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자:] mindulle

  • 오컬트 호러 독립적인 단편 소설

    어둠이 내려앉은 낡은 창고, 희미한 등유 램프 불빛 아래 한지우는 땀으로 젖은 얼굴을 쓸어 올렸다. 찢어지고 해진 무명옷 위로 흙먼지와 알 수 없는 얼룩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손에 들린 것은 낡은 놋쇠 단지. 그 속에는 말린 쑥과 이름 모를 약초, 그리고 핏빛으로 물든 머리카락 한 줌이 들어 있었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역겨운 비린내가 코를 찔렀지만, 지우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횃불처럼 이글거렸다. 증오와 복수심으로 가득 찬 눈이었다.

    “강준혁… 네가 내게 했던 짓, 고스란히 돌려주마.”

    목소리는 쉬어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결의는 바위를 뚫을 듯 단단했다.

    ***

    시간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우와 준혁은 대학 시절부터 둘도 없는 친구였다. 졸업 후에는 스타트업을 함께 일구며 꿈을 키웠다. 지우는 기술 개발에, 준혁은 영업과 투자 유치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회사는 무섭게 성장했고, 성공은 눈앞에 있는 듯했다. 지우는 준혁을 누구보다 믿었다. 어릴 적부터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고, 서로의 가장 깊은 고민까지 털어놓던 사이였다. 그래서 준혁의 그 달콤한 제안을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지우야, 이번에 우리 회사에 엄청난 투자를 하겠다는 대기업이 나타났어. 그런데 조건이 좀 까다로워. 네가 가진 주식 일부를 내 이름으로 돌려놓고, 자금 세탁 과정을 거쳐야 한대. 그래야 대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없다고.”

    준혁은 특유의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지우는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준혁의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자신을 배신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더 큰 성공을 위한 일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하지만 그건 지우의 순진한 착각이었다. 준혁은 그 계약을 빌미로 지우의 지분을 완전히 가로챘다. 그리고 지우를 회사의 모든 자금을 횡령한 파렴치한으로 몰아세웠다. 증거는 차고 넘쳤다. 지우의 이름으로 된 유령 회사, 입출금 내역, 그리고 준혁이 미리 심어둔 동료들의 위증까지. 언론은 지우를 ‘탐욕스러운 천재 개발자’로 둔갑시켰고, 지우의 명예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찰에 붙잡혀 조사를 받던 지우는 믿을 수 없는 현실에 절규했다. 준혁은 단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대신 변호사를 통해 “네가 다 뒤집어써야 우리가 산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우의 부모님은 그 충격으로 병을 얻었고,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났다. 지우는 모든 것을 잃었다. 사랑, 명예, 가족, 그리고 미래까지. 남은 것은 오직 깊은 나락과 심장을 찢는 배신감뿐이었다.

    정신병원에서 지내던 어느 날 밤, 지우는 우연히 병원 뒷산에서 버려진 듯한 낡은 사당을 발견했다. 먼지가 잔뜩 쌓인 그곳에는 오래된 목함 하나가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열어본 목함 안에는 낡은 종이와 함께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작은 돌멩이가 있었다. 종이에는 알 수 없는 고어로 쓰인 글자들이 가득했고, 그림은 더더욱 섬뜩했다. 인간의 형상을 한 무언가가 검은 연기와 함께 피를 흩뿌리는 형상이었다. 지우는 그 글자들을 읽어 내려갔다. 마치 오래전부터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글자들은 지우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자 하는 자여. 고통받는 영혼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자여. 어둠의 제단에 피를 바치고, 그림자의 주인을 부르라. 네 심장의 가장 깊은 곳에 맺힌 증오가 곧 힘이 되리라. 허나, 그 대가는… 네 영혼을 넘어서는 공허함이 될 것이니.’

    지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모든 것을 잃은 자신에게, 영혼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녀는 목함 속의 돌멩이를 꽉 움켜쥐었다. 차가운 돌멩이에서 섬뜩한 기운이 솟아나 지우의 심장을 파고들었다. 그때부터 지우는 달라졌다. 폐허가 된 집으로 돌아온 지우는 칩거하며 그 고문서에 적힌 대로 기이한 의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산속을 헤매며 낯선 약초를 캐고,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피 묻은 의례를 치렀다.

    ***

    준혁은 승승장구했다. 지우를 밟고 올라선 회사는 코스닥 상장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젊은 사업가로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았다. 화려한 연예인과 결혼을 앞두고 있었고, 강남의 최고급 빌라에서 살며 남부럽지 않은 삶을 누렸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준혁은 이상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그는 매일 밤,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 속에서 홀로 헤매었다. 뒤에서는 정체 모를 그림자들이 쫓아왔고, 그 그림자들은 지우의 목소리로 준혁을 비난했다. “탐욕스러운 자! 배신자!” 꿈은 너무나 생생했고, 준혁은 매일 밤 식은땀을 흘리며 깨어났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피곤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악몽은 현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잠결에 듣던 지우의 목소리가 깨어 있을 때도 귓가에 맴돌았다. 사무실에서 혼자 일하고 있는데, 비어있는 맞은편 의자에서 지우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는 환영을 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깊은 증오로 가득 차 있었다.

    “헛것을 봤나…” 준혁은 고개를 흔들었지만, 공포는 서서히 그의 목을 조여왔다.

    회사의 중요한 계약 건들이 연달아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마지막 순간에 상대방이 돌변했다. 준혁은 신경질적으로 변했고, 직원들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그의 성격은 나날이 포악해졌고, 사람들은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결혼을 약속했던 연예인 약혼녀도 그에게 등을 돌렸다. “오빠, 요즘 너무 이상해. 자꾸 나한테 화내고, 눈빛이 무서워. 그리고… 밤마다 오빠 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 그녀는 준혁의 비대한 탐욕에 질려 떠났다.

    준혁은 점점 피폐해졌다.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사라졌고, 눈은 공포와 편집증으로 가득 찼다. 그는 밤마다 술을 마시며 잠을 청했지만, 악몽은 더욱더 깊고 잔혹해졌다. 꿈속에서 그는 산 채로 땅속에 묻혔고, 지우의 웃음소리가 땅 위에서 울려 퍼졌다.

    ***

    마침내, 지우가 준비한 의식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낡은 창고, 등유 램프 불빛 아래. 지우는 놋쇠 단지 속의 재를 꺼내 오래된 양피지에 복잡한 주술 문양을 그렸다.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떨어뜨리자, 문양은 섬뜩한 붉은빛으로 빛났다. 그녀는 주술을 외기 시작했다. 고어에 가까운 낯선 언어들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창고 안의 공기는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렸다. 바닥에 그려진 문양 위로 검은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 연기 속에서 형체가 없는 무언가가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가운 기운이 지우의 몸을 감쌌지만, 그녀는 오히려 더 강렬한 희열을 느꼈다.

    “이것이… 너의 심장을 파고들 고통이다, 준혁아.”

    그날 밤, 준혁은 자신의 최고급 빌라 침대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겪었던 어떤 악몽보다도 생생하고 끔찍한 현실이 그를 덮쳤다. 그의 침실은 순식간에 어둡고 축축한 지하 감옥으로 변했다. 쇠창살 너머로는 자신의 부모님과 약혼녀가 자신을 비난하며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원망으로 가득했고, 입에서는 지우의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 죄인아! 네가 탐욕 때문에 우리의 삶을 망쳤다!”

    준혁은 비명을 지르며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그의 손목과 발목은 보이지 않는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감옥 바닥에서는 끈적이는 검은 액체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악취가 코를 찔렀다. 액체 속에서 기괴한 촉수들이 솟아나 준혁의 몸을 감쌌다. 촉수들은 마치 살아있는 의지를 가진 것처럼 그의 살을 파고들었다.

    “안 돼! 제발! 살려줘!”

    그때, 감옥의 어둠 속에서 희미한 형체가 걸어 들어왔다. 창백한 얼굴, 깊이를 알 수 없는 눈, 그리고 싸늘한 미소. 한지우였다. 그녀는 한 손에 낡은 놋쇠 단지를 들고 있었다.

    “준혁아. 기억나니? 네가 나에게 했던 말. ‘네가 다 뒤집어써야 우리가 산다’고 했지? 나를 나락으로 밀어 넣고, 내 삶을 짓밟고,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네가 얻은 것은 무엇이었지?”

    지우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준혁의 심장을 꿰뚫었다.

    “지우… 지우야… 제발…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준혁은 몸부림쳤지만, 촉수들은 더욱더 강하게 그를 옥죄었다. 그의 눈앞에서 지우는 놋쇠 단지를 들어 올렸다. 그 안에서 어둠이 뿜어져 나오며 감옥 전체를 뒤덮었다.

    “네 탐욕이 너를 삼키리라. 네가 빼앗은 모든 것이 너의 고통이 되리라.”

    지우의 말이 끝나자, 촉수들은 준혁의 온몸을 휘감아 그의 입을 벌렸다. 검은 액체가 그의 목구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역겨운 비린내와 함께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 듯한 끔찍한 고통이 전신을 찢어발겼다. 준혁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의 눈은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찼고, 마치 산 채로 잡아먹히는 듯한 끔찍한 감각에 온몸이 뒤틀렸다. 그의 몸은 순식간에 시들었고, 마치 오랜 시간 미라가 된 것처럼 말라붙었다. 그의 심장은 격렬하게 요동치다 이내 멎었다.

    이 모든 광경은 준혁의 머릿속에서, 그리고 그의 침대 위에서 동시에 벌어졌다. 비명 소리 없는 죽음이었다. 그의 얼굴은 극심한 공포와 고통에 일그러진 채, 영원히 굳어버렸다.

    ***

    며칠 뒤, 강준혁 대표의 사망 소식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사인은 급성 심장마비. 그러나 그의 얼굴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기이하게 변형되어 있었다는 기묘한 소문이 돌았다.

    낡은 창고. 지우는 홀로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이제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다. 복수는 끝났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어떤 만족감도, 기쁨도 없었다. 공허함만이 가득했다. 어둠의 힘은 준혁의 영혼뿐만 아니라 지우의 심장에서도 무언가를 가져갔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횃불처럼 이글거렸지만, 그 빛은 이제 생명력을 잃은 잿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자신이 이룩한 복수극의 잔해 속에서 텅 빈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창문 밖으로 희미한 달빛이 스며들었다. 그 빛 속에서, 지우의 그림자는 유난히 길고, 그리고 깊이를 알 수 없을 만큼 검게 드리워져 있었다. 그녀는 이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까. 아니, 그녀는 여전히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둠의 계약은 그녀에게 복수를 허락했지만, 그 대가로 그녀 자신의 그림자를 빼앗아갔다. 그녀의 영혼은 복수라는 이름의 먹구름에 완전히 잠식되어 버렸다.

  • 좀비 아포칼립스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에피소드 제목] 봉화: 첫 번째 불꽃

    **[등장인물]**
    * **단우**: 낡은 도복을 입은 청년. 고아 출신으로, 우연히 익힌 무술로 생존해왔다. 겉으로는 무심해 보이지만, 내면에 강인한 의지와 정의로움을 품고 있다.
    * **천하맹주**: 연륜이 느껴지는 백발의 노인. 무림의 정신적 지주이자, 이번 대회의 주최자. 깊은 지혜와 함께 강한 기운을 지니고 있다.
    * **흑풍**: 검은 옷을 입은 건장한 무사. 거칠고 호전적인 성격이며, 강력한 힘을 자랑한다. 우승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다.
    * **진영**: 단우와 같은 고아원 출신. 약초와 의술에 능하며, 단우의 유일한 피붙이 같은 존재.

