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밤은 짙은 먹물을 흩뿌린 듯 산골짜기마다 그림자를 드리웠다. 거대한 제국의 심장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 비록 이름 없는 마을일지라도 제국군의 눈을 피해 숨 죽이고 있는 반란의 숨결을 품고 있었다. 매서운 바람이 날카롭게 뺨을 스치는 시각, 강우는 오래된 초가지붕 위에서 낮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우 형님, 괜찮으십니까?”

옆에서 기다리던 소리가 나직이 물었다. 열여덟 남짓한 어린 소리는 밤의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고된 삶이 어린 나이의 얼굴에 일찍이 깊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 그림자 아래에는 결코 꺾이지 않는 강철 같은 의지가 숨 쉬고 있었다.

“괜찮다. 그저… 오늘 밤은 유독 차갑구나.”

강우는 허리춤에 찬 낡은 검의 손잡이를 가볍게 쥐었다. 녹슬고 닳아빠진 검이었지만, 그에게는 수없이 많은 밤을 지켜준 생명줄과 같았다. 아래로는 제국의 거대한 양곡창이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수백 리 밖에서도 그 위압적인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 만큼, 백성들의 피땀으로 지어진 거대한 건물이었다. 그 안에는 백성들의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을 수많은 곡식이 썩어가고 있을 터였다.

“묵호는 준비되었나?”

강우의 시선은 양곡창의 견고한 담벼락을 훑었다. 담벼락 위에는 삼엄한 경비가 이어지고 있었다. 제국 병사들이 횃불을 들고 일정한 간격으로 순찰을 돌았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그들의 갑옷은 제국의 서늘한 위용을 대변하는 듯했다.

“예, 형님. 묵호 형님은 동문 쪽 후미에서 대기 중입니다.”

묵호는 이들의 셋 중 가장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사내였다. 말수는 적지만, 한 번 주먹을 내지르면 제국 병사 세넷은 거뜬히 쓰러뜨릴 수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다. 오늘 밤 이 임무에서 그의 힘은 결정적일 터였다.

“좋다. 소리, 네가 먼저 움직여라. 최대한 은밀하게.”

“알겠습니다!”

소리는 고양이처럼 가볍게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흐릿한 달빛 아래, 그녀의 몸은 마치 바람에 흩날리는 깃털처럼 보였다. 사뿐히 담벼락 위로 내려선 소리는 재빠르게 몸을 낮춰 그림자 속으로 스며들었다. 망루 위에 선 병사들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는 사각지대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강우는 소리의 움직임을 눈으로 좇았다. 긴장감에 마른침을 삼켰다. 한순간이라도 발각되면 이 밤의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될 터였다. 이들이 훔쳐야 할 것은 단순한 식량이 아니었다. 굶주림에 지쳐 쓰러져가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한 줄기 희망이자, 제국에 맞서는 반란의 불씨를 지필 마지막 기회였다.

소리가 미리 표시해둔 지점에 도달하자,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들어 작게 흔들었다. 성공적으로 1차 관문을 통과했다는 신호였다. 강우는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자신 역시 지붕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소리보다 훨씬 크고 무거운 몸이었지만, 그의 움직임 또한 숙련된 암살자처럼 날렵하고 정확했다. 수많은 죽음의 고비를 넘기며 익힌 생존의 기술이었다.

양곡창 내부로 진입하는 것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제국의 병사들은 겉으로 보이는 위용에 비해 내부 경비는 허술한 편이었다. 아마도 자신들의 견고한 담벼락과 병사들의 숫자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런 오만함이 바로 이들의 약점이었다.

“강우 형님, 이쪽입니다.”

내부에 진입한 소리가 기다렸다는 듯 속삭였다. 그녀는 이미 가장 취약한 지점을 찾아낸 듯했다. 거대한 곡식 창고 문은 두꺼운 나무판자로 덧대어져 있었으나, 낡은 자물쇠는 그리 단단해 보이지 않았다.

강우는 주위를 살폈다. 복도 끝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순찰병이었다. 그는 재빨리 소리에게 손짓하여 그림자 속에 몸을 숨기게 했다. 자신 또한 기둥 뒤로 몸을 감췄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덜컹, 덜컹. 제국 병사의 갑옷이 부딪히는 소리가 복도 전체를 울렸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바로 코앞을 지나가는 병사의 숨소리까지 들릴 듯했다. 강우는 검자루를 더욱 단단히 쥐었다. 언제라도 뛰쳐나가 저 목숨을 거둬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행히 병사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지나쳐갔다. 그의 발소리가 멀어지자, 강우는 조용히 기둥 뒤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소리 또한 그림자에서 스르륵 나타났다. 그녀의 얼굴에는 식은땀이 흘렀지만, 눈빛은 여전히 침착했다.

