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심리 스릴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균열의 서막 (균열의 서막)

    밤은 차가웠지만, 이 공간만큼은 뜨거웠다. 샹들리에의 황금빛이 수십 개의 크리스털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연회장은 성공과 환희로 가득했다. 잘 다려진 최고급 정장들이 촘촘히 박힌 보석처럼 반짝였고, 잔잔한 재즈 선율 위로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꽃잎처럼 흩어졌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박태준이 있었다.

    나는 샴페인 잔을 든 채, 그림자처럼 연회장 한구석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 이지훈은 이제 그들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태준은 단상 위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성공한 사업가의 자신감과 젊은 경영인의 패기가 번들거렸다. 오늘 밤은 그가 설립한 IT 기업 ‘제우스 엔터프라이즈’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동시에, 새로운 글로벌 투자 유치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축하연이었다. 억 소리 나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 모든 영광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함께 땀 흘려준 우리 제우스 엔터프라이즈의 모든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언제나 저를 믿고 지지해준 소중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스포트라이트가 태준의 눈부신 미소를 비췄다. 그의 빛나는 모습이 내 눈을 찔렀다. 10년. 그래, 정확히 10년이었다. 그의 성공의 밑바탕에는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연회장에 있는 단 한 명의 인간도 알지 못했다. 아니, 태준 자신조차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손 안의 잔을 꽉 쥐었다. 차가운 유리가 손바닥에 파고드는 감각이 몽롱하게 피어나는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내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오직 태준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너의 빛나는 제국에 균열을 내는 일. 나는 10년 동안 이 순간만을 위해 이를 갈아왔다. 너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 자신까지 기꺼이 진흙탕에 던져 넣었다.

    귓가에 샴페인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잔을 천천히 기울여 달콤쌉싸름한 액체를 목으로 넘겼다. 그 맛은 마치 내 10년 전 청춘의 쓰디쓴 잔재 같았다.

    나는 태준의 연설이 끝나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틈을 타 움직였다. 군중 속으로 스며들어, 그의 주변을 맴도는 몇몇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태준의 성공담, 뛰어난 수완, 천재적인 비전. 온통 칭찬 일색이었다. 역겨웠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중년 남성이 태준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는 대기업 ‘한성 그룹’의 실장이었고, 이번 투자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태준은 능숙하게 허리를 숙이며 그에게 웃어 보였다.

    “최 실장님,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제우스가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박 대표님이야말로 대단하십니다. 이 젊은 나이에 이런 기업을 일궈내시고. 그런데 혹시, 예전에 제가 박 대표님께 드렸던 자료, 아직 가지고 계십니까?” 최 실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말씀드렸던… ‘넥서스 프로젝트’ 관련해서 말입니다.”

    태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아주 미세한 경련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넥서스 프로젝트’. 그래,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너는 잠시 흔들렸구나.

    태준은 이내 능숙하게 미소를 되찾았다. “아, 네. 물론입니다. 최 실장님께서 주셨던 소중한 자료는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다시 검토할 시간이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최 실장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사실 요즘 업계에서 그 프로젝트가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더군요. 오래된 이야기지만, 워낙 파급력이 컸던 건이라… 박 대표님이라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둘은 짧은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태준은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그의 눈빛 속에서 방금 전 스쳐 지나간 불안감을 똑똑히 보았다. 내 첫 번째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넥서스 프로젝트’. 그건 10년 전, 내가 밤낮없이 매달렸던 꿈이었다. 태준과 내가 함께 만들었던, 우리의 미래였다. 우리는 그 프로젝트를 들고 여러 투자사를 전전했고, 마침내 한성 그룹의 최 실장에게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그는 우리의 열정에 공감하며, 관련 자료와 함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태준은 나를 버렸다. 나의 모든 아이디어를 훔쳐 달아나,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그게 지금의 ‘제우스 엔터프라이즈’였다. ‘넥서스 프로젝트’는 그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찢겨 흩어졌고, 나는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나는 그날 이후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내가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태준조차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을 뿐이었다. 추락한 폐허 속에서, 나는 너의 제국을 무너뜨릴 설계도를 밤낮으로 그려나갔다.

    이제, 최 실장은 우연찮게, 혹은 내가 만들어낸 작은 우연 속에서 잊혔던 단어를 다시 꺼냈다. ‘넥서스 프로젝트’의 재조명. 그게 태준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불안과 과거의 그림자겠지.

    나는 조용히 연회장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그의 시야에 닿지 않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 인물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정우 변호사였다. 태준의 회사 법률 고문을 맡고 있는 인물로, 태준과는 대학 동창이기도 했다.

    “이 변호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변호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례지만…?”

    “10년 전, 잠시 박 대표님과 사업을 함께 했던 이지훈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10년 전의 나는 초라한 대학생이었다. 지금의 나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잘 재단된 슈트, 절제된 표정, 그리고 이제는 깊이를 알 수 없게 된 눈빛.

    “아… 이지훈 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박 대표도 오랜만에 이지훈 씨를 보면 정말 반가워할 겁니다. 어쩌다 여기에…?”

    “최근에 제가 작은 투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번에 제우스와 협력할 가능성이 있을까 해서요.” 나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지껄였다. “근데 아까 박 대표님께서 최 실장님과 ‘넥서스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아직도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셨나 보네요. 제가 알기론 상당히 난해하고… 당시에는 좀 무모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는데.”

    이 변호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프로젝트요… 사실 태준이가 그 프로젝트 때문에 꽤나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결국 잘 되진 못했지만… 그때 태준이가 이지훈 씨 일 때문에도 충격이 컸던 걸로 압니다.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말이죠.”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마음고생’? ‘충격’? 가증스러운 위선이었다.

    “아… 그랬군요. 저는 그때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데 제가 당시 태준이가 그 프로젝트를 위해 준비했던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을까 해서요. 물론, 전부 제 개인적인 생각과 아이디어가 담긴 자료들이지만요.”

    이 변호사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내 말의 의미를 단번에 파악했을 터였다. 오래된 자료, 개인적인 아이디어. 태준이 제우스 엔터프라이즈를 세우는 데 발판이 되었던 ‘넥서스 프로젝트’의 ‘원본’ 자료들. 그건 태준의 기업 정체성, 나아가 그의 도덕성 전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위험한 증거였다.

    “이… 이지훈 씨. 그 자료들을… 혹시 아직도 가지고 계신 겁니까?” 그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섞였다.

    “네. 제가 직접 작성한 것들이라, 워낙 아끼던 것들이어서요. 혹시 태준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유할 의향이 있습니다.” 나는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마치 아무런 악의도 없는, 순수한 의도로 말하는 것처럼.

    이 변호사는 얼굴이 굳어졌다. “아… 네. 제가 태준이에게 한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밤 보내십시오, 변호사님.”

    나는 이 변호사에게서 등을 돌려 다시 군중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과 당혹감이 뒤섞인 시선이었다.

    이윽고, 태준이 이 변호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이 변호사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태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태준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의 여유가 일순간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에 동요가 번졌다. 나를 발견한 것도 아닌데, 그의 눈은 불안하게 연회장 곳곳을 훑었다.

    나는 태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그러나 그를 똑똑히 볼 수 있는 곳에 멈춰 섰다. 내 입술에는 한 줄기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10년 전, 너는 나를 짓밟고 일어섰다. 내 꿈을 찢어 발기고, 내 존재를 지워버렸다. 하지만 이제, 네가 애써 묻었던 과거의 그림자가 다시 너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네가 쌓아 올린 이 빛나는 성은 이제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균열이 가기 시작할 테니까.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네가 한순간의 실수로 나를 잊어버린 대가. 이제부터 네 모든 것을 빼앗아 갈 나의 정교한 복수극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나는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제 곧, 태준의 빛나는 미소는 거짓된 가면 아래 숨겨진 공포로 변할 것이다.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준아, 이제야 놀이가 시작되었네.”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아르카나 마법 아카데미: 그림자 속 속삭임

    **등장인물:**

    * **아린 (Arin):** 밝고 호기심 많지만, 마법 실력은 평범한 아르카나 아카데미 1학년생. 타인의 감정에 섬세하게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 **루벤 (Ruben):** 아린의 친구. 지식에 대한 탐구가 깊고 신중하며, 아카데미의 오래된 소문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
    * **엘레나 교수 (Professor Elena):** 차분하고 이지적인 고위 마법 교수. 아카데미의 역사와 금기를 철저히 수호한다.

    **[장면 1]**

    **# 맑은 오후의 아르카나 아카데미 – 교정**

    * **배경:**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햇살 아래 반짝인다. 마법으로 피어난 듯한 다채로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마법 연습을 하고 있다. 공기 중에는 은은한 마나의 향기가 섞여 있다.
    * **캐릭터:** 아린은 고요한 정원 한가운데 놓인 벤치에 앉아 마법서가 아닌 스케치북에 꽃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루벤이 두꺼운 고서를 펼쳐 읽고 있다.

    **아린:** (속으로) 오늘도 평화로운 아르카나. 마법의 힘으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 이런 곳에서 공부할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아.

    **루벤:**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아린, 오늘은 연습 안 해? 곧 실기 시험이잖아.

    **아린:** 으음… 실기 연습은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걸 어쩌겠어. 오늘은 이 리오네 꽃의 섬세한 주름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해. 봐, 햇빛에 반짝이는 꽃잎이 꼭 작은 보석 같지 않아?

    **루벤:** (한숨) 너의 마법보다 예술적인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건 인정하지만… 아카데미에 온 목적을 잊지 마. 이 모든 아름다움은 마법의 힘으로 유지되는 거니까.

    **아린:** 알아, 알지!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계속 마나만 주입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단 말이야.

    * 갑자기 멀리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섬광이 터진다. 학생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 어떤 학생이 마법 연습 도중 작은 폭발을 일으킨 모양이다. 주변 학생들이 웃으며 괜찮냐고 묻고, 교수가 다가가 조용히 마법을 수습한다.

    **아린:** (눈을 반짝이며) 와, 저건 실수를 해도 멋있네. 내 마법은 폭발은커녕, 작은 불꽃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데.

    **루벤:** (책을 덮으며) 네 마나가 섬세하고 안정적이어서 그래. 폭발적인 힘을 다루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지. 나쁘게만 생각할 건 없어. 하지만…

    **아린:** 하지만?

    **루벤:** (목소리를 낮추며) 이 아르카나 아카데미의 힘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라고들 해.

    **아린:** (고개를 갸웃) 그게 무슨 뜻이야?

    **루벤:** (주변을 쓱 둘러보며) 아주 오래된 소문인데… 이 거대한 아카데미의 지하 깊은 곳에는 학교의 모든 마나를 공급하는 원천이 있다고 해. 그리고 그 원천은… 단순한 마법 광맥이 아니라는 거야.

    **아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단순한 마법 광맥이 아니라니? 그럼 뭔데? 거대한 마법 생물이라도 되는 거야?

    **루벤:** (어깨를 으쓱) 알 수 없지. 누구도 그곳에 직접 가본 적은 없으니까. 그저 아주 강력한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야. 일부 전설에서는, 그곳에… 끔찍한 금기가 잠들어 있다고도 해.

