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어두운 밤, 도시의 숨통이 꺼진 듯 고요해질 무렵, 제국의 감시망을 피해 살아가는 이들의 보금자리에는 비로소 낮은 온기가 피어났다. 바깥의 차가운 돌바닥과는 다르게, 눅눅한 흙벽 안쪽은 낡은 직물로 덧대어져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등불은 짐승의 기름을 태우며 주황빛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이곳은 제국의 눈이 닿지 않는, 평민들의 작은 안식처이자 동시에 마지막 희망이 움트는 곳이었다.

    오래된 나무 탁자 주위로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그들의 얼굴에는 낮 동안 제국의 노동에 시달린 피로가 역력했지만, 등불 아래 마주 앉은 이웃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어딘가 알 수 없는 온기와 희망이 번졌다. 탁자 위에는 방금 끓여낸 콩스프가 담긴 나무 그릇들이 김을 모락모락 피우고 있었다. 감자 몇 조각과 말린 고기가 전부인 투박한 음식이지만, 이들에게는 어떤 진수성찬보다 귀한 한 끼였다.

    “휴우… 오늘도 무사히 돌아왔군.”

    턱수염이 성성한 노인이 땀 맺힌 이마를 훔치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이름은 갈고리, 낮에는 제국의 광산에서 쉼 없이 곡괭이를 휘두르다 밤이 되면 이 별무리 공동체의 든든한 일원이 되는 남자였다. 그의 등 뒤에는 오늘 광산에서 캐 온 흙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할머니, 스프 정말 맛있어요! 제국군 막사보다 훨씬 맛있어요!”

    탁자 한 귀퉁이에 앉아 스프를 후루룩 마시던 샛별이라는 이름의 어린아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샛별은 일곱 살배기 소녀로, 제국의 징집령을 피해 이곳으로 숨어든 부모와 함께 살고 있었다. 제국군 막사 이야기가 나온 것은, 얼마 전 몰래 숨어들어 남은 빵 부스러기를 훔쳐 왔을 때 맛본 제국군의 건빵을 기억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맛은 형편없었지만, 샛별에게는 그래도 귀한 경험이었다.

    “호호, 그래, 우리 샛별이가 맛있다고 해주니 할미는 기쁘구나.”

    백발의 할머니가 샛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할머니의 손은 거칠었지만, 그 온기는 세상 어떤 위로보다 따뜻했다. 그녀는 이곳 별무리 공동체의 가장 연장자이자 정신적 지주였다. 아무리 고된 날에도 할머니의 따뜻한 손길과 지혜로운 한 마디는 모두에게 다시 일어설 힘을 주곤 했다.

    하지만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도 긴장감은 공기처럼 희박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 밤은 단순한 저녁 식사 자리가 아니었다. 탁자 한가운데 놓인, 제국이 금지한 고대 언어로 쓰인 낡은 지도 한 장이 그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지도는 낡고 헤졌지만, 제국의 수도 ‘크라센폴리스’ 외곽에 있는 거대한 보급창고를 붉은 펜으로 큼지막하게 표시하고 있었다.

    “리안, 준비는 끝났나?”

    갈고리 노인이 샛별의 맞은편에 앉아 있는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안은 스무 살 남짓의 젊은 나이였지만, 이 별무리 공동체의 실질적인 리더였다. 그의 눈빛은 짙은 밤하늘처럼 깊고, 흔들림 없는 강인함이 깃들어 있었다. 낮에는 제국의 관청에서 서류를 나르는 하급 관리로 일하며 정보를 캐냈고, 밤에는 동료들과 함께 제국에 맞설 방법을 모색했다.

    리안은 숟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갈고리 님. 어둠조가 보급창고 내부 구조를 확인했습니다. 순찰 주기는 기존보다 짧아졌지만, 아직 허점이 있습니다. 오늘 밤, 크라센 제3 보급창고에서 식량 수송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걸 노릴 겁니다.”

    말이 끝나자마자 모여 앉은 사람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 제국 보급창고 습격은 그들의 가장 큰 계획 중 하나였다. 단순히 식량을 훔치는 것을 넘어, 제국의 취약점을 드러내고 평민들에게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상징적인 행동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엄청난 위험을 동반하는 일이었다. 실패하면, 모든 것이 끝장날 수도 있었다.

    “식량이라… 잘만 하면 우리 아이들 몇 달은 배불리 먹일 수 있겠군.”

    갈고리 노인이 흐릿한 눈으로 샛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에는 희망과 함께 깊은 우려가 공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3 보급창고는 경비가 삼엄합니다. 지난번 외곽 마차 전복과는 다를 겁니다, 리안.”

    한 여인이 불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의 이름은 에르나, 전직 제국군 소속의 정비공이었다. 제국의 폭정 속에서 가족을 잃고 이곳에 합류한 그녀는 기계에 대한 비상한 재능과 냉철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에르나 님. 그래서 전면 습격은 불가능합니다. 계획은 이렇습니다.”

    리안은 낡은 지도를 펼쳐 탁자 중앙에 놓았다. 그의 손가락이 지도의 특정 지점을 짚었다.

    “제3 보급창고 외곽에는 오래된 배수관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아 감시도 소홀하죠. 어둠조가 그곳을 통해 잠입하여 주요 식량창고의 문을 열고, 외부 대기조가 신속하게 식량을 회수할 겁니다. 모든 과정은 30분 안에 끝내야 합니다.”

    그의 설명을 듣는 동안, 사람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더욱 선명해졌다. 30분.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 짧은 시간 안에 일을 벌여야 한다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이었다.

    “만약 발각된다면…?”

    다른 청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섞여 있었다. 그 질문은 모두가 마음속으로 품고 있었지만, 감히 꺼내지 못했던 질문이었다.

    리안은 잠시 침묵했다. 등불이 흔들리며 그의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는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발각된다면… 전원 후퇴합니다. 그리고… 저항조가 시간을 벌 겁니다.”

    저항조. 그것은 별무리 공동체에서 가장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이름이었다. 도망치는 이들을 위해, 제국군과 직접 대치하며 시간을 버는 역할. 그것은 사실상 죽음을 의미했다. 리안의 말에 몇몇은 고개를 떨구었고, 몇몇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때, 할머니가 샛별의 작은 손을 잡으며 조용히 말했다.

    “리안아, 너의 어깨가 참으로 무겁구나.”

    할머니의 목소리는 슬픔에 젖어 있었지만, 동시에 모든 것을 포용하는 듯한 깊은 울림이 있었다. 리안은 고개를 들어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할머니의 눈빛은 아련한 슬픔과 함께, 젊은 리더를 향한 믿음과 사랑으로 가득했다.

    “할머니… 죄송합니다.”

    리안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었다. 동료들의 생명, 그리고 빼앗긴 평민들의 미래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무엇이 죄송하단 말이냐. 너는 옳고, 우리는 너를 믿는다. 다만… 명심하거라. 우리의 싸움은 복수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우리 아이들이 오늘 밤 이 스프처럼 따뜻하고 배부른 잠을 잘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서… 그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할머니의 말은 차가운 얼음처럼 굳었던 리안의 마음을 녹이는 작은 불씨 같았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할머니의 따뜻한 손을 잡았다.

    “네, 할머니. 명심하겠습니다.”

    바로 그때였다. 흙벽 너머, 바깥에서 둔탁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불규칙적이지만, 빠르게 가까워지는 발소리. 그리고 이어서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젠장! 제국군 순찰대다!”

    출입구 쪽에서 망을 보던 청년이 급하게 외쳤다.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제국군 순찰대는 이 시간, 이곳까지 오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뭔가 이상했다.

    리안은 망설일 틈도 없이 일어섰다.

    “모두 흩어져! 샛별이와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비상통로로!”

    “하지만… 리안!” 에르나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계획대로 진행한다! 어둠조는 지금 바로 보급창고로 이동해!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어!”

    리안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어쩌면 제국군 순찰대의 등장은 예상치 못한 위기였지만, 동시에 경계가 느슨해질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혼란 속에서 그들은 움직여야 했다.

    갈고리 노인이 쇠붙이처럼 굳은 얼굴로 갈고리를 쥐었다. 그는 리안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가 저항조를 이끌겠다. 너는… 반드시 성공해야 해.”

    리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눈빛 속에서 굳건한 결의가 오고 갔다. 모두의 가슴 속에서 두려움과 함께 알 수 없는 열정이 피어났다. 비록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이었지만, 그들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빛을 찾을 수 있었다.

    샛별은 할머니의 품에 안겨 흔들리는 등불 너머 리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리안의 어깨는 유난히 넓고 굳건해 보였다. 샛별은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부디, 모두가 따뜻하고 배부른 잠을 잘 수 있는 세상을 볼 수 있기를.

    바깥의 발걸음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흙벽 너머로 제국군 병사들의 거친 외침이 들려왔다.

    “수상한 움직임을 포착했다! 이 구역을 수색하라!”