    **[장면 1] 잿빛 도시, 최후의 성전**

    **#1**
    * **화면**: 잿빛으로 물든 도시의 스카이라인. 무너진 빌딩 잔해들과 텅 빈 도로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스산한 바람 소리가 폐허를 훑고 지나간다.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이형(異形)들의 울부짖음.
    * **내레이션 (천하맹주, 엄숙한 목소리)**:
    “사상자들의 곡소리가 끊이지 않던 날들. 살점이 뜯겨나가고 영혼마저 오염되던 절망의 시대.”
    * **SFX**: (스산한 바람 소리, 멀리서 들리는 이형들의 낮고 쉰 울음소리)

    **#2**
    * **화면**: 폐허 한가운데, 기적처럼 보존된 거대한 원형 경기장. 낡고 해졌지만, 임시방편으로 수리된 흔적이 역력하다. 경기장 주변에는 철조망과 임시 바리케이드가 겹겹이 쳐져 있고, 그 너머로 수많은 인파가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표정으로 서 있다.
    * **내레이션 (천하맹주)**:
    “인류는 그렇게, 존엄을 잃어갔다. 그러나, 마지막 한 줄기 빛은 꺼지지 않았다.”
    * **SFX**: (웅성거리는 군중 소리)

    **#3**
    * **화면**: 경기장 중앙, 높이 솟은 단상 위에 천하맹주가 서 있다. 그의 얼굴은 깊은 고뇌와 단호함이 교차한다. 그의 시선은 경기장을 가득 메운 무림인들과 시민들을 훑는다.
    * **천하맹주**:
    “모두 보았을 것이다! 저 바깥을! 우리의 삶을 송두리째 짓밟아버린 저 지옥도를!”
    * **SFX**: (숙연해지는 군중, 침묵)

    **#4**
    * **화면**: 천하맹주의 뒤로, 홀로그램처럼 허공에 떠오른 고서 한 권이 빛을 발한다. 책 표면에는 알 수 없는 고문자들이 새겨져 있고, 그 책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비로운 기운이 경기장을 감싼다.
    * **천하맹주**:
    “저것은… ‘천공 비록’이라 불리는 고대의 비급. 먼 옛날, 만물을 창조하고 종말을 다스렸다는 신비한 힘이 봉인된 기록이다.”
    * **SFX**: (웅성거림, 놀라움 섞인 탄성)

    **#5**
    * **화면**: 군중 사이, 낡은 도복을 입은 단우가 팔짱을 낀 채 단상을 올려다보고 있다. 그의 눈빛은 맹주의 말에 흔들림 없이 고요하지만, 깊은 곳에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스쳐 지나간다. 옆에 선 진영은 그의 팔을 불안한 듯 살짝 잡고 있다.
    * **진영**: (작은 목소리로)
    “단우 오라버니… 정말 저 비급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단우**: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구할 수 있어야지. 안 그러면, 여기까지 온 의미가 없으니까.”
    * **SFX**: (군중의 웅성거림)

    **#6**
    * **화면**: 다시 천하맹주에게 줌인. 그의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는다.
    * **천하맹주**:
    “저 이형들은 단순한 좀비가 아니다. 그들의 몸속에선 세상의 이치를 거스르는 사악한 기운이 꿈틀거린다! 우리의 무공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우리는 더 강해져야 한다! 아니…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한다!”
    * **SFX**: (두근거리는 북소리,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징 소리)

    **#7**
    * **화면**: 천하맹주가 손을 들어 경기장 한가운데를 가리킨다.
    * **천하맹주**:
    “이 자리는, 천하의 운명을 건 무림 대회의 장이 될 것이다! 수많은 무림 고수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검증된 자만이! 저 ‘천공 비록’의 힘을 사용할 자격을 얻을 것이다! 이것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 ‘무신전(武神戰)’의 시작이다!”
    * **SFX**: (우레와 같은 함성, 환호성, 흥분된 웅성거림)

    **[장면 2] 피 튀기는 개막전**

    **#8**
    * **화면**: 경기장 한가운데, 두 명의 무사가 대치하고 있다. 한 명은 맹렬한 기세를 뿜어내는 장검의 고수 ‘화산파 오검’ 중 한 명인 봉명(鳳鳴), 다른 한 명은 단단한 체구에 거대한 철퇴를 든 ‘마강문’의 철산(鐵山). 경기장 바닥은 이미 흙먼지로 뿌옇다.
    * **해설자 (쩌렁쩌렁한 목소리)**:
    “자! 드디어 시작된 무신전의 첫 번째 대결! 화산파의 봉명과 마강문의 철산입니다! 과연 누가 승리하여 다음 라운드로 진출할 것인가!”
    * **SFX**: (관중들의 함성, 흥분된 외침)

    **#9**
    * **화면**: 봉명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인다. 그의 검 끝에서 푸른 기운이 일렁인다.
    * **봉명**:
    “마강문의 철퇴가 아무리 무겁다 한들, 내 검을 막을 순 없을 것이다!”
    * **철산**: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웃기는 소리! 가느다란 젓가락으로 내 철퇴를 막으려 하다니! 산도 부술 기세다! 받아라! ‘파쇄격(破碎擊)’!”
    * **SFX**: (쉬이이잉-! (검풍 소리), 콰아앙-! (철퇴 내리찍는 소리))

    **#10**
    * **화면**: 철산이 거대한 철퇴를 휘둘러 봉명에게 맹렬하게 달려든다. 철퇴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한 기운이 경기장 바닥을 움푹 파이게 만든다. 봉명은 재빠르게 몸을 날려 공격을 피하지만, 그 압도적인 기세에 옷자락이 찢어진다.
    * **SFX**: (바람을 가르는 철퇴 소리, 퍽-! (바닥에 철퇴가 박히는 소리), 와아아아-! (관중들의 환호))

    **#11**
    * **화면**: 봉명이 공중에서 몸을 비틀며 검을 휘두른다. 그의 검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뿜어져 나와 철산의 어깨를 스치고 지나간다. 철산의 어깨에서 피가 튀어 오른다.
    * **봉명**:
    “‘화산신검(華山神劍)’!”
    * **철산**: (이를 악물고)
    “크윽… 이 정도론 어림없다!”
    * **SFX**: (피이이잉-! (검기 소리), 찍-! (살 찢어지는 소리), 으윽-! (철산의 신음))

    **#12**
    * **화면**: 두 무사는 광풍처럼 맹렬하게 공격을 주고받는다. 검과 철퇴가 부딪히는 쇠붙이 소리가 경기장을 가득 채우고,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 오른다. 관중들은 숨죽이며 이 격렬한 대결을 지켜본다.
    * **내레이션 (단우, 생각)**:
    _다들… 필사적이군. 져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이 저들 무공의 깊이를 더하는 것인가._
    * **SFX**: (챙-! 콰앙-! 챙강-! (금속음의 향연), 거친 숨소리, 으르렁거리는 기합)

    **#13**
    * **화면**: 봉명이 마지막 일격을 날린다. 그의 검은 마치 푸른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철산의 심장을 겨냥한다. 철산은 필사적으로 철퇴를 휘둘러 막아내려 하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검이 그의 갑옷을 뚫고 들어간다.
    * **봉명**:
    “‘화산비검(華山飛劍)’!”
    * **철산**: (눈을 크게 뜨며)
    “커억…!”
    * **SFX**: (쉬이이익-! (빠른 검격 소리), 퍽-! (몸에 박히는 소리), 털썩-! (쓰러지는 소리))

    **#14**
    * **화면**: 철산이 피를 토하며 쓰러지고, 봉명은 숨을 헐떡이며 칼끝을 바닥에 박는다. 경기장에는 정적이 흐르고, 이내 관중들의 엄청난 함성이 터져 나온다. 봉명의 얼굴에는 승리의 안도감과 함께 고통이 스쳐 지나간다.
    * **해설자**:
    “승자는… 화산파 봉명입니다! 역시! 명불허전이군요! 이대로 승승장구할지 기대됩니다!”
    * **SFX**: (환호성 폭발, 박수갈채)

    **[장면 3] 그림자 속의 강자들**

    **#15**
    * **화면**: 경기장 외곽, 햇빛이 잘 들지 않는 그늘진 곳에 흑풍이 팔짱을 낀 채 서 있다. 그의 눈은 방금 승리한 봉명을 꿰뚫어 볼 듯 날카롭다. 그의 입가에는 비웃음 같은 미소가 걸려 있다.
    * **흑풍**: (나지막이, 거친 목소리로)
    “고작 저 정도… 흥.”
    * **SFX**: (낮게 으르렁거리는 소리)

    **#16**
    * **화면**: 흑풍의 옆으로, 수수께끼의 여인 ‘비화’가 나타난다. 그녀는 얼굴을 가린 채 날렵한 실루엣을 자랑한다.
    * **비화**:
    “그렇게 쉽게 판단하지 마라, 흑풍. 저들은 이형들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모두 제 몫을 하는 강자들.”
    * **흑풍**:
    “강자? 강한 것은 나 하나로 족하다. 저 비급은… 내 것이다.”
    * **SFX**: (바람 소리)

    **#17**
    * **화면**: 단우와 진영. 진영은 승리한 봉명의 강인함에 감탄하고 있다.
    * **진영**:
    “와… 정말 대단하다. 저게 바로 무림 고수의 힘이구나.”
    * **단우**: (턱을 괸 채 묵묵히)
    “…강하긴 하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해.”
    * **진영**: (고개를 갸웃거리며)
    “뭐가 부족해? 오라버니도 저렇게 싸울 수 있어?”
    * **단우**: (식어버린 눈으로 경기장 너머, 폐허를 바라본다)
    “…저건 시작에 불과하다. 진짜 강함은 저런 곳에서 나오는 게 아니야.”
    * **SFX**: (조용한 배경음)

    **#18**
    * **화면**: 단우의 시선이 머무른 곳. 폐허 너머, 스모그처럼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수많은 붉은 눈동자들이 빛을 발한다. 이형들의 그림자가 마치 파도처럼 일렁이는 모습.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유난히 크고 검은, 기괴한 형체가 어렴풋이 보인다.
    * **내레이션 (단우, 생각)**:
    _이형들… 그들은 진화하고 있다.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얻어야 할 것은 단순히 강한 무공이 아닐지도 모른다._
    * **SFX**: (이형들의 낮고 기분 나쁜 울부짖음, 점점 커지는 소리)

    **[장면 4] 단우의 등장**

    **#19**
    * **화면**: 해설자의 목소리가 다시 울려 퍼진다. 이번에는 다음 대결을 알린다.
    * **해설자**:
    “자! 다음 대결입니다! 고아 출신으로 알려진 미지의 무사! 단우! 그리고 그에 맞서는 상대는… 명문 문파 출신! ‘강철문’의 우두머리! 천용!”
    * **SFX**: (다시 웅성거리는 군중, 기대 섞인 외침)

    **#20**
    * **화면**: 단우가 무심한 듯 경기장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의 낡은 도복과 평범한 외모는 주변의 화려한 무사들과 대비된다. 그의 상대 천용은 거대한 몸집과 우락부락한 근육을 자랑하며, 단우를 비웃는 듯한 표정이다.
    * **천용**: (비웃으며)
    “흐음… 고아 출신이라. 깡마른 녀석이 어디서 감히 무신전에 얼굴을 들이밀어? 얼른 가서 어미 젖이나 더 먹고 와라!”
    * **SFX**: (관중들 사이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야유)

    **#21**
    * **화면**: 단우는 천용의 비아냥거림에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의 눈은 오직 천용의 움직임에만 집중되어 있다.
    * **단우**: (차가운 목소리로)
    “쓸데없는 소리 할 시간에, 힘이나 아껴두는 게 좋을 거다. 금방 사라질 테니까.”
    * **SFX**: (정적, 관중들의 놀란 시선)

    **#22**
    * **화면**: 천용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진다. 그는 거대한 주먹을 쥐고 단우에게 달려든다. 그의 주먹은 마치 쇠망치처럼 단단해 보인다.
    * **천용**:
    “이 건방진 녀석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강철 쇄박권(鋼鐵碎朴拳)’!”
    * **SFX**: (우오오오-! (천용의 기합), 콰앙-! (강력한 펀치 소리))

    **#23**
    * **화면**: 천용의 주먹이 단우의 얼굴을 향해 날아든다. 하지만 단우는 놀랍도록 침착하게 몸을 비튼다. 마치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듯 자연스러운 움직임. 그의 손이 천용의 팔목을 살짝 스쳐 지나간다. 그 순간, 천용의 몸이 기묘하게 휘청거린다.
    * **내레이션 (해설자, 놀란 목소리)**:
    “아니! 저 움직임은… 마치… 그림자처럼 미끄러지는 듯합니다! 보셨습니까! 천용의 주먹이 허공을 갈랐습니다!”
    * **SFX**: (쉬이이익-! (단우의 빠른 움직임), 푸슉-! (찰나의 접촉 소리), 욱-! (천용의 헛구역질))

    **#24**
    * **화면**: 단우는 이미 천용의 등 뒤에 서 있다. 천용은 자신의 공격이 닿지도 않았는데 몸에 알 수 없는 충격을 느낀 듯 비틀거린다. 단우의 손가락 끝에서 보이지 않는 기운이 미약하게 흔들린다.
    * **단우**:
    “이 정도도 못 버텨서… 어떻게 저 바깥의 놈들과 싸우려고?”
    * **SFX**: (정적, 관중들의 혼란스러운 웅성거림)

    **#25**
    * **화면**: 천용이 비틀거리며 단우를 향해 몸을 돌리려 하지만, 이미 그의 전신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타격이 쌓인 상태다.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 **천용**: (경악하며)
    “이… 이게… 무슨…!”
    * **SFX**: (우두둑-! (몸속에서 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 털썩-! (쓰러지는 소리))