    **아린:** 끔찍한 금기라니…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왠지 오싹한데. 그래도 학교가 이렇게 밝고 평화로운데, 설마 그런 무서운 것이 있을 리 없잖아?

    **루벤:** 그게 바로 이 아카데미의 역설이지.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어둠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책을 다시 펼치며) 자, 이제 그만 쉬고 연습하러 가자.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아린:** (스케치북을 덮으며) 으음… 이상하다. 왠지 모르게 자꾸 신경 쓰여.

    **[장면 2]**

    **# 한밤중 – 아카데미 본관 지하 복도**

    * **배경:** 깊은 밤, 아카데미의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횃불 마법으로 희미하게 밝혀진 복도는 낮과는 다른 엄숙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긴다. 오래된 석벽에서는 축축한 기운이 느껴진다.
    * **캐릭터:** 아린은 복도를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마나 등불이 들려 있고, 눈동자는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흔들린다.

    **아린:** (속으로) 루벤은 그냥 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할까? 낮에 본 그 학생의 마법 폭발도…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 아주 미묘한 이질감 같은 게 느껴졌단 말이야.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 아린은 ‘교수 전용 마나 흐름 제어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문 앞에 선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잠금 마법이 걸려 있다.
    * 아린은 문에 손을 대본다. 문 저편에서 아주 희미하고 불규칙적인 마나의 파동이 느껴진다. 낮에 루벤이 말했던 ‘광맥이 아닌 원천’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아린:** (속으로) 이상해. 이곳의 마나 흐름은…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생명체 같아. 낮에는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 아린은 문 옆의 석벽을 유심히 살펴본다. 다른 곳과 달리 유독 거칠고, 작은 균열들이 여러 곳 나 있다. 그 균열들 사이로 아주 미세한 푸른빛이 깜빡거린다.

    **아린:** (속으로) 저 빛은… 마나 잔여물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건가?

    * 아린은 용기를 내어 손을 뻗어 균열에 가장 가까운 곳에 손가락을 댄다.
    * 그 순간, 차가운 석벽 너머에서 아린의 귓가에 닿을 듯 말 듯한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마치 수백 년간 억눌려 온 비명처럼, 혹은 애원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 (속삭임):** …도와줘…

    * 아린은 화들짝 놀라 손을 뗀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 그녀의 손끝에 닿았던 균열에서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깜빡이다 이내 사라진다.

    **아린:** (작게 헐떡이며) 방금… 뭐였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환청인가?

    * 그때,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 아린은 황급히 몸을 숨긴다. 벽 뒤에 바짝 붙어 숨을 죽인다.
    * 복도 끝에서 걸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엘레나 교수였다. 그녀는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어딘가 지쳐 보였다.

    **엘레나 교수:**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오늘도… 불안정하군. 힘을 잃어가는 것인가, 아니면… 더욱 거세지는 저항인가.

    * 엘레나 교수는 아린이 만졌던 ‘교수 전용 마나 흐름 제어실’ 문 앞에 멈춰 선다. 그녀는 문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쉰다.
    * 그녀는 지팡이를 들어 문을 가볍게 두드린다.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그 안에서 낮게 울리는 듯한 마나의 웅웅거림이 새어 나온다.
    * 엘레나 교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잠시 서서 무언가 듣는 듯 눈을 감는다. 그녀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고뇌, 슬픔, 그리고 체념.

    **엘레나 교수:** (아주 작게) 진정해… 아직은… 안 돼.

    * 엘레나 교수는 천천히 눈을 뜨고, 다시 문을 닫는다. 잠금 마법이 다시 활성화되는 소리가 들린다.
    * 그녀는 다시 복도를 따라 걸어 원래 왔던 방향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 엘레나 교수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린은 숨어 있던 곳에서 조심스럽게 나온다.
    * 그녀의 얼굴은 충격과 혼란으로 얼룩져 있다. 방금 들었던 속삭임, 엘레나 교수의 의미심장한 말, 그리고 그녀의 슬픈 표정까지. 모든 것이 파편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린:** (속으로) 끔찍한 금기… 루벤이 말했던 그 소문이… 정말이었어? 저 문 안에 도대체 뭐가 있는 거야? 그리고 엘레나 교수님은… 뭘 알고 계신 거지?

    * 아린은 다시 그 문을 바라본다. 이제 그 문은 단순한 제어실 문이 아니라, 아르카나 아카데미의 완벽한 이면을 감추고 있는 거대한 비밀의 입구처럼 느껴졌다.
    * 그녀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함께, 이 비밀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피어올랐다. 이 아름다운 학교의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도움 요청’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장면 3]**

    **# 아린의 기숙사 방 – 새벽녘**

    * **배경:**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창밖으로 희미한 푸른빛이 감돈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둡고 조용하다.
    * **캐릭터:** 아린은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 그녀의 스케치북은 옆에 펼쳐져 있지만, 그릴 생각은 없는 듯하다. 그녀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아린:** (속으로) ‘도와줘’… 그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아.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갇혀서 고통받는 누군가의 목소리 같았어. 아르카나 아카데미의 모든 마나의 원천이… 정말 고통받는 존재라면?

    * 아린은 팔을 걷어 올린다. 어젯밤, 석벽에 손을 댔던 그 손목에 아주 희미한 푸른색 마나의 잔류 흔적이 마치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지만, 아린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아린:** (속으로) 이 마나는… 봉인된 존재의 마나인가? 그 존재가 내게 도움을 요청한 걸까? 내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평범한 나에게…

    *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간다. 창밖으로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아카데미의 실루엣이 펼쳐져 있다. 낮에는 그렇게 밝고 아름다웠던 건물들이, 지금은 어딘가 서늘하고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아린:** (속으로) 아르카나. 완벽해 보이는 이 모든 것의 근원에…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면… 나는 외면할 수 없어. 내 마음이… 내 마나가… 그걸 허락하지 않아.

    * 아린은 창밖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쥔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호기심에 가득 찬 평범한 학생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고, 고통받는 이를 돕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아린:** (나직하게) 내가… 알아내고 말겠어. 이 아르카나 아카데미 지하에 숨겨진, 그 끔찍한 금기의 정체를. 그리고… 그 속삭임이 전하려던 메시지를.

    * 동이 터오며 아카데미의 건물들이 서서히 빛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린의 마음속에는 어젯밤 발견한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 이 평화로운 아카데미의 ‘치유’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치유’가 대가로 삼는 것은 무엇일까.
    * **[장면 종료]**

  • 다크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잿빛 유산

    머리 위에는 항상 같은 색의 하늘이 떠 있었다. 회색빛 먼지로 탁하게 뿌옇고, 삭막한 콘크리트 잔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불쾌한 색. 해는 그저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거대한 빛 덩어리일 뿐, 더 이상 온기를 품지 않았다. 카인은 익숙한 망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닳고 닳은 가죽 장갑이 땀으로 축축했지만, 무감각한 손바닥에는 그마저도 생생한 자극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죽음의 도시를 걷고 있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제 살길을 찾아 헤매었을 번화가. 이제는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앙상하게 솟아 있었고, 썩어 문드러진 간판 조각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끔찍한 소음을 냈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 파편과 짓이겨진 금속 조각들이 뒹굴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부서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소리가 너무도 커서, 혹시나 숨어 있는 잔해가 들을까 봐 카인은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젠장, 물 한 모금이라도….”

    메마른 입술이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왔다. 사흘째였다. 변변한 식량은커녕, 더 이상 마실 물도 바닥을 드러냈다. 가방에는 낡은 천 조각과 녹슨 통조림 칼, 그리고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물통 하나가 전부였다. 이런 황무지에서 물은 곧 생명이었다. 며칠 전 발견했던 폐병원 우물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였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식수원인 빗물 웅덩이마저도 오염된 흙탕물뿐이었다.

    카인의 시선이 저 멀리 우뚝 솟은 건물에 닿았다. 웅장한 아치형 입구는 먼지에 뒤덮여 있었지만, 기둥마다 새겨진 부조는 여전히 옛 위용을 뽐내는 듯했다. ‘중앙 백화점’. 한때는 이 도시의 번영을 상징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거대한 무덤처럼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카인의 직감은 그곳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속삭였다. 어쩌면 아직 약탈당하지 않은 구역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남아있어야만 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이 폐허에서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 위협이었다. 굶주린 들짐승, 오염된 괴물, 그리고… 동족. 인간만큼 잔혹하고 비열한 사냥꾼은 없었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자, 외부의 잿빛 공기와는 또 다른 냉기가 밀려왔다. 천장이 뻥 뚫려 빛이 들어오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퀘퀘한 먼지 냄새와 함께 곰팡이 냄새, 그리고 희미한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진열대가 쓰러져 있었고, 깨진 유리 파편들이 별처럼 박혀 있었다. 한때 화려했을 옷가지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바싹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카인은 망치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누가 있나?” 그의 목소리가 공허한 공간을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목소리가 되돌아오는 메아리만이 그를 반겼다.

    층계를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는 진작에 멈춘 지 오래였다. 삐걱거리는 철골을 밟으며 한 층, 한 층 발을 옮겼다. 3층은 가전제품 매장이었던 듯했다. 깨지고 부서진 TV 화면들이 무표정하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4층은 식료품 코너. 카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이런 곳에 과연 온전한 것이 남아있을까.

    썩은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 냄새 사이로 희미한 금속성 향취가 섞여 있었다. 녹슨 철 냄새, 아니, 피 냄새 같았다. 카인의 신경이 곤두섰다. 망치를 고쳐 쥐고, 천천히 발소리를 죽였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불규칙적이고 기괴한 움직임이었다. 카인은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림자의 정체를 파악하려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었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진 팔다리, 피부는 축축한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마치 찢어지고 봉합된 조각들을 덧붙인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고, 텅 빈 눈구멍 속에서 붉은 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잔해령’. 이 폐허에서 피어난 증오와 절망의 결정체. 죽은 자들의 영혼이 뒤틀려 육체를 얻은 존재. 이놈들은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력을 탐했다.

