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162화

강민준은 낡은 사무실의 책상 위, 먼지 쌓인 서류들 사이에 놓인 작은 오르골을 응시했다. 밤은 깊었고, 가로등 불빛이 창문을 통해 희미하게 들어와 오르골의 빛바랜 표면을 비췄다. 며칠 전, 익명의 제보를 통해 오래된 경매장에서 간신히 찾아낸 그것이었다. 손잡이를 조심스럽게 감아 태엽을 풀자, 아련하고도 익숙한 멜로디가 공간을 채웠다. 맑고도 슬픈 그 음색은, 마치 시간을 거슬러 오래전 여름날의 한 조각을 데려온 듯했다.

“민준아, 이 오르골 소리 어때? 아빠가 어릴 때부터 아끼던 건데, 내가 계속 고장 내서 아빠가 맨날 수리하시잖아.”

서연의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햇살이 쏟아지던 창가에 앉아, 조그만 오르골을 두 손으로 감싸 든 채 천진하게 웃던 그녀의 모습. 그 시절, 서연은 무엇이든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 줄 아는 아이였다. 고장 난 오르골마저도 그녀의 손에서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했다. 그 기억은 너무나 선명해서, 민준은 순간 자신이 지금 서연과 마주하고 있는 착각에 빠졌다. 하지만 곧 차가운 현실이 그를 감쌌다. 서연은 여전히 그의 곁에 없었다.

민준은 오르골을 들어 올렸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앤티크였지만, 얼마 전 우연히 발견한 흠집 아래에는 작은 각인이 숨겨져 있었다. 손톱으로 조심스럽게 긁어내자, 흐릿한 글씨가 드러났다. ‘정우 시계점, 은평동.’ 그들이 어렸을 적, 서연의 아버지가 오르골을 수리하러 자주 방문했던 곳이었다. 민준은 그곳이 아직 존재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작은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붙잡아야 했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은평동의 낡은 골목길을 헤매고 있었다. 개발의 물결을 비켜간 듯,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는 동네였다. 마침내 지도 앱이 가리키는 곳에 다다랐을 때, 그의 눈앞에 나타난 것은 낡은 간판의 ‘정우 시계점’이었다. 간판은 녹슬고 글자는 희미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유리창 너머로 빼곡히 들어찬 낡은 시계들과 부품들이 보였다. 민준은 묘한 안도감과 함께 불안감을 느꼈다. 이토록 오래된 가게가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기적 같았지만, 그만큼 서연의 흔적이 과거에 갇혀 있을까 두려웠다.

그가 문을 열자, 낡은 종소리가 울렸다. 코끝을 스치는 오래된 금속과 나무의 냄새. 가게 안은 예상대로 어수선했다. 돋보기안경을 낀 백발의 할머니가 카운터 안에서 작은 회중시계를 수리하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주름져 있었지만,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고 노련했다.

“저… 실례합니다.” 민준이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깊은 눈매와 지혜로워 보이는 얼굴이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손님? 고칠 시계라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시계는 아니고요… 혹시 이 가게, 예전부터 운영하셨나요?”

“네. 이 정우 시계점은 제 남편이 대대로 물려받은 것이고, 저는 여기서 50년 넘게 살림을 꾸려왔으니, 뭐 이 동네 산 역사나 다름없지요.” 그녀는 잔잔하게 웃었다. “젊은 분이 이런 낡은 가게는 어인 일로?”

“혹시, 예전에 이 가게에 자주 오던 윤 씨 성을 가진 부녀를 기억하시는지요? 딸이 오르골을 자주 고장 내서 아버지가 항상 수리하러 오시던… 서연이라는 이름의 아이였습니다.” 민준은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지만,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다.

할머니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녀는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윤 서연… 오랜만에 듣는 이름이네요. 그 아이가 참 밝고 예뻤지… 오르골도 참 좋아했었고. 그런데 그 이후로는 소식이 뚝 끊겼어요. 왜 그런지는 알 수 없었지만요.” 그녀의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혹시… 서연 씨가 이곳에 다시 찾아온 적은 없었나요? 아니면 그녀에 대해 아는 다른 것은….” 민준은 다급하게 물었다.

할머니는 다시 그를 자세히 살폈다. 그의 눈빛에서 절박함이 묻어났을까. 그녀는 한참을 망설이더니, 조용히 말했다. “젊은 분이 그 아이를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네요. 그냥 단순한 호기심은 아닌 것 같아서.”