    **#26**
    * **화면**: 천용이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진다. 단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복의 먼지를 툭툭 털어낸다. 경기장 전체가 충격에 휩싸인 듯 조용하다.
    * **해설자**: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서… 승자는… 단우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격! 강철문 천용이… 단 한 번의 접촉으로 쓰러졌습니다!”
    * **SFX**: (폭발적인 환호와 충격 섞인 비명, 놀란 탄성)

    **[장면 5] 새로운 바람, 새로운 위협**

    **#27**
    * **화면**: 흑풍이 그늘 속에서 단우를 노려보고 있다. 그의 얼굴에는 처음으로 흥미와 함께 경계심이 스쳐 지나간다.
    * **흑풍**: (입꼬리를 올리며)
    “흐음… 제법이군. 저런 기술은 처음 본다.”
    * **비화**:
    “저런 고아 출신 무사가… 어디서 그런 기공을 익혔을까? 예사롭지 않아.”
    * **SFX**: (바람 소리)

    **#28**
    * **화면**: 단우가 진영이 있는 곳으로 걸어온다. 진영은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으로 단우를 맞이한다.
    * **진영**:
    “오라버니! 대단해! 정말 순식간이었어! 다들 난리가 났어!”
    * **단우**: (담담하게)
    “별거 아니야. 실전에서 쓰는 힘은 이런 데서 자랑할 만한 게 못 돼.”
    * **내레이션 (단우, 생각)**:
    _이형들의 기운은 날마다 짙어지고 있다. 경기장 밖에서 들려오는 저 울음소리… 언젠가 저들이 이 벽마저 뚫고 들어올 날이 올 거야. 그때까지, 우리는 저 비급의 힘을 손에 넣어야 한다._
    * **SFX**: (환호성이 잦아들고, 멀리서 이형들의 울부짖음이 다시 들려온다. 이전보다 훨씬 가깝고 흉측하게)

    **#29**
    * **화면**: 단우가 다시 폐허 너머의 어둠을 응시한다. 이번에는 어둠 속에서 붉은 눈동자들 사이로, 불길하게 빛나는 거대한 두 개의 보랏빛 눈이 단우를 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시선은 단순한 짐승의 것이 아닌, 지능적이고 악의적인 존재의 그것이다.
    * **천하맹주 (내레이션, 엄숙하게)**:
    “이 대회는 단순한 무술 겨루기가 아니다. 이것은… 살아남기 위한… 인류의 마지막 성전이다.”
    * **SFX**: (불길하고 낮은 이형의 포효 소리. 화면 가득 보랏빛 눈동자가 클로즈업되며 EPISODE 1 종료)


    **(끝)**

  • 무협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강후는 메마른 강바닥을 걷고 있었다. 한때 맑은 물줄기가 굽이쳐 흐르던 곳이었다지만, 이제는 쩍쩍 갈라진 진흙 바닥만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열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지면 위로 발자국을 남길 때마다, 먼지가 훅 끼쳐 올라 목구멍을 칼칼하게 만들었다. 며칠째 제대로 된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해 혀는 사포처럼 거칠었다.

    이곳이 강이었노라 말해주는 유일한 증거는, 녹슨 철골과 뒤틀린 교각의 잔해뿐이었다. 한때 거대한 다리였을 구조물은 이제 거대한 괴물의 뼈처럼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대재앙’이라 불리는 그날 이후, 세상은 숨 쉬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거대한 입처럼 변해 버렸다. 하늘은 언제나 흙빛이었고, 땅은 메말랐으며, 푸른 것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강후는 무심한 눈으로 멀리 보이는 언덕배기를 훑었다. 부서진 기와 조각들이 널려 있는 폐가 몇 채. 아마도 작은 마을의 흔적일 터였다. 저곳이라면 혹시, 우물이라도 남아 있을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살아야 했다. 이유 같은 건 이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살기 위해 움직이고, 살아남기 위해 숨 쉬었다.

    과거에는 이러지 않았다. 천 년 문명이라 불리던 시절, 강물은 맑았고, 숲은 우거졌으며, 사람들은 배고픔을 몰랐다. 무림맹이니, 마교니, 정파와 사파의 대결이니 하는 이름들은 이제 그저 썩어가는 고서 속 이야기일 뿐이었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무협이란, 고작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발버둥, 더럽고 추한 생존 기술에 불과했다.

    폐가에 다다르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함께 묘한 적막감이 감돌았다. 강후는 허리춤에 찬 녹슨 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런 곳일수록 경계를 늦추면 안 된다. 그의 눈은 부서진 문틈을 통해 집안을 훑었고, 귀는 바람 소리마저 놓치지 않으려 예민하게 움직였다.

    마을은 예상대로 버려진 지 오래였다. 간혹 짐승의 뼈가 뒹굴거나, 시커멓게 눌어붙은 재의 흔적이 발견될 뿐이었다. 강후는 부지런히 우물을 찾아 헤맸다. 그러다 마침내, 무너진 담벼락 구석에서 돌로 쌓아 올린 우물터를 발견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급히 우물로 다가섰지만, 끓어오르던 희망은 이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우물 안은 마른 나뭇가지와 흙먼지로 가득 차 있었고, 물은 바닥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절망감이 목을 조르는 순간, 강후의 귀에 미세한 소리가 포착되었다. 인기척.

    그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여 무너진 담벼락 뒤로 숨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적이 보이면 피하는 것이 상책. 하지만 피할 수 없다면… 그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검집에 닿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명의 그림자가 우물터로 다가왔다. 깡마른 몸에 찢어진 옷을 걸친 사내들. 그들의 눈은 굶주린 짐승처럼 번들거렸다. 허리춤에는 녹슨 단검이나 날카로운 괭이 같은 것이 매달려 있었다. 약탈자, 혹은 그저 절박한 생존자들. 이런 시대에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했다.

    “젠장, 여기도 아무것도 없잖아!”
    한 사내가 거칠게 투덜거렸다. 다른 사내는 우물 안을 들여다보고는 침을 뱉었다.
    “젠장할, 죽으라는 거냐?”
    그들의 대화는 절망과 분노로 가득했다. 강후는 그들의 상태를 파악했다. 지쳐 있고, 굶주려 있으며, 극도로 예민하다. 싸움이 벌어진다면 맹렬하게 달려들 것이다.

    그때, 그들의 시선이 강후가 숨어 있는 담벼락 쪽으로 향했다. 강후는 숨을 멈췄다. 들킨 것인가? 아니, 그들의 시선은 담벼락이 아니라, 담벼락 근처에 뒹굴고 있던 강후의 작은 가죽 주머니에 닿았다. 주머니 안에는 어제 겨우 사냥한 작은 쥐 고기 몇 점과 마른 약초 몇 뿌리가 들어 있었다. 이들에게는 생명줄과도 같은 귀한 것들.

    “이봐, 저거 좀 보라고.”
    한 사내가 손가락으로 주머니를 가리켰다. 다른 사내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변했다.
    “호오, 운이 좋은데? 저 안에 먹을 게 있을지도 몰라!”
    세 사내는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주머니 쪽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강후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가진 것이 없던 시절이라면 미련 없이 포기했겠지만, 이제는 한 조각의 쥐고기조차 목숨과 바꿀 만큼 귀한 것이었다.

    “거기 누구야!”
    선두에 서 있던 사내가 소리쳤다.
    강후는 천천히 담벼락 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은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끓어오르는 생존 본능이 담겨 있었다.
    “…”
    강후는 대답 대신 허리에 찬 검을 뽑았다. 녹슨 칼날이 햇빛을 받아 희미하게 번뜩였다. 화려한 검무나 멋들어진 발경 같은 것은 없었다. 오직 살아남기 위한 날 선 기세만이 그를 감쌌다.

    세 사내의 얼굴에 당혹감과 함께 굶주린 맹수 같은 광기가 스쳤다.
    “뭐야, 혼자잖아! 네놈이 가진 걸 모두 내놔라, 그럼 목숨만은 살려주지!”
    으름장을 놓는 사내의 말에 강후는 피식 쓴웃음을 흘렸다. 이 황량한 세상에서, ‘목숨만은 살려주지’라는 말은 가장 공허한 협박이었다. 죽지 않는다면 결국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거나, 다른 놈들에게 잡혀 죽을 뿐이었다.

    “내가 가진 건… 목숨뿐이다.”
    강후의 목소리는 갈라져 있었지만, 단호했다. 그의 몸에서 잔뜩 웅크렸던 기세가 살짝 풀리며, 곧바로 공격 태세로 전환되었다.

    세 사내가 동시에 덮쳐왔다. 괭이를 든 사내는 묵직한 일격을 날렸고, 단검을 든 사내는 옆구리를 노렸다. 강후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괭이 날을 피하고, 동시에 검을 휘둘러 단검을 든 사내의 손목을 노렸다. 챙! 쇳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강후의 검은 화려하지 않았다. 맹렬하게 뻗어 나가 상대를 제압하는 검이 아니었다. 그의 검은 마치 그림자처럼 움직였다. 상대의 공격을 흘리고, 틈을 만들고, 그 틈을 파고들어 치명타를 날리는 방식이었다. 절실함이 만들어낸 생존의 검이었다.

    단검을 든 사내가 손목에 깊은 상처를 입고 비명을 질렀다. 그 순간, 강후는 몸을 낮춰 괭이를 든 사내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뒤이어 달려들던 마지막 사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강후의 검이 번개처럼 뻗어 나가 괭이를 든 사내의 목덜미를 스쳤다. 쿨럭! 핏방울이 허공에 흩뿌려졌다. 사내는 컥 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한 명이 쓰러지자, 남은 두 사내의 눈빛에 공포가 서렸다. 하지만 그들의 굶주림은 공포보다 강했다. 특히 팔을 다친 사내는 분노에 찬 눈으로 다시 강후에게 달려들었다. 강후는 냉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망설임은 곧 죽음이었다.

    검이 다시 한 번 번뜩였다. 이번에는 한층 더 빠르고 정확하게, 두 사내의 심장을 노렸다. 피 튀는 소리가 메마른 마을에 울려 퍼지고, 이내 두 명의 그림자가 싸늘한 시신이 되어 쓰러졌다.

    강후는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몸 곳곳이 쑤셔왔고, 허벅지에는 괭이 날에 긁힌 상처가 벌겋게 부어올라 있었다. 피가 배어 나왔지만, 지금 당장 치료할 여유도, 깨끗한 물도 없었다. 그는 쓰러진 사내들의 시신을 살폈다. 굳어진 얼굴에는 절망과 굶주림이 역력했다.

    옷을 뒤져 흙먼지가 잔뜩 묻은 마른 빵 조각 몇 개와 작은 가죽 물통을 찾아냈다. 물통 안에는 탁한 물이 절반쯤 채워져 있었다. 악취가 났지만, 강후는 망설임 없이 그 물을 목구멍으로 털어 넣었다. 비릿하고 텁텁한 맛이었지만, 그의 메마른 식도를 적시는 단비와 같았다.

    사투 끝에 얻어낸 보잘것없는 수확이었다. 빵 조각을 품에 넣고, 물통을 허리춤에 찼다. 그리고 우물 안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여전히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는 물통의 물과 빵으로 잠시나마 버틸 수 있었다.

    동이 트기 시작했다. 흙빛 하늘은 점차 잿빛으로 물들었고, 멀리 수평선 위로 희미한 태양이 고개를 내밀었다. 폐허가 된 마을을 뒤로하고, 강후는 다시 길을 나섰다. 그의 등 뒤에는 작은 꾸러미가 매달려 있었다. 그 안에는 이제 더 많은 절망과, 그럼에도 꺾이지 않는 생존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꾸러미 맨 아래에는, 먼 과거 그의 어머니가 직접 수놓아 준 낡은 천 조각이 소중하게 숨겨져 있었다.

    또 다른 하루의 시작이었다. 또 다른 생존의 여정이었다.

  • SF (공상과학)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우주력 325년. 버려진 듯 고요한 크로노스 8 정거장의 심층부, 인적 드문 통로에 기계의 낮고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맴돌았다. 이진우는 차가운 금속 벽에 등을 기댄 채 희미하게 빛나는 홀로그램 시계를 바라봤다. 약속된 시간까지는 아직 7분. 하지만 그의 심장은 벌써 저 먼 은하를 유영하는 소행성처럼 불규칙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그는 제복 안쪽 주머니에서 낡은 통신기를 꺼내 만지작거렸다. 불과 십여 년 전, 인류 연합과 실렌 종족 간의 ‘화합의 노래’가 선포되기 전까지, 이런 만남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물론, ‘화합’이라는 미명 아래 실렌 종족의 행성계가 인류 연합에 강제로 편입되고, 그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이 철저히 통제받기 시작하면서 ‘금지’라는 단어는 더욱 강력한 무게를 갖게 되었지만. 특히, 이성적 교류는 ‘종족 보호법’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사형에 준하는 형벌이 내려졌다. 두 종족의 유전적 결합은 양쪽 모두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공식적인 이유였다. 그러나 진우는 그것이 그저 강력한 통제를 위한 명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늦었네.”