    리안은 마지막으로 콩스프가 담긴 나무 그릇을 바라보았다. 식어버린 스프. 하지만 그 안에 담긴 희망과 간절함은 식지 않았다. 그는 문을 박차고 어둠 속으로 나섰다. 평범한 이들의, 결코 평범하지 않은 반격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었다.

  • 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짙은 먹물을 흩뿌린 듯 산골짜기마다 그림자를 드리웠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비록 이름 없는 마을일지라도 제국군의 눈을 피해 숨 죽이고 있는 반란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스치는 시각, 강우는 오래된 초가지붕 위에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우 형님,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기다리던 소리가 나직이 물었다. 열여덟 남짓한 어린 소리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고된 삶이 어린 나이의 얼굴에 일찍이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 그림자 아래에는 결코 꺾이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가 숨 쉬고 있었다.

    “괜찮다. 그저… 오늘 밤은 유독 차갑구나.”

    강우는 허리춤에 찬 낡은 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었다. 녹슬고 닳아빠진 검이었지만, 그에게는 수없이 많은 밤을 지켜준 생명줄과 같았다. 아래로는 제국의 거대한 양곡창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수백 리 밖에서도 그 위압적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백성들의 피땀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 안에는 백성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을 수많은 곡식이 썩어가고 있을 터였다.

    “묵호는 준비되었나?”

    강우의 시선은 양곡창의 견고한 담벼락을 훑었다. 담벼락 위에는 삼엄한 경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제국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순찰을 돌았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들의 갑옷은 제국의 서늘한 위용을 대변하는 듯했다.

    “예, 형님. 묵호 형님은 동문 쪽 후미에서 대기 중입니다.”

    묵호는 이들의 셋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내였다. 말수는 적지만, 한 번 주먹을 내지르면 제국 병사 세넷은 거뜬히 쓰러뜨릴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오늘 밤 이 임무에서 그의 힘은 결정적일 터였다.

    “좋다. 소리, 네가 먼저 움직여라. 최대한 은밀하게.”

    “알겠습니다!”

    소리는 고양이처럼 가볍게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흐릿한 달빛 아래, 그녀의 몸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처럼 보였다. 사뿐히 담벼락 위로 내려선 소리는 재빠르게 몸을 낮춰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망루 위에 선 병사들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강우는 소리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한순간이라도 발각되면 이 밤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이들이 훔쳐야 할 것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자, 제국에 맞서는 반란의 불씨를 지필 마지막 기회였다.

    소리가 미리 표시해둔 지점에 도달하자,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들어 작게 흔들었다. 성공적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신호였다. 강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자신 역시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소리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몸이었지만, 그의 움직임 또한 숙련된 암살자처럼 날렵하고 정확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익힌 생존의 기술이었다.

    양곡창 내부로 진입하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제국의 병사들은 겉으로 보이는 위용에 비해 내부 경비는 허술한 편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견고한 담벼락과 병사들의 숫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만함이 바로 이들의 약점이었다.

    “강우 형님, 이쪽입니다.”

    내부에 진입한 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속삭였다. 그녀는 이미 가장 취약한 지점을 찾아낸 듯했다. 거대한 곡식 창고 문은 두꺼운 나무판자로 덧대어져 있었으나, 낡은 자물쇠는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강우는 주위를 살폈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순찰병이었다. 그는 재빨리 소리에게 손짓하여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게 했다. 자신 또한 기둥 뒤로 몸을 감췄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덜컹, 덜컹. 제국 병사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 병사의 숨소리까지 들릴 듯했다. 강우는 검자루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언제라도 뛰쳐나가 저 목숨을 거둬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병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쳐갔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강우는 조용히 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소리 또한 그림자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눈빛은 여전히 침착했다.

    “묵호는 아직…”

    그때였다. 창고 문 틈새로 손가락 하나가 끼워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낡은 자물쇠가 부서져 떨어졌다. 묵호였다. 그는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해 자신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묵호는 거대한 나무 문을 통째로 밀어 열었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묵직한 곡식의 냄새가 진동했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쌓여있는 곡식 더미의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산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백성들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제국은 이렇게 엄청난 양의 곡식을 창고에 썩히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강우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는 검을 휘둘러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묵호와 소리도 그의 뒤를 따랐다.

    “최대한 많이 챙겨라! 서둘러!”

    묵호는 미리 준비해온 커다란 자루를 펼쳤다. 그의 거대한 손이 곡식을 퍼 담기 시작했다. 소리 또한 작은 몸으로 열심히 곡식을 날랐다. 강우는 문밖을 경계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곡식 자루가 절반쯤 채워졌을 때였다.

    **쾅!**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창고 문이 박살 났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수많은 횃불과 함께 제국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수는 스무 명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번쩍이는 금빛 갑옷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검이 매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군. 양곡창에 숨어든 반란군이라니… 꽤나 대담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먹이를 찾아 기어나오는 비루한 짐승들에 불과했군.”

    제국 장교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비웃음은 강우의 핏대를 세웠다.

    “개 같은 놈들! 백성들의 피땀으로 쌓아 올린 곡식을 썩히면서, 굶주린 이들을 짐승 취급해? 네놈들이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다!”

    강우가 맹렬한 기세로 검을 뽑아 들었다. 녹슨 검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건방진 것! 당장 저 놈들의 목을 베어라!”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제국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낡은 검은 기적처럼 병사들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 피를 흩뿌렸다.

    “소리! 묵호! 곡식은 다 필요 없다!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강우의 외침에 묵호는 미처 채우지 못한 곡식 자루를 내던지고 거대한 몸으로 병사들을 밀쳐냈다. 소리는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병사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크아악!”
    “감히! 감히 이 몸을 건드려!”

    묵호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병사들이 나가떨어졌다. 소리는 몸을 비틀며 병사들의 검을 피하고, 얇은 단검으로 그들의 약점을 찔렀다. 하지만 병사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과 창이 이들을 조여왔다.

    강우는 필사적으로 길을 열었다. 그의 검은 춤추듯 움직였다. 제국 병사들이 쓰러져나갔지만, 그만큼 새로운 병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점점 숨이 가빠왔다.

    “형님! 조심하세요!”

    소리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강우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황급히 몸을 비틀었지만, 날아온 창날이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쓰라린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강우 형님!”

    묵호가 소리쳤지만, 그는 이미 여러 명의 병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장교는 멀찍이서 이들을 비웃으며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겨우 셋이서 대단하군. 하지만 결국은 이럴 뿐이지.”

    강우는 옆구리의 통증을 무시하고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마을의 굶주린 아이들, 제국의 폭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아…!”

    강우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포효했다. 그때였다. 양곡창의 굳건한 문밖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새벽의 정적을 깨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양곡창의 단단한 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먼지와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찬 공기 속에서, 수십 개의 횃불이 일렁였다.

    “제국 놈들! 더러운 손으로 백성들의 양식을 훔치지 마라!”

    수많은 함성 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들려왔다. 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새로운 반란군 무리가, 어둠을 뚫고 양곡창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 또한 강우만큼이나 뜨거운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제국 장교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지고, 당혹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강우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피식 웃었다. 이제는, 싸움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진정한 싸움이.

  • 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짙은 먹물을 흩뿌린 듯 산골짜기마다 그림자를 드리웠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비록 이름 없는 마을일지라도 제국군의 눈을 피해 숨 죽이고 있는 반란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스치는 시각, 강우는 오래된 초가지붕 위에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우 형님,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기다리던 소리가 나직이 물었다. 열여덟 남짓한 어린 소리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고된 삶이 어린 나이의 얼굴에 일찍이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 그림자 아래에는 결코 꺾이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가 숨 쉬고 있었다.

    “괜찮다. 그저… 오늘 밤은 유독 차갑구나.”

    강우는 허리춤에 찬 낡은 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었다. 녹슬고 닳아빠진 검이었지만, 그에게는 수없이 많은 밤을 지켜준 생명줄과 같았다. 아래로는 제국의 거대한 양곡창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수백 리 밖에서도 그 위압적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백성들의 피땀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 안에는 백성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을 수많은 곡식이 썩어가고 있을 터였다.

    “묵호는 준비되었나?”

    강우의 시선은 양곡창의 견고한 담벼락을 훑었다. 담벼락 위에는 삼엄한 경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제국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순찰을 돌았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들의 갑옷은 제국의 서늘한 위용을 대변하는 듯했다.

    “예, 형님. 묵호 형님은 동문 쪽 후미에서 대기 중입니다.”

    묵호는 이들의 셋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내였다. 말수는 적지만, 한 번 주먹을 내지르면 제국 병사 세넷은 거뜬히 쓰러뜨릴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오늘 밤 이 임무에서 그의 힘은 결정적일 터였다.

    “좋다. 소리, 네가 먼저 움직여라. 최대한 은밀하게.”

    “알겠습니다!”

    소리는 고양이처럼 가볍게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흐릿한 달빛 아래, 그녀의 몸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처럼 보였다. 사뿐히 담벼락 위로 내려선 소리는 재빠르게 몸을 낮춰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망루 위에 선 병사들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강우는 소리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한순간이라도 발각되면 이 밤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이들이 훔쳐야 할 것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자, 제국에 맞서는 반란의 불씨를 지필 마지막 기회였다.

