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핏빛 자물쇠
빗방울이 유리창을 맹렬히 두드렸다. 검은 강물처럼 쏟아지는 비는 밤의 어둠을 더욱 짙게 만들었고, 천둥은 하늘이 찢어지는 듯 포효하며 오래된 저택의 유리창을 흔들었다. 인적이 드문 산자락에 고립된, 고색창연한 이택은 오늘 밤 유독 음산한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낡은 석벽과 덩굴에 뒤덮인 외관은 마치 거대한 짐승이 웅크리고 있는 듯했고, 삐걱거리는 현관문은 이따금 거친 바람에 흔들리며 낡은 경첩의 신음 소리를 토해냈다.
“최형사님, 이건…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순경의 목소리에는 명백한 공포와 혼란이 섞여 있었다. 그의 눈빛은 빗물에 젖은 거미줄처럼 위태로웠다. 최형사는 미간을 찌푸린 채 어둠이 가득한 복도를 지나 문제의 방 앞에 섰다. 묵직한 오크나무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의 옆에는 저택의 고용인이자 사건의 첫 발견자인 중년의 여인이 창백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녀의 손은 연신 떨리고 있었고, 입술은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듯 움직였으나 어떤 말도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말씀해 보세요, 김씨.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최형사가 나직하게 물었다.
“밤… 밤늦게까지 주인어른이 서재에서 나오시질 않아서… 무슨 일 있으신가 해서 문을 열려고 했는데… 잠겨 있었어요. 안에서… 안에서 잠겨 있었는데… 인기척도 없고… 불도 꺼져 있었고… 그래서… 그래서 혹시나 해서 관리인을 불렀는데…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갔더니…”
그녀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최형사는 짧게 한숨을 쉬고는 문에 달린 낡은 황동 손잡이를 응시했다. 자물쇠는 안에서 걸려 있었다. 외부에서는 절대 열 수 없는 구조였다. 관리인이 강제로 문을 부수고 들어갔다는 흔적이 선명했다.
“자, 들어가 보시죠.”
그가 문을 완전히 열자, 차갑고 눅눅한 공기가 훅 끼쳐 나왔다. 방 안은 암흑에 잠겨 있었다. 순경 한 명이 손전등을 켰고, 좁은 빛줄기가 방의 풍경을 더듬어 나갔다.
서재는 고풍스러운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벽난로, 낡은 가죽 소파, 그리고 벽면 가득 채워진 책장. 그 모든 것이 수십 년 전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듯했다. 방 안에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비릿한 쇠 냄새가 섞여 있었다. 피 냄새였다.
빛이 닿은 곳에는 한 남자가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 등에는 묵직한 가죽 장정의 책이 놓여 있었고, 핏자국이 점점이 튀어 있었다. 희생자는 이 저택의 주인이자, 한때 명망 높았던 고고학자 한주원 박사였다. 그의 등에는 칼이 깊숙이 박혀 있었고, 핏자국은 축축한 나무 바닥에 넓게 번져 마치 핏빛 연못을 이룬 듯했다.
“창문은 어떻지?” 최형사가 물었다.
“모두 안에서 걸쇠가 잠겨 있었습니다. 일부는 오래된 나무판으로 아예 막아놓은 상태였습니다. 틈도 없어요. 외부 침입 흔적은 전혀 없습니다.” 순경이 보고했다.
최형사는 침착하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밀실 살인. 그것도 완벽에 가까운 밀실이었다. 창문도, 문도 모두 안에서 걸어 잠겨 있었고, 다른 출입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방 안에는 오직 한주원 박사만이 쓰러져 있었다. 자살이라고 보기엔 등 뒤에 박힌 칼이 너무나도 명백한 살인의 증거였다.
그때, 방 한구석에서 낡은 오르골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섬뜩할 정도로 느리고, 음정이 맞지 않는 멜로디였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손전등 빛이 닿자, 오르골 옆에는 낡은 인형 하나가 놓여 있었다. 찢어진 드레스를 입은 채, 유리 눈동자는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게… 여기 원래 있던 겁니까?” 최형사가 고용인에게 물었다.
“아뇨… 주인어른은 이런 걸 좋아하지 않으셨어요. 아이들 장난감 같은 걸… 서재에 두실 분이 아니십니다.” 여인이 공포에 질린 목소리로 답했다.