    잔해령은 썩어가는 선반들 사이를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섰다. 텅 빈 눈구멍이 카인이 숨어 있는 기둥 쪽으로 향하는 듯했다. 카인은 숨을 멈췄다. 심장이 귀청이 찢어질 듯 뛰었다.

    “크르르….”

    잔해령의 목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히 자신을 눈치챈 것이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카인은 기둥 뒤에서 뛰쳐나왔다. 망치를 휘둘러 잔해령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쾅!**

    금속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잔해령의 몸체가 휘청거렸다. 잿빛 피부가 찢어지며 시커먼 액체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잔해령은 고통을 느끼는 듯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한 듯, 긴 팔을 휘둘러 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인은 빠르게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잔해령의 손톱은 날카로운 짐승의 발톱과 같았다.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놈을 처리하지 못하면 자신이 먹힐 차례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짧은 순간, 카인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 찼다. 죽음, 생존, 절망, 그리고 미약한 희망. 수없이 많은 잔해령들과 맞서 싸우며 얻은 경험이 본능적으로 그의 몸을 움직였다.

    잔해령이 다시 팔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카인의 어깨를 스쳤다. 날카로운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 찢어진 옷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카인은 굴하지 않았다. 잔해령의 움직임이 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속도와 민첩성으로는 자신이 우위였다.

    카인은 잔해령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낮게 자세를 잡고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잔해령의 무릎 부분을 찍어 내렸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해령의 다리가 꺾이며 중심을 잃었다. 비정상적으로 긴 몸체가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순간, 카인은 다시 한번 망치를 휘둘러 잔해령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텅!**

    이번에는 훨씬 강한 충격이었다. 잔해령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몸이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축축한 잿빛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잔해령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붉은 눈빛이 꺼지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 흉측한 몸체는 서서히 검은 재로 변해갔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잿더미만 남기고 사라졌다.

    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어깨의 상처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다음 순간 다시 죽음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피로감이 뒤섞여 있을 뿐이었다.

    축 늘어진 채 벽에 기댔다. 차가운 벽돌의 감촉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했다. 이 망할 놈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싸워야 했다. 숨 쉬는 것조차 전쟁이었다.

    “젠장….”

    주머니에서 낡은 천 조각을 꺼내 어깨의 상처를 대충 지혈했다. 별다른 약도 없었다. 운이 좋으면 곪지 않고 낫겠지만, 운이 나쁘면 이대로 열병을 앓다 죽을 수도 있었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잔해령의 재를 뒤로하고, 카인의 눈은 다시 식료품 코너를 향했다. 이 싸움의 대가가 있어야 했다. 아니, 있어야만 했다.

    쓰러진 진열대와 뜯긴 포장지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 나갔다. 희망은 점점 희미해지는 듯했다. 모든 것이 약탈당하고 망가져 있었다. 그때, 그의 발이 무언가에 걸렸다.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생수병. 겉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내용물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캔으로 된 보존식량 몇 개가 쓰러져 있었다. 기적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잔해령의 시체에 가려져 있었다. 아마 다른 생존자들은 이미 잔해령을 피해 도망갔거나, 이 구역을 지나쳤을 것이다.

    카인은 떨리는 손으로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마개는 단단히 닫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마개를 비틀자,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맑은 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설일 틈도 없이, 카인은 물통째로 입에 털어 넣었다. 시원한 물이 메마른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순간, 온몸에 생기가 돋는 듯했다.

    살았다.

    작은 물병 하나와 캔 몇 개. 보잘것없는 수확이었지만, 이 황폐한 세상에서는 그 어떤 보석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카인은 허리춤에 캔들을 매달고, 남은 물을 아껴 마시며 백화점 밖으로 향했다.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잿빛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실루엣은 저물어가는 빛 아래 더욱 거대하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찢어진 어깨를 스쳤다.

    카인은 등 뒤에 있는 백화점을 돌아봤다. 한때는 번영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잔해령과 죽음만이 머무는 곳. 그의 발길은 다시금 알 수 없는 내일로 향했다. 이 끝없는 여정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잿빛 세상의 유산 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걸어 나갈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오직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 다크 판타지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잿빛 유산

    머리 위에는 항상 같은 색의 하늘이 떠 있었다. 회색빛 먼지로 탁하게 뿌옇고, 삭막한 콘크리트 잔해 위로 드리워진 그림자처럼 불쾌한 색. 해는 그저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거대한 빛 덩어리일 뿐, 더 이상 온기를 품지 않았다. 카인은 익숙한 망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닳고 닳은 가죽 장갑이 땀으로 축축했지만, 무감각한 손바닥에는 그마저도 생생한 자극이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죽음의 도시를 걷고 있었다. 한때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며 제 살길을 찾아 헤매었을 번화가. 이제는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앙상하게 솟아 있었고, 썩어 문드러진 간판 조각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끔찍한 소음을 냈다. 발밑에는 깨진 유리 파편과 짓이겨진 금속 조각들이 뒹굴었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부서지는 소리가 메아리쳤다. 그 소리가 너무도 커서, 혹시나 숨어 있는 잔해가 들을까 봐 카인은 본능적으로 어깨를 움츠렸다.

    “젠장, 물 한 모금이라도….”

    메마른 입술이 갈라져 피가 배어 나왔다. 사흘째였다. 변변한 식량은커녕, 더 이상 마실 물도 바닥을 드러냈다. 가방에는 낡은 천 조각과 녹슨 통조림 칼, 그리고 아무것도 담겨 있지 않은 물통 하나가 전부였다. 이런 황무지에서 물은 곧 생명이었다. 며칠 전 발견했던 폐병원 우물은 이미 말라버린 지 오래였고,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식수원인 빗물 웅덩이마저도 오염된 흙탕물뿐이었다.

    카인의 시선이 저 멀리 우뚝 솟은 건물에 닿았다. 웅장한 아치형 입구는 먼지에 뒤덮여 있었지만, 기둥마다 새겨진 부조는 여전히 옛 위용을 뽐내는 듯했다. ‘중앙 백화점’. 한때는 이 도시의 번영을 상징했던 곳이었다. 지금은 거대한 무덤처럼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지만, 카인의 직감은 그곳에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속삭였다. 어쩌면 아직 약탈당하지 않은 구역이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남아있어야만 했다.

    발걸음을 재촉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주변을 살폈다. 이 폐허에서는 살아있는 모든 것이 위협이었다. 굶주린 들짐승, 오염된 괴물, 그리고… 동족. 인간만큼 잔혹하고 비열한 사냥꾼은 없었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서자, 외부의 잿빛 공기와는 또 다른 냉기가 밀려왔다. 천장이 뻥 뚫려 빛이 들어오는 곳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공간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퀘퀘한 먼지 냄새와 함께 곰팡이 냄새, 그리고 희미한 시체 썩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바닥에는 진열대가 쓰러져 있었고, 깨진 유리 파편들이 별처럼 박혀 있었다. 한때 화려했을 옷가지들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바싹 말라 비틀어져 있었다.

    카인은 망치를 든 손에 힘을 주었다. “누가 있나?” 그의 목소리가 공허한 공간을 울렸다. 대답은 없었다. 다만 자신의 목소리가 되돌아오는 메아리만이 그를 반겼다.

    층계를 따라 조심스럽게 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는 진작에 멈춘 지 오래였다. 삐걱거리는 철골을 밟으며 한 층, 한 층 발을 옮겼다. 3층은 가전제품 매장이었던 듯했다. 깨지고 부서진 TV 화면들이 무표정하게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4층은 식료품 코너. 카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감정이었다. 이런 곳에 과연 온전한 것이 남아있을까.

    썩은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그리고 그 냄새 사이로 희미한 금속성 향취가 섞여 있었다. 녹슨 철 냄새, 아니, 피 냄새 같았다. 카인의 신경이 곤두섰다. 망치를 고쳐 쥐고, 천천히 발소리를 죽였다.

    저 멀리, 어둠 속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그림자가 보였다. 불규칙적이고 기괴한 움직임이었다. 카인은 기둥 뒤에 몸을 숨겼다. 그림자의 정체를 파악하려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었지만, 인간이 아니었다. 비정상적으로 길게 늘어진 팔다리, 피부는 축축한 잿빛으로 변해 있었고, 마치 찢어지고 봉합된 조각들을 덧붙인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얼굴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일그러져 있었고, 텅 빈 눈구멍 속에서 붉은 빛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잔해령’. 이 폐허에서 피어난 증오와 절망의 결정체. 죽은 자들의 영혼이 뒤틀려 육체를 얻은 존재. 이놈들은 살아있는 것들의 생명력을 탐했다.

    잔해령은 썩어가는 선반들 사이를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마치 무언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그러다 갑자기 멈춰 섰다. 텅 빈 눈구멍이 카인이 숨어 있는 기둥 쪽으로 향하는 듯했다. 카인은 숨을 멈췄다. 심장이 귀청이 찢어질 듯 뛰었다.

    “크르르….”

    잔해령의 목에서 찢어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분명히 자신을 눈치챈 것이었다. 망설일 틈도 없이, 카인은 기둥 뒤에서 뛰쳐나왔다. 망치를 휘둘러 잔해령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쾅!**

    금속성 둔탁한 소리와 함께 잔해령의 몸체가 휘청거렸다. 잿빛 피부가 찢어지며 시커먼 액체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잔해령은 고통을 느끼는 듯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분노한 듯, 긴 팔을 휘둘러 카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카인은 빠르게 몸을 비틀어 공격을 피했다. 잔해령의 손톱은 날카로운 짐승의 발톱과 같았다.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찢겨 나갈 것 같았다. 물러설 곳은 없었다. 이놈을 처리하지 못하면 자신이 먹힐 차례였다.

    숨을 들이쉬고 내쉬는 짧은 순간, 카인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로 가득 찼다. 죽음, 생존, 절망, 그리고 미약한 희망. 수없이 많은 잔해령들과 맞서 싸우며 얻은 경험이 본능적으로 그의 몸을 움직였다.

    잔해령이 다시 팔을 휘둘렀다. 이번에는 카인의 어깨를 스쳤다. 날카로운 고통이 스쳐 지나갔다. 찢어진 옷 사이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왔다. 하지만 카인은 굴하지 않았다. 잔해령의 움직임이 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속도와 민첩성으로는 자신이 우위였다.

    카인은 잔해령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낮게 자세를 잡고 망치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온 힘을 다해 잔해령의 무릎 부분을 찍어 내렸다.

    **콰직!**

    뼈가 부러지는 듯한 끔찍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잔해령의 다리가 꺾이며 중심을 잃었다. 비정상적으로 긴 몸체가 바닥으로 쓰러지려는 순간, 카인은 다시 한번 망치를 휘둘러 잔해령의 목덜미를 가격했다.