    소리가 미리 표시해둔 지점에 도달하자,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들어 작게 흔들었다. 성공적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신호였다. 강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자신 역시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소리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몸이었지만, 그의 움직임 또한 숙련된 암살자처럼 날렵하고 정확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익힌 생존의 기술이었다.

    양곡창 내부로 진입하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제국의 병사들은 겉으로 보이는 위용에 비해 내부 경비는 허술한 편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견고한 담벼락과 병사들의 숫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만함이 바로 이들의 약점이었다.

    “강우 형님, 이쪽입니다.”

    내부에 진입한 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속삭였다. 그녀는 이미 가장 취약한 지점을 찾아낸 듯했다. 거대한 곡식 창고 문은 두꺼운 나무판자로 덧대어져 있었으나, 낡은 자물쇠는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강우는 주위를 살폈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순찰병이었다. 그는 재빨리 소리에게 손짓하여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게 했다. 자신 또한 기둥 뒤로 몸을 감췄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덜컹, 덜컹. 제국 병사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 병사의 숨소리까지 들릴 듯했다. 강우는 검자루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언제라도 뛰쳐나가 저 목숨을 거둬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병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쳐갔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강우는 조용히 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소리 또한 그림자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눈빛은 여전히 침착했다.

    “묵호는 아직…”

    그때였다. 창고 문 틈새로 손가락 하나가 끼워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낡은 자물쇠가 부서져 떨어졌다. 묵호였다. 그는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해 자신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묵호는 거대한 나무 문을 통째로 밀어 열었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묵직한 곡식의 냄새가 진동했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쌓여있는 곡식 더미의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산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백성들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제국은 이렇게 엄청난 양의 곡식을 창고에 썩히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강우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는 검을 휘둘러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묵호와 소리도 그의 뒤를 따랐다.

    “최대한 많이 챙겨라! 서둘러!”

    묵호는 미리 준비해온 커다란 자루를 펼쳤다. 그의 거대한 손이 곡식을 퍼 담기 시작했다. 소리 또한 작은 몸으로 열심히 곡식을 날랐다. 강우는 문밖을 경계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곡식 자루가 절반쯤 채워졌을 때였다.

    **쾅!**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창고 문이 박살 났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수많은 횃불과 함께 제국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수는 스무 명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번쩍이는 금빛 갑옷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검이 매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군. 양곡창에 숨어든 반란군이라니… 꽤나 대담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먹이를 찾아 기어나오는 비루한 짐승들에 불과했군.”

    제국 장교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비웃음은 강우의 핏대를 세웠다.

    “개 같은 놈들! 백성들의 피땀으로 쌓아 올린 곡식을 썩히면서, 굶주린 이들을 짐승 취급해? 네놈들이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다!”

    강우가 맹렬한 기세로 검을 뽑아 들었다. 녹슨 검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건방진 것! 당장 저 놈들의 목을 베어라!”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제국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낡은 검은 기적처럼 병사들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 피를 흩뿌렸다.

    “소리! 묵호! 곡식은 다 필요 없다!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강우의 외침에 묵호는 미처 채우지 못한 곡식 자루를 내던지고 거대한 몸으로 병사들을 밀쳐냈다. 소리는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병사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크아악!”
    “감히! 감히 이 몸을 건드려!”

    묵호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병사들이 나가떨어졌다. 소리는 몸을 비틀며 병사들의 검을 피하고, 얇은 단검으로 그들의 약점을 찔렀다. 하지만 병사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과 창이 이들을 조여왔다.

    강우는 필사적으로 길을 열었다. 그의 검은 춤추듯 움직였다. 제국 병사들이 쓰러져나갔지만, 그만큼 새로운 병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점점 숨이 가빠왔다.

    “형님! 조심하세요!”

    소리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강우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황급히 몸을 비틀었지만, 날아온 창날이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쓰라린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강우 형님!”

    묵호가 소리쳤지만, 그는 이미 여러 명의 병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장교는 멀찍이서 이들을 비웃으며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겨우 셋이서 대단하군. 하지만 결국은 이럴 뿐이지.”

    강우는 옆구리의 통증을 무시하고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마을의 굶주린 아이들, 제국의 폭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아…!”

    강우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포효했다. 그때였다. 양곡창의 굳건한 문밖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새벽의 정적을 깨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양곡창의 단단한 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먼지와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찬 공기 속에서, 수십 개의 횃불이 일렁였다.

    “제국 놈들! 더러운 손으로 백성들의 양식을 훔치지 마라!”

    수많은 함성 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들려왔다. 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새로운 반란군 무리가, 어둠을 뚫고 양곡창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 또한 강우만큼이나 뜨거운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제국 장교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지고, 당혹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강우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피식 웃었다. 이제는, 싸움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진정한 싸움이.

  • 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고요한 심연이었다.

    선실 유리창 밖은 칠흑 그 자체였다. 이따금 죽은 별의 잔광이 아득히 멀리서 반짝이며 자신이 존재했음을 알릴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끝없는 고독과 침묵만이 우주선 ‘레비아탄’ 호를 감싸고 있었다. 서지혁 함장은 눈을 감고 그 적막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3년 째 이 심우주를 헤매고 있었다. 인류가 이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이 임무였고, 그 임무는 이제 지루함을 넘어선 묵직한 권태로움으로 변해 있었다.

    “함장님, 주무시지 그러십니까?”

    정적을 깬 건 항해사 강수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선장석 옆 보조석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에 띄워진 항성 지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고 총명했지만, 그 깊이에는 피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잠이 오질 않는군.” 서지혁은 짧게 답하며 눈을 떴다. “무언가 달라진 게 있나?”

    “아뇨. 언제나처럼 똑같습니다. 중력 가속도, 자기장, 미세 물질 분포 모두 평이합니다. 특이점은 없습니다.”

    강수아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견을 갈망하는 과학자였다. 지루한 루틴의 반복은 그녀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과도 같았다.

    “이 지루함도 곧 끝나겠지.” 서지혁이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3개월 후면 귀환 예정 포인트에 도달할 테고, 우리 임무는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될 거야. 인류는 또 한 번, 우주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백임을 깨닫게 되겠지.”

    그때였다. 레비아탄 호의 함교 전체를 울리는 삐 소리가 짧고 날카롭게 울렸다.
    강수아의 눈이 즉시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함장님! 심층 스캔에… 무언가 잡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일말의 흥분과 당혹감이 스쳤다.

    서지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무엇이지? 소행성 군집인가?”

    “아뇨! 아닙니다! 형태가…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가능합니다.” 강수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크린에는 칠흑 같은 우주 한가운데, 기이한 형태의 물체가 점멸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그림자처럼, 주변의 별빛마저 흡수하는 듯 검푸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리 720만 킬로미터… 크기 추정치… 측정 불가? 대체 무슨 소리야?” 서지혁이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다. 데이터가 혼란스러웠다. 크기 추정치가 계속해서 변동하고 있었고, 어떤 물리량도 명확하게 측정되지 않았다.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인공적인 형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공물이라기엔… 우주를 초월한 것 같아요.” 강수아의 목소리가 점차 가늘어졌다. “이전에 어떤 기록에서도 본 적 없는 패턴입니다.”

    “이선우! 기관실 응답하라!” 서지혁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잠시 후,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함장님. 무슨 일입니까? 설마 드디어 지루함에 미쳐서 벽에 머리 박으셨습니까?”

    레비아탄 호의 기관장이자, 유일한 엔지니어인 이선우였다. 그는 뛰어난 재능만큼이나 천성이 비꼬는 사람이었다.

    “이선우 기관장. 지금 즉시 함교로 올라와라. 그리고 자네는 이제 지루함을 원망하지 않게 될 거야.” 서지혁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이선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곧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겼다.

    서지혁은 다시 스크린의 물체로 시선을 돌렸다. 저 검은 형태는 마치 어둠 자체로 빚어진 조각상 같았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고, 그 윤곽선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우주가 그것을 존재시키려 발버둥 치는 와중에 일그러진 것처럼.

    “접근 지시를 내려라. 최저 속도로.” 서지혁이 명령했다.

    강수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어떤 종류의 존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센서가 계속 오작동합니다. 저 물체에서 미지의 파동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뇌파와 유사한… 어떠한 의도적인… 압력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봐야 해.” 서지혁의 눈빛이 스크린의 검은 물체를 꿰뚫었다. “이선우 말마따나, 우주가 우리에게 드디어 뭔가를 보여주는군. 이것이 인류의 새로운 지평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무덤이 될지, 우리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

    레비아탄 호의 거대한 엔진이 최저 출력으로 고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함선은 삐걱거리는 듯한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미지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

    “흐음… 이거 봐라. 제법 폼 나게 생긴 고물 덩어리인데? 아니면 우주 해적들이 버리고 간 비싼 폐품인가?”

    이선우 기관장이 함교에 도착하자마자 홀로그램 스크린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만능 렌치 대신, 에너지 스캐너가 들려 있었다.

