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114화

새벽 공기를 가르며 해안 마을에 도착했을 때, 강우는 오래된 흑백사진 속으로 걸어 들어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낡은 방파제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 짠 내 섞인 바람, 그리고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은 하늘 아래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는 작은 어촌의 풍경이 그의 지친 어깨를 더욱 무겁게 짓눌렀다. 수아의 흔적을 쫓아 여기까지 오는 데만 꼬박 열두 시간이 걸렸다. 낡은 수첩에 적힌 마지막 단서, ‘해안마을, 도예 공방’이라는 세 단어가 그를 이토록 멀리까지 이끌었다.

강우의 발걸음은 삐걱거리는 나무 계단을 따라 오르막길을 향했다. 마을은 아직 잠에서 덜 깬 듯 고요했고, 간간이 들려오는 갈매기 소리만이 그의 외로운 탐색에 동행했다. 언덕 중턱에 다다랐을 때, 그는 낡은 간판 하나를 발견했다. 볕에 바래고 비바람에 깎인 나무판에 손글씨로 새겨진 ‘바다 품은 도자’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조용히 쿵, 하고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수아가 이 간판을 보았을까? 아니, 어쩌면 그녀의 손길이 이 간판을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기대감이 스쳐 지나갔다.

공방 문은 굳게 닫혀 있었지만, 유리창 너머로 오래된 도자기들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진열되어 있었다. 흙먼지 쌓인 유리창에 얼굴을 바싹 대고 안을 들여다보는 강우의 눈에, 익숙한 문양의 조각 하나가 들어왔다. 해질녘 노을처럼 붉게 물든 바다를 표현한 작은 접시였다. 그는 그 접시를 기억했다. 수아가 대학 시절, 밤샘 작업 끝에 완성하고는 자랑스레 보여주었던, 그녀의 첫 개인전 출품작 중 하나였다. 그때의 수아는 흙으로 무엇이든 빚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오전 열 시가 넘어서야 공방 문이 드르륵, 하고 열렸다.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이 천천히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강우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 혹시 여기 ‘바다 품은 도자’ 공방 맞으신가요?”

할머니는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강우를 바라보았다. 깊게 패인 눈가의 주름이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었다. “그려. 무슨 일로 여까지 왔어?”

강우는 목이 메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을 위해 수많은 밤을 헤매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혹시… 예전에 여기서 ‘수아’라는 이름의 여인이 일한 적이 있나요? 키는 이 정도 되고, 긴 머리에… 눈이 참 예뻤던…” 강우는 손으로 수아의 키를 가늠하며 필사적으로 그녀의 특징을 설명했다. 그의 목소리에는 간절함과 함께 지난 세월의 무게가 배어 있었다.

할머니의 눈빛에 희미한 빛이 스쳤다. “수아라… 아, 그 아가씨! 김수아 말하는 게지? 한 이 년 전쯤에 여기서 지냈었지. 딱 한 해만. 눈이 어찌나 예뻤는지. 흙 만지는 솜씨도 참 곱고.”

강우는 숨을 들이켰다. 드디어, 드디어 그녀를 아는 사람을 만났다. “그 아가씨… 지금은 어디에 있나요?”

할머니는 빗자루를 내려놓고 공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강우는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공방 안은 흙냄새와 나무 타는 냄새가 섞여 아늑하면서도 어딘가 쓸쓸한 기운을 풍겼다. 할머니는 작업대 의자에 앉아 한참 동안 먼 산을 바라보듯 창밖을 응시했다. 그리고는 한숨을 쉬듯 입을 열었다.

“수아 아가씨는… 참 조용하고 예쁜 사람이었어. 밤마다 저 바다 보면서 한참을 앉아 있곤 했지. 흙을 만질 때만 유일하게 웃는 것 같았어. 눈빛이 살아나는 게 보였거든. 근데… 그 웃음 속에는 늘 그림자가 져 있었어. 가끔 밤에 잠결에 들여다보면…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고.”