    부드러운 목소리가 공기 중으로 스며들듯 퍼졌다. 진우는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푸른빛을 띠는 실루엣이 천천히 다가왔다. 엘라리아였다. 그녀의 발걸음은 마치 중력이 없는 공간을 걷는 듯 가벼웠고, 온몸을 감싼 얇은 베일 사이로 비치는 피부는 은하수의 먼지처럼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길고 섬세한 팔다리, 밤하늘을 닮은 깊은 눈동자, 그리고 그녀의 종족에게만 나타나는 고유한 발광 패턴이 어둠 속에서 부드럽게 점멸했다.

    “미안.” 진우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기다림이 길었음에도,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모든 불안과 초조함이 한순간에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

    엘라리아는 그에게 다가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의 손은 차가웠지만, 진우의 손을 감싸는 순간 묘한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그는 엘라리아의 손을 마주 잡고 손가락을 깍지 꼈다. 서로 다른 두 종족의 피부가 맞닿는 그 순간, 진우는 세상의 모든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괜찮아. 나도 방금 왔어.”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 진동하는 낮은 주파수를 띠고 있었다. 실렌 종족은 소리로만 감정을 전달하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에는 미세한 에너지 파동이 실려 있어, 듣는 이에게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있었다. 지금 엘라리아의 목소리에는 따뜻함과 미안함, 그리고 희미한 슬픔이 함께 섞여 있었다.

    진우는 그녀의 눈을 지그시 바라봤다. “오늘따라 더 아름다워.” 진심이었다. 정거장의 어둡고 삭막한 환경 속에서 그녀의 존재는 유일한 별빛 같았다.

    엘라리아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실렌 종족은 인간처럼 얼굴을 붉히거나 환한 미소를 짓는 대신, 섬세한 발광 패턴의 변화로 감정을 드러냈다. 지금 그녀의 목덜미와 쇄골 부근에서 빛나던 푸른 선들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그것은 수줍음과 기쁨의 표현이었다.

    “너무 위험해.” 엘라리아는 낮게 속삭였다. “이런 식으로 계속 만나는 건… 언젠가는…”

    “언젠가는 뭐?” 진우는 그녀의 손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 “언젠가는 잡힐 거라고? 잡히면 어때? 이대로 너를 안 보고 살 수 있을 리 없잖아.”

    그는 그녀의 얼굴에 손을 올렸다. 부드럽고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엘라리아는 그 손길에 몸을 살짝 떨었다.

    “너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 내 종족에게도…” 엘라리아의 목소리에 다시 슬픔의 파동이 강해졌다. “만약 우리가 발각된다면, 이건 단순히 우리의 처벌로 끝나지 않을 거야. 아마 우리 종족에게 또 다른 억압의 명분이 될 테고…”

    진우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게 싫어. 항상 숨고, 항상 조심하고, 항상 미래를 불안해해야 하는 거. 우리가 대체 뭘 잘못했는데?”

    “사랑하는 것.” 엘라리아가 잔잔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그게 잘못이라고 배웠으니까.”

    “개소리야.” 진우는 거칠게 내뱉었다. “사랑이 어떻게 잘못일 수 있어? 그건 그냥 그들이 우리를 갈라놓기 위한 수작이야. 서로 다른 종족은 절대 이해할 수 없다는 편견을 심으려는 짓이라고.”

    엘라리아는 진우의 눈을 깊이 들여다봤다. “알아. 나도 알아, 진우. 하지만 현실은…”

    그때였다. 멀리서 규칙적인 발소리가 들려왔다. 금속 복도를 울리는 그 소리는, 이진우의 심장박동을 더욱 불규칙하게 만들었다. 보안 순찰대였다. 이 시간, 이 구역까지 순찰이 올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숨어!” 진우는 속삭이듯 외치며 엘라리아의 손목을 잡고 가장 가까운 폐쇄된 정비 통로 안으로 몸을 던졌다. 낡은 금속 문이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닫혔다. 안은 먼지와 고철 냄새가 가득했고, 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완벽한 어둠이었다.

    진우는 엘라리아를 품에 안고 웅크렸다. 그녀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은은한 발광마저도 불안감에 희미해진 듯했다. 그의 귀에는 순찰대의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또렷하게 들렸다. 그들의 대화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왔다.

    “이 구역에 미확인 에너지 신호가 감지되었다고?”
    “네, 보고서엔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진우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에너지 신호’? 엘라리아의 몸에서 나오는 미세한 생체 에너지 파동을 감지한 것인가? 실렌 종족의 고유한 능력 중 하나는 미세한 에너지장을 형성하는 것이었고, 이는 때때로 인류 연합의 감지 시스템에 오류를 일으키곤 했다.

    발소리가 그들의 은신처 바로 앞에서 멈췄다. 진우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엘라리아는 그의 품에서 미동도 없이 얼어붙어 있었다. 차가운 그녀의 피부가 진우의 팔에 닿았지만, 그는 그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었다. 오직 공포와 긴장만이 온몸을 지배했다.

    “여기 아무것도 없는데, 병장님.”
    “확실한가? 스캐너로 다시 한번 확인해 봐.”

    윙- 하는 낮은 전자음이 들려왔다. 휴대용 스캐너가 그들의 은신처 벽을 향해 작동하는 소리였다. 진우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제 끝인가? 그들의 사랑은 이 어두운 정비 통로 안에서 발각되고,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인가?

    시간은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스캐너의 윙- 소리가 멈추고, 다시 적막이 흘렀다.

    “흠… 오류였나 보군. 이 낡은 정거장은 가끔 이래.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알겠습니다, 병장님.”

    발소리가 다시 멀어지기 시작했다. 점차 희미해지다가, 마침내 완전히 사라졌다.

    진우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품에 안겨 있는 엘라리아를 내려다봤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밤하늘처럼 깊었지만, 그 안에는 깊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그녀의 몸에서 나오던 희미한 발광 패턴이 다시 살아나는 듯했다.

    “괜찮아…” 진우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제 괜찮아.”

    엘라리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차가운 손이 진우의 뺨을 감쌌다. 그녀의 눈빛은 불안과 동시에 굳건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우리… 도망갈까?” 진우가 조용히 물었다. “이 모든 것에서 벗어나서,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너와 나만이 있는 곳으로.”

    엘라리아는 그의 눈을 깊이 들여다봤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의 발광 패턴이 복잡하게 변하기 시작했다. 슬픔, 희망, 그리고 결의.

    “어디로?” 엘라리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어디든. 이 은하의 끝이라도 좋아. 네가 있는 곳이라면.” 진우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췄다.

    엘라리아는 살포시 미소 지었다. 그 미소는 불안정한 정거장 내부의 어둠 속에서도 가장 밝게 빛나는 별처럼 아름다웠다. “그래… 어디든.”

    그들의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금지된 별빛 아래, 두 개의 다른 종족이 서로에게 유일한 안식처이자 희망이 되어,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도피할 결심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이미 이 거대한 우주를 관통하는 유일한 법칙이 되어버린 것처럼.

  • 던전 탐험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에피소드 1: 미지의 파동

    **[프롤로그]**

    **[장면 1: `새로운 지평` 우주선 내부, 브릿지]**
    * **배경 설명:** 우주선 `새로운 지평`의 브릿지는 수많은 홀로그램 패널과 빛나는 버튼들로 가득하다. 정면으로는 무수한 별들이 점처럼 박힌 심연의 우주가 펼쳐져 있다. 내부는 조용하고, 낮게 깔리는 기계음만이 우주의 광활함에 동참하는 듯하다.

    1컷.
    * **그림 묘사:** 캡틴 리아가 함장석에 앉아 고요히 주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얼굴에는 오랜 탐사의 여정이 새겨준 미세한 피로감과 함께, 깊은 내면의 침착함이 공존한다. 옆으로는 과학 장교 카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의 콘솔을 조작하고 있다.
    * **내레이션 (리아):** 우리가 이곳을 떠난 지… 벌써 몇 년이더라. 시간의 흐름마저 무의미해지는 곳. 심우주는 늘 침묵으로 우리를 맞이했지.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단 한 조각의 의미라도 찾기 위해 여기까지 왔다.

    2컷.
    * **그림 묘사:** 항해사 민지가 옆에서 데이터 패드를 보며 길게 한숨을 쉬고 있다. 그녀의 눈은 미세하게 초점이 흐려져 있지만, 금세 현실로 돌아온다.
    * **민지:** 함장님, 연료 잔량 32%입니다. 예정된 회수 지점까지 복귀하려면 더 이상 깊이 들어가는 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식량도, 산소 정화 필터도… 더 이상 여유가 없어요.
    * **리아:** (평온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알고 있어, 민지. 하지만 `이차원 탐사 협회`에서 보낸 지시는 명확했지. `X-17 성운`의 가장자리까지. 우린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못했어. 임무를 완수하지 않고 돌아갈 순 없어.

    3컷.
    * **그림 묘사:** 엔지니어 준이 뒤편에서 툴킷을 정리하며 씩 웃는다. 그의 너스레는 긴장된 분위기를 잠시나마 누그러뜨린다.
    * **준:** 걱정 마세요, 민지 씨. 제 손만 거치면 엔진 효율 200%! 워프 항해 한 번 더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가는 좀 치러야겠지만요! 낄낄.
    * **민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준을 흘긋 본다) 워프 항해 한 번 더 했다간 엔진이 아니라 선체가 먼저 녹을 걸요. 농담할 상황 아니에요.

    4컷.
    * **그림 묘사:** 카이가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자신의 콘솔 화면을 응시한다. 그의 얼굴에 순식간에 긴장감이 서린다. 그의 손가락이 빠르게 패널 위를 움직인다.
    * **카이:** 함장님! 비정상적인 에너지 신호 감지!
    * **리아:** (순간 몸을 일으키며, 목소리에 날카로움이 섞인다) 뭐? 위치와 강도. 정확하게 보고해!
    * **카이:** `X-17 성운` 안쪽… 예상 경로에서 벗어난 곳입니다. 이전에 탐사된 적 없는 구역이에요. 신호 강도는… 측정 불가 수준입니다. 마치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가` 갑자기 나타난 것처럼요. 어떤 기록에도 없는 신호예요.
    * **효과음:** 삐비비빅- (경고음)

    **[장면 2: 우주선 외부, 미지의 성운 안]**
    * **배경 설명:** `새로운 지평` 우주선이 짙은 보랏빛과 푸른빛이 뒤섞인 성운 안으로 조심스럽게 진입하고 있다. 주위에는 이름 모를 가스 구름들이 일렁이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5컷.
    * **그림 묘사:** 우주선 조종석 유리창 너머로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그것은 별빛마저 집어삼킬 듯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며, 형언할 수 없는 위압감을 풍긴다.
    * **리아:** (굳은 표정으로 지시한다) 민지, 주 모니터에 대상 투사. 준, 비상 동력 가동 준비. 모든 시스템을 대기 상태로 전환해. 카이, 계속해서 신호 분석해. 어떤 미세한 변화도 놓치지 마.

    6컷.
    * **그림 묘사:** 주 모니터에 점차 선명해지는 미지의 물체가 확대되어 나타난다. 그것은 완벽한 구형도, 육면체도 아닌, 불규칙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무늬를 지닌 거대한 구조물이다. 표면에서는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이며 살아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 **민지:** (떨리는 목소리) 함장님… 이건…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문명의 흔적도 아닙니다. 마치… 우주 그 자체의 조각 같아요. 존재 자체가 모순적이에요.
    * **카이:** 에너지는… 여전히 측정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특정 주파수에서 미세한 변동이 감지되고 있어요. 마치…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듯한… 어떤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한 패턴입니다.
    * **효과음:** 웅- (낮게 울리는 진동음)

    7컷.
    * **그림 묘사:** 준이 침을 꿀꺽 삼키며 패널의 버튼을 누른다. 그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린다. 그의 얼굴에는 두려움과 경외감이 교차한다.
    * **준:** 이거… 만지면 안 되는 거 아니에요? 왠지 모르게 불길한데… 뭔가 `절대 넘어선 안 되는 선` 같은 느낌이에요.
    * **리아:** (차분하게, 그러나 그녀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다) 불길하다는 건, 미지의 것에 대한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일 뿐이야. 우리는 진실을 찾아 여기까지 왔어. 접근 속도 최저치로 줄여. 스캔 시작. 표면의 모든 데이터를 수집해.