    “농담할 상황이 아니야, 이선우.” 강수아가 날카롭게 말했다. “스캐너 결과는 어떤가?”

    이선우는 이마를 찌푸리며 스캐너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미쳤군. 이런 반응은 처음 봅니다. 모든 에너지 스펙트럼에서 제로에 가깝게 나옵니다. 에너지를 아예 방출하지 않는다고요. 흡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역설적으로 엄청난 밀도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해요. 무슨 양자 역학 시험용 장난감인가?”

    “흡수?” 서지혁이 되물었다. “빛을 흡수하는 건가?”

    “빛뿐만이 아닙니다. 주변의 공간 자체가 저 기형적인 덩어리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스크린에서 저 형태가 자꾸 일그러지는 것 보이죠? 저게 센서 오류가 아니라, 실제로 저 물체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중력 렌즈 효과와는 또 다른… 이건 마치 구멍 같아요. 블랙홀은 아닌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의식 없는 입처럼 보입니다.”

    레비아탄 호는 천천히 물체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제 육안으로도 그 존재를 어렴풋이 식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결정체 같기도 했고,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산맥 같기도 했다. 그 표면은 빛을 반사하기는커녕, 주변의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 보였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광경이었다.

    강수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뭔가… 느껴집니다. 머릿속이 시끄러워져요.”

    “나도 마찬가지다.” 서지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조종석 옆의 비상용 리볼버를 쥐었다. 그는 우주를 헤매며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이처럼 알 수 없는 막연한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이 공포는 심장이나 위장이 아닌, 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었다.

    “이건 그냥 물체가 아닙니다.” 이선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생명체와 유사한 파동이 감지됩니다. 하지만…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차갑고, 거대합니다. 마치 우주의 모든 죽음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그런 존재 같습니다.”

    그때, 레비아탄 호의 함체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금속이 뒤틀리는 듯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함체 압력 격벽에 이상 감지! 미세 균열 발생!” 강수아가 비명을 질렀다.

    “이선우! 주엔진 출력 올려! 즉시 후퇴한다!” 서지혁이 외쳤다.

    “안 됩니다! 함장님! 엔진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 물체가… 저게 우리 배의 동력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이선우가 절규했다. 그의 손이 땀으로 축축한 채로 패널 위를 허둥댔다.

    레비아탄 호는 마치 거대한 거미줄에 걸린 작은 곤충처럼, 검은 물체에게 서서히 끌려가고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 물체의 기괴한 형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완벽하게 비대칭적이었고, 무수히 많은 촉수나 뼈대가 뒤엉켜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표면에는 미지의 언어로 새겨진 듯한 문양들이 어른거렸다. 아니, 문양이 아니라… 수많은 눈동자처럼 보였다. 닫혀 있는, 그러나 언제든 뜨겁게 타오를 준비가 된 것 같은.

    서지혁은 손에 쥔 리볼버를 내려놓고, 다시 비상 탈출 버튼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았다. 함교의 모든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스크린의 물체를 가리켰다.
    “저 안에… 뭔가 있습니다. 움직입니다… 눈이… 눈이 우리를 보고 있어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검은 물체의 한 부분이 일그러지며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깊은 심연 속에서, 아주 희미한, 하지만 확고한 빛이 깜빡였다.

    그 빛은 마치 고대의 존재가 수십 억 년의 잠에서 깨어나, 굶주린 눈으로 먹잇감을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서지혁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섬뜩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저것은 단순한 외계 유물이 아니었다.
    이것은… 존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존재는, 지금 깨어나고 있었다.
    레비아탄 호는 비명을 지르며, 영원한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 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고요한 심연이었다.

    선실 유리창 밖은 칠흑 그 자체였다. 이따금 죽은 별의 잔광이 아득히 멀리서 반짝이며 자신이 존재했음을 알릴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끝없는 고독과 침묵만이 우주선 ‘레비아탄’ 호를 감싸고 있었다. 서지혁 함장은 눈을 감고 그 적막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3년 째 이 심우주를 헤매고 있었다. 인류가 이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이 임무였고, 그 임무는 이제 지루함을 넘어선 묵직한 권태로움으로 변해 있었다.

    “함장님, 주무시지 그러십니까?”

    정적을 깬 건 항해사 강수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선장석 옆 보조석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에 띄워진 항성 지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고 총명했지만, 그 깊이에는 피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잠이 오질 않는군.” 서지혁은 짧게 답하며 눈을 떴다. “무언가 달라진 게 있나?”

    “아뇨. 언제나처럼 똑같습니다. 중력 가속도, 자기장, 미세 물질 분포 모두 평이합니다. 특이점은 없습니다.”

    강수아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견을 갈망하는 과학자였다. 지루한 루틴의 반복은 그녀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과도 같았다.

    “이 지루함도 곧 끝나겠지.” 서지혁이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3개월 후면 귀환 예정 포인트에 도달할 테고, 우리 임무는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될 거야. 인류는 또 한 번, 우주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백임을 깨닫게 되겠지.”

    그때였다. 레비아탄 호의 함교 전체를 울리는 삐 소리가 짧고 날카롭게 울렸다.
    강수아의 눈이 즉시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함장님! 심층 스캔에… 무언가 잡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일말의 흥분과 당혹감이 스쳤다.

    서지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무엇이지? 소행성 군집인가?”

    “아뇨! 아닙니다! 형태가…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가능합니다.” 강수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크린에는 칠흑 같은 우주 한가운데, 기이한 형태의 물체가 점멸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그림자처럼, 주변의 별빛마저 흡수하는 듯 검푸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리 720만 킬로미터… 크기 추정치… 측정 불가? 대체 무슨 소리야?” 서지혁이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다. 데이터가 혼란스러웠다. 크기 추정치가 계속해서 변동하고 있었고, 어떤 물리량도 명확하게 측정되지 않았다.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인공적인 형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공물이라기엔… 우주를 초월한 것 같아요.” 강수아의 목소리가 점차 가늘어졌다. “이전에 어떤 기록에서도 본 적 없는 패턴입니다.”

    “이선우! 기관실 응답하라!” 서지혁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잠시 후,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함장님. 무슨 일입니까? 설마 드디어 지루함에 미쳐서 벽에 머리 박으셨습니까?”

    레비아탄 호의 기관장이자, 유일한 엔지니어인 이선우였다. 그는 뛰어난 재능만큼이나 천성이 비꼬는 사람이었다.

    “이선우 기관장. 지금 즉시 함교로 올라와라. 그리고 자네는 이제 지루함을 원망하지 않게 될 거야.” 서지혁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이선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곧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겼다.

    서지혁은 다시 스크린의 물체로 시선을 돌렸다. 저 검은 형태는 마치 어둠 자체로 빚어진 조각상 같았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고, 그 윤곽선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우주가 그것을 존재시키려 발버둥 치는 와중에 일그러진 것처럼.

    “접근 지시를 내려라. 최저 속도로.” 서지혁이 명령했다.

    강수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어떤 종류의 존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센서가 계속 오작동합니다. 저 물체에서 미지의 파동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뇌파와 유사한… 어떠한 의도적인… 압력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봐야 해.” 서지혁의 눈빛이 스크린의 검은 물체를 꿰뚫었다. “이선우 말마따나, 우주가 우리에게 드디어 뭔가를 보여주는군. 이것이 인류의 새로운 지평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무덤이 될지, 우리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

    레비아탄 호의 거대한 엔진이 최저 출력으로 고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함선은 삐걱거리는 듯한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미지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

    “흐음… 이거 봐라. 제법 폼 나게 생긴 고물 덩어리인데? 아니면 우주 해적들이 버리고 간 비싼 폐품인가?”

    이선우 기관장이 함교에 도착하자마자 홀로그램 스크린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만능 렌치 대신, 에너지 스캐너가 들려 있었다.

    “농담할 상황이 아니야, 이선우.” 강수아가 날카롭게 말했다. “스캐너 결과는 어떤가?”

    이선우는 이마를 찌푸리며 스캐너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미쳤군. 이런 반응은 처음 봅니다. 모든 에너지 스펙트럼에서 제로에 가깝게 나옵니다. 에너지를 아예 방출하지 않는다고요. 흡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역설적으로 엄청난 밀도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해요. 무슨 양자 역학 시험용 장난감인가?”

    “흡수?” 서지혁이 되물었다. “빛을 흡수하는 건가?”

    “빛뿐만이 아닙니다. 주변의 공간 자체가 저 기형적인 덩어리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스크린에서 저 형태가 자꾸 일그러지는 것 보이죠? 저게 센서 오류가 아니라, 실제로 저 물체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중력 렌즈 효과와는 또 다른… 이건 마치 구멍 같아요. 블랙홀은 아닌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의식 없는 입처럼 보입니다.”

    레비아탄 호는 천천히 물체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제 육안으로도 그 존재를 어렴풋이 식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결정체 같기도 했고,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산맥 같기도 했다. 그 표면은 빛을 반사하기는커녕, 주변의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 보였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광경이었다.