    **텅!**

    이번에는 훨씬 강한 충격이었다. 잔해령의 머리가 옆으로 꺾였다. 몸이 바닥에 힘없이 쓰러졌다. 축축한 잿빛 액체가 바닥을 적셨다. 잔해령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더니, 이내 붉은 눈빛이 꺼지며 움직임을 멈췄다. 그 흉측한 몸체는 서서히 검은 재로 변해갔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잿더미만 남기고 사라졌다.

    카인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어깨의 상처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살아남았다는 안도감과, 다음 순간 다시 죽음과 마주할지도 모른다는 피로감이 뒤섞여 있을 뿐이었다.

    축 늘어진 채 벽에 기댔다. 차가운 벽돌의 감촉이 오히려 정신을 맑게 했다. 이 망할 놈의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매 순간 싸워야 했다. 숨 쉬는 것조차 전쟁이었다.

    “젠장….”

    주머니에서 낡은 천 조각을 꺼내 어깨의 상처를 대충 지혈했다. 별다른 약도 없었다. 운이 좋으면 곪지 않고 낫겠지만, 운이 나쁘면 이대로 열병을 앓다 죽을 수도 있었다.

    바닥에 흩어져 있는 잔해령의 재를 뒤로하고, 카인의 눈은 다시 식료품 코너를 향했다. 이 싸움의 대가가 있어야 했다. 아니, 있어야만 했다.

    쓰러진 진열대와 뜯긴 포장지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헤쳐 나갔다. 희망은 점점 희미해지는 듯했다. 모든 것이 약탈당하고 망가져 있었다. 그때, 그의 발이 무언가에 걸렸다.

    투명한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생수병. 겉은 먼지로 뒤덮여 있었지만, 내용물은 아직 오염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캔으로 된 보존식량 몇 개가 쓰러져 있었다. 기적이었다. 이 모든 것이 한 잔해령의 시체에 가려져 있었다. 아마 다른 생존자들은 이미 잔해령을 피해 도망갔거나, 이 구역을 지나쳤을 것이다.

    카인은 떨리는 손으로 생수병을 집어 들었다. 마개는 단단히 닫혀 있었다. 조심스럽게 마개를 비틀자, 칙 하는 소리와 함께 맑은 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망설일 틈도 없이, 카인은 물통째로 입에 털어 넣었다. 시원한 물이 메마른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 순간, 온몸에 생기가 돋는 듯했다.

    살았다.

    작은 물병 하나와 캔 몇 개. 보잘것없는 수확이었지만, 이 황폐한 세상에서는 그 어떤 보석보다도 값진 것이었다. 카인은 허리춤에 캔들을 매달고, 남은 물을 아껴 마시며 백화점 밖으로 향했다.

    이미 해는 지고 있었다. 잿빛 하늘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폐허가 된 도시의 실루엣은 저물어가는 빛 아래 더욱 거대하고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찢어진 어깨를 스쳤다.

    카인은 등 뒤에 있는 백화점을 돌아봤다. 한때는 번영의 상징이었으나, 이제는 잔해령과 죽음만이 머무는 곳. 그의 발길은 다시금 알 수 없는 내일로 향했다. 이 끝없는 여정의 다음 목적지가 어디일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잿빛 세상의 유산 속에서 그는 계속해서 걸어 나갈 뿐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오직 그 한 가지 이유 때문에.

  • 일상 힐링 애니메이션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아르카나 마법 아카데미: 그림자 속 속삭임

    **등장인물:**

    * **아린 (Arin):** 밝고 호기심 많지만, 마법 실력은 평범한 아르카나 아카데미 1학년생. 타인의 감정에 섬세하게 공감하는 능력이 있다.
    * **루벤 (Ruben):** 아린의 친구. 지식에 대한 탐구가 깊고 신중하며, 아카데미의 오래된 소문에 대해 조금 알고 있다.
    * **엘레나 교수 (Professor Elena):** 차분하고 이지적인 고위 마법 교수. 아카데미의 역사와 금기를 철저히 수호한다.

    **[장면 1]**

    **# 맑은 오후의 아르카나 아카데미 – 교정**

    * **배경:** 고풍스러운 건축물들이 햇살 아래 반짝인다. 마법으로 피어난 듯한 다채로운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는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거나 마법 연습을 하고 있다. 공기 중에는 은은한 마나의 향기가 섞여 있다.
    * **캐릭터:** 아린은 고요한 정원 한가운데 놓인 벤치에 앉아 마법서가 아닌 스케치북에 꽃을 그리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루벤이 두꺼운 고서를 펼쳐 읽고 있다.

    **아린:** (속으로) 오늘도 평화로운 아르카나. 마법의 힘으로 모든 것이 풍요롭고 아름다운 곳. 이런 곳에서 공부할 수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아.

    **루벤:** (책에서 눈을 떼지 않고) 아린, 오늘은 연습 안 해? 곧 실기 시험이잖아.

    **아린:** 으음… 실기 연습은 해도 해도 늘지 않는 걸 어쩌겠어. 오늘은 이 리오네 꽃의 섬세한 주름을 표현하는 게 더 중요해. 봐, 햇빛에 반짝이는 꽃잎이 꼭 작은 보석 같지 않아?

    **루벤:** (한숨) 너의 마법보다 예술적인 재능이 더 뛰어나다는 건 인정하지만… 아카데미에 온 목적을 잊지 마. 이 모든 아름다움은 마법의 힘으로 유지되는 거니까.

    **아린:** 알아, 알지!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잠시 쉬어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계속 마나만 주입하다 보면 머리가 지끈거린단 말이야.

    * 갑자기 멀리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섬광이 터진다. 학생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 어떤 학생이 마법 연습 도중 작은 폭발을 일으킨 모양이다. 주변 학생들이 웃으며 괜찮냐고 묻고, 교수가 다가가 조용히 마법을 수습한다.

    **아린:** (눈을 반짝이며) 와, 저건 실수를 해도 멋있네. 내 마법은 폭발은커녕, 작은 불꽃 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데.

    **루벤:** (책을 덮으며) 네 마나가 섬세하고 안정적이어서 그래. 폭발적인 힘을 다루는 데는 익숙하지 않다는 뜻이지. 나쁘게만 생각할 건 없어. 하지만…

    **아린:** 하지만?

    **루벤:** (목소리를 낮추며) 이 아르카나 아카데미의 힘은… 그저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라고들 해.

    **아린:** (고개를 갸웃) 그게 무슨 뜻이야?

    **루벤:** (주변을 쓱 둘러보며) 아주 오래된 소문인데… 이 거대한 아카데미의 지하 깊은 곳에는 학교의 모든 마나를 공급하는 원천이 있다고 해. 그리고 그 원천은… 단순한 마법 광맥이 아니라는 거야.

    **아린:** (호기심 어린 눈으로) 단순한 마법 광맥이 아니라니? 그럼 뭔데? 거대한 마법 생물이라도 되는 거야?

    **루벤:** (어깨를 으쓱) 알 수 없지. 누구도 그곳에 직접 가본 적은 없으니까. 그저 아주 강력한 마법으로 봉인되어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이야. 일부 전설에서는, 그곳에… 끔찍한 금기가 잠들어 있다고도 해.

    **아린:** 끔찍한 금기라니… (살짝 얼굴을 찌푸리며) 왠지 오싹한데. 그래도 학교가 이렇게 밝고 평화로운데, 설마 그런 무서운 것이 있을 리 없잖아?

    **루벤:** 그게 바로 이 아카데미의 역설이지. 겉으로는 완벽하지만, 그 이면에는 늘 어둠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책을 다시 펼치며) 자, 이제 그만 쉬고 연습하러 가자. 소문은 소문일 뿐이야.

    **아린:** (스케치북을 덮으며) 으음… 이상하다. 왠지 모르게 자꾸 신경 쓰여.

    **[장면 2]**

    **# 한밤중 – 아카데미 본관 지하 복도**

    * **배경:** 깊은 밤, 아카데미의 복도는 쥐 죽은 듯 조용하다. 횃불 마법으로 희미하게 밝혀진 복도는 낮과는 다른 엄숙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긴다. 오래된 석벽에서는 축축한 기운이 느껴진다.
    * **캐릭터:** 아린은 복도를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 그녀의 손에는 작은 마나 등불이 들려 있고, 눈동자는 호기심과 약간의 두려움으로 흔들린다.

    **아린:** (속으로) 루벤은 그냥 소문이라고 했지만… 나는 왜 이렇게 마음이 불안할까? 낮에 본 그 학생의 마법 폭발도… 평소와는 다른 느낌이었어. 아주 미묘한 이질감 같은 게 느껴졌단 말이야. 내가 너무 예민한 건가?

    * 아린은 ‘교수 전용 마나 흐름 제어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문 앞에 선다.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잠금 마법이 걸려 있다.
    * 아린은 문에 손을 대본다. 문 저편에서 아주 희미하고 불규칙적인 마나의 파동이 느껴진다. 낮에 루벤이 말했던 ‘광맥이 아닌 원천’이라는 말이 머릿속을 맴돈다.

    **아린:** (속으로) 이상해. 이곳의 마나 흐름은… 마치 고통스러워하는 생명체 같아. 낮에는 분명 이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 아린은 문 옆의 석벽을 유심히 살펴본다. 다른 곳과 달리 유독 거칠고, 작은 균열들이 여러 곳 나 있다. 그 균열들 사이로 아주 미세한 푸른빛이 깜빡거린다.

    **아린:** (속으로) 저 빛은… 마나 잔여물이 밖으로 새어 나오는 건가?

    * 아린은 용기를 내어 손을 뻗어 균열에 가장 가까운 곳에 손가락을 댄다.
    * 그 순간, 차가운 석벽 너머에서 아린의 귓가에 닿을 듯 말 듯한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온다. 마치 수백 년간 억눌려 온 비명처럼, 혹은 애원처럼 들리는 소리였다.

    **??? (속삭임):** …도와줘…

    * 아린은 화들짝 놀라 손을 뗀다. 등골이 서늘해진다.
    * 그녀의 손끝에 닿았던 균열에서 푸른빛이 더욱 강렬하게 깜빡이다 이내 사라진다.

    **아린:** (작게 헐떡이며) 방금… 뭐였지?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환청인가?

    * 그때,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누군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 아린은 황급히 몸을 숨긴다. 벽 뒤에 바짝 붙어 숨을 죽인다.
    * 복도 끝에서 걸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엘레나 교수였다. 그녀는 한 손에 지팡이를 들고 있었고,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했지만 어딘가 지쳐 보였다.