그때였다. 저택의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빗소리에 묻혀 희미하게 들려오는 발소리는 한 점의 망설임도 없이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최형사의 미간이 더욱 깊어졌다. 이 끔찍한 현장에 더 이상 불필요한 발자국은 곤란했다.
“누구야! 함부로 들어오지 마!” 순경이 소리쳤다.
그러나 발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이윽고, 키가 크고 마른 한 남자가 서재 문 앞에 섰다.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를 가리고 있었지만, 날카로운 눈매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의 코트에서는 빗물이 뚝뚝 떨어져 바닥에 검은 얼룩을 남겼다. 그는 젖은 장갑을 벗어 주머니에 넣고는, 마치 제 집 안방이라도 되는 양 태연하게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서영한 씨. 결국 오셨군요.” 최형사는 한숨을 쉬듯 말했다. 그에게는 이 남자만큼은 제발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가 오면, 언제나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벌어지곤 했으니까.
서영한은 아무 말 없이 방 안을 스캔했다. 그의 시선은 핏자국, 시체, 잠금장치, 찢어진 커튼, 낡은 책장, 그리고 기괴한 인형과 오르골을 스치듯 지나갔다. 마치 사진이라도 찍는 것처럼, 그의 눈동자는 모든 디테일을 빠짐없이 흡수하는 듯했다.
“상황은 들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최형사가 설명했다. “안에서 잠겨 있었고, 외부 침입 흔적은 전무합니다. 박사님은 등 뒤에 칼이 박힌 채 발견되셨습니다. 자살은 불가능하죠.”
서영한은 대답 대신 책상에 엎드린 박사의 시체 옆으로 다가갔다. 그는 몸을 숙여 바닥을 응시했다. 시체의 그림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곳이었다. 낡은 나무 바닥에는 핏자국으로 그려진 묘한 형상이 있었다. 찌그러진 오각형 안에 눈동자가 그려진 듯한, 기이하면서도 불길한 문양이었다. 문양에서는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차가운 기운이 솟아나는 것 같았다.
“이건…” 순경이 침을 꿀꺽 삼켰다.
서영한은 손가락으로 그 문양을 천천히 쓸어보았다. 그의 표정은 변함이 없었지만, 눈빛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호기심과 함께 미묘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책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벽면 가득 꽂힌 책들 중 유독 낡고 두툼한 한 권의 책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고대 상형문자가 표지에 새겨진 책이었다.
“최형사님.” 서영한이 나직하게 불렀다.
“네.”
“이 방,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지 못했습니까?”
“이상하다니요? 밀실 살인이라는 것 자체가 이상하죠.” 최형사는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서영한은 고개를 저었다. “그 말고요. 이 방… 왠지 모르게 한기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 공기… 죽은 자의 악취와는 또 다른,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끈적함이 묻어 있습니다.”
그는 오르골 옆의 인형을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찢어진 드레스 사이로 드러난 인형의 팔목에는 얇은 끈이 감겨 있었다. 그리고 그 끈은 인형의 손에 들린 작은 나무 조각과 이어져 있었다. 서영한은 그 나무 조각을 집어 들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부적처럼 보였다. 표면에는 미세한 흠집들이 무수히 나 있었다.
“이게 발견된 후, 이 오르골이 저절로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용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서영한은 나무 조각을 쥔 채, 다시 한번 시체가 엎드린 책상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눈은 한 곳에 못 박힌 듯 멈췄다. 책상 모서리, 박사의 손이 닿을 듯 말 듯한 위치에 아주 미세한 흠집 하나가 나 있었다. 누군가 무언가를 긁어낸 듯한 흔적이었다. 그것은 얼핏 보아서는 알아차리기 힘든, 거의 눈에 띄지 않는 자국이었다.
서영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았다. 그것은 비웃음도, 조소도 아니었다. 단지 퍼즐의 조각이 맞춰졌을 때 보이는 만족감에 가까웠다.
“이 방은… 누군가 나간 후에 닫힌 게 아닙니다.”
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했다.
“처음부터 살인자가 이 방에 있었던 게 아니에요.” 서영한은 싸늘한 시선으로 핏빛 문양이 그려진 바닥을 응시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애초에 ‘사람’이 없었던 겁니다.”
빗소리가 격렬하게 쏟아지는 가운데, 그의 목소리는 유독 선명하게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 말은 모두에게 더 깊은 혼란과 함께, 차가운 공포를 선사했다. 밀실 살인의 트릭을 넘어선, 이 세계의 질서마저 흔드는 듯한 불길한 예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