    강수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뭔가… 느껴집니다. 머릿속이 시끄러워져요.”

    “나도 마찬가지다.” 서지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조종석 옆의 비상용 리볼버를 쥐었다. 그는 우주를 헤매며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이처럼 알 수 없는 막연한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이 공포는 심장이나 위장이 아닌, 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었다.

    “이건 그냥 물체가 아닙니다.” 이선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생명체와 유사한 파동이 감지됩니다. 하지만…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차갑고, 거대합니다. 마치 우주의 모든 죽음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그런 존재 같습니다.”

    그때, 레비아탄 호의 함체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금속이 뒤틀리는 듯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함체 압력 격벽에 이상 감지! 미세 균열 발생!” 강수아가 비명을 질렀다.

    “이선우! 주엔진 출력 올려! 즉시 후퇴한다!” 서지혁이 외쳤다.

    “안 됩니다! 함장님! 엔진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 물체가… 저게 우리 배의 동력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이선우가 절규했다. 그의 손이 땀으로 축축한 채로 패널 위를 허둥댔다.

    레비아탄 호는 마치 거대한 거미줄에 걸린 작은 곤충처럼, 검은 물체에게 서서히 끌려가고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 물체의 기괴한 형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완벽하게 비대칭적이었고, 무수히 많은 촉수나 뼈대가 뒤엉켜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표면에는 미지의 언어로 새겨진 듯한 문양들이 어른거렸다. 아니, 문양이 아니라… 수많은 눈동자처럼 보였다. 닫혀 있는, 그러나 언제든 뜨겁게 타오를 준비가 된 것 같은.

    서지혁은 손에 쥔 리볼버를 내려놓고, 다시 비상 탈출 버튼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았다. 함교의 모든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스크린의 물체를 가리켰다.
    “저 안에… 뭔가 있습니다. 움직입니다… 눈이… 눈이 우리를 보고 있어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검은 물체의 한 부분이 일그러지며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깊은 심연 속에서, 아주 희미한, 하지만 확고한 빛이 깜빡였다.

    그 빛은 마치 고대의 존재가 수십 억 년의 잠에서 깨어나, 굶주린 눈으로 먹잇감을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서지혁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섬뜩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저것은 단순한 외계 유물이 아니었다.
    이것은… 존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존재는, 지금 깨어나고 있었다.
    레비아탄 호는 비명을 지르며, 영원한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 다크 판타지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고요한 심연이었다.

    선실 유리창 밖은 칠흑 그 자체였다. 이따금 죽은 별의 잔광이 아득히 멀리서 반짝이며 자신이 존재했음을 알릴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끝없는 고독과 침묵만이 우주선 ‘레비아탄’ 호를 감싸고 있었다. 서지혁 함장은 눈을 감고 그 적막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3년 째 이 심우주를 헤매고 있었다. 인류가 이전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미지의 영역을 탐사하는 것이 임무였고, 그 임무는 이제 지루함을 넘어선 묵직한 권태로움으로 변해 있었다.

    “함장님, 주무시지 그러십니까?”

    정적을 깬 건 항해사 강수아의 목소리였다. 그녀는 선장석 옆 보조석에 앉아 홀로그램 스크린에 띄워진 항성 지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날카롭고 총명했지만, 그 깊이에는 피로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잠이 오질 않는군.” 서지혁은 짧게 답하며 눈을 떴다. “무언가 달라진 게 있나?”

    “아뇨. 언제나처럼 똑같습니다. 중력 가속도, 자기장, 미세 물질 분포 모두 평이합니다. 특이점은 없습니다.”

    강수아의 목소리에는 미묘한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그녀는 무엇보다도 새로운 발견을 갈망하는 과학자였다. 지루한 루틴의 반복은 그녀에게 가장 가혹한 형벌과도 같았다.

    “이 지루함도 곧 끝나겠지.” 서지혁이 중얼거렸다. “이대로라면 3개월 후면 귀환 예정 포인트에 도달할 테고, 우리 임무는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될 거야. 인류는 또 한 번, 우주가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공백임을 깨닫게 되겠지.”

    그때였다. 레비아탄 호의 함교 전체를 울리는 삐 소리가 짧고 날카롭게 울렸다.
    강수아의 눈이 즉시 스크린으로 향했다. 그녀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키보드 위를 빠르게 움직였다.

    “함장님! 심층 스캔에… 무언가 잡혔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 일말의 흥분과 당혹감이 스쳤다.

    서지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긴장감이었다.
    “무엇이지? 소행성 군집인가?”

    “아뇨! 아닙니다! 형태가… 너무나도… 명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불가능합니다.” 강수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눈은 스크린에 고정되어 있었다.

    스크린에는 칠흑 같은 우주 한가운데, 기이한 형태의 물체가 점멸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존재해서는 안 되는 그림자처럼, 주변의 별빛마저 흡수하는 듯 검푸른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거리 720만 킬로미터… 크기 추정치… 측정 불가? 대체 무슨 소리야?” 서지혁이 스크린 앞으로 다가갔다. 데이터가 혼란스러웠다. 크기 추정치가 계속해서 변동하고 있었고, 어떤 물리량도 명확하게 측정되지 않았다.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닙니다. 너무나도 인공적인 형태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인공물이라기엔… 우주를 초월한 것 같아요.” 강수아의 목소리가 점차 가늘어졌다. “이전에 어떤 기록에서도 본 적 없는 패턴입니다.”

    “이선우! 기관실 응답하라!” 서지혁이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잠시 후, 둔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함장님. 무슨 일입니까? 설마 드디어 지루함에 미쳐서 벽에 머리 박으셨습니까?”

    레비아탄 호의 기관장이자, 유일한 엔지니어인 이선우였다. 그는 뛰어난 재능만큼이나 천성이 비꼬는 사람이었다.

    “이선우 기관장. 지금 즉시 함교로 올라와라. 그리고 자네는 이제 지루함을 원망하지 않게 될 거야.” 서지혁의 목소리에 평소와 다른 묘한 무게감이 실려 있었다.

    이선우는 잠시 침묵하더니, 곧 투덜거리는 소리와 함께 연결이 끊겼다.

    서지혁은 다시 스크린의 물체로 시선을 돌렸다. 저 검은 형태는 마치 어둠 자체로 빚어진 조각상 같았다.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이상하게 비틀려 있었고, 그 윤곽선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듯했다. 마치 우주가 그것을 존재시키려 발버둥 치는 와중에 일그러진 것처럼.

    “접근 지시를 내려라. 최저 속도로.” 서지혁이 명령했다.

    강수아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함장님? 너무 위험합니다. 어떤 종류의 존재인지 알 수 없습니다. 게다가… 센서가 계속 오작동합니다. 저 물체에서 미지의 파동이 방출되고 있습니다. 뇌파와 유사한… 어떠한 의도적인… 압력 같은 것이 느껴집니다.”

    “그래서 더 봐야 해.” 서지혁의 눈빛이 스크린의 검은 물체를 꿰뚫었다. “이선우 말마따나, 우주가 우리에게 드디어 뭔가를 보여주는군. 이것이 인류의 새로운 지평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무덤이 될지, 우리가 직접 확인해야 한다.”

    레비아탄 호의 거대한 엔진이 최저 출력으로 고동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함선은 삐걱거리는 듯한 미세한 진동을 일으키며, 미지의 어둠 속으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

    “흐음… 이거 봐라. 제법 폼 나게 생긴 고물 덩어리인데? 아니면 우주 해적들이 버리고 간 비싼 폐품인가?”

    이선우 기관장이 함교에 도착하자마자 홀로그램 스크린을 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의 손에는 항상 들고 다니는 만능 렌치 대신, 에너지 스캐너가 들려 있었다.

    “농담할 상황이 아니야, 이선우.” 강수아가 날카롭게 말했다. “스캐너 결과는 어떤가?”

    이선우는 이마를 찌푸리며 스캐너를 이리저리 돌려 보았다. “미쳤군. 이런 반응은 처음 봅니다. 모든 에너지 스펙트럼에서 제로에 가깝게 나옵니다. 에너지를 아예 방출하지 않는다고요. 흡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근데… 역설적으로 엄청난 밀도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해요. 무슨 양자 역학 시험용 장난감인가?”

    “흡수?” 서지혁이 되물었다. “빛을 흡수하는 건가?”

    “빛뿐만이 아닙니다. 주변의 공간 자체가 저 기형적인 덩어리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스크린에서 저 형태가 자꾸 일그러지는 것 보이죠? 저게 센서 오류가 아니라, 실제로 저 물체 주변의 공간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중력 렌즈 효과와는 또 다른… 이건 마치 구멍 같아요. 블랙홀은 아닌데…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의식 없는 입처럼 보입니다.”

    레비아탄 호는 천천히 물체에 접근하고 있었다. 이제 육안으로도 그 존재를 어렴풋이 식별할 수 있었다. 그것은 거대한 검은 결정체 같기도 했고, 불규칙하게 솟아오른 산맥 같기도 했다. 그 표면은 빛을 반사하기는커녕, 주변의 별빛마저 집어삼키는 듯 보였다. 심장이 얼어붙을 것 같은 차가운 광경이었다.

