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강아지와의 비밀 – 제58화

차가운 겨울바람이 창문을 두드리는 밤이었다. 거실의 작은 스탠드만이 은은한 불빛을 드리우고, 지유는 포근한 담요 속에서 토리를 품에 안고 있었다. 토리의 따뜻한 숨결이 귓가를 간질였다. 평온해 보이는 이 밤에도, 지유의 심장 한구석에는 언제나 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바로 토리의 ‘비밀’ 때문이었다.

“지유야, 오늘 낮에 말이야… 유미 누나가 좀 이상했어.”

나직하지만 또렷한 토리의 목소리가 조용한 밤을 갈랐다. 지유는 토리의 보드라운 털에 얼굴을 묻으며 한숨을 쉬었다. “응, 나도 그렇게 느꼈어. 자꾸 너를 빤히 쳐다보고… 뭔가 수상하다는 듯이.”

토리의 까만 눈동자에 깊은 걱정이 서렸다. “내가 짖는 소리가 평소와 다르다고 했지? 그리고… 마치 사람이 말하는 것 같았다고.”

지유는 손으로 토리의 작은 머리를 감싸 안았다. “쉬이, 괜찮아 토리야. 그저 유미 언니가 예민해서 그랬을 거야. 늘 그런 식이었잖아.” 하지만 지유의 목소리에는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 유미는 이웃 중에서도 유독 호기심이 많고, 남의 일에 간섭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유미의 레이더에 토리가 포착되었다는 사실은 지유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만약… 만약 유미 누나가 진짜로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토리의 목소리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 가늘어졌다. “내가 잡혀갈까? 지유랑 떨어져야 하는 거야?”

그 작은 몸에서 나오는 슬픔과 두려움에 지유의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토리야. 내가 너를 지킬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함께 있을 거야.” 지유는 토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토리는 지유에게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었다. 그는 비밀을 공유하는 유일한 존재이자, 세상의 무게를 함께 짊어지는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그의 존재 자체가 지유의 삶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예상대로 유미는 일찍부터 지유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지유는 침착하려 애쓰며 문을 열었다. 토리는 이불 속에 숨어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지유 씨, 어제 제가 들은 게 있어서요. 혹시 토리 병원에 데려가 보셨어요?” 유미는 빙긋 웃는 얼굴이었지만, 그 눈빛에는 날카로운 탐색이 담겨 있었다.

“병원이라뇨? 토리 아주 건강한데요.” 지유는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요, 어제 제가 복도에서 잠깐 기다리는데, 지유 씨 집에서 토리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멍멍 하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웅얼웅얼 사람 목소리 같았어요. 저 정말 깜짝 놀라서 귀를 기울였는데… 착각일 리가 없어요. 혹시 강아지가… 성대 결절 같은 건가요?”

유미의 말에 지유의 심장이 발끝까지 곤두박질쳤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아… 그게… 토리가 꿈을 자주 꿔요. 꿈꾸면서 신음 소리를 내거나,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곤 하는데… 아마 그걸 들으신 것 같아요.” 지유는 기지를 발휘하려 애썼지만,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유미는 한쪽 눈썹을 치켜떴다. “꿈이요? 꿈인데 그렇게 또렷한 목소리가 난다고요? 제가 들은 건 거의… 대화하는 소리 같았는데.” 그녀의 시선이 지유의 어깨 너머, 집 안을 훑었다. 지유는 문을 조금 더 닫으며 시선을 막았다.

“에이, 언니도 참. 강아지가 무슨 대화를 해요. 그저 제 귀에는 그렇게 들리셨나 보죠. 언니가 피곤해서 헛들으신 거 아니에요?” 지유는 애써 농담처럼 받아쳤다.

유미는 한동안 지유를 빤히 쳐다보다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럴 수도 있겠죠. 제가 요즘 좀 피곤해서. 어쨌든, 토리 몸에 이상이 있으면 언제든 말해줘요. 제가 아는 동물병원 원장님도 계시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발걸음을 돌렸지만, 지유는 그녀의 뒤통수에서 의심의 촉수가 느껴지는 듯했다.

문이 닫히자마자 지유는 주저앉았다. 이불 속에서 꼼짝 않고 있던 토리가 조심스럽게 기어 나왔다. “지유야, 나 때문에 너무 힘들어하는 거 아니야?” 토리의 목소리는 죄책감으로 가득했다.

지유는 토리를 품에 안고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절대 아니야. 네가 있어서… 오히려 내가 더 행복해. 하지만… 이제 정말 조심해야 해. 유미 언니가 눈치를 챈 것 같아.”

