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잠에 빠진 듯 고요하던 새벽의 유적지는 찢어지는 금속음과 함께 불길한 침묵을 깼다. 강하준은 조종석에 등을 기댄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전용 기동병기, 코드명 ‘새벽별’의 경고음이 비명처럼 울려 퍼지고 있었다.
“젠장, 이런 함정은 보고서에 없었잖아!”
하준의 눈앞 홀로그램 패널에는 붉은 경고등이 점멸했다. 기체의 에너지 필드가 한계를 넘어섰고, 동력 코어의 출력이 불안정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이 거대한 유적 심층부의 고대 에너지원 분포를 탐사하라는 임무를 받고 이곳에 들어왔지만, 이런 반격은 예상치 못했다. 땅에서 솟아오른 거대한 수정 기둥들은 살아있는 듯 꿈틀거리며 새벽별의 움직임을 봉쇄하고 있었다. 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는 맹렬한 에너지 파동이 기체의 방어막을 찢고 장갑을 녹여내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왼쪽 팔 부위 장갑이 파편을 튀기며 떨어져 나갔다. 조종석이 심하게 흔들렸다. 하준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물러설 순 없어… 제길!”
그는 필사적으로 조종간을 움켜쥐었다. 남아있는 무장으로 반격을 시도했지만, 수정 기둥들은 마치 살아있는 의지를 가진 듯, 파괴된 부분마저 순식간에 재생하며 하준의 공격을 무력화시켰다. 재생 속도는 새벽별의 공격 속도를 월등히 뛰어넘었다.
*삐이이이—!*
마지막 남은 주 동력원마저 한계에 다다랐다는 경고음이 울렸다. 시스템 전체가 먹통이 되기 시작했다. 하준의 눈이 절망적으로 흔들렸다. 그는 이제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새벽별은 거대한 수정 감옥에 갇힌 채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기체의 모든 제어권이 손에서 미끄러져 나가는 것을 느끼며, 하준은 무력감에 휩싸였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이런 곳에서?
그 순간, 홀로그램 패널의 붉은 경고등 사이로 푸른빛의 희미한 문양이 번뜩였다. 하준은 저런 기능은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마치 아주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기체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비밀스러운 문양이었다. 긴급 상황에 모든 시스템이 다운되면서 우연히 노출된 것 같았다. 그의 기억 속 어떤 매뉴얼에도 저런 표식은 없었다.
하준의 손이 본능적으로 그 문양으로 향했다. 차갑던 조종석 내부에서, 그의 손끝에 닿은 패널에서 섬뜩할 정도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는 마치 오랜 친구를 만난 듯, 알 수 없는 끌림에 이끌려 망설임 없이 손가락으로 문양을 꾹 눌렀다.
*쉬이이이잉—*
세상은 일순 정지한 듯 고요해졌다. 새벽별의 모든 경고음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그리고 곧이어, 기체의 외부에서부터 내부까지, 푸른빛의 물결이 격렬하게 솟아올랐다. 단순한 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에너지 그 자체였다. 기체의 손상된 장갑 틈새로, 갈라진 동력 코어 사이로, 푸른빛이 혈관처럼 뻗어나갔다. 부서졌던 좌측 팔의 장갑이 눈앞에서 기적처럼 재결합되고, 녹아내리던 부위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이 모든 과정이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 이게 뭐야…?”
하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기체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고철덩이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전보다 더욱 선명하고 강렬한 푸른빛을 발하며, 거대한 수정 기둥들이 뿜어내던 에너지를 역으로 흡수하기 시작했다. 기둥들은 마치 생명력을 빨리는 것처럼 푸른빛에 휩싸이며 빠르게 메말라갔다. 그들의 맹렬했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흉물스럽게 서있던 수정들은 순식간에 회색빛으로 변하더니 부스러져 내렸다.
*크르르르릉!*
새벽별의 코어에서 거대한 에너지가 끓어올랐다. 하준은 자신이 이제 기체를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거대한 힘의 일부가 된 듯한 착각에 빠졌다. 그의 의지에 따라, 푸른빛이 새벽별의 양 손바닥에 응축되기 시작했다. 마치 고대의 신이 재림한 것처럼, 새벽별의 형체가 거대한 존재감을 발산했다.
“간다…!”
하준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패닉 상태에서 벗어나 차갑고 날카롭게 빛났다. 그는 양손을 앞으로 뻗는 것처럼 조종간을 움직였다. 새벽별의 양 손바닥에서 응축된 푸른 에너지가 거대한 광선이 되어 유적의 심층부를 향해 뿜어져 나갔다. 마치 이 세상을 지워버릴 듯한 압도적인 힘이었다.
*콰아아아아아앙!!!*
그것은 단순한 에너지 포격이 아니었다. 공간 자체를 왜곡시키는 듯한 푸른 섬광은 수정 기둥들을 일격에 소멸시켰고, 이어서 거대한 유적 심층부의 바닥을 꿰뚫고 사라졌다.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먼지로 변했다. 새벽별을 가두고 있던 수정 감옥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방금까지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던 위협들은 한 줌의 재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격렬했던 에너지가 사그라지고, 새벽별은 다시 고요해졌다. 푸른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홀로그램 패널의 문양도 다시 사라졌다. 마치 모든 것이 꿈이었던 것처럼, 새벽별은 다시 평범한 기동병기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하준은 알고 있었다. 방금 벌어진 일은 명백한 현실이었다. 부서졌던 기체의 장갑은 완벽하게 복구되었고, 동력 코어는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손바닥에는, 방금 전 그 푸른 에너지를 직접 느꼈던 듯한 아릿한 감각이 남아있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심장까지, 미묘한 떨림이 이어졌다.
그는 조종석에 앉아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새벽별에, 자신이 우연히 건드린 저 문양에, 도대체 어떤 고대의 힘이 잠들어 있었던 걸까? 단순한 기동병기가 아닌, 살아있는 마법 병기라도 된 것만 같았다.
“이건… 대체….”
하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심장이 격렬하게 울렸다. 그의 눈앞에는 끝없이 펼쳐진, 방금 막 거대한 힘으로 뚫어버린 새로운 통로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곳의 어둠 속에서, 무언가 새로운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온몸의 세포가 전율했다. 탐험가로서의 본능이, 미지의 힘에 대한 강렬한 갈증이, 그의 심장을 뛰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