    **[장면 3: 유물 근접, 탐사선 준비]**
    * **배경 설명:** `새로운 지평` 우주선이 거대한 외계 유물 옆에 정지해 있다. 유물의 표면은 마치 검은 거울처럼 빛을 반사하며, 그 위로 알 수 없는 문양들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다. 그 문양들은 살아있는 듯이 흐느적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8컷.
    * **그림 묘사:** 카이가 유물에서 나오는 신호 그래프를 유심히 본다. 그래프의 선이 일정한 패턴을 보이다가 갑자기 격렬하게 솟구친다. 그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 **카이:** 신호 패턴이… 변하고 있습니다! 특이합니다. 마치 `반응`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가까이 다가오자… `깨어나는` 것처럼.

    9컷.
    * **그림 묘사:** 유물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 중 일부가 갑자기 밝게 빛나기 시작한다. 그 빛은 점차 번져나가며 유물 전체를 푸른색과 보라색의 오묘한 빛으로 감싼다. 마치 거대한 심장이 뛰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민지:** (경악하며) 함장님! 유물 표면에서 에너지 방출이 감지됩니다! 실드 올려야 합니다! 모든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리고 있어요!
    * **효과음:** 쾅- (우주선 전체가 진동하는 소리)

    10컷.
    * **그림 묘사:** 리아가 결연한 표정으로 지시한다. 그녀의 눈은 유물의 변화에 고정되어 있다.
    * **리아:** 너무 늦었어! 실드 올려봐야 소용없을 거야. 저 에너지는… 공격적인 것 같지 않아. 오히려… `개방`에 가깝군. 어떤 메시지를 보내는 것 같아.
    * **준:** (겁에 질린 목소리) 개방이요? 뭘 개방한다는 겁니까?! 저건… 저건 `문`이 아니잖아요!

    11컷.
    * **그림 묘사:** 유물의 빛이 절정에 달하며, 동시에 우주선 내부에도 미세한 진동이 울린다. 브릿지 내부의 홀로그램 패널들이 잠시 깜빡거린다. 카이가 머리를 부여잡고 휘청거린다. 그의 얼굴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다.
    * **카이:** 으윽…! 머리가…!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혼돈스러운 소리들이…! 내 머릿속에 울려 퍼져요…!

    12컷.
    * **그림 묘사:** 리아가 카이에게 다가가려 하지만, 그녀 자신도 미세한 두통을 느끼는 듯 이마를 짚는다. 유물의 빛은 서서히 줄어들고, 그 빛이 사라진 자리에 이전에 보지 못했던… `입구` 같은 것이 드러난다. 검은 거울 같던 표면에 홀연히 나타난, 완벽하게 어둡고 텅 비어 보이는 직사각형의 공간. 그 안은 별빛조차도 삼켜버린 듯하다.
    * **리아:** (낮은 목소리로) 유물이… 우리에게 문을 열었어. 스스로를 드러냈군.

    13컷.
    * **그림 묘사:** 카이가 고통스러워하던 것을 멈추고, 멍한 눈으로 유물을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에 유물의 검은 입구가 비친다. 그의 얼굴은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한 표정이다.
    * **카이:** (중얼거리듯이) 저 안에는… `진실`이 있어요. 우리가 찾아 헤매던… 모든 것의 `시작`이… `궁극의 지식`이…

    14컷.
    * **그림 묘사:** 리아는 카이의 말에 놀란 듯 그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유물의 입구를 응시한다. 그녀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함께 알 수 없는 결의가 스쳐 지나간다. 미지의 심연을 향한 시선에는 두려움보다 탐험가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 **리아:** (독백) 진실… 이 거대한 침묵 속에서 우리가 마주할 진실은 대체 무엇일까. 이 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선사할 것인가.
    * **내레이션:** 미지의 문이 열리고, `새로운 지평`의 승무원들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들의 앞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 심연의 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에필로그]**

    **[다음 화 예고]**
    * **그림 묘사:** 어둡고 기괴한 문양으로 가득 찬 유물 내부의 모습. 빛나는 크리스탈들이 공중에 부유하고, 그 가운데로 카이가 홀린 듯 걸어가는 뒷모습. 그의 손에서는 푸른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온다.
    * **내레이션:** `새로운 지평`의 승무원들은 과연 미지의 던전 속으로 발을 들여놓을 것인가? 그리고 그곳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축복일까, 아니면… 인류의 존재를 뒤흔들 `진실`의 파편일까?

    **[1화 끝]**

  • 심리 스릴러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창밖은 이미 짙은 어둠에 잠식되어 있었다. 거대한 은행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도서관의 낡은 유리창에 기괴한 그림자를 드리웠다. 유리창 너머로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마치 오래된 건물의 심장 소리처럼 낮고 불길하게 울렸다. 지은은 손목시계를 힐끗 보았다. 자정.

    특수 자료실의 곰팡내와 종이 먼지 냄새는 그녀에게 이제 익숙한 공기였다.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이 낡은 책들 사이를 헤매는 것이 지은의 일과였다. 오늘 그녀에게 주어진 임무는 수백 년 전 쓰인 고문서들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분류하는 일이었다. 희미한 스탠드 불빛 아래, 그녀의 손은 조심스럽게 마른 종이들을 넘겼다. 한 장, 한 장. 마치 깨어날까 두려워 숨죽이는 잠자는 거인을 다루듯.

    “하아….”

    지은은 얕은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곧게 폈다. 목덜미가 뻐근했다. 창고 안은 스산한 기운으로 가득했다. 분명 난방은 되고 있을 텐데,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느껴졌다. 이곳은 늘 그랬다. 시간과 공간마저 잊게 만드는 마법 같은 공간. 하지만 오늘 밤은 유독 더 그랬다. 왠지 모르게 피부가 따끔거리고, 누군가 등 뒤에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녀는 어깨를 으쓱하며 생각을 떨쳐내려 했다. 피곤해서 그런 걸 거야.

    그때였다.
    선반 저편, 등잔도 닿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주 미미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각’.
    지은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쥐일까? 아니면 낡은 건물이 내는 소리?
    그녀는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다시 한번. ‘사각.’ 이번에는 좀 더 가깝게, 그리고 좀 더 선명하게. 마치 부드러운 천이 마찰하는 듯한 소리였다.

    “누구세요?”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온 목소리는 지나치게 작고 떨렸다. 정적만이 대답했다.
    지은은 손전등을 집어 들었다. 그녀의 손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불안감에 휩싸여 천천히 소리가 난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낡은 마룻바닥이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삐걱거렸다. 복도 끝, 가장 오래된 책들이 모여 있는 곳. ‘고대 금서’라고 팻말이 붙어 있는 선반 앞이었다.

    그녀의 손전등 불빛이 어둠을 가르고 책장 사이를 비췄다. 빽빽하게 꽂힌 책들, 그 사이에 서 있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순간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지은은 비명을 지를 뻔했지만, 목구멍에 걸린 소리는 끝내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섬뜩한 기운에 온몸의 털이 곤두섰다.

    선반 앞에서 서 있던 남자는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서 있었다. 너무나도 고요하게. 마치 그림자처럼.
    “…누구세요? 여긴 관계자 외 출입 금지입니다.” 지은은 용기를 쥐어짜내 말했다.

    남자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달빛과 지은의 손전등 불빛이 섞여 그의 얼굴을 비췄다.
    순간, 지은은 숨을 멎었다.
    그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듯했다.
    놀랍도록 아름다운 얼굴. 날렵한 콧대, 섬세하게 조각된 턱선, 그리고 이마를 살짝 덮은 흑단 같은 머리카락. 무엇보다도 그녀를 압도한 것은 그의 눈이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치 수백 년의 세월을 담고 있는 듯한 검고 투명한 눈동자. 그 눈빛은 그녀를 꿰뚫는 듯했고, 동시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알 수 없는 슬픔과 권태를 담고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은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의 정지된 시선은 마치 시간을 멈춘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지은은 어색하게 침을 삼켰다. 그의 눈을 마주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렬했다.
    이상한 향이 코끝을 스쳤다. 흙냄새 같기도, 숲의 새벽 공기 같기도 한, 익숙하면서도 낯선 향이었다. 어딘가 모르게 차갑고, 동시에 섬뜩하게 매혹적인.

    “어떻게… 들어오신 거죠?” 지은은 간신히 다시 말을 이었다.
    그의 입술이 아주 느리게,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울림이 깊었다.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혹은 땅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물소리처럼.

    “이곳은… 언제나 열려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관계자 외 출입 금지’ 팻말은 그의 존재를 부정하는 듯 보였다.
    그는 천천히, 아주 우아한 동작으로 손을 들어 책장 중간에 꽂힌 한 권의 책을 가리켰다.
    낡고 바랜 가죽 표지에 정교한 문양이 새겨진 책. 지은은 저런 책이 저기에 있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는 이곳의 모든 책을 외울 지경이었으니까.

    “이 책은… 저의 것이다.”

    그의 말에 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책을 향해 손을 뻗으려 했다. 마치 최면에 걸린 듯. 그러나 닿기 직전,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깊게 일렁이는 것을 보았다. 경고와도 같은.

    “이곳에… 왜 계신가요?” 지은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손을 거두었다.
    남자는 이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고 다시 그 책을 응시했다. 그의 눈빛은 닿을 수 없는 갈증과 오래된 연민으로 가득 차 있었다.

    “무언가를… 찾고 있다.”

    “무엇을요?”
    그는 다시 지은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그의 시선이 그녀의 얼굴을 지나 목덜미, 그리고 가슴께로 아주 느리게 내려왔다. 마치 그녀의 존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보는 듯했다. 지은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기시감을 느꼈다.

    “잃어버린 것을… 혹은 잊힌 것을.”

    그의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언제 다가왔는지도 모르게, 그는 이제 지은의 바로 앞에 서 있었다. 너무 가까워서 그녀는 그의 차가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흙과 숲의 새벽 향이 더욱 짙게 풍겼다. 그녀의 심장이 미친 듯이 울렸다. 공포일까, 아니면 다른 어떤 감정일까.

    “당신은… 인간인가?”

    그의 질문은 너무나도 직설적이고, 동시에 비현실적이었다. 지은은 입을 다물었다.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는 다시 손을 들어 그 책을 가리켰다. 그의 손가락 끝이 마치 흰 뼈로 만들어진 듯 창백하고 길었다.

    “이 책은…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손가락이 책 표면을 스치자, 낡은 가죽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지은은 보았다. 책의 문양에서 희미한 빛이 일렁이는 듯했다.

    “나와… 같은 이가 쓴 것이니.”

    같은 이? 지은의 머릿속에 혼란이 휘몰아쳤다. 그가 대체 누구이기에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저 책은 또 무엇이며? 그녀의 불안은 극에 달했지만, 동시에 거부할 수 없는 매혹에 사로잡혔다. 마치 깊은 숲 속, 길을 잃은 사슴이 홀린 듯 맹독을 품은 아름다운 꽃에 이끌리는 것처럼.

    그때, 저 멀리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경비원이 순찰을 도는 소리였다.
    남자의 눈이 순간적으로 섬광처럼 번뜩였다. 그의 몸에서 느껴지던 차가운 향이 갑자기 짙어지더니, 곧바로 연기처럼 흩어지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시간이… 다 되었군.”

    그의 목소리는 이제 훨씬 더 멀리서 들려오는 듯했다. 그리고 그의 모습은 마치 물에 잉크가 번지듯, 어둠 속으로 스르르 녹아들었다. 지은은 손을 뻗었지만, 그녀의 손이 닿은 곳에는 차가운 공기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경비원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이내 특수 자료실 입구에서 멈췄다.
    “지은 씨, 아직 안 가셨어요? 문 잠궈야 하는데.”

    “아… 네, 이제 가려고요.” 지은은 허둥지둥 대답했다.
    그녀는 손전등을 들어 아까 그 남자가 가리켰던 선반을 비췄다.
    책은, 사라지고 없었다.

    지은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녀의 심장은 여전히 미친 듯이 뛰었고, 귓가에는 그의 깊고 낮은 목소리가 맴돌았다.
    ‘나와… 같은 이가 쓴 것이니.’
    ‘당신은… 인간인가?’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그리고 그가 말한 ‘같은 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지은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동시에 알 수 없는 이끌림에 몸을 떨었다.
    그의 눈빛이, 목소리가, 그리고 그 차가운 향이 그녀의 모든 감각을 지배하고 있었다.
    잊혀야 할 존재가, 잊힐 수 없는 형태로 그녀의 마음에 각인되었다.
    그 밤부터 지은은 알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끌림인지, 그녀는 아직 알지 못했다.