    강수아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함장님, 뭔가… 느껴집니다. 머릿속이 시끄러워져요.”

    “나도 마찬가지다.” 서지혁이 낮게 읊조렸다. 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조종석 옆의 비상용 리볼버를 쥐었다. 그는 우주를 헤매며 수많은 위기를 겪었지만, 이처럼 알 수 없는 막연한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이 공포는 심장이나 위장이 아닌, 뇌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나는 것이었다.

    “이건 그냥 물체가 아닙니다.” 이선우의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해져 있었다. “생명체와 유사한 파동이 감지됩니다. 하지만… 생명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무겁고, 차갑고, 거대합니다. 마치 우주의 모든 죽음을 한데 모아놓은 듯한… 그런 존재 같습니다.”

    그때, 레비아탄 호의 함체에서 섬뜩한 소리가 울렸다. 금속이 뒤틀리는 듯한,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소리였다.

    “함체 압력 격벽에 이상 감지! 미세 균열 발생!” 강수아가 비명을 질렀다.

    “이선우! 주엔진 출력 올려! 즉시 후퇴한다!” 서지혁이 외쳤다.

    “안 됩니다! 함장님! 엔진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 물체가… 저게 우리 배의 동력을 빨아들이고 있어요!” 이선우가 절규했다. 그의 손이 땀으로 축축한 채로 패널 위를 허둥댔다.

    레비아탄 호는 마치 거대한 거미줄에 걸린 작은 곤충처럼, 검은 물체에게 서서히 끌려가고 있었다. 점점 더 가까워지자, 그 물체의 기괴한 형태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것은 완벽하게 비대칭적이었고, 무수히 많은 촉수나 뼈대가 뒤엉켜 솟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표면에는 미지의 언어로 새겨진 듯한 문양들이 어른거렸다. 아니, 문양이 아니라… 수많은 눈동자처럼 보였다. 닫혀 있는, 그러나 언제든 뜨겁게 타오를 준비가 된 것 같은.

    서지혁은 손에 쥔 리볼버를 내려놓고, 다시 비상 탈출 버튼에 손을 올렸다. 하지만 그마저도 작동하지 않았다. 함교의 모든 시스템이 먹통이 되어가고 있었다.

    강수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스크린의 물체를 가리켰다.
    “저 안에… 뭔가 있습니다. 움직입니다… 눈이… 눈이 우리를 보고 있어요!”

    그녀의 말과 동시에, 검은 물체의 한 부분이 일그러지며 안쪽으로 움푹 들어가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그리고 그 깊은 심연 속에서, 아주 희미한, 하지만 확고한 빛이 깜빡였다.

    그 빛은 마치 고대의 존재가 수십 억 년의 잠에서 깨어나, 굶주린 눈으로 먹잇감을 응시하는 것만 같았다.
    서지혁은 등골을 타고 흐르는 섬뜩한 전율에 몸을 떨었다. 저것은 단순한 외계 유물이 아니었다.
    이것은… 존재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존재는, 지금 깨어나고 있었다.
    레비아탄 호는 비명을 지르며, 영원한 어둠 속으로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 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심연의 핵

    황무지나 다름없는 도시 외곽, 구획 73B. 이곳은 한때 번성했던 산업 단지였지만, 지금은 거대한 콘크리트 유령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산성비에 삭아버린 철골 구조물 사이로 바람이 음산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마치 죽은 도시의 흐느낌처럼 들렸다. 이안은 낡은 방진복의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그의 손에 들린 스캐너는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변의 미약한 전자기 신호를 탐지하고 있었다.

    “오늘도 꽝인가.”

    이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보잘것없는 폐기물 더미를 뒤지던 그의 손놀림은 날렵했다. 버려진 회로 기판이나 희귀 금속 조각이라도 건져야 생활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 며칠간 수확은 거의 없었다. 도시관리국이 폐기물 회수 작업을 더욱 강화하면서, 알짜배기 구역들은 모조리 통제 구역으로 묶여버린 탓이었다.

    그때, 스캐너가 짧고 날카로운 경고음을 냈다. 이안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이건 흔한 신호가 아니었다. 기존의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묘하게 안정적인 에너지 파장. 그것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건… 대체.”

    이안은 주변을 다시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빗물에 씻겨 드러난, 녹슨 철문 하나였다. 그저 오래된 지하 배수로 입구처럼 보였지만, 스캐너는 바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호기심이 이안의 핏속을 타고 흐르는 전율처럼 퍼져나갔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철문으로 향했다. 굵은 쇠사슬로 감겨 있던 문은 이안의 전동 커터에 맥없이 잘려나갔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으로 통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밟지 않은 듯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풍겼다. 이안은 헤드램프를 켜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한 발 한 발 내려갈수록 스캐너의 신호는 더욱 강렬해졌다. 동시에 기묘한 압력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숨 쉬는 듯한,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이안의 어깨를 짓눌렀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계단은 끊어지고, 이안은 거대한 원형 통로 앞에 섰다. 통로의 벽면은 매끈한 금속 재질이었는데, 표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이 헤드램프 불빛에 희미하게 반짝였다. 현대 기술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정교함이었다. 이건 폐허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고대의 유적이었다.

    이안은 긴장과 흥분으로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통로를 따라 걸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돔형 공간이 나타났다. 헤드램프 불빛으로는 공간의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그 넓이만으로도 이안은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정중앙에, 모든 에너지 파장의 근원이 있었다.

    거대한 검은 돌기둥이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높이, 매끈하고 날카로운 각도로 깎인 표면. 흡사 거대한 크리스털 같기도 했고, 정교하게 세공된 조형물 같기도 했다. 주변은 절대적인 고요함에 잠겨 있었으나, 그 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빛이 공간 전체를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안의 스캐너는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렸다. 측정 불가능한 에너지 수치.

    이안은 홀린 듯이 기둥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휩싸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기둥에서 나오는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 안에는 마치 은하가 담겨 있는 듯,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예상했지만, 이안의 손끝에 닿은 것은 그 어떤 물질과도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흡사 살아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정전기처럼 미세한 전류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거대한 검은 기둥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빛을 뿜어냈다. 보랏빛 섬광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안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섬광은 그의 시야를 꿰뚫고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했다.

    ‘이건…!’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거대한 우주선이 광활한 은하를 가로지르는 장면, 별들의 탄생과 소멸, 고대 문명의 번영과 몰락, 그리고… 미지의 존재들이 나누는 속삭임.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정보이자 감정의 흐름이었다.

    이안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 안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쳐 올랐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그의 시야가 일그러지며, 주변 공간이 왜곡되는 것을 보았다. 돔형 천장의 일부가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변에 굴러다니던 작은 자갈들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 젠장.”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광기에 가까운 전율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그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평범했던, 그저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거친 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손에서 불가능한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마법이었다. 아니, 마법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를 이루는 근원적인 힘 그 자체였다. 고대의 누군가가, 이 거대한 기둥을 통해 이 힘을 제어하고, 혹은 증폭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일어섰다. 이안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이 거대한 에너지의 근원을 다시 보았다. 검은 기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이안은 이제 그 기둥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마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그 거대한 힘이 자신의 의지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찾던 게 아니야.”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 힘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폐허 아래 잠들어 있던 것은 단순한 고철 조각이나 희귀 금속이 아니었다.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아니, 어쩌면 세계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들어 어둠 속 돔형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제 이 거대한 공간 안에 혼자가 아니었다. 고대의 메아리, 잊혀진 힘이 그의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힘은 축복일까, 아니면 파멸의 서곡일까. 이안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의 삶은 방금 이 손끝의 접촉으로 인해 영원히 바뀌어버렸다는 것만을 확신할 뿐이었다.

    바깥의 도시에서는 여전히 산성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낡은 삶을 이어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안은 이제 그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지하 깊은 곳, 심연의 핵과 연결된 채.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으로. 미지의 미래를 향해.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제12장: 빛바랜 유리창 너머**

    잿빛 하늘 아래, 무너진 고층 건물들이 뼈대만 앙상하게 드러낸 채 서 있었다. 한때 번화했던 도시의 흔적들은 이제 푸른 녹과 회색 먼지에 뒤덮여, 마치 거대한 유령 도시 같았다. 그 틈새로 부서진 아스팔트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두 그림자가 있었다. 열일곱 살 미나와 열두 살 소리, 자매였다.