    **엘레나 교수:** (혼잣말처럼 나직하게) 오늘도… 불안정하군. 힘을 잃어가는 것인가, 아니면… 더욱 거세지는 저항인가.

    * 엘레나 교수는 아린이 만졌던 ‘교수 전용 마나 흐름 제어실’ 문 앞에 멈춰 선다. 그녀는 문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쉰다.
    * 그녀는 지팡이를 들어 문을 가볍게 두드린다. 문이 부드럽게 열리고, 그 안에서 낮게 울리는 듯한 마나의 웅웅거림이 새어 나온다.
    * 엘레나 교수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 앞에서 잠시 서서 무언가 듣는 듯 눈을 감는다. 그녀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고뇌, 슬픔, 그리고 체념.

    **엘레나 교수:** (아주 작게) 진정해… 아직은… 안 돼.

    * 엘레나 교수는 천천히 눈을 뜨고, 다시 문을 닫는다. 잠금 마법이 다시 활성화되는 소리가 들린다.
    * 그녀는 다시 복도를 따라 걸어 원래 왔던 방향으로 돌아간다. 그녀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 엘레나 교수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아린은 숨어 있던 곳에서 조심스럽게 나온다.
    * 그녀의 얼굴은 충격과 혼란으로 얼룩져 있다. 방금 들었던 속삭임, 엘레나 교수의 의미심장한 말, 그리고 그녀의 슬픈 표정까지. 모든 것이 파편처럼 그녀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린:** (속으로) 끔찍한 금기… 루벤이 말했던 그 소문이… 정말이었어? 저 문 안에 도대체 뭐가 있는 거야? 그리고 엘레나 교수님은… 뭘 알고 계신 거지?

    * 아린은 다시 그 문을 바라본다. 이제 그 문은 단순한 제어실 문이 아니라, 아르카나 아카데미의 완벽한 이면을 감추고 있는 거대한 비밀의 입구처럼 느껴졌다.
    * 그녀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연민과 함께, 이 비밀을 반드시 밝혀내야 한다는 강렬한 충동이 피어올랐다. 이 아름다운 학교의 지하에 숨겨진 ‘끔찍한 금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그 ‘도움 요청’의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장면 3]**

    **# 아린의 기숙사 방 – 새벽녘**

    * **배경:** 동이 터오기 시작하는 창밖으로 희미한 푸른빛이 감돈다. 방 안은 여전히 어둡고 조용하다.
    * **캐릭터:** 아린은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다. 그녀의 스케치북은 옆에 펼쳐져 있지만, 그릴 생각은 없는 듯하다. 그녀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형형하게 빛나고 있다.

    **아린:** (속으로) ‘도와줘’… 그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맴돌아.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갇혀서 고통받는 누군가의 목소리 같았어. 아르카나 아카데미의 모든 마나의 원천이… 정말 고통받는 존재라면?

    * 아린은 팔을 걷어 올린다. 어젯밤, 석벽에 손을 댔던 그 손목에 아주 희미한 푸른색 마나의 잔류 흔적이 마치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육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지만, 아린은 분명히 느낄 수 있다.

    **아린:** (속으로) 이 마나는… 봉인된 존재의 마나인가? 그 존재가 내게 도움을 요청한 걸까? 내가…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평범한 나에게…

    * 그녀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로 다가간다. 창밖으로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아카데미의 실루엣이 펼쳐져 있다. 낮에는 그렇게 밝고 아름다웠던 건물들이, 지금은 어딘가 서늘하고 거대한 비밀을 품고 있는 듯 보인다.

    **아린:** (속으로) 아르카나. 완벽해 보이는 이 모든 것의 근원에…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다면… 나는 외면할 수 없어. 내 마음이… 내 마나가… 그걸 허락하지 않아.

    * 아린은 창밖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쥔다. 그녀의 눈빛은 더 이상 호기심에 가득 찬 평범한 학생의 것이 아니었다. 그곳에는 어두운 진실을 파헤치고, 고통받는 이를 돕고자 하는 강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아린:** (나직하게) 내가… 알아내고 말겠어. 이 아르카나 아카데미 지하에 숨겨진, 그 끔찍한 금기의 정체를. 그리고… 그 속삭임이 전하려던 메시지를.

    * 동이 터오며 아카데미의 건물들이 서서히 빛을 되찾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린의 마음속에는 어젯밤 발견한 어둠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 이 평화로운 아카데미의 ‘치유’는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치유’가 대가로 삼는 것은 무엇일까.
    * **[장면 종료]**

  • 심리 스릴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 균열의 서막 (균열의 서막)

    밤은 차가웠지만, 이 공간만큼은 뜨거웠다. 샹들리에의 황금빛이 수십 개의 크리스털을 타고 쏟아져 내리는 연회장은 성공과 환희로 가득했다. 잘 다려진 최고급 정장들이 촘촘히 박힌 보석처럼 반짝였고, 잔잔한 재즈 선율 위로 가식적인 웃음소리가 꽃잎처럼 흩어졌다.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박태준이 있었다.

    나는 샴페인 잔을 든 채, 그림자처럼 연회장 한구석에 서 있었다. 사람들은 내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나를 알아보는 사람도 없었다. 나 이지훈은 이제 그들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으니까.

    태준은 단상 위에 서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성공한 사업가의 자신감과 젊은 경영인의 패기가 번들거렸다. 오늘 밤은 그가 설립한 IT 기업 ‘제우스 엔터프라이즈’가 창립 10주년을 맞이하는 동시에, 새로운 글로벌 투자 유치에 성공했음을 알리는 축하연이었다. 억 소리 나는 계약서에 서명하고 세계 무대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이 모든 영광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지난 10년간 함께 땀 흘려준 우리 제우스 엔터프라이즈의 모든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언제나 저를 믿고 지지해준 소중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스포트라이트가 태준의 눈부신 미소를 비췄다. 그의 빛나는 모습이 내 눈을 찔렀다. 10년. 그래, 정확히 10년이었다. 그의 성공의 밑바탕에는 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연회장에 있는 단 한 명의 인간도 알지 못했다. 아니, 태준 자신조차 그 사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을 터였다.

    나는 손 안의 잔을 꽉 쥐었다. 차가운 유리가 손바닥에 파고드는 감각이 몽롱하게 피어나는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내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오직 태준에게만 고정되어 있었다. 그래, 이제 시작이다. 너의 빛나는 제국에 균열을 내는 일. 나는 10년 동안 이 순간만을 위해 이를 갈아왔다. 너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기 위해, 나 자신까지 기꺼이 진흙탕에 던져 넣었다.

    귓가에 샴페인 잔이 부딪히는 맑은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잔을 천천히 기울여 달콤쌉싸름한 액체를 목으로 넘겼다. 그 맛은 마치 내 10년 전 청춘의 쓰디쓴 잔재 같았다.

    나는 태준의 연설이 끝나고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틈을 타 움직였다. 군중 속으로 스며들어, 그의 주변을 맴도는 몇몇 사람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태준의 성공담, 뛰어난 수완, 천재적인 비전. 온통 칭찬 일색이었다. 역겨웠다.

    그때, 저 멀리서 한 중년 남성이 태준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그는 대기업 ‘한성 그룹’의 실장이었고, 이번 투자 유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태준은 능숙하게 허리를 숙이며 그에게 웃어 보였다.

    “최 실장님, 오늘 와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희 제우스가 날개를 달게 되었습니다.”

    “박 대표님이야말로 대단하십니다. 이 젊은 나이에 이런 기업을 일궈내시고. 그런데 혹시, 예전에 제가 박 대표님께 드렸던 자료, 아직 가지고 계십니까?” 최 실장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 말씀드렸던… ‘넥서스 프로젝트’ 관련해서 말입니다.”

    태준의 얼굴에 스쳐 지나가는 아주 미세한 경련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넥서스 프로젝트’. 그래,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너는 잠시 흔들렸구나.

    태준은 이내 능숙하게 미소를 되찾았다. “아, 네. 물론입니다. 최 실장님께서 주셨던 소중한 자료는 잘 보관하고 있습니다. 언제든 다시 검토할 시간이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최 실장은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사실 요즘 업계에서 그 프로젝트가 다시 화두에 오르고 있더군요. 오래된 이야기지만, 워낙 파급력이 컸던 건이라… 박 대표님이라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끌어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둘은 짧은 대화를 마치고 헤어졌다. 태준은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웃음을 지었지만, 나는 그의 눈빛 속에서 방금 전 스쳐 지나간 불안감을 똑똑히 보았다. 내 첫 번째 씨앗이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

    ‘넥서스 프로젝트’. 그건 10년 전, 내가 밤낮없이 매달렸던 꿈이었다. 태준과 내가 함께 만들었던, 우리의 미래였다. 우리는 그 프로젝트를 들고 여러 투자사를 전전했고, 마침내 한성 그룹의 최 실장에게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그는 우리의 열정에 공감하며, 관련 자료와 함께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 태준은 나를 버렸다. 나의 모든 아이디어를 훔쳐 달아나, 마치 자신의 것인 양 포장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그게 지금의 ‘제우스 엔터프라이즈’였다. ‘넥서스 프로젝트’는 그의 성공을 위한 발판으로 찢겨 흩어졌고, 나는 철저히 이용당하고 버려졌다.

    나는 그날 이후로 세상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내가 실패를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태준조차도 그렇게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림자 속으로 숨어들었을 뿐이었다. 추락한 폐허 속에서, 나는 너의 제국을 무너뜨릴 설계도를 밤낮으로 그려나갔다.

    이제, 최 실장은 우연찮게, 혹은 내가 만들어낸 작은 우연 속에서 잊혔던 단어를 다시 꺼냈다. ‘넥서스 프로젝트’의 재조명. 그게 태준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아마도 불안과 과거의 그림자겠지.

    나는 조용히 연회장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태준은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나는 그의 시야에 닿지 않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한 인물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정우 변호사였다. 태준의 회사 법률 고문을 맡고 있는 인물로, 태준과는 대학 동창이기도 했다.

    “이 변호사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이 변호사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례지만…?”

    “10년 전, 잠시 박 대표님과 사업을 함께 했던 이지훈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의 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10년 전의 나는 초라한 대학생이었다. 지금의 나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이었다. 잘 재단된 슈트, 절제된 표정, 그리고 이제는 깊이를 알 수 없게 된 눈빛.

    “아… 이지훈 씨. 정말 오랜만이네요.”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박 대표도 오랜만에 이지훈 씨를 보면 정말 반가워할 겁니다. 어쩌다 여기에…?”

    “최근에 제가 작은 투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번에 제우스와 협력할 가능성이 있을까 해서요.” 나는 거짓말을 태연하게 지껄였다. “근데 아까 박 대표님께서 최 실장님과 ‘넥서스 프로젝트’ 이야기를 하시더군요. 아직도 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계셨나 보네요. 제가 알기론 상당히 난해하고… 당시에는 좀 무모한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는데.”