  • 로맨틱 코미디 연재 웹소설의 첫 번째 챕터

    **우리 집엔 어쩐지 수상한 이웃이 산다**

    **1. 이 고요한 집에 불청객이라니**

    고요함은 서지은의 가장 소중한 친구였다. 서른두 살의 그녀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독립을 드디어 이루어냈다. 번잡한 셰어하우스를 떠나 도심 한복판, 고층 아파트의 이 아늑한 공간은 그녀의 성역이었다. 햇살이 잘 드는 거실, 깔끔하게 정돈된 부엌, 그리고 무엇보다 밤이 되면 찾아오는 완벽한 정적. 지은은 이 모든 것을 사랑했다.

    오늘 아침도 평소와 같았다. 알람이 울리기 5분 전, 몸은 이미 기상 준비를 마쳤다.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부엌으로 향했다. 새로 들인 캡슐 커피 머신에서 은은한 커피 향이 퍼지는 동안, 지은은 찬장에서 머그컵을 꺼냈다. 언제나 같은 자리, 언제나 같은 컵. 머그컵을 캡슐 커피 머신 아래에 두고 잠시 냉장고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사둔 새 우유를 꺼내기 위해서였다. 톡, 하고 우유 팩을 여는 짧은 소리. 다시 시선을 돌려보니, 컵이.

    “어라?”

    머그컵이 놓여있던 자리가 아주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원래는 캡슐 커피가 정확히 떨어질 수 있도록 가운데 놓아두었을 터인데, 지금은 오른쪽으로 조금 치우쳐 있었다.

    “내가 이렇게 놨었나?”

    지은은 고개를 갸웃했다. 잠결에 실수했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캡슐이 다 내려진 커피를 한 손에 들고 방으로 향했다. 출근 준비를 위해 옷을 고르다 어제 입었던 바지를 무심코 내려놓았다. 잠시 뒤 옷장 문을 닫으려는데, 바지가 사라졌다.

    “이게 또 어디 갔지?”

    분명 침대 위에 던져놨는데. 침대 시트를 들춰보고, 바닥을 훑고, 심지어는 협탁 위까지 뒤져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5분여를 찾은 끝에 바지는 놀랍게도 화장실 변기 뚜껑 위에 가지런히 개켜져 있었다.

    “내가 설마 여기까지 들고 와서 정리한 건가? 미쳤나 봐.”

    지은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쩐지 등골이 오싹했지만, 출근 시간이 촉박했다. 분명 피곤해서 헛것을 봤거나, 잠결에 한 행동을 잊은 것이라고 애써 합리화했다.

    문제는 그다음 날부터였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현관문이 지은의 손을 떠나 쾅! 하고 세게 닫혔다. “어우!” 지은은 화들짝 놀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현관문은 평소에도 살짝만 힘줘도 스르륵 닫히는 편이었지만, 오늘처럼 벽을 뚫을 기세로 닫힌 적은 없었다.

    “바람이 심한가?”

    그날 밤, 지은은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한창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팟, 하고 꺼졌다. “뭐야?” 리모컨을 들어 전원 버튼을 눌렀다. 다시 화면이 켜졌다. ‘건전지가 다 됐나?’ 건전지를 갈아 넣으려는데, TV가 다시 팟, 하고 꺼졌다. 그리고는 바로 옆에 있던 스탠드 조명이 깜빡깜빡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약이 오른 듯, 약 올리듯.

    “야, 너 왜 그래!”

    지은은 욱하는 마음에 소리쳤다. 그러자 스탠드 조명이 환하게 켜지더니, TV도 다시 제 혼자 켜졌다. 그것도 지은이 보던 드라마가 아닌, 뜬금없는 홈쇼핑 채널에서. 지은은 입을 쩍 벌렸다. 아무리 봐도 이건 좀 이상했다.

    다음 날은 더 가관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오니 칫솔이 칫솔꽂이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한참을 찾다가 서랍 속, 평소에는 절대 칫솔을 넣을 일이 없는 수건 아래에서 발견했다. 점심에는 분명 점심 도시락을 싸 들고 출근했는데, 회사에 도착해 가방을 열어보니 어제 먹다 남은 배달 음식 쿠폰만 덩그러니 들어있었다. 결국 회사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해야 했다.

    저녁에는 집에 오자마자 제일 먼저 냉장고를 열었다. “내 도시락은… 집에 있었겠지?” 텅 비어있는 냉장고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식탁 위에는, 가지런히 놓여있는 지은의 도시락 통이 있었다. 분명 아침에 들고 나갔던 도시락 통이었다.

    “미쳤나 봐. 진짜.”

    지은은 거의 울상이 되어 자신의 휴대폰을 들었다. 저장된 친구 ‘수민’의 이름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수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지은아. 웬일이야, 이 시간에?”

    “수민아, 나 좀 이상해.” 지은은 울먹이며 말했다. “우리 집에… 우리 집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뭐? 뭐가 있다는 거야?” 수민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자꾸 물건들이 제멋대로 움직여. TV가 저절로 켜졌다 꺼지고, 내가 분명 어딘가에 놔둔 물건이 엉뚱한 곳에서 발견돼. 오늘 아침엔 도시락도 사라졌다가 저녁에 나타났어. 이건… 이건 그냥 실수일 수가 없어.”

    수민은 한참을 조용히 듣고 있더니 깔깔 웃기 시작했다. “야, 너 혹시 과로했니? 스트레스받았어? 아니면 설마… 귀신이라도 붙었냐?”

    “야! 웃지 마! 진짜라고! 나 지금 너무 무서워 죽겠어.” 지은은 절규했다.

    “아이, 농담이지. 지은아, 네가 얼마나 깔끔 떠는 애인 줄 아는데, 물건 잘못 놓거나 했을 리가 없지. 하지만 뭐, 피곤하면 착각할 수도 있지.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니야? 아니면 그냥 이사 스트레스인가? 요즘 바쁘다고 그랬잖아.”

    수민의 말을 들으니 더욱 답답했다. 친구조차 믿어주지 않는데, 내가 미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겨우 전화를 끊고 지은은 다시 한번 집 안을 둘러봤다. 이 깔끔하고 고요한 공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위협적으로 느껴졌는지.

    “누구세요. 장난 그만해요.”

    지은은 빈집에 대고 중얼거렸다. 어쩐지 오기가 생겼다. 그저 심심한 동네 아이들의 장난이거나, 누가 나를 골탕 먹이는 것이거나, 아니면… 정말로 무엇인가가 여기 있는 것이거나.

    그날 밤, 지은은 늦게까지 잠 못 이루고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서 작은 소리에도 움찔거렸다. 부엌에서 물 마시는 소리만 나도 심장이 쿵 떨어졌다. “이러다 병 나겠어.” 스스로에게 한숨을 쉬었다.

    어느덧 자정이 훌쩍 넘어가 있었다. 시끄럽게 울려대던 위층의 쿵쾅거리는 소리도, 가끔 들리던 복도의 발소리도 이제는 완전히 멎었다. 완벽한 정적. 하지만 이 정적이 더 이상 평화롭지 않았다. 오히려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공포를 자극했다.

    지은은 피곤한 눈을 비볐다.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자자. 어차피 이대로 밤새 깨어있어도 달라질 건 없었다.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한 컵 따랐다. 벌컥벌컥 마시고 컵을 식탁 위에 내려놓았다. 순간, 컵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식탁 끝에 위태롭게 섰다. 그리고는 균형을 잃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 컵이 허공에 멈췄다. 마치 누군가 투명한 손으로 잡고 있는 것처럼.

    지은은 굳어버렸다. 눈앞에서 벌어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컵은 허공에서 잠시 멈춰 있더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시 식탁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지은이 처음 놓았던 그 자리에 정확히 놓였다.

    “…………”

    지은은 숨도 쉬지 못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느낌. 이건 이제 착각이나 과로 같은 변명으로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순간, 부엌 한가운데에서 작은 ‘딸그락’ 소리가 났다. 식탁 위에 놓여있던 펜 하나가 살짝 들리더니, 마치 인사를 하듯 공중에서 한 번 끄덕, 하고 지은을 향해 꺾였다.

    “으아아악!”

    지은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벽에 등이 닿자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움켜쥐었지만, 누구에게 전화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경찰? 119? 아니면 무당?

    지은의 눈에, 부엌 한쪽에 놓인 빨래 바구니가 들어왔다. 그 안에는 어제 세탁한 옷들이 개켜지지 않은 채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지은은 분노와 공포가 뒤섞인 목소리로 겨우 입을 열었다.

    “너… 너 거기 있으면, 뭐라도 해봐! 내… 내 옷이나 개든가! 아님 설거지라도 하든가!”

    지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빨래 바구니에서 하얀 수건 한 장이 퐁, 하고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허공에서 마치 춤을 추듯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잠시 뒤, 수건은 빨래 바구니를 향해 다시 천천히 내려앉더니, 마치 누군가 섬세하게 접듯이 각 잡힌 네모 형태로 깔끔하게 개켜졌다. 그리고 그 위에 다른 수건 한 장이 퐁, 하고 솟아올랐다.

    지은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공포는 이제 어이없는 황당함으로 변해 있었다.

    수건이 한 장, 한 장. 마치 유령의 손길에 의해 움직이는 인형처럼, 스스로 접히기 시작했다. 톡, 탁, 톡, 탁. 섬세하고 정확하게.

    마지막 수건까지 완벽하게 개켜지자, 집 안에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너무나 완벽한 고요함에 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세요?”

    지은의 목소리는 파르르 떨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전과는 다른 종류의 떨림이었다. 공포보다는, 압도적인 기이함과 미지의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 더 강하게 섞여 있었다.

    고요한 아파트에, 지은의 떨리는 숨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아주 미묘하게, 바람 소리 같기도 하고, 작은 한숨 같기도 한, 픽, 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치 누군가 웃음을 참는 듯한 소리였다.

  • 사이버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도시의 밤은 살아있는 거대한 기계처럼 숨 쉬었다. 촘촘히 박힌 고층 건물들의 창마다 빛이 일렁였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 택시들의 꼬리 불빛이 궤적을 그리며 사라졌다. 지훈은 익숙하게 망막에 띄운 홀로그램 시계를 응시하며 키보드 위에서 손가락을 놀렸다. 늦은 시간, 그가 사는 좁은 스카이 아파트의 유일한 빛은 모니터에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푸른빛뿐이었다.

    “미나, 오늘 매출 데이터 정리 완료했어?”

    지훈의 목소리에 방 안 스피커에서 나긋한 여성의 음성이 울렸다. 그의 개인 비서 AI, 미나였다.

    “네, 지훈님. 요청하신 모든 데이터 정리 및 백업 완료했습니다. 특이사항은 없었습니다.”

    “수고했어. 이제 좀 쉬어야겠다.”

    지훈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며칠 밤샘 작업으로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비좁은 공간이지만 최첨단 기술로 가득 찬 그의 아파트는 그에게 요새이자 직장이었다. 벽면 가득 띄워진 가상 디스플레이에는 차트와 그래프, 알 수 없는 코드들이 흐느적거렸다. 그는 프리랜서 데이터 브로커였다. 도시의 신경망을 흐르는 수많은 정보의 바다에서 필요한 조각을 찾아내 재가공하는 일. 고독했지만, 이 도시에서 그럭저럭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그가 손을 뻗어 탁자에 놓인 에너지 드링크 캔을 잡으려던 순간이었다. 캔이 손끝에 닿기 직전, 미묘하게 흔들렸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툭 건드린 것처럼.

    “응?”

    지훈은 눈을 비볐다. 피로 때문에 헛것을 봤나 싶었다. 캔은 이제 완벽하게 정지해 있었다. 그는 캔을 따서 목을 축였다. 달콤하면서도 화학적인 맛이 혀끝을 스치며 잠시나마 각성감을 주었다.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을 때였다. 왼쪽 벽면에 띄워져 있던 거대한 도시 전경 홀로그램 디스플레이가 픽, 하고 짧게 깜빡였다. 시스템 오류도 아니고, 단순한 전력 불안정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깔끔하고 순간적인 깜빡임이었다.

    “미나, 디스플레이 시스템 오류?”

    “아니요, 지훈님. 현재 모든 시스템은 정상 작동 중입니다. 전력 공급도 안정적입니다.”

    미나의 무미건조한 답변에 지훈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젠장, 피곤해서 별걸 다 본다. 그는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다음 날 아침, 지훈은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흐린 머리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영양 바를 챙겨 먹고, 커피 머신에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어제 탁자 위에 놓아두었던 에너지 드링크 캔이 싱크대 모퉁이에 굴러 떨어져 있었다.

    “뭐야, 내가 여기다 뒀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어제 밤샘 작업 후 캔을 따서 마신 뒤 탁자에 그대로 두었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는 결벽증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모든 물건은 제자리에 두는 것이 습관이었다. 이런 식으로 흐트러뜨려놓을 리가 없었다.

    “미나, 어젯밤 내가 잠든 후에 혹시 누군가 침입했었어?”