    “미나 언니, 여기 맞지? 아빠가 마지막으로 봤다고 한 곳이.” 소리가 고개를 젖히며 거대한 유리 외벽이 깨진 건물을 올려다봤다. 한때는 화려했을 백화점의 입간판은 이제 글자 몇 개만 겨우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녹슬어 있었다. ‘별빛… 점.’ 그마저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응, 여기 맞아. 오래되긴 했지만, 그나마 다른 곳보다 약탈 흔적이 적을 거야. 사람들이 굳이 옷이나 장식품 같은 건 안 가져갔을 테니까.” 미나는 낡은 배낭의 어깨끈을 고쳐 매며 대답했다. 그녀의 눈은 끊임없이 주변을 살폈다.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는 위험, 혹은 희미한 희망의 조짐을 찾아서.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는 입구는 거대한 유리문이 산산조각 난 채 방치되어 있었다. 깨진 파편들이 밟히는 소리가 적막한 공간에 울려 퍼졌다. 안은 예상대로 어두웠다. 천장의 조명들은 대부분 파괴되었거나, 전력 공급이 끊긴 지 오래라 빛을 잃었다. 희미한 바깥 햇살이 창문의 깨진 틈새를 통해 들어와 먼지 가득한 공기 속에서 뿌옇게 춤을 추고 있었다.

    “와… 여기 진짜 예뻤겠다.” 소리가 감탄사를 흘렸다. 그녀의 시선이 한때 화려했을 마네킹과 진열장 위를 스쳐 지나갔다. 값비싼 옷들은 곰팡이가 피어 얼룩져 있었고, 보석이 전시되었던 곳은 텅 비어 있었다. 하지만 소리는 그런 것 대신, 멀리 보이는 색색의 장난감 코너에 매료된 듯했다.

    “소리야, 너무 멀리 가지 마. 그리고 조심해야 해. 건물 자체가 언제 무너질지 모르니까.” 미나는 주의를 주었지만, 소리의 발걸음은 이미 가벼워져 장난감 코너를 향하고 있었다.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웃는 모습이, 미나의 마음속에서 잿빛으로 굳어가던 희망을 아주 조금씩 다시 데워주는 것 같았다.

    미나는 1층의 잡화 코너를 훑었다. 생존에 필요한 건 뭐든 괜찮았다. 찢어진 옷감을 꿰맬 바늘과 실, 오래되어도 쓸 수 있을 법한 튼튼한 끈, 방수포 대신 쓸 수 있을 만한 두꺼운 천 조각. 먼지투성이의 선반을 뒤지자 의외로 쓸 만한 것들이 눈에 띄었다. 녹슬지 않은 가위 한 자루와 여러 색깔의 실타래들. 그리고 작지만 단단한 손전등 하나.

    “언니! 이거 봐!” 소리의 목소리가 장난감 코너에서 들려왔다. 미나는 손전등을 챙겨들고 조심스럽게 소리에게 다가갔다. 소리가 서 있는 곳은 유리 진열장이 대부분 깨져 있었지만, 한쪽 구석에 얌전히 놓인 나무 상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게 뭐야?” 미나가 물었다. 소리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먼지 한 톨 앉지 않은, 작고 섬세한 오르골이 들어있었다. 뚜껑을 열자, 태엽이 감겨져 있었는지 익숙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작고 귀여운 발레리나 인형이 빙글빙글 돌면서, 잊고 있던 옛날 동화책 속 풍경을 눈앞에 펼쳐 보였다.

    “와…” 미나도 저도 모르게 멍하니 오르골을 바라봤다. 황폐한 세상에서 너무나도 이질적인, 아름답고 온전한 소리였다. 어딘가에서 듣던 익숙한 동요였지만, 언제 들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잊고 살았던 평화로운 시절의 단편이, 낡은 오르골의 멜로디를 타고 마음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이거 가져가도 돼, 언니? 진짜 예쁘다!” 소리가 조심스럽게 오르골을 두 손으로 받쳐 들었다. 눈빛은 마치 세상의 모든 보물을 발견한 아이 같았다.

    “음… 글쎄, 이걸 어디다 쓸까.” 미나는 실용적인 면을 먼저 생각했다. 식량도 아니고, 도구도 아니었다. 짐만 될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소리의 초롱초롱한 눈을 보니 차마 안 된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때였다.
    “크윽…”
    어디선가 묵직한 마찰음이 들려왔다. 백화점의 거대한 구조물이 뒤틀리는 듯한 소리였다. 먼지가 한 차례 크게 솟구쳐 올랐다.

    미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소리야, 엎드려!” 그녀는 본능적으로 소리의 팔을 잡아끌고 가장 가까운, 무너지지 않은 듯 보이는 진열장 뒤로 몸을 숨겼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차가운 불안감이 밀려왔다. 이 건물, 결국 이렇게 무너지는 건가?

    잠시 후, 굉음은 잦아들었다. 대신, 철근이 뒤틀리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또 다른 먼지 기둥이 천장을 뚫고 쏟아졌다. 미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어 소리가 난 쪽을 살폈다. 멀리 떨어진 에스컬레이터 부근이었다. 천장의 콘크리트 조각이 떨어져 나가면서, 일부 구조물이 내려앉은 모양이었다.

    “언니… 우리 괜찮아?” 소리의 목소리가 조그맣게 떨려왔다. 그녀는 오르골을 품에 꼭 안은 채 미나의 등 뒤에 바싹 붙어 있었다.

    “응, 괜찮을 거야. 하지만 여기 더 있다가는 위험해. 빨리 필요한 것만 챙겨서 나가자.” 미나는 마음을 다잡고 재빨리 주변을 둘러봤다. 가져갈 만한 물건은 아까 찾아둔 것들과 소리의 오르골뿐이었다.

    그들은 서둘러 백화점을 빠져나왔다. 햇살 아래로 나오자 안도감이 몰려왔다. 밖으로 나온 후에도 미나는 혹시라도 자신들을 쫓는 존재가 있을까 싶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황폐한 도시에는 그들 말고는 아무도 없는 듯, 정적만이 가득했다.

    “진짜 놀랐잖아…” 소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다시 오르골을 내밀며 활짝 웃었다. “그래도 이거 건졌어! 완전 럭키!”

    미나는 소리의 미소를 보며 덩달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소리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생존에 직접적인 도움은 안 될지라도, 이 낡은 오르골이 가져다준 작은 위안은 그 어떤 식량보다도 값진 것일 수 있었다.

    그날 밤, 임시 거처로 삼은 낡은 창고 안에서, 미나는 주워온 실과 바늘로 찢어진 옷을 꿰맸다. 소리는 그 옆에서 조심스럽게 오르골 뚜껑을 열었다. 작고 아름다운 멜로디가 낡은 창고 안에 퍼져나갔다. 바깥세상은 여전히 위험과 불안으로 가득했지만,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두 자매에게 작은 평화가 찾아온 듯했다.

    오르골의 멜로디가 끊어질 때마다 소리는 다시 태엽을 감았다. 그 소리를 들으며 미나는 생각했다. 이 멜로디가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도 내일이 올 거라고. 희망이라는 이름의, 아주 작은 빛이라도.

    그리고 먼 하늘 너머, 붉게 물든 노을이 무너진 빌딩의 실루엣 위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또 다른 밤이 찾아오고 있었다.

  • 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심연의 핵

    황무지나 다름없는 도시 외곽, 구획 73B. 이곳은 한때 번성했던 산업 단지였지만, 지금은 거대한 콘크리트 유령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산성비에 삭아버린 철골 구조물 사이로 바람이 음산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마치 죽은 도시의 흐느낌처럼 들렸다. 이안은 낡은 방진복의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그의 손에 들린 스캐너는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변의 미약한 전자기 신호를 탐지하고 있었다.

    “오늘도 꽝인가.”

    이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보잘것없는 폐기물 더미를 뒤지던 그의 손놀림은 날렵했다. 버려진 회로 기판이나 희귀 금속 조각이라도 건져야 생활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 며칠간 수확은 거의 없었다. 도시관리국이 폐기물 회수 작업을 더욱 강화하면서, 알짜배기 구역들은 모조리 통제 구역으로 묶여버린 탓이었다.

    그때, 스캐너가 짧고 날카로운 경고음을 냈다. 이안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이건 흔한 신호가 아니었다. 기존의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묘하게 안정적인 에너지 파장. 그것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건… 대체.”

    이안은 주변을 다시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빗물에 씻겨 드러난, 녹슨 철문 하나였다. 그저 오래된 지하 배수로 입구처럼 보였지만, 스캐너는 바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호기심이 이안의 핏속을 타고 흐르는 전율처럼 퍼져나갔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철문으로 향했다. 굵은 쇠사슬로 감겨 있던 문은 이안의 전동 커터에 맥없이 잘려나갔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으로 통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밟지 않은 듯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풍겼다. 이안은 헤드램프를 켜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한 발 한 발 내려갈수록 스캐너의 신호는 더욱 강렬해졌다. 동시에 기묘한 압력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숨 쉬는 듯한,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이안의 어깨를 짓눌렀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계단은 끊어지고, 이안은 거대한 원형 통로 앞에 섰다. 통로의 벽면은 매끈한 금속 재질이었는데, 표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이 헤드램프 불빛에 희미하게 반짝였다. 현대 기술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정교함이었다. 이건 폐허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고대의 유적이었다.

    이안은 긴장과 흥분으로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통로를 따라 걸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돔형 공간이 나타났다. 헤드램프 불빛으로는 공간의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그 넓이만으로도 이안은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정중앙에, 모든 에너지 파장의 근원이 있었다.