“저는 강민준이라고 합니다. 서연 씨의… 첫사랑입니다. 그녀가 갑자기 사라지고 난 후로, 저는 그녀를 찾기 위해 탐정이 되었습니다. 이 오르골은 그녀가 제게 남긴 마지막 단서였어요. 그녀를 꼭 찾아야 합니다.” 민준은 오르골을 꺼내 할머니에게 보여주었다. “이 오르골… 서연이가 아끼던 겁니다.”

할머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민준의 손에 들린 오르골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그 아이가 말했었지… 언젠가 자신을 찾아올 사람이 있다면, 이 오르골을 기억할 거라고. 그 사람이 꼭 이 가게에 오게 될 거라고요.”

민준의 숨이 멎는 듯했다. “그럼… 서연 씨가 여기에 왔었군요! 언제입니까? 그녀는 어디에 있나요?”

할머니는 카운터 아래에서 낡은 나무 상자를 꺼냈다. “오래전 일은 아니에요. 한 달 전쯤이었을 겁니다. 아주 조용히, 밤늦게 찾아왔어요. 많이 지쳐 보였지만, 눈빛은 여전히 강했지.” 그녀는 상자 안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꺼내 민준에게 내밀었다. “이걸 맡겨두고 갔습니다. 혹시나 ‘강민준’이라는 사람이 오르골을 들고 와서 자신을 찾는다면… 전해달라고요.”

민준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아 들었다. 봉투는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고, 겉면에는 서연의 글씨로 ‘강민준께’라고 쓰여 있었다. 봉투를 뜯자, 오래된 나무 향기가 났다. 안에는 낡은 일기장 한 권과, 말라 비틀어진 한 송이 들꽃이 들어 있었다. 민준은 일기장을 펼쳤다. 첫 페이지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았지만, 몇 장을 넘기자 익숙한 서연의 필체가 나타났다. 마지막으로 쓴 듯한 페이지였다.

***

민준에게.

이 글을 네가 읽고 있다면, 나는 네게 또 한 번 아픔을 주었겠지. 미안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거야. 너를 떠난 건, 나 자신을 위한 일이 아니었어. 너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위협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너의 곁에 머무를 수 없었어. 네가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나는 너무 이기적이었는지도 모르겠어. 너에게 아무런 설명도 없이 사라진 채, 이제 와서 이 글을 남기는 것도. 나는 지금도 어디론가 계속 도망치고 있어. 내가 가진 작은 비밀이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 큰 고통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뒤로하고 숨는 길을 택했어.

민준아, 나를 찾지 마. 제발 더 이상 나를 쫓아오지 마. 내가 있는 곳은 너에게도 위험해.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그저 네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사는 거야. 더 이상 너의 삶에 나의 어둠이 드리워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나는 지금… 어둠이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어. 그곳에서 모든 것을 끝내야만 해.

부디 행복해… 사랑한다, 민준.

***

민준의 손이 떨렸다. 일기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림자처럼 따라붙는 위협’, ‘어둠이 가장 깊은 곳으로 향하고 있어.’ 이 모든 것이 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녀는 여전히 위험에 처해 있었고, 심지어 자신을 희생하려 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일기장 마지막 구절 아래, 거의 눈에 띄지 않게 쓰여 있는 한 줄의 짧은 문장이었다. 서연의 필체라기에는 너무나 단호하고 거친 글씨체였다. 마치 누군가 강제로 쓰게 한 듯, 혹은 그녀가 필사적으로 남긴 마지막 메시지처럼.

“시계의 째깍거림이 멈추고, 별이 사라진 도시의 가장 높은 곳.”

이것은 그녀의 마지막 호소와는 모순되는, 마치 그에게 길을 가리키는 듯한 암호였다. 서연은 그에게 멈추라고 애원하면서도, 동시에 자신을 찾아달라는 또 다른 메시지를 남긴 것이었다. 민준은 일기장을 다시 주워 들었다. 그녀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상, 그는 멈출 수 없었다. 오히려 그의 심장은 더욱 강렬하게 서연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시계의 째깍거림이 멈추고, 별이 사라진 도시의 가장 높은 곳’이라니. 그곳은 대체 어디일까. 민준은 새로운 단서를 품에 안고, 또 다른 미지의 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말한 ‘어둠이 가장 깊은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