저마다의 이야기와 함께 빵을 고르고 커피를 마셨다.

하지만 지우의 마음 한켠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단골손님 혜진 씨의 얼굴이 어제부터 눈에 띄게 수척해 보였다. 혜진 씨는 어린 딸 다솜이와 함께 이 산모퉁이 동네로 이사 온 지 반년쯤 되었을까. 이른 새벽 청소 일을 하고 늦은 밤까지 식당 서빙을 하며 빠듯하게 살림을 꾸려가는, 말 그대로 악착같은 엄마였다. 다솜이도 또래 아이들보다 유난히 속 깊고 밝은 아이였다. 언제나 빵집에 오면 초롱초롱한 눈으로 진열대 위의 빵들을 구경하곤 했다.

오늘 오후, 혜진 씨는 평소보다 훨씬 늦은 시각에 빵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고,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다.

“지우 씨… 혹시 다솜이… 본 적 있으세요?”

혜진 씨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다. 지우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다솜이는 평소 같으면 학교를 마치고 곧장 빵집에 들러 친구들과 함께 수다를 떨며 지우가 건네주는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마시고 갔을 시간이었다.

“아니요, 혜진 씨. 오늘은 아직 다솜이가 안 왔는데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지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묻자, 혜진 씨는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어제부터 열이 계속 안 떨어져요… 병원에도 다녀왔는데, 밤새 잠도 못 자고… 아침에도 열이 높아서 유치원도 못 갔는데, 제가 잠깐 잠든 사이에 집을 나간 것 같아요…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요…”

지우는 앞치마를 벗어 던지며 카운터를 뛰쳐나왔다. “혜진 씨, 일단 진정하세요. 제가 같이 찾아봐 드릴게요. 어디부터 찾아봤어요?”

따스한 손길

지우와 혜진 씨는 동네 구석구석을 다솜이의 이름을 부르며 헤매기 시작했다. 햇살은 따가웠고, 가슴속 불안은 목구멍을 바싹 말렸다. 빵집 아르바이트생 민준 씨도 뒤늦게 상황을 전해 듣고 합류했다. 민준 씨는 다솜이와 친하게 지내던 동네 아이들에게 물어보겠다며 뛰어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지우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빵집의 오랜 단골이자 동네의 어른인 현정 할머니였다. 현정 할머니는 늘 지우를 친손녀처럼 아껴주시는 분이었다.

“지우야, 너 혹시 다솜이 찾니? 우리 집 대문 앞에 앉아있구나. 열이 좀 있는 것 같아.”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지우는 혜진 씨에게 소식을 전하고 현정 할머니 댁으로 향했다. 현정 할머니 댁 앞에는 정말, 쪼그리고 앉아있는 다솜이가 있었다. 작은 몸은 열에 달아올라 붉었고, 눈은 반쯤 감겨 있었다.

“다솜아!” 혜진 씨가 달려가 다솜이를 품에 안았다. 다솜이는 엄마의 품에 안기자마자 칭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엄마… 아파요…”

현정 할머니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다솜이의 이마를 닦아주며 말했다. “아침부터 열이 펄펄 끓더니, 엄마가 걱정돼서 나왔나 보구나. 마침 약국에서 해열제 사 오는 길에 보였어.”

혜진 씨는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했다. 지우는 현정 할머니 댁으로 들어서며 다솜이의 작은 손을 잡았다. 손이 뜨거웠다. 지우는 얼른 빵집으로 돌아가 다솜이가 좋아하는 따뜻한 수프와 부드러운 우유 푸딩을 만들어 가져왔다.

“다솜아, 이거 먹고 힘내야지. 이모가 특별히 만들었어.”

다솜이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숟가락으로 수프를 한술 뜨는 시늉을 했다.

보이지 않는 기적

그날 밤, 지우는 빵집 문을 닫고 혜진 씨 댁으로 향했다. 현정 할머니는 다솜이에게 먹일 약을 다시 챙겨주며 함께 동행했다. 다솜이는 여전히 열이 높았다. 혜진 씨는 불안한 눈으로 밤새도록 다솜이 곁을 지켰다. 지우는 혜진 씨를 대신해 빵집의 남은 빵들을 동네 어르신들에게 나눠드리고, 잠시 자리를 비워 그녀가 쉴 수 있도록 도왔다.

다음 날 아침, 빵집은 평소보다 조금 늦게 문을 열었다. 민준 씨가 아침 일찍 나와 미리 반죽을 준비하고 있었다. 빵집 문을 여는 지우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마음속은 따뜻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혜진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다솜이의 열이 내리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었다. 혜진 씨는 한결 밝아진 목소리로 거듭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지우 씨, 정말 감사해요… 지우 씨랑 할머니 덕분에 다솜이가 고비를 넘겼어요. 제가 어떻게 갚아야 할지…”

“무슨 말씀을요, 혜진 씨. 다솜이가 잘 이겨내 준 게 기특한 거죠. 얼른 나아서 빵집에 놀러 와야 할 텐데.”

지우는 전화를 끊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갓 구운 빵의 향기가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때, 빵집 문이 열리고 민준 씨가 활짝 웃으며 들어섰다.

“누나, 이거 보세요! 할머니가 주고 가셨어요.”

민준 씨가 건넨 것은 작은 바구니였다. 바구니 안에는 갓 쪄낸 따끈한 떡과 함께 작은 쪽지가 들어있었다.

‘지우야, 혜진이 엄마가 고생 많았지? 고마운 마음은 나중에 다솜이가 건강해지면 빵집에서 밝게 웃어주는 모습으로 대신 받자꾸나. 네 빵집이 있어서 참 다행이다. 언제나 따뜻한 마음이 모이는 곳이니.’

쪽지를 읽는 지우의 눈가에 따스한 물기가 어렸다. 빵집 한쪽 벽에 걸린 시계는 여전히 째깍거렸고, 오븐 속 빵들은 노릇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서 일어나는 기적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서로를 보듬는 따뜻한 마음, 소소한 나눔, 그리고 함께하는 연대 속에서 피어나는, 보이지 않지만 가장 강력한 생명력 같은 것이었다.

그날 저녁, 빵집 문을 닫으며 지우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다솜아, 얼른 나아서 이모 빵 먹으러 와야 해.”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불빛은 밤하늘 아래 여전히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