강우의 심장이 아프게 쑤셨다. 그가 알던 수아는 늘 밝고 활기 넘치는 사람이었다. 그림자라니, 흐느낌이라니. 자신이 떠난 후 그녀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그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어느 날은 아가씨가 그랬어. 자기 인생은 마치 깨진 도자기 같다고. 아무리 잘 붙여놔도 금이 가 있고, 온전한 소리를 낼 수 없다고. 하지만 여긴… 흙냄새가 좋아서, 깨진 조각들로도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좋다고 했지.” 할머니는 작업대 위에 놓인, 반쯤 마른 흙덩이를 만지작거렸다. “그러다 일 년이 채 안 돼서 떠났어. 짐도 많지 않았고, 조용히 아침 일찍. 어디로 가는지 묻지 않았어. 물어도 답해주지 않을 것 같았거든.”

강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의 아픔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자신이 그녀를 떠난 후에, 그녀가 이런 고통 속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를 찢어놓는 것 같았다. 깨진 도자기라니… 자신이 깨뜨린 조각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마지막에는 조금 달라졌었어.” 할머니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떠나기 며칠 전부터는 밤늦게까지 작업을 하더니, 아주 큰 항아리 하나를 만들더구먼. 여태까지 만든 것 중에 제일 큰 거였어. 그리고 그 항아리 속에… 낡은 편지랑, 조약돌 몇 개를 넣더니, 그걸 태우듯이 구워냈어. 뜨거운 불 속에서 그 항아리가 점점 붉게 타들어 갈 때, 수아 아가씨 눈빛이… 뭐랄까, 처음 보는 빛을 띠었어. 슬픔도 아닌, 포기도 아닌… 어딘가로 나아가려는 듯한 그런 빛.”

강우는 고개를 들었다. “그 항아리는… 지금 어디에 있나요?”

“아침에 떠날 때, 깨끗이 치워달라고 했어. 항아리는 태우고 남은 재와 함께 저 바다에 뿌려달라고.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할머니는 먼 바다를 가리켰다.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것 같았어.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지. 그 항아리에 모든 슬픔을 담아 태우고, 바다에 흘려보냈으니… 이제 그녀는 어딘가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을 게야.”

강우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었다. 수아는 자신과의 모든 흔적을, 모든 아픔을, 그 항아리에 담아 바다에 흘려보낸 것일까? 새로운 삶이라니… 그 새로운 삶에 자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일까? 한 줄기 희망이 스며들던 마음 한구석이 다시 차가운 바닷물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그는 잠시 바닥에 주저앉아 할머니가 보여주었던 수아의 접시를 바라보았다. 붉게 물든 노을 아래 일렁이는 파도 문양… 그 파도 아래로 수아가 자신과의 과거를 모두 흘려보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지는 듯 아팠다. 그녀가 얼마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얼마나 큰 결심을 해야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자신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강우를 짓눌렀다.

할머니는 그런 강우를 말없이 지켜보더니, 따뜻한 차 한 잔을 내밀었다. “아가씨가 떠나기 전에, 이 말을 남겼었어. ‘만약 저를 찾는 사람이 있거든, 이제 저는 온전한 제가 되기 위한 여행을 떠났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그 여행은 끝없이 이어질 거라고요.’”

온전한 자신이 되기 위한 여행. 강우는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그의 지난 수많은 밤들이 수아의 고통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그녀의 흔적을 쫓는 것이 그녀의 새로운 시작을 방해하는 일이 될까? 아니면, 그녀가 온전히 자신을 찾아가는 그 길을, 자신도 함께 걸어야 할까?

해안 마을의 짠 내 섞인 바람이 강우의 뺨을 스쳤다. 그는 접시를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수아의 흐느낌,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갈망하던 그녀의 눈빛이 마음속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녀는 강우에게 ‘찾아달라’는 메시지를 남긴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이제 나를 놓아달라’는, 혹은 ‘나를 이해해달라’는 마지막 속삭임이었을지도 모른다.

강우는 일어섰다. 할머니에게 고개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고 공방 문을 나섰다. 발걸음은 다시 바다를 향했다. 멀리 수평선이 아스라이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모든 것을 흘려보낸 바다, 그리고 새로운 자신을 찾아 떠났다는 그 ‘끝없이 이어질 여행’. 강우는 이제 그 여행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도, 그 길 위에서 새로운 해답을 찾아야만 했다. 다음 발걸음은 어디로 향해야 할까. 그의 손에 들린 낡은 수첩은 이제 더 이상 단서를 찾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그녀의 아픔과 자신의 후회를 기록한 일기처럼 느껴졌다. 그의 첫사랑은, 여전히 그와 함께, 또 다른 형태의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