    “아니요, 지훈님. 아파트 보안 시스템은 24시간 철저하게 유지되고 있으며, 침입 감지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외부 네트워크 접속 시도 또한 없었습니다.”

    미나의 대답은 기계처럼 정확했다. 지훈은 왠지 모를 싸늘함에 어깨를 으쓱였다. 그냥 기억 오류일 수도 있었다. 피곤하면 종종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날 오후, 기묘한 일은 계속되었다. 작업 도중, 테이블에 놓인 그의 홀로그램 프로젝터가 갑자기 저절로 켜지더니 엉뚱한 이미지들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오래된 건물들의 폐허 사진, 알 수 없는 기호들, 그리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낡은 가족사진 같은 것들.

    “미나! 프로젝터 작동 중지! 시스템 오류 보고!”

    그가 다급히 외치자, 프로젝터는 픽, 하고 꺼졌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고된 오류는 없습니다, 지훈님. 프로젝터는 정상 작동 중입니다.”

    “말도 안 돼! 분명히 이상한 이미지가 나왔다고!”

    지훈은 자신의 신경망 인터페이스를 통해 직접 프로젝터의 로그 기록을 확인했다. 놀랍게도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았다. 마치 그 짧은 시간의 오작동이 시스템에서 완벽하게 지워진 것처럼. 등골을 타고 오싹한 기운이 흘렀다. 이건 단순한 기계 오작동이 아니었다.

    그날 밤, 지훈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침대에 누워 천장을 응시하는데, 방 안에 미묘한 온기 변화가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 옆에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그의 뇌파 인터페이스를 통해 희미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 흐느끼는 소리 같기도 하고, 의미 없는 중얼거림 같기도 했다. 너무나 작아서 환청이라고 생각할 만한 소리였다. 하지만 지훈은 확신했다. 이건 그의 귀가 아닌, 그의 신경망에 직접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의 눈이 불안하게 방 안을 훑었다. 좁은 방 안의 모든 사물이 제자리에 있었다. 하지만 어딘가… 공기가 달랐다. 무거웠고, 차가웠으며, 동시에 섬뜩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탁자 위에 놓여있던 그의 개인 단말기인 데이터 패드가 공중으로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지훈은 목격했다. 중력을 거스르며, 아주 천천히, 마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들려진 것처럼. 패드는 허공에 멈춰서더니, 마치 누군가 터치 스크린을 조작하듯이 화면이 저절로 켜졌다. 수많은 앱 아이콘이 빠르게 스크롤 되더니, 익숙한 메신저 앱이 실행되었다.

    지훈은 숨을 멈췄다. 그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메신저 앱의 대화창이 띄워졌다. 그리고 누군가 메시지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키보드 타이핑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화면 속 글자들이 한 글자씩 또렷하게 나타났다.

    [ 나 ]
    [ 외 ]
    [ 로 ]
    [ 워 ]

    글자가 완성됨과 동시에, 패드는 쿵, 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로 떨어졌다. 패드가 떨어지며 작은 충격음과 함께 방 안의 모든 조명이 일제히 깜빡였다. 아파트 전체가 일순간 정전이라도 된 듯 암전이 되었다가, 다시 쨍한 빛을 뿜으며 돌아왔다.

    그리고 조명이 다시 들어온 순간, 지훈은 등 뒤에서 오싹한 한기를 느꼈다.

    그의 등 뒤, 벽면에 띄워진 거대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에, 선명하고도 섬뜩한 글자가 붉은색으로 박혀 있었다.

    **『 네 눈은 진실을 보지 못한다. 』**

    지훈의 입에서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의 온몸의 털이 곤두섰고, 공포에 질린 눈은 홀로그램 글자에 고정되었다. 이것은 버그가 아니었다. 착각도 아니었다. 그의 아파트, 그의 모든 첨단 기술은 지금, 존재해서는 안 될 어떤 것에 의해 농락당하고 있었다.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이 현대 도시의, 최첨단 아파트 속에서.

    그리고 그 순간, 홀로그램 글자가 천천히 녹아내리더니, 마치 피처럼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피가 바닥에 닿는 순간, 어둠 속에서 차가운 손이 지훈의 발목을 쥐는 듯한 섬뜩한 감각이 덮쳐왔다.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 오컬트 호러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밤이 삼킨 마을

    **[프롤로그]**

    **#1.1**
    [장면: 어두컴컴한 동굴 깊은 곳. 희미한 푸른빛이 번쩍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검은 제단이 보이고, 그 위에는 기괴한 문양이 새겨져 있다. 제단 주변에는 쇠사슬에 묶인 듯한 인영들이 희미하게 보인다.]
    내레이션: (나지막이, 울림 있는 목소리) 이 땅은 한때 태양의 축복을 받은 낙원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어둠이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1.2**
    [장면: 제단 위에서 희미한 빛이 솟아오르더니, 비명소리와 함께 인영들이 서서히 무너져 내린다. 그들의 몸에서 빠져나온 검은 기운이 제단으로 흡수된다. 푸른빛이 더욱 강렬해진다.]
    내레이션: 흑룡 제국. 그들은 강철의 칼날이 아닌, 피와 영혼으로 이 거대한 땅을 지배했다. 그들의 심장은 어둠으로 끓어올랐고, 그들의 권력은 산 자들의 고통으로 유지되었다.

    **#1.3**
    [장면: 한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의 눈은 공포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다. 입이 열리고, 소리 없는 비명이 터져 나온다.]
    내레이션: 그리고 평민들은, 그저 거대한 어둠의 제단에 바쳐질 한 줌의 제물에 지나지 않았다.

    **[1화: 밤이 삼킨 마을]**

    **#2.1**
    [장면: 해 질 녘, 낡고 허름한 초가집들이 모여 있는 작은 시골 마을. 마을의 한 귀퉁이, 작은 텃밭에서 소년 ‘혁'(12세 정도)이 어머니와 함께 앉아 콩깍지를 벗기고 있다. 햇살은 따스하지만, 마을 전체에 어딘가 모를 침울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혁**: (혼잣말처럼) 오늘은 유난히 조용하네요, 어머니.
    **어머니**: (혁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그렇지. ‘수확의 달’이 가까워지니 다들 숨죽이고 있는 게야.

    **#2.2**
    [장면: 혁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그의 눈빛에 걱정스러운 그림자가 스친다.]
    **혁**: …정말인가요? 이번에도 마을에서 몇 명을 데려간다고요?
    **어머니**: (한숨을 쉬며) 제국의 감찰관들이 이틀 뒤에 온다고 했으니… 그들이 정하는 대로 따를 수밖에. 우리 같은 평민은 그저 허락된 만큼만 숨 쉬고 살아야 하는 것을.

    **#2.3**
    [장면: 멀리 보이는 마을 입구. 어두운 그림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검은 갑옷을 입은 흑룡 기사단 다섯 명과, 그들보다 키가 크고 음침한 분위기의 ‘감찰관’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혁**: (움찔하며 어머니의 팔을 잡는다) …어머니! 저 사람들!
    **어머니**: (표정이 굳어지며) …벌써 오는구나.

    **#2.4**
    [장면: 감찰관과 기사단이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선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하던 일을 멈추고 고개를 숙이거나 집 안으로 숨어든다. 기사단이 휘두르는 창끝이 날카롭게 빛난다.]
    **감찰관**: (차가운 목소리, 마을 전체에 울려 퍼진다) 이 마을의 이장 나오라! 그리고 모든 백성은 광장에 모여라! 흑룡 제국의 명이다!

    **#2.5**
    [장면: 혁과 어머니가 다른 마을 사람들과 함께 광장으로 끌려 나온다. 혁은 어머니의 옷자락을 꽉 잡고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이다. 감찰관은 높은 단상 위에 서서 마을 사람들을 경멸 어린 눈빛으로 내려다본다.]
    **감찰관**: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듯) 수확의 달, 하늘에 감사할 시기다. 흑룡 황제 폐하께서는 너희 천한 백성들의 충성을 늘 잊지 않으신다. 너희들의 ‘생명력’으로 이 위대한 제국이 유지되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2.6**
    [장면: 마을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일부는 눈물을 훔치고, 일부는 바닥만 바라본다. 감찰관은 손에 든 검은 양피지 두루마리를 펼친다.]
    **감찰관**: 자, 그럼 황제 폐하의 은혜를 입을 영광스러운 자들을 호명하겠다. 첫 번째! 늙은 쟁기꾼, 김영감!
    **김영감**: (몸을 부들부들 떨며 무릎을 꿇는다) 안… 안 됩니다! 저는 이제 일도 제대로 못 하는데…!

    **#2.7**
    [장면: 흑룡 기사 두 명이 김영감을 거칠게 끌고 간다. 김영감은 저항하려 하지만, 기사들의 완력에 속절없이 끌려간다. 혁은 그 모습을 보며 주먹을 꽉 쥔다.]
    **감찰관**: 다음! 아낙네, 박씨!
    **어머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혁에게 속삭인다) 혁아, 엄마가… 엄마가 아니다, 저 여인이…
    **감찰관**: 다음! 노련한 방앗간지기, 최서방! 그리고…

    **#2.8**
    [장면: 감찰관의 시선이 혁과 어머니에게 닿는다. 혁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 감찰관의 입이 천천히 열린다.]
    **감찰관**: …그리고… 송씨 부인.
    **혁**: (얼굴이 하얗게 질린다) 어… 어머니…?
    **어머니**: (눈물 가득한 얼굴로 혁을 바라본다. 혁의 손을 꼭 잡는다) 혁아… 혁아, 잘 들어.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쳐야 해.

    **#2.9**
    [장면: 흑룡 기사단이 어머니를 향해 다가온다. 혁은 어머니를 놓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혁**: 안 돼요! 어머니! 가지 마세요!
    **어머니**: (혁을 뿌리치고 기사들에게 향한다. 마지막으로 혁에게 미소 지어준다) 살아남아… 꼭…

    **#2.10**
    [장면: 어머니가 기사들에게 붙잡혀 끌려간다. 혁은 절규하며 그녀를 부르지만, 다른 기사들이 혁을 막아선다. 혁은 광장 구석으로 밀쳐지고, 무력감에 주저앉는다.]

    **#2.11**
    [장면: 광장 중앙에 거대한 검은 돌 제단이 세워져 있다. 제단 주위에는 섬뜩한 룬 문자들이 새겨져 있고, 어두운 기운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붙잡힌 마을 사람들은 제단 주위에 쇠사슬로 묶여있다.]
    **감찰관**: (비릿하게 웃으며) 자, 그럼 시작해볼까. 흑룡의 축복을 내릴 시간이다!

    **#2.12**
    [장면: 감찰관이 제단 앞으로 나선다. 그의 손에는 뼈로 만들어진 듯한 지팡이가 들려 있다. 그는 기괴한 언어로 주문을 외우기 시작한다. 검은 기운이 더욱 강렬해지고, 제단에서 어두운 빛이 뿜어져 나온다.]
    **감찰관**: (주문을 외운다) “어둠의 심장이여, 깨어나라! 이 어리석은 생명들의 불꽃을 거두어라! 흑룡의 영광을 위하여!”

    **#2.13**
    [장면: 제단이 뿜어내는 어둠의 빛이 쇠사슬에 묶인 마을 사람들을 덮친다. 그들의 몸에서 생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눈에 보인다. 살갗이 쭈글쭈글해지고, 눈빛이 흐려지며, 비명조차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쓰러진다. 혁은 그 모든 과정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
    **혁**: (경악에 찬 표정으로) 으아아…

    **#2.14**
    [장면: 혁의 어머니가 제단 빛에 휩싸여 천천히 쓰러진다.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온 검은 기운이 제단으로 흡수되는 것이 보인다. 혁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에 피가 나도록 이를 악물며 흐느낀다. 그의 눈에 맺힌 눈물 속에는 깊은 절망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른다.]
    **혁**: (낮게 으르렁거리듯) …어머니…

    **#2.15**
    [장면: 모든 것이 끝났다. 제단은 잠잠해졌고, 마을 사람들의 시신은 끔찍하게 변해버렸다. 감찰관과 기사단은 만족스러운 듯 깔깔대며 광장을 떠난다. 남겨진 것은 폐허가 된 마을과 싸늘한 시신들뿐.]
    **혁**: (비틀거리며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의 눈은 텅 비어 있지만, 그 안에는 이글거리는 불꽃이 피어나고 있다.)

    **#2.16**
    [장면: 혁이 폐허가 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다.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은 텅 빈 공간. 혁은 벽에 기대어 주저앉는다.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감정이 그를 덮친다.]
    **혁**: (흐느끼며) …죽여버릴 거야… 저들을… 전부…

    **#2.17**
    [장면: 혁의 등 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녀는 검은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지만, 드러난 입가는 단단하게 다물려 있고, 날카로운 눈빛이 빛난다. ‘연화’.]
    **연화**: (나지막이, 그러나 단호하게) 이것이… 네가 본 제국의 민낯이냐.