그때였다. 밖에서 “지유 씨!” 하고 다시 유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유와 토리는 동시에 얼어붙었다. 쿵, 쿵, 쿵. 심장이 발악하듯 뛰었다. 유미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렸다.

“지유 씨! 저 잠깐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아까 복도에 핸드폰을 떨어뜨린 것 같아서요! 혹시 못 보셨어요?”

핸드폰? 설마… 녹음이라도 한 건가? 지유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혔다. 하지만 문을 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지유는 재빨리 토리를 품에 안고 화장실로 향했다. “토리야, 잠깐만 여기 숨어 있어. 절대로 소리 내면 안 돼.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토리의 눈빛은 불안으로 흔들렸지만, 이내 굳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유는 화장실 문을 잠그고 서둘러 현관으로 돌아왔다. “네, 언니! 잠시만요!” 지유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문을 열었다. 유미는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서 있었다. 오히려 그녀의 손에는 자신의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아, 핸드폰 여기 있었네요! 아까 제가 통화하면서 내려왔던 것 같아서 깜빡했어요. 하하.” 유미는 멋쩍게 웃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찰나의 순간, 지유의 집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지유는 심장이 철렁했다. 유미는 정말 핸드폰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었다. 지유의 반응을 살피고, 집 안의 변화를 감지하러 온 것이 분명했다.

“다행이네요. 그럼 다음에 봐요, 언니.” 지유는 예의상 미소와 함께 최대한 빨리 문을 닫으려 했다.

하지만 유미는 한 발짝 더 다가섰다. “지유 씨, 혹시… 토리 요즘 많이 외로워 보여요? 아니면… 많이 아픈가? 뭔가… 혼자서 속앓이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제가 혹시 토리를 잠시 돌봐줄까요? 제가 강아지를 좋아해서.”

그녀의 말은 걱정처럼 들렸지만, 지유는 그 안에 숨겨진 의도를 읽어냈다. 유미는 토리를 데려가 관찰하고 싶어 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 순간, 화장실 안에서 쿵, 하는 작은 소리가 들렸다. 토리가 무언가를 떨어뜨린 것이 분명했다.

유미의 시선이 화장실 쪽으로 향했다. “방금 무슨 소리…?”

지유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아, 그거… 화분! 제가 어제 화장실에 놓아둔 화분이 있었는데, 바람에 쓰러진 것 같아요. 제가 치울게요.” 지유는 재빨리 대꾸하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게 유미의 어깨를 밀어 돌려세웠다. “언니, 정말 피곤해 보이세요. 오늘은 좀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다음에 차 한잔 해요!”

유미는 어정쩡한 자세로 지유에게 끌려 현관 밖으로 나왔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의심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래요… 그럼… 다음에.” 유미는 마침내 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갔지만, 지유는 그녀가 계단 중간에서 뒤돌아 자신의 집 문을 다시 한 번 쳐다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지유는 문을 닫고 화장실로 달려갔다. 토리가 바닥에 놓인 칫솔통을 넘어뜨린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괜찮아, 토리야? 어디 다친 데는 없어?” 지유는 토리를 안아 올렸다.

토리는 지유의 품에서 겨우 진정했다. “지유야… 이제 어떻게 해? 유미 누나가 너무 가까이 왔어. 내가… 내가 계속 지유 옆에 있을 수 있을까?” 그의 목소리는 절망으로 가득했다.

지유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토리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그의 눈을 볼 때마다, 이 모든 비밀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깨닫는다. 이 작은 생명의 특별함이 세상에 드러나는 순간, 그들의 삶은 산산조각 날 것이다. 토리는 어쩌면 실험실로 끌려가거나, 세상의 구경거리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상상만으로도 지유는 숨이 막혔다.

“토리야…” 지유는 토리를 가슴에 품고 속삭였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어떤 위험이 닥쳐오더라도, 나는 너를 지킬 거야. 우리 둘만의 비밀은 절대 누구에게도 알려주지 않을 거야. 약속해.”

하지만 토리는 고개를 들고 지유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그의 작은 눈빛은 지유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고 복잡한 감정을 담고 있었다. “지유야… 그 비밀은… 사실 우리 둘만의 비밀이 아니야. 내가 이 능력을 가진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거든. 만약 세상에 이 비밀이 알려지면… 아마 지유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혼란이 올지도 몰라.”

토리의 갑작스러운 말에 지유는 얼어붙었다. 그동안 한 번도 듣지 못했던, 토리의 능력에 대한 더 깊은 비밀이 있다는 말이었다. 혼란? 그게 무슨 의미일까? 지유의 심장이 다시 한 번 강하게 뛰기 시작했다. 유미의 의심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던 것일까. 어쩌면 그들의 비밀은 거대한 그림자의 아주 작은 조각에 불과한 것인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