“묵호는 아직…”

그때였다. 창고 문 틈새로 손가락 하나가 끼워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낡은 자물쇠가 부서져 떨어졌다. 묵호였다. 그는 약속된 시간에 정확히 도착해 자신의 역할을 해낸 것이다.

묵호는 거대한 나무 문을 통째로 밀어 열었다. 안에서는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묵직한 곡식의 냄새가 진동했다.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쌓여있는 곡식 더미의 형체가 보였다. 그것은 산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백성들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는 와중에도, 제국은 이렇게 엄청난 양의 곡식을 창고에 썩히고 있었던 것이다.

“젠장…”

강우의 입에서 절로 욕설이 터져 나왔다. 분노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는 검을 휘둘러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묵호와 소리도 그의 뒤를 따랐다.

“최대한 많이 챙겨라! 서둘러!”

묵호는 미리 준비해온 커다란 자루를 펼쳤다. 그의 거대한 손이 곡식을 퍼 담기 시작했다. 소리 또한 작은 몸으로 열심히 곡식을 날랐다. 강우는 문밖을 경계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언제든 전투에 돌입할 준비를 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곡식 자루가 절반쯤 채워졌을 때였다.

**쾅!**

갑작스러운 충격과 함께 창고 문이 박살 났다. 어둠 속에서 번뜩이는 수많은 횃불과 함께 제국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들의 수는 스무 명이 훌쩍 넘었다. 그리고 그들 앞에는 번쩍이는 금빛 갑옷을 입은 사내가 서 있었다. 그의 허리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검이 매달려 있었고, 얼굴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쥐새끼들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군. 양곡창에 숨어든 반란군이라니… 꽤나 대담한 녀석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먹이를 찾아 기어나오는 비루한 짐승들에 불과했군.”

제국 장교의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그의 비웃음은 강우의 핏대를 세웠다.

“개 같은 놈들! 백성들의 피땀으로 쌓아 올린 곡식을 썩히면서, 굶주린 이들을 짐승 취급해? 네놈들이야말로 짐승만도 못한 쓰레기다!”

강우가 맹렬한 기세로 검을 뽑아 들었다. 녹슨 검은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게 빛났다.

“건방진 것! 당장 저 놈들의 목을 베어라!”

장교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제국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강우는 망설임 없이 검을 휘둘렀다. 낡은 검은 기적처럼 병사들의 갑옷을 뚫고 들어가 피를 흩뿌렸다.

“소리! 묵호! 곡식은 다 필요 없다!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

강우의 외침에 묵호는 미처 채우지 못한 곡식 자루를 내던지고 거대한 몸으로 병사들을 밀쳐냈다. 소리는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병사들의 틈을 파고들었다.

“크아악!”
“감히! 감히 이 몸을 건드려!”

묵호의 주먹이 휘둘러질 때마다 병사들이 나가떨어졌다. 소리는 몸을 비틀며 병사들의 검을 피하고, 얇은 단검으로 그들의 약점을 찔렀다. 하지만 병사들의 수는 너무나 많았다. 사방에서 날아드는 검과 창이 이들을 조여왔다.

강우는 필사적으로 길을 열었다. 그의 검은 춤추듯 움직였다. 제국 병사들이 쓰러져나갔지만, 그만큼 새로운 병사들이 빈자리를 채웠다. 점점 숨이 가빠왔다.

“형님! 조심하세요!”

소리의 다급한 외침과 함께, 강우의 등 뒤에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졌다. 황급히 몸을 비틀었지만, 날아온 창날이 그의 옆구리를 스쳤다. 쓰라린 통증과 함께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

“강우 형님!”

묵호가 소리쳤지만, 그는 이미 여러 명의 병사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장교는 멀찍이서 이들을 비웃으며 상황을 관전하고 있었다.

“겨우 셋이서 대단하군. 하지만 결국은 이럴 뿐이지.”

강우는 옆구리의 통증을 무시하고 다시 검을 고쳐 잡았다. 시야가 흐려졌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대로 쓰러질 수는 없었다. 마을의 굶주린 아이들, 제국의 폭정에 신음하는 백성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우리는… 절대로… 쓰러지지 않아…!”

강우가 마지막 힘을 끌어모아 포효했다. 그때였다. 양곡창의 굳건한 문밖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콰앙!**

새벽의 정적을 깨는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양곡창의 단단한 벽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먼지와 함께 쏟아져 들어오는 찬 공기 속에서, 수십 개의 횃불이 일렁였다.

“제국 놈들! 더러운 손으로 백성들의 양식을 훔치지 마라!”

수많은 함성 소리가 어둠을 가르고 들려왔다. 강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동료들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새로운 반란군 무리가, 어둠을 뚫고 양곡창 안으로 밀려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 또한 강우만큼이나 뜨거운 분노로 타오르고 있었다. 제국 장교의 얼굴에서 비웃음이 사라지고, 당혹스러운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강우는 옆구리를 부여잡고 피식 웃었다. 이제는, 싸움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진정한 싸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