    거대한 검은 돌기둥이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높이, 매끈하고 날카로운 각도로 깎인 표면. 흡사 거대한 크리스털 같기도 했고, 정교하게 세공된 조형물 같기도 했다. 주변은 절대적인 고요함에 잠겨 있었으나, 그 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빛이 공간 전체를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안의 스캐너는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렸다. 측정 불가능한 에너지 수치.

    이안은 홀린 듯이 기둥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휩싸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기둥에서 나오는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 안에는 마치 은하가 담겨 있는 듯,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예상했지만, 이안의 손끝에 닿은 것은 그 어떤 물질과도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흡사 살아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정전기처럼 미세한 전류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거대한 검은 기둥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빛을 뿜어냈다. 보랏빛 섬광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안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섬광은 그의 시야를 꿰뚫고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했다.

    ‘이건…!’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거대한 우주선이 광활한 은하를 가로지르는 장면, 별들의 탄생과 소멸, 고대 문명의 번영과 몰락, 그리고… 미지의 존재들이 나누는 속삭임.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정보이자 감정의 흐름이었다.

    이안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 안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쳐 올랐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그의 시야가 일그러지며, 주변 공간이 왜곡되는 것을 보았다. 돔형 천장의 일부가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변에 굴러다니던 작은 자갈들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 젠장.”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광기에 가까운 전율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그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평범했던, 그저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거친 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손에서 불가능한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마법이었다. 아니, 마법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를 이루는 근원적인 힘 그 자체였다. 고대의 누군가가, 이 거대한 기둥을 통해 이 힘을 제어하고, 혹은 증폭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일어섰다. 이안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이 거대한 에너지의 근원을 다시 보았다. 검은 기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이안은 이제 그 기둥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마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그 거대한 힘이 자신의 의지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찾던 게 아니야.”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 힘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폐허 아래 잠들어 있던 것은 단순한 고철 조각이나 희귀 금속이 아니었다.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아니, 어쩌면 세계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들어 어둠 속 돔형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제 이 거대한 공간 안에 혼자가 아니었다. 고대의 메아리, 잊혀진 힘이 그의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힘은 축복일까, 아니면 파멸의 서곡일까. 이안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의 삶은 방금 이 손끝의 접촉으로 인해 영원히 바뀌어버렸다는 것만을 확신할 뿐이었다.

    바깥의 도시에서는 여전히 산성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낡은 삶을 이어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안은 이제 그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지하 깊은 곳, 심연의 핵과 연결된 채.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으로. 미지의 미래를 향해.

  • 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심연의 핵

    황무지나 다름없는 도시 외곽, 구획 73B. 이곳은 한때 번성했던 산업 단지였지만, 지금은 거대한 콘크리트 유령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산성비에 삭아버린 철골 구조물 사이로 바람이 음산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마치 죽은 도시의 흐느낌처럼 들렸다. 이안은 낡은 방진복의 후드를 더욱 깊게 눌러썼다. 그의 손에 들린 스캐너는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주변의 미약한 전자기 신호를 탐지하고 있었다.

    “오늘도 꽝인가.”

    이안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보잘것없는 폐기물 더미를 뒤지던 그의 손놀림은 날렵했다. 버려진 회로 기판이나 희귀 금속 조각이라도 건져야 생활고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 며칠간 수확은 거의 없었다. 도시관리국이 폐기물 회수 작업을 더욱 강화하면서, 알짜배기 구역들은 모조리 통제 구역으로 묶여버린 탓이었다.

    그때, 스캐너가 짧고 날카로운 경고음을 냈다. 이안의 눈이 순간 번뜩였다. 이건 흔한 신호가 아니었다. 기존의 어떤 데이터베이스에도 존재하지 않는, 기묘하게 안정적인 에너지 파장. 그것도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듯했다.

    “이건… 대체.”

    이안은 주변을 다시 살폈다.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빗물에 씻겨 드러난, 녹슨 철문 하나였다. 그저 오래된 지하 배수로 입구처럼 보였지만, 스캐너는 바로 그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호기심이 이안의 핏속을 타고 흐르는 전율처럼 퍼져나갔다. 그는 망설이지 않고 철문으로 향했다. 굵은 쇠사슬로 감겨 있던 문은 이안의 전동 커터에 맥없이 잘려나갔다.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어둠 속으로 통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은 오랜 세월 동안 아무도 밟지 않은 듯 눅눅한 곰팡이 냄새를 풍겼다. 이안은 헤드램프를 켜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한 발 한 발 내려갈수록 스캐너의 신호는 더욱 강렬해졌다. 동시에 기묘한 압력이 느껴졌다. 마치 거대한 존재가 숨 쉬는 듯한, 알 수 없는 무게감이 이안의 어깨를 짓눌렀다.

    얼마나 내려갔을까. 계단은 끊어지고, 이안은 거대한 원형 통로 앞에 섰다. 통로의 벽면은 매끈한 금속 재질이었는데, 표면에 새겨진 알 수 없는 문양들이 헤드램프 불빛에 희미하게 반짝였다. 현대 기술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정교함이었다. 이건 폐허가 아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고대의 유적이었다.

    이안은 긴장과 흥분으로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는 통로를 따라 걸었다. 통로의 끝에 다다르자, 거대한 돔형 공간이 나타났다. 헤드램프 불빛으로는 공간의 전체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그 넓이만으로도 이안은 압도당했다. 그리고 그 공간의 정중앙에, 모든 에너지 파장의 근원이 있었다.

    거대한 검은 돌기둥이었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높이, 매끈하고 날카로운 각도로 깎인 표면. 흡사 거대한 크리스털 같기도 했고, 정교하게 세공된 조형물 같기도 했다. 주변은 절대적인 고요함에 잠겨 있었으나, 그 기둥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약한 빛이 공간 전체를 신비로운 보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이안의 스캐너는 미친 듯이 경고음을 울렸다. 측정 불가능한 에너지 수치.

    이안은 홀린 듯이 기둥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이끌림에 휩싸여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자, 기둥에서 나오는 빛이 더욱 선명해졌다. 그 안에는 마치 은하가 담겨 있는 듯,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착각마저 들었다.

    손을 뻗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을 예상했지만, 이안의 손끝에 닿은 것은 그 어떤 물질과도 다른,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흡사 살아있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정전기처럼 미세한 전류가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거대한 검은 기둥이 웅장한 소리를 내며 빛을 뿜어냈다. 보랏빛 섬광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이안은 눈을 가늘게 떴지만, 섬광은 그의 시야를 꿰뚫고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했다.

    ‘이건…!’

    머릿속에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들어왔다. 거대한 우주선이 광활한 은하를 가로지르는 장면, 별들의 탄생과 소멸, 고대 문명의 번영과 몰락, 그리고… 미지의 존재들이 나누는 속삭임. 언어가 아니었다. 그것은 순수한 정보이자 감정의 흐름이었다.

    이안은 무릎을 꿇었다. 그의 몸 안에서 알 수 없는 에너지가 솟구쳐 올랐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활활 타오르는 듯했다. 그의 시야가 일그러지며, 주변 공간이 왜곡되는 것을 보았다. 돔형 천장의 일부가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주변에 굴러다니던 작은 자갈들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 젠장.”

    이안의 입에서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광기에 가까운 전율이 온몸을 지배했다. 그의 손끝에서 푸른빛이 희미하게 아른거렸다. 그는 자신의 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는 평범했던, 그저 쓰레기 더미를 뒤지던 거친 손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손에서 불가능한 힘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이건 마법이었다. 아니, 마법이라는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우주를 이루는 근원적인 힘 그 자체였다. 고대의 누군가가, 이 거대한 기둥을 통해 이 힘을 제어하고, 혹은 증폭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던 것이다.

    숨을 헐떡이며 일어섰다. 이안은 자신의 몸에 흐르는 이 거대한 에너지의 근원을 다시 보았다. 검은 기둥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지만, 이안은 이제 그 기둥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음을 분명히 느꼈다. 마치 자신의 일부인 것처럼, 그 거대한 힘이 자신의 의지에 반응하고 있었다.

    “이건… 내가 찾던 게 아니야.”

    하지만 동시에, 그는 이 힘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폐허 아래 잠들어 있던 것은 단순한 고철 조각이나 희귀 금속이 아니었다. 세계를 뒤흔들 수 있는, 아니, 어쩌면 세계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었다.

    이안은 고개를 들어 어둠 속 돔형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이제 이 거대한 공간 안에 혼자가 아니었다. 고대의 메아리, 잊혀진 힘이 그의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이 힘은 축복일까, 아니면 파멸의 서곡일까. 이안은 알 수 없었다. 단지, 그의 삶은 방금 이 손끝의 접촉으로 인해 영원히 바뀌어버렸다는 것만을 확신할 뿐이었다.

    바깥의 도시에서는 여전히 산성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낡은 삶을 이어가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이안은 이제 그들과 다른 존재가 되었다. 지하 깊은 곳, 심연의 핵과 연결된 채.

    그는 조심스럽게 한 발을 내디뎠다. 어둠 속으로. 미지의 미래를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