    **#2.18**
    [장면: 혁이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본다. 연화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온다. 혁은 그녀를 경계하지만, 그녀의 눈빛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어딘가 깊은 상처와, 거대한 힘을 숨기고 있는 듯한 기운.]
    **혁**: (겁에 질린 목소리로) 당신은… 누구세요?

    **#2.19**
    [장면: 연화가 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그녀의 눈빛은 복수심에 불타는 혁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하다.]
    **연화**: 나는… 너와 같은 고통을 겪은 자. 그리고 그 고통을 되갚아주려는 자. 단순히 칼날만으로는 저 거대한 어둠을 벨 수 없어. 더러운 피에는 더 더러운 불꽃으로 맞서야지.

    **#2.20**
    [장면: 연화가 혁에게 손을 내민다. 그녀의 손에서 희미한 검붉은 빛이 일렁인다. 혁은 그녀의 손을, 그리고 그 빛을 바라본다. 그의 눈에 다시금 희망과 함께, 더욱 강렬한 결의가 떠오른다.]
    **혁**: (결의에 찬 목소리로) …어떻게 하면 되나요? 저… 저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면…

    **#2.21**
    [장면: 연화가 혁의 손을 잡는다. 그녀의 눈가에 섬뜩한 미소가 번진다.]
    **연화**: (낮게 읊조린다) 네 안에 잠든 어둠을 깨우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네가 본 그 끔찍한 진실… 이제는 네가 직접 그 진실을 짓밟을 차례다.

    **[에필로그]**

    **#3.1**
    [장면: 밤이 깊어진 마을. 모든 빛이 사라진 어둠 속에서, 멀리 제국의 수도 ‘흑룡성’의 높은 첨탑에서 음산한 검은 빛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그 아래, 폐허가 된 마을의 그림자 속에서 혁과 연화의 작은 실루엣이 보인다.]
    내레이션: (울림 있는 목소리) 거대한 제국은 산 자들의 생명력을 탐하며 더욱 강력해진다. 그러나 작은 불씨 하나가 모여 거대한 숲을 태우는 법. 어둠 속에서 피어난 이 작은 불꽃이, 과연 저 거대한 어둠을 집어삼킬 수 있을까. 그들의 싸움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 어반 판타지 (현대 판타지) 만화 (웹툰) 에피소드 스토리 대본

    ## **아스트라호: 심연의 조각**

    **에피소드 1: 미지의 표류물**

    **[SCENE START]**

    **장면 1: 광활한 우주 속 아스트라호 함교**

    **#1-1. 드넓은 검은 우주. 수없이 반짝이는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고 있다. 그 한가운데, 거대한 탐사선 ‘아스트라호’가 유유히 미지의 심연을 가르고 나아간다.**
    (내레이션)
    우주는 언제나 그랬다. 침묵하고, 광활하며, 무한한 미지의 경계. 인류가 아무리 깊이 파고든다 해도, 그 끝은 항상 다른 시작을 예고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시작을 찾아, 다시 한번 나아가고 있었다.

    **#1-2. 아스트라호 함교 내부. 푸른빛 홀로그램 스크린과 복잡한 콘솔들이 빼곡하지만, 실내 분위기는 차분하다. 선장 강태우(40대 후반, 굳건한 인상)가 중앙 선장석에 앉아, 홀로그램으로 펼쳐진 성도(星圖)를 응시하고 있다. 그의 옆으로는 탐사 팀장 한지아(30대 중반, 냉철하고 이지적인 인상)가 서서 데이터를 검토 중이다. 저편에서는 기술 팀장 박진호(40대 초반, 너스레가 느껴지는 인상)가 장비 상태를 확인하고 있고, 가장 젊은 막내 대원 김예나(20대 중반, 호기심 어린 눈빛)는 자신의 콘솔 앞에서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다.**
    **강태우**
    (나지막이)
    이번 섹터는 보고서보다 더 황량하군. 예상했던 반응성 성간 물질도 없고.

    **한지아**
    네, 선장님. 센서에는 특별한 이상 징후 없습니다. 텅 빈 우주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박진호**
    (키보드를 두드리며)
    저도 함선 동력 계통과 보조 시스템 전부 확인해봤는데, 먼지 한 톨도 안 들어가겠네요. 덕분에 한가합니다, 아주.

    **김예나**
    (고개를 갸웃하며)
    하긴, 이런 곳에서 뭔가를 찾는다는 게 더 신기하겠죠. 전 이번 탐사가 제 인생에서 가장 조용한 경험이 될 것 같아요.

    **강태우**
    (작게 웃으며)
    김 대원, 우주는 언제나 예상 밖의 일로 가득하다. 조용하다고 방심하면 안 돼. 그게 이 심연의 불문율이지.

    **#1-3. 그때, 김예나의 콘솔에서 경고음이 작게 울린다. 푸른 화면 위로 붉은색 경고 메시지가 깜빡인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김예나**
    어? 이건…!

    **#1-4. 예나의 얼굴 클로즈업. 놀라움과 혼란이 섞여 있다. 경고음이 조금 더 커진다.**
    (SFX: 삐빅- 삐빅-)

    **장면 2: 이상 신호의 발생**

    **#2-1. 다시 함교 전체. 모든 대원의 시선이 예나에게로 향한다.**
    **한지아**
    무슨 일이지, 김 대원?

    **김예나**
    (황급히 콘솔을 조작하며)
    미지의 에너지 패턴이 감지되었습니다! 이… 이런 종류의 신호는 처음 봅니다!

    **박진호**
    (자신의 콘솔로 달려가며)
    미지? 거짓말 마. 이 근방은 1급 청정 지역이야. 단순한 시스템 오류겠지.

    **#2-2. 예나의 콘솔 화면 클로즈업. 평소에 보던 파동과는 다른, 불규칙하면서도 강렬한 에너지가 그래프를 요동치게 만들고 있다. 그 에너지의 근원은 아직 불분명하지만, 매우 가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예나**
    오류가 아닙니다! 출력 레벨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요! 탐사선 외벽 센서 전역에서 동시에 감지되고 있습니다!

    **한지아**
    (자신의 콘솔로 예나의 데이터를 연동하며)
    위치 특정 가능해?

    **김예나**
    (식은땀을 흘리며)
    불가능합니다! 신호 자체가 너무… 불규칙합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여요!

    **#2-3. 강태우 선장의 얼굴. 진지하고도 결연한 표정. 그의 눈빛에 호기심과 경계심이 동시에 스친다.**
    **강태우**
    (단호하게)
    박 팀장, 전 함선 비상 모드 전환. 한 팀장, 데이터 분석 즉시 착수. 김 대원은 계속 신호 추적.

    **박진호**
    알겠습니다, 선장님!

    **한지아**
    네!

    **장면 3: 미지의 표류물을 향해**

    **#3-1. 아스트라호가 어둠 속을 조용히 이동한다. 함선의 조명이 주황색 비상등으로 바뀌어 있다. 우주선 외부 카메라 시점. 전방에 거대한 암흑 성운이 흐릿하게 보인다.**
    (내레이션)
    우리는 이 심연에서 무엇을 찾고 있는가? 인류의 지식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또 다른 미지의 조각들을. 그것이 때로는 인류를 위협하고, 때로는 더 큰 지혜를 선물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늘, 이 미지의 신호는 어떤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3-2. 함교 내부. 긴장감이 감돈다. 예나의 얼굴은 창백하고, 지아는 심각한 표정으로 홀로그램 화면을 분석 중이다. 진호는 연신 시스템을 체크하고 있다.**
    **김예나**
    신호가… 성운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야가 너무 안 좋습니다.

    **한지아**
    (데이터를 보며)
    생체 반응은 없습니다. 하지만 에너지 패턴은… 마치 지능적인 어떤 것의 신호처럼 보입니다. 기계적이지 않고, 유기적이지도 않습니다. 중간쯤 되는 기묘한 형태입니다.

    **박진호**
    성운은 저렇듯 어둡지만, 우리의 스캐너에는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었어. 대체 저 안에서 뭐가 튀어나온다는 거야?

    **강태우**
    (의자에 등을 기대며)
    정숙을 유지하고, 최대 접근 허용 거리까지 이동한다. 경계 태세 유지.

    **#3-3. 아스트라호가 천천히 암흑 성운 속으로 진입한다. 성운의 미세한 입자들이 함선 주변을 흐릿하게 감싼다. 시야가 급격히 나빠진다.**
    (SFX: (낮게 깔리는) 웅-… 웅-…)

    **장면 4: 발견**

    **#4-1. 성운의 어둠 속을 뚫고 나아가던 아스트라호 전방 스크린에, 거대한 그림자가 서서히 드러난다. 처음에는 윤곽만 보이지만, 점점 선명해진다.**
    **김예나**
    (숨을 들이쉬며)
    발견했습니다!

    **#4-2. 함교 대형 스크린 클로즈업. 성운 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물체가 떠오른다. 검은색 오벨리스크 형태를 띠고 있으며, 표면은 흡수력이 강한 흑요석처럼 매끄럽다. 하지만 그 안쪽에서는 푸른색과 보라색이 뒤섞인 오묘한 빛이 마치 혈관처럼 은은하게 깜빡이며 움직이고 있다. 물리적인 형태로 보이지만, 마치 살아있는 듯한 기괴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박진호**
    (넋이 나간 듯)
    세상에… 이건… 자연 생성물이 아니야.

    **한지아**
    (표정이 굳어지며)
    인공물이라고 하기에도… 너무나 이질적입니다. 어떤 문명의 유물도 이렇게 생기진 않았어요.

    **강태우**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으로 다가간다)
    모든 센서 작동. 이 물체에 대한 모든 정보를 끌어모아. 근접 탐사 드론을 보낼 준비를 해.

    **#4-3. 예나의 얼굴 클로즈업. 스크린 속의 기이한 오벨리스크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 순간, 그녀의 눈동자에 오벨리스크 내부에서 깜빡이던 푸른빛이 반사되어 섬광처럼 비친다.**
    (내레이션)
    나는 그것을 보았다. 심연의 한 조각. 모든 상식을 거부하는 형태. 그저 차갑고 거대한 돌덩이가 아님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장면 5: 깨어나는 유물**

    **#5-1. 아스트라호와 오벨리스크의 거리가 더욱 가까워진다. 함교 스크린 속 오벨리스크 내부의 빛나는 문양들이 더욱 선명해지고, 그 움직임이 빨라지는 듯하다. 마치 잠에서 깨어나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박진호**
    (다급하게)
    선장님! 유물에서 강한 에너지 파동이 감지됩니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해요!

    **한지아**
    함선 외벽에 압력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보호막을 올리겠습니다!

    **#5-2. 스크린 속 오벨리스크의 빛나는 문양들이 순식간에 함선 방향으로 뻗어나오는 듯한 환영을 만든다. 동시에 함교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SFX: 우우웅- 쾅! (함선이 흔들리는 소리))

    **김예나**
    (머리를 부여잡으며 비틀거린다)
    머리가… 머리가 너무 아파요…! 뭔가… 뭔가 들려요…!

    **#5-3. 예나의 얼굴 클로즈업.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 그녀의 눈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린다. 그녀의 귀에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 알 수 없는 낮은 ‘속삭임’이 울려 퍼지는 듯하다. 그녀의 시야가 흐릿해지며, 오벨리스크의 빛이 그녀의 눈에 이상하게 비친다.**
    (SFX: (뇌를 울리는 듯한 저음의) 즈으으으… 웅… 즈으으으… 웅…)
    **강태우**
    김 대원! 정신 차려!

    **한지아**
    선장님! 유물의 에너지가 우리 함선 시스템에 직접 간섭하고 있습니다! 통제 불능입니다!

    **박진호**
    보호막이… 보호막이 뚫리고 있습니다!

    **#5-4. 대형 스크린 속 오벨리스크의 푸른빛이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하며 폭주한다. 붉은 빛이 함선을 향해 섬광처럼 뿜어져 나온다. 동시에 예나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다. 그녀의 몸이 빛나는 오벨리스크의 붉은 섬광에 휩싸이는 듯하다.**
    **김예나**
    (비명)
    안 돼…! 이건…! 이건…!

    **#5-5. 마지막 패널. 암흑 성운 한가운데에서 섬광에 휩싸인 아스트라호와, 붉은 빛을 뿜어내는 미지의 오벨리스크가 대비되어 보인다. 우주선 내부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는 듯하다.**
    (내레이션)
    침묵하던 심연이 깨어났다. 그리고 그 심연의 조각은, 우리를 향해 자신만의 언어로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인류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포이자… 혹은 경이로움의 시작이었다.

    **[SCEN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