    이 변호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 프로젝트요… 사실 태준이가 그 프로젝트 때문에 꽤나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결국 잘 되진 못했지만… 그때 태준이가 이지훈 씨 일 때문에도 충격이 컸던 걸로 압니다. 갑자기 사라져버려서 말이죠.”

    나는 속으로 비웃었다. ‘마음고생’? ‘충격’? 가증스러운 위선이었다.

    “아… 그랬군요. 저는 그때 개인적인 사정이 좀 있어서. 죄송하게 됐습니다.” 나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데 제가 당시 태준이가 그 프로젝트를 위해 준비했던 자료들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부분이 있을까 해서요. 물론, 전부 제 개인적인 생각과 아이디어가 담긴 자료들이지만요.”

    이 변호사의 눈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그는 내 말의 의미를 단번에 파악했을 터였다. 오래된 자료, 개인적인 아이디어. 태준이 제우스 엔터프라이즈를 세우는 데 발판이 되었던 ‘넥서스 프로젝트’의 ‘원본’ 자료들. 그건 태준의 기업 정체성, 나아가 그의 도덕성 전체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는 위험한 증거였다.

    “이… 이지훈 씨. 그 자료들을… 혹시 아직도 가지고 계신 겁니까?” 그의 목소리에 불안감이 섞였다.

    “네. 제가 직접 작성한 것들이라, 워낙 아끼던 것들이어서요. 혹시 태준이가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공유할 의향이 있습니다.” 나는 친절하게 웃어 보였다. 마치 아무런 악의도 없는, 순수한 의도로 말하는 것처럼.

    이 변호사는 얼굴이 굳어졌다. “아… 네. 제가 태준이에게 한번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나는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즐거운 밤 보내십시오, 변호사님.”

    나는 이 변호사에게서 등을 돌려 다시 군중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불안과 당혹감이 뒤섞인 시선이었다.

    이윽고, 태준이 이 변호사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는 모습이 보였다. 이 변호사는 잠시 망설이는 듯하더니, 이내 태준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였다. 태준의 얼굴에서 조금 전까지의 여유가 일순간 사라졌다. 그의 눈동자에 동요가 번졌다. 나를 발견한 것도 아닌데, 그의 눈은 불안하게 연회장 곳곳을 훑었다.

    나는 태준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그러나 그를 똑똑히 볼 수 있는 곳에 멈춰 섰다. 내 입술에는 한 줄기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10년 전, 너는 나를 짓밟고 일어섰다. 내 꿈을 찢어 발기고, 내 존재를 지워버렸다. 하지만 이제, 네가 애써 묻었던 과거의 그림자가 다시 너의 발목을 잡을 것이다. 네가 쌓아 올린 이 빛나는 성은 이제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균열이 가기 시작할 테니까.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네가 한순간의 실수로 나를 잊어버린 대가. 이제부터 네 모든 것을 빼앗아 갈 나의 정교한 복수극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었다.
    나는 조용히 연회장을 빠져나왔다. 차가운 밤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제 곧, 태준의 빛나는 미소는 거짓된 가면 아래 숨겨진 공포로 변할 것이다.
    나는 조용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준아, 이제야 놀이가 시작되었네.”

  • 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도시의 핏줄처럼 얽히고설킨 고층 빌딩 숲, 그중에서도 유독 볕이 잘 들지 않는 동향의 낡은 아파트 13층. 이진우는 언제나처럼 흐트러진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물네 살. 복학을 앞둔 백수 아닌 백수.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늦은 밤까지 웹 소설을 읽거나, 이름 모를 우주 어딘가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를 탐독하는 것뿐이었다.

    “흐음… 벌써 새벽 두 시라니.”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방 안은 희미한 모니터 불빛과, 창밖 멀리서 깜빡이는 도시의 불빛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우자, 낡은 마루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반년. 싼 가격에 혹해 계약했지만, 그는 곧 이 건물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연식’이 오래되었음을 깨달았다. 벽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수도관은 종종 알 수 없는 소음을 내뱉었다.

    컵에 물을 따르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던 진우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서늘한 기운이 발목을 감쌌다. 보일러를 약하게 틀어두었으니 집 전체가 이렇게까지 차가울 리가 없었다. (기분 탓이겠지.)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쨍그랑!

    “크아악!”

    놀란 진우가 몸을 움츠렸다. 방금 그 소리는… 주방 찬장에서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였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찬장을 응시했다. 유리컵 두 개가 비스듬히 꽂혀 있던 곳, 그중 하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아래 바닥에는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뭐야? 이게 왜 떨어져?”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도 멀쩡히 제자리에 있었던 컵이었다. 바람이 불 리도 없고, 지진이 난 것도 아니었다. 진우는 한숨을 쉬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조각들을 쓸어 담았다.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몸이 찌뿌둥한가? 아니면 설마…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진우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컵이 떨어진 것도 찜찜했지만, 자꾸만 귓가에서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마치 벽 너머에서, 혹은 천장 위에서 누군가가 아주 작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아 스마트폰을 들고 웹 소설을 읽으려는데, 화면이 갑자기 지직거리며 꺼졌다.

    “어? 뭐야, 배터리 충전해 놨는데?”

    다시 전원을 켜자, 이번에는 화면에 알 수 없는 노이즈가 가득했다. 마치 아주 오래된 TV에서나 볼 법한 모래알 같은 점들이 무수히 반짝였다. 진우는 몇 번 전원을 껐다 켰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는 한숨을 쉬며 폰을 옆에 던져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진우는 침대 옆 탁자에 둔 스마트폰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간밤에 너무 피곤해서 이상한 현상을 겪었나 보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려 했다.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였다.

    진우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음식을 받아 들고 거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저절로 닫혔다.

    “어? 바람도 안 부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정확히 거실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또다시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더 세게, 마치 누군가 뒤에서 밀기라도 한 것처럼. 진우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니, 이건 좀 심하잖아. 바람이라기엔 밀폐된 공간인데?)

    그는 문손잡이를 잡고 한참을 응시했다. 아무런 인기척도, 바람도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놀리듯이 문을 닫는 것만 같았다. 그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외면하며 식사를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기괴한 일들은 계속되었다.

    책상 위에 분명히 올려두었던 충전기가 침대 밑에서 발견되거나,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장실 문이 굳게 잠겨 있기도 했다. 한번은 잠결에 눈을 떴을 때, 거실 복도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온몸의 털이 곤두서기도 했다.

    “누구… 계세요?”

    진우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복도 끝에서, 작은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짤그랑’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조심스럽게 복도 쪽으로 향했다. 스탠드 불빛이 닿는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색 빛이 깜빡이는 것을 그는 보았다. 마치 전기의 스파크처럼, 하지만 소리 없이.

    “뭐… 뭐야.”

    진우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전등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의 모든 불이 동시에 꺼졌다. 순식간에 암흑에 잠긴 공간에서,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젠장! 이거 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급하게 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비추자, 방금 전 복도에서 보았던 푸른색 빛이 이제는 거실 한가운데서 마치 춤을 추듯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스파크가 아니었다. 마치 작은 형체처럼, 하지만 실체가 없는. 유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인, 차가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한 빛이었다.

    그때,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으악!”

    컵은 허공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가 싶더니, 진우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컵은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났다. 쨍그랑!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일부는 그의 뺨을 스쳤다.

    진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뺨을 만졌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피가 묻어났다. 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는 플래시를 비추며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하지만 스위치는 이미 누가 손을 쓴 듯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마치 망치로 내리친 것처럼.

    (이건… 사람이 한 짓이 아니야.)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에 진우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때, 플래시 빛에 비친 거실 한쪽 구석에서, 아파트에 이사 오기 전부터 고장 나 있었던 낡은 라디오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켜졌다. 아무런 주파수도 잡히지 않는 백색 소음만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아니, 마치 기계음 같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 이건 대체… 뭐야…”

    진우는 주저앉은 채 바닥을 짚고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앞에서 아파트의 낡은 벽지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마치 공간 자체가 왜곡되는 듯한 착각이었다. 그리고 벽 한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형체가 선명하게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벽 뒤에, 살아있는 무언가가 숨 쉬고 있는 것처럼. 푸른색 에너지는 더욱 격렬하게 일렁였다.

    “크아아악!”

    진우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벽에서 불거져 나온 형체는 점점 더 커지고,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벽을 뚫고 나오려는 듯이. 그것은 살아있는 그림자 같기도 했고, 정체 모를 거대한 장치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진우는 도망치기 위해 현관문으로 향했다.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돌려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아니, 잠긴 것을 넘어 마치 벽에 용접이라도 된 것처럼 단단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라디오의 백색 소음 속에서 튀어나온 기계음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계측… 불안정… 왜곡… 확장… 감지… 유기체–]

    진우의 눈앞에서 벽의 돌출부가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방금 전 유리컵을 날렸던 것과 똑같은 푸른색 에너지가 강력한 빛을 내뿜으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단순한 유령의 장난도 아니었다.
    이 아파트, 이 공간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 혹은 현상이 기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진우를 향해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진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듯한 극심한 공포 속에서,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아파트에 갇혔어. 이 괴물 같은 것에 갇혔다고!)
    그리고 그의 눈앞, 벽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흡수되는 것처럼.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기괴한 아파트에서 벌어질 일들의.

  • 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도시의 핏줄처럼 얽히고설킨 고층 빌딩 숲, 그중에서도 유독 볕이 잘 들지 않는 동향의 낡은 아파트 13층. 이진우는 언제나처럼 흐트러진 책상 앞에 앉아 멍하니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스물네 살. 복학을 앞둔 백수 아닌 백수.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늦은 밤까지 웹 소설을 읽거나, 이름 모를 우주 어딘가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를 탐독하는 것뿐이었다.

    “흐음… 벌써 새벽 두 시라니.”

    그는 작게 중얼거리며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방 안은 희미한 모니터 불빛과, 창밖 멀리서 깜빡이는 도시의 불빛만이 지배하고 있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세우자, 낡은 마루 바닥에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이 아파트로 이사 온 지 반년. 싼 가격에 혹해 계약했지만, 그는 곧 이 건물이 생각보다 훨씬 더 ‘연식’이 오래되었음을 깨달았다. 벽 곳곳에 금이 가 있고, 수도관은 종종 알 수 없는 소음을 내뱉었다.

    컵에 물을 따르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던 진우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 서늘한 기운이 발목을 감쌌다. 보일러를 약하게 틀어두었으니 집 전체가 이렇게까지 차가울 리가 없었다. (기분 탓이겠지.) 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쨍그랑!

