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관에서 생긴 일 – 제172화

햇살은 창백했고, 사진관 안은 먼지 한 줌조차 영롱하게 빛나는,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지우는 현상액 특유의 시큼한 냄새와 오래된 종이 냄새가 뒤섞인 공기를 들이마시며, 낡은 앨범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벌써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시간이었지만, 김 사장님은 평소와 달리 카운터 뒤 작은 흔들의자에 앉아 창밖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계셨다. 사장님의 손에는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림자 속의 움직임

“사장님, 또 그 사진 보시는 거예요?”

지우의 물음에 김 사장님은 고개만 살짝 돌릴 뿐이었다. 사진 속에는 1970년대 후반으로 보이는 어느 시골 장터의 풍경이 담겨 있었다. 비탈진 길을 따라 늘어선 가게들, 한복을 입은 아낙네들과 짐을 실은 수레… 수없이 보아왔던 평범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지우의 눈에는 그 사진이 미묘하게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사진은… 참 희한해.” 김 사장님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보는 날마다 뭔가가 달라진단 말이야.”

지우는 의아해하며 사장님 옆으로 다가갔다. “달라진다구요? 뭐가요?”

사장님은 말없이 사진 속 한 지점을 가리켰다. 장터 한 귀퉁이, 허름한 건물 벽에 기댄 채 쭈그려 앉아 있는 흐릿한 그림자. 처음에는 그저 우연히 찍힌 사람의 뒷모습이거나, 아니면 건물의 그림자 일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 그림자의 윤곽이 조금씩 또렷해지고, 심지어는 희미하게 움직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지우가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정말 그러네요… 마치 사람이 거기 없는 건데,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사진 속 그림자는 분명 사람이었다. 그것도 아주 왜소하고 어린아이 같은 체구의. 지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며칠 전 사장님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 사진은 수십 년 전, 한 아주머니가 잃어버린 아들을 찾기 위해 들고 왔던 것이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혹시 사진 속 어딘가에 찍혀있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왔지만, 결국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채 돌아갔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은 그렇게 김 사장님의 서랍 한편에 잠들어 있었다.

기억의 편린들

그때, 오래된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열렸다. 한 할머니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허리가 굽었지만 눈빛은 살아있는, 고운 한복 차림의 할머니였다.

“저… 여기 오래된 사진관이 맞나요?” 할머니의 목소리도 오래된 물건처럼 바스락거렸다.

“네, 어서 오세요, 어르신.” 김 사장님이 반갑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할머니는 작은 손가방에서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냈다. 두 어린아이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는 흑백사진이었다. 한 아이는 누나로 보이는 여자아이였고, 다른 아이는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남자아이였다. 남자아이의 귀퉁이가 살짝 접혀 있었고, 사진 전체에는 세월의 흔적이 역력했다.

“제 남동생이에요.” 할머니가 사진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6.25 전쟁 직후였어요. 부모님은 돌아가시고, 저랑 동생 둘만 남아서… 고아원에서 지냈죠. 그러다 제가 병이 나서 잠시 병원에 입원했는데, 퇴원하고 돌아와 보니 동생이 없어진 거예요. 그날이 장날이었는데… 장터에서 길을 잃었다고 하더군요.”

지우는 저도 모르게 김 사장님의 손에 들린 사진과 할머니의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김 사장님의 사진 속 장터와 할머니가 이야기하는 장터가 겹쳐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 사장님의 사진 속 흐릿한 그림자… 그 아이 같은 체구가 할머니의 사진 속 남자아이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이 사진은 제가 고아원에 들어갈 때 찍어준 거예요. 동생이랑 저랑 마지막으로 같이 찍은 사진이죠. 평생 이 사진 하나 붙들고 살았어요. 혹시나… 혹시나 저희 동생을 찍은 사진이 이 사진관에 있을까 싶어서요.”

할머니의 눈가는 촉촉했지만,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수십 년의 슬픔이 응고된 듯한 침묵이었다.

김 사장님은 잠시 할머니의 사진을 응시하더니, 조용히 자신의 손에 들린 사진을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어르신… 이 사진 한번 보시겠습니까?”

사진 속의 외침

할머니는 조심스럽게 김 사장님의 사진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사진 속 장터의 풍경을 한참 동안 응시했다. 지우는 숨을 죽이고 할머니의 표정을 살폈다. 희미한 그림자를 할머니가 과연 볼 수 있을까? 볼 수 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이 장터… 우리 동네 장터랑 너무 비슷하네요.” 할머니가 나직이 말했다. “어머니랑 같이 장 보러 가던 기억이 나요. 정겹고… 참 시끄럽고 그랬죠.”

그때였다. 지우의 눈에, 그리고 김 사장님의 눈에, 사진 속 그림자가 더욱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마치 안개 낀 유리창을 닦아내듯, 윤곽이 뚜렷해지고, 색조가 깊어졌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그림자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의 이목구비가 형체를 갖추기 시작했다. 놀랍도록 또렷한 눈빛이 사진 밖을 향했다. 아니, 정확히는 사진을 들고 있는 할머니를 향했다.

할머니의 손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어… 어라? 이게… 이게 뭐지?”

사진 속 아이는 마침내 완벽한 형태를 드러냈다. 할머니의 어릴 적 사진 속 그 남자아이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수십 년 전, 장터에서 길을 잃었던 그 모습 그대로. 아이는 사진 속에서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렸다. 마치 할머니를 향해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 혹은 작별 인사를 하려는 듯.

할머니의 눈에서 마침내 뜨거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명호야… 명호야! 내 동생 명호…!”

할머니의 울음소리가 오래된 사진관의 고요함을 갈랐다. 지우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사진 속 아이는, 그 작은 명호는,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슬픔과 안도, 그리고 너무나 오랜 기다림이 뒤섞인 듯한 미소였다. 아이의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누나…’ 작지만 강렬한 소리가 지우의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그리고 그 순간, 사진 속 아이의 모습이 다시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듯, 다시 그림자로, 다시 안개 속으로 사라져갔다. 할머니는 필사적으로 사진을 붙들었지만, 아이의 형체는 빠르게 옅어져 갔다. 마지막으로 아이의 손짓만 흐릿하게 남았다가, 이내 모든 것이 처음처럼 흐릿한 그림자로 되돌아갔다.

할머니는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토해냈다. 그 울음은 슬픔만이 아니었다. 수십 년 만에 사랑하는 동생을 만났다는 기적에 대한, 그리고 영원히 헤어져야 한다는 현실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었다. 김 사장님은 말없이 할머니의 어깨를 토닥였다. 지우는 사진을 보았다. 이제 다시 그저 평범한 장터 사진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지우는 알 수 있었다. 그 사진 속에는 이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한 누나의 그리움과 한 동생의 마지막 작별 인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사진관 밖은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고요 속에 할머니의 흐느낌만이 울려 퍼졌다. 지우는 문득, 자신이 무엇을 본 것인지, 이 오래된 사진관이 대체 어떤 비밀을 품고 있는지, 다시 한번 깊은 의문 속으로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