    “크아악!”

    놀란 진우가 몸을 움츠렸다. 방금 그 소리는… 주방 찬장에서 들려왔다. 유리컵이 깨지는 소리였다. 진우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찬장을 응시했다. 유리컵 두 개가 비스듬히 꽂혀 있던 곳, 그중 하나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아래 바닥에는 파편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뭐야? 이게 왜 떨어져?”

    그는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조금 전까지도 멀쩡히 제자리에 있었던 컵이었다. 바람이 불 리도 없고, 지진이 난 것도 아니었다. 진우는 한숨을 쉬며 빗자루와 쓰레받기를 가져와 조각들을 쓸어 담았다. 괜스레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은 떨쳐버릴 수 없었다. (너무 오래 앉아 있어서 몸이 찌뿌둥한가? 아니면 설마… 피곤해서 헛것을 본 건가?)

    그날 밤, 잠자리에 든 진우는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컵이 떨어진 것도 찜찜했지만, 자꾸만 귓가에서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들리는 듯했다. 마치 벽 너머에서, 혹은 천장 위에서 누군가가 아주 작게 속삭이는 것 같았다. 잠이 오지 않아 스마트폰을 들고 웹 소설을 읽으려는데, 화면이 갑자기 지직거리며 꺼졌다.

    “어? 뭐야, 배터리 충전해 놨는데?”

    다시 전원을 켜자, 이번에는 화면에 알 수 없는 노이즈가 가득했다. 마치 아주 오래된 TV에서나 볼 법한 모래알 같은 점들이 무수히 반짝였다. 진우는 몇 번 전원을 껐다 켰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그는 한숨을 쉬며 폰을 옆에 던져두고 이불을 뒤집어썼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깬 진우는 침대 옆 탁자에 둔 스마트폰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간밤에 너무 피곤해서 이상한 현상을 겪었나 보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애써 불쾌한 기분을 떨쳐내려 했다.

    문제는 그날 저녁부터였다.

    진우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기 위해 현관문을 열었다. 음식을 받아 들고 거실로 들어서려는 순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저절로 닫혔다.

    “어? 바람도 안 부는데?”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문을 다시 열었다. 그리고 정확히 거실로 발을 들여놓자마자, 또다시 ‘쿵!’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이번에는 더 세게, 마치 누군가 뒤에서 밀기라도 한 것처럼. 진우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아니, 이건 좀 심하잖아. 바람이라기엔 밀폐된 공간인데?)

    그는 문손잡이를 잡고 한참을 응시했다. 아무런 인기척도, 바람도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놀리듯이 문을 닫는 것만 같았다. 그는 찝찝한 기분을 애써 외면하며 식사를 했다.

    하지만 그 후로도 기괴한 일들은 계속되었다.

    책상 위에 분명히 올려두었던 충전기가 침대 밑에서 발견되거나,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화장실 문이 굳게 잠겨 있기도 했다. 한번은 잠결에 눈을 떴을 때, 거실 복도에서 희미한 발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온몸의 털이 곤두서기도 했다.

    “누구… 계세요?”

    진우는 벌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복도 끝에서, 작은 물건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짤그랑’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조심스럽게 복도 쪽으로 향했다. 스탠드 불빛이 닿는 곳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불빛이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주 희미한 푸른색 빛이 깜빡이는 것을 그는 보았다. 마치 전기의 스파크처럼, 하지만 소리 없이.

    “뭐… 뭐야.”

    진우는 공포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전등 스위치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렸다. 거실의 모든 불이 동시에 꺼졌다. 순식간에 암흑에 잠긴 공간에서,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날뛰었다.

    “젠장! 이거 대체 무슨 일이야?!”

    그는 스마트폰의 플래시를 급하게 켰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비추자, 방금 전 복도에서 보았던 푸른색 빛이 이제는 거실 한가운데서 마치 춤을 추듯 일렁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스파크가 아니었다. 마치 작은 형체처럼, 하지만 실체가 없는. 유령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이질적인, 차가운 에너지를 뿜어내는 듯한 빛이었다.

    그때,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리컵이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으악!”

    컵은 허공에서 잠시 멈춰 서 있는가 싶더니, 진우를 향해 엄청난 속도로 날아왔다. 진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였고, 컵은 그의 머리 위를 스쳐 지나가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 났다. 쨍그랑!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고, 일부는 그의 뺨을 스쳤다.

    진우는 바닥에 주저앉아 떨리는 손으로 뺨을 만졌다. 따끔한 통증과 함께 피가 묻어났다. 이것은 환각이 아니었다. 명백한 현실이었다.

    그는 플래시를 비추며 벽을 더듬어 전등 스위치를 찾았다. 하지만 스위치는 이미 누가 손을 쓴 듯 완전히 부서져 있었다. 마치 망치로 내리친 것처럼.

    (이건… 사람이 한 짓이 아니야.)

    등골을 타고 오르는 오싹함에 진우는 온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때, 플래시 빛에 비친 거실 한쪽 구석에서, 아파트에 이사 오기 전부터 고장 나 있었던 낡은 라디오가 지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저절로 켜졌다. 아무런 주파수도 잡히지 않는 백색 소음만이 가득했지만, 그 속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아니, 마치 기계음 같은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섞여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 이건 대체… 뭐야…”

    진우는 주저앉은 채 바닥을 짚고 뒷걸음질 쳤다. 그의 눈앞에서 아파트의 낡은 벽지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마치 공간 자체가 왜곡되는 듯한 착각이었다. 그리고 벽 한가운데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무언가가 짓누르는 듯한 형체가 선명하게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벽 뒤에, 살아있는 무언가가 숨 쉬고 있는 것처럼. 푸른색 에너지는 더욱 격렬하게 일렁였다.

    “크아아악!”

    진우는 비명을 지르며 벌떡 일어섰다. 벽에서 불거져 나온 형체는 점점 더 커지고, 튀어나오고 있었다. 마치 벽을 뚫고 나오려는 듯이. 그것은 살아있는 그림자 같기도 했고, 정체 모를 거대한 장치 같기도 했다. 알 수 없는 위압감이 온몸을 짓눌렀다.

    진우는 도망치기 위해 현관문으로 향했다. 필사적으로 문고리를 돌려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문은 안에서 굳게 잠겨 있었다. 아니, 잠긴 것을 넘어 마치 벽에 용접이라도 된 것처럼 단단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라디오의 백색 소음 속에서 튀어나온 기계음이 더욱 선명하게 들렸다.

    [–계측… 불안정… 왜곡… 확장… 감지… 유기체–]

    진우의 눈앞에서 벽의 돌출부가 기괴하게 꿈틀거렸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방금 전 유리컵을 날렸던 것과 똑같은 푸른색 에너지가 강력한 빛을 내뿜으며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폴터가이스트가 아니었다. 단순한 유령의 장난도 아니었다.
    이 아파트, 이 공간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존재, 혹은 현상이 기생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진우를 향해 명백한 적의를 드러내고 있었다.

    진우는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온몸의 감각이 마비되는 듯한 극심한 공포 속에서, 그는 오직 한 가지 생각만을 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아파트에 갇혔어. 이 괴물 같은 것에 갇혔다고!)
    그리고 그의 눈앞, 벽의 중심에서 뿜어져 나온 푸른 빛이 그의 시야를 완전히 뒤덮었다.
    마치 공간 자체가 흡수되는 것처럼.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 기괴한 아파트에서 벌어질 일들의.

  • 오컬트 호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최준영은 낡은 창고 구석에 쭈그려 앉아 먼지 쌓인 옛 서책을 뒤적였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다. 대학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뒤 이렇다 할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지방의 작은 향토사 연구소에서 임시직으로 일한 지도 어언 3년. 그마저도 최근엔 예산 문제로 잘려, 그는 이제 그저 백수에 가까운 상태였다. 남은 건 고작 허름한 고물상 아르바이트와 낡은 고서들을 뒤적이는 일. 하지만 그에게는 이것이 삶의 유일한 활력이었다. 특히, 정사에 기록되지 않은 야사(野史)나 잊힌 유적에 대한 이야기에는 병적으로 집착했다.

    오늘 그의 손에 들어온 책은 ‘지방 비사(地方秘史)’라는 제목의, 활자 인쇄조차 아닌 필사본이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랬고 글씨는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희미했지만, 준영은 마치 보물이라도 찾은 듯 심장이 뛰었다. 책의 중반부에 이르자, 한 구절이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사당골, 그곳은 망각된 시간의 저편. 천년의 세월이 그 위에 흐르는 동안, 단 한 번도 태양의 빛을 온전히 허락한 적 없으니… 결코 범접할 수 없는 존재의 흔적이 그곳에 잠들어 있더라.」

    사당골. 이름은 익숙했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무서운 이야기를 해줄 때 종종 등장했던, 마을 뒷산 깊은 곳에 있다는 전설 속의 장소. 오래된 절터나 작은 신당이 있을 거라 막연히 짐작만 할 뿐, 실제 그곳을 탐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일반인의 발길이 닿지 않는 험준한 산세에 가려져, 그저 노인들의 옛이야기 속에나 존재하는 곳이었다.

    준영은 책을 덮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단순한 노인들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필사본은 사당골이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어떤 강력한 ‘결계’로 봉인된 미지의 장소임을 암시하고 있었다. 어쩌면, 어쩌면 이곳에서라면 그 지루하고 무의미한 삶에 한 줄기 빛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그보다 더 강력한, 어떤 운명적인 이끌림 같은 것을 느꼈다. 잃어버린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야 한다는,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며칠 뒤, 준영은 최소한의 장비만을 챙겨 사당골로 향했다. 낡은 등산화와 닳은 배낭, 손전등과 작은 곡괭이가 전부였다. 휴대폰은 산 깊숙이 들어서자마자 먹통이 되었다. 숲은 짙었고, 나무들은 하늘을 가려 햇빛 한 줄기 비치지 않는 구간이 태반이었다. 축축한 흙냄새와 이름 모를 풀벌레 소리만이 그의 동반자였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은 옛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헤맸을까. 그는 갑자기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공기 자체가 달라진 듯했다. 서늘하고 무거웠으며, 마치 거대한 존재가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다. 나뭇가지 사이로 빛이 완전히 사라진, 마치 검은 늪처럼 침묵하는 공간이 드러났다. 바로 그곳이었다. 사당골.

    오랜 수색 끝에, 그는 마침내 그것을 발견했다. 덩굴과 이끼로 뒤덮여 거의 알아볼 수 없게 된 석축(石築). 자연의 일부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인공적으로 쌓은 흔적이 역력했다. 굳이 이렇게 깊은 산속에, 외부와 단절된 곳에 이런 건축물을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준영은 묘한 흥분과 함께 곡괭이로 덩굴을 걷어냈다. 덩굴 아래에는 마모되고 풍화된 돌문이 숨겨져 있었다. 문의 표면에는 알 수 없는 상형문자와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음각되어 있었다. 보는 순간, 뼛속까지 시린 한기가 엄습했다.

    돌문은 예상외로 쉽게 열렸다. 마치 누군가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어둠이 드러났다. 손전등을 켜자, 한 줄기 빛이 수십 년, 아니 수백 년간 갇혀 있던 공간을 비췄다. 내부는 경사진 복도로 이어져 있었다. 축축하고 차가운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었다. 벽면에는 기괴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어딘가 일그러지고 뒤틀린 형상들. 그들은 마치 고통받는 듯했고, 어떤 존재를 숭배하는 듯했다. 준영은 불안감에 침을 꿀꺽 삼켰지만, 호기심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복도의 끝, 지하 깊숙한 곳에 이르자 그는 작은 광장을 발견했다. 중앙에는 거대한 검은 돌 제단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붉은빛을 띠는 육각형의 보석이 얹혀 있었다. 보석은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희미하게 박동하고 있었다. 주변에는 촛불을 꽂았던 흔적과 함께 알 수 없는 동물의 뼈들이 흩어져 있었다. 제단 뒤쪽 벽면에는 더욱 기괴하고 거대한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것은 눈동자였지만, 수많은 겹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안에는 우주 전체가 담겨 있는 듯했다.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빨려 들어갈 것 같은, 현기증이 느껴지는 형상이었다.

    준영은 홀린 듯 제단으로 다가갔다. 보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기운이 그의 손을 이끌었다. 따뜻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이질적인 감각.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보석을 움켜쥐었다.

    그 순간, 공간이 뒤틀렸다.

    “으악!”

    보석에서 뿜어져 나온 강렬한 붉은빛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빛과 함께 수많은 형상들이 그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인간의 비명,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소리, 피와 살이 찢기는 잔혹한 환영들…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깊고 어두우며, 동시에 수만 년의 세월을 품은 듯한 목소리.

    「…드디어, 왔는가. 나의 계승자여.」

    준영은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의 손에 들린 보석은 붉게 빛나며 그의 혈관을 따라 심장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온몸의 세포가 뒤집히는 듯한 격통과 함께, 그의 눈빛이 일순간 붉게 물들었다. 그의 육신은 더 이상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니었다. 고대의 힘이, 망각된 존재가, 천년의 봉인을 깨고 그의 심장으로 침투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그는 홀로 떨고 있었다.

  • 심리 스릴러 긴장감 넘치는 연재 웹소설의 최신 화

    ## 심연 아래의 속삭임

    어둠은 늘 그랬듯, 존재하지 않는 것에 더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유하는 손전등이 비추는 좁은 계단을 한 칸 한 칸 밟아 내려갔다. 낡은 석조 계단은 밟을 때마다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고, 그 소리는 텅 빈 공간을 울리며 마치 누군가 유하의 뒤를 쫓아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아셀 마법 학원, 그 웅장하고 아름다운 지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가 이 지하 3층에 존재했다. ‘봉인된 아카이브’. 출입이 엄격히 금지된, 학원의 가장 깊은 금고이자 동시에 가장 오랫동안 잊힌 무덤이었다.

    “젠장, 아론 교수님은 왜 하필 지금….”

    유하는 입술을 씹었다. 밤 11시. 모두가 꿈나라를 헤매거나, 기숙사 카페에서 친구들과 한창 수다를 떨고 있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유하는 ‘고대 흑마법의 기원과 소멸에 관한 연구’라는 해묵은 논문의 원본을 찾아야 한다는 아론 교수의 말에 끌려 이 음침한 곳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교수는 으레 그렇듯 유하가 이 모든 임무를 감당할 수 있는 유일한 학생이라며 칭찬했지만, 유하는 그저 자신이 언제나 성가신 일에 가장 먼저 불려나가는 ‘희생양’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마지막 계단을 내려서자, 냉기가 확 끼쳐왔다. 코끝이 시큰거릴 정도로 차가운 공기는 오래된 흙먼지와 곰팡이 냄새, 그리고 아주 희미하게, 비릿한 금속성 냄새를 머금고 있었다. 유하는 손전등을 들어 주위를 비췄다. 복도 양쪽으로는 끝없이 늘어선 철제 서가들이 보였다. 낡은 가죽 장정의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었지만, 그 책들 위로는 두껍게 먼지가 쌓여 있었다. 마치 시간 자체가 이곳에서 멈춰버린 듯했다.

    “세 번째 서가, 다섯 번째 칸….”

    교수가 건넨 쪽지에 적힌 지시사항을 되뇌며 유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철제 서가들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는 듯했다. 유하는 그 소리가 서가의 마찰음이 아니라, 그 안에 갇힌 무언가의 신음 소리처럼 들린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이성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이곳의 음습한 분위기는 모든 합리적인 사고를 마비시키는 듯했다.

    드디어 목표한 서가 앞에 섰다. 손전등을 들어 책등을 훑었다. 먼지투성이 책들 사이에서 쪽지에 적힌 제목을 찾아냈다. 조심스럽게 책을 뽑아내자, 쿰쿰한 냄새와 함께 먼지가 후루룩 일어났다. 유하는 기침을 하며 책을 품에 안았다.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그때였다.
    유하의 귀에, 아주 희미한, 하지만 명확한 소리가 들렸다.
    *철컥.*
    금속이 부딪히는 소리였다. 서가 끝, 복도와 연결되는 지점이었다. 그곳에는 원래 아무것도 없어야 했다. 교수가 건넨 설계도면에도, 학원 내부에 배부된 일반 지도에도 그곳은 막다른 벽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유하의 손전등 빛이 닿은 곳에는, 분명히, 낡은 철문이 있었다. 벽과 완전히 동일한 색으로 칠해져 있어 눈에 잘 띄지 않았지만, 그 존재감만은 거대했다. 문고리조차 보이지 않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투박한 철문이었다.

    유하는 홀린 듯 그 문으로 다가갔다. 발소리조차 내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럽게. 코끝을 스치는 금속성 냄새가 더욱 강렬해졌다. 문에 손을 대자,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차가운 감촉이 손끝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수십 년간 지하 깊은 곳에 갇혀 있던 한기가 손목을 타고 심장으로 스며드는 듯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아무리 밀고 당겨도 움직이지 않았다. 잠겨 있는 건가? 아니면 그냥 굳게 닫힌 것인가?
    유하는 손전등을 들어 문 주변을 비췄다. 그리고 문틀의 가장자리, 바닥과 만나는 지점에 아주 희미한 틈새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마치 누군가 칼날로 억지로 쑤셔 넣은 듯한 미세한 틈새. 그 틈새 안쪽에서, 아주 작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붉은색에 가까운, 어둡고 끈적이는 듯한 빛.

    그것은 단순한 틈새가 아니었다. 틈새가 아니라, *구멍*이었다.
    유하는 몸을 숙여 눈을 가까이 댔다. 구멍 너머는 어두웠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본 것 같았다. 희미하게 흔들리는 그림자. 그리고,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흐느낌.*
    아니, 흐느낌보다는 훨씬 더 원초적이고 기괴한 소리였다. 마치 짐승이 발톱으로 긁어대는 듯한, 그러나 그 안에 어떤 고통이 스며든 듯한 소리. 불규칙하고 억눌린, 웅얼거리는 소리.

    유하의 등골을 차가운 전율이 훑고 지나갔다.
    이것은 단순한 아카이브가 아니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갇혀* 있었다.
    더 자세히 보려고 구멍에 눈을 더 바싹 대는 순간, 유하의 발밑에 뭔가 채이는 느낌이 들었다.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발밑을 손전등으로 비추자, 거기에는 녹슨 쇠사슬 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그 쇠사슬은 끊어져 있었는데, 한쪽 끝은 마치 강한 힘에 의해 억지로 뜯겨 나간 것처럼 너덜너덜했다. 그리고 쇠사슬 조각 옆에는, 아주 작고 낡은, 헝겊 인형의 머리 부분이 놓여 있었다. 한쪽 눈은 꿰매지다 만 듯 실밥이 튀어나와 있었고, 솜이 터져 나와 누렇게 변색되어 있었다.

    누군가의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섬뜩했다. 이곳의 분위기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기괴한 소리와, 이 낡은 인형의 조합은, 유하의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순간, 머릿속에서 아론 교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가 건넨 쪽지, 그리고 그가 유하에게만 특별히 이 임무를 맡긴 이유. 어쩌면 교수는 유하가 이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바랐던 건 아닐까? 혹은… 유하가 이곳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이미 어떤 거대한 계획의 일부가 되어버린 건 아닐까?

    두려움이 목구멍을 틀어막았다. 유하는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했다. 이 철문 안쪽에 있는 것은 단순한 ‘금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그리고 어쩌면 숨 쉬고 있는, 끔찍한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했다.
    여기서 도망쳐야 한다. 지금 당장.

    유하가 몸을 돌려 서가를 향해 막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등 뒤의 철문에서, 다시 한번,
    *철컥… 덜그럭.*
    이번에는 쇠사슬이 흔들리는 소리 같았다. 그리고 그 소리 뒤에는, 좀 더 선명해진, 낮고 끈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왔구나.”
    아주 희미한, 하지만 분명히 인간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마치 유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

    유하의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그녀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 웃음소리는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문틈으로 새어 나오던 붉은 빛이, 아주 조금씩, 박동하는 것처럼 깜빡이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아니, *무언가가* 그 문 너머에서 유하를 주시하고 있었다.
    유하는 들고 있던 책을 떨어뜨릴 뻔했다. 공포가 온몸을 마비시켰지만,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녀의 몸을 움직이게 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유하는 미친 듯이 복도를 가로질러 달리기 시작했다. 낡은 책들이 빼곡한 서가들 사이를 헤치며, 어둠 속으로, 다시 지상으로.

    하지만 그녀의 등 뒤에서는, 끈적하고 기이한 웃음소리가 복도를 가득 채우며 쫓아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소리 사이로, 아주 희미하게, 누군가의 낮은 속삭임이 섞여 들려왔다.
    “찾았다….”

    유하는 숨이 턱 막혔다. 이 지하실은 단순한 아카이브가 아니었다.
    이곳은 거대한 무덤이자, 동시에 살아있는 무언가를 가두는 감옥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수십 년간 잊혔던 끔찍한 금기가, 방금 깨어난 참이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너무 깊이 들어와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