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밤공기가 소아의 뺨을 스쳤다. 손에 든 낡은 등불의 희미한 불빛이 축축한 흙길 위에 위태롭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녀의 심장은 쿵, 쿵, 쿵, 불규칙하게 고동치고 있었다. 며칠 밤낮으로 이어온 추적 끝에, 마침내 그녀는 이 오래된 마을의 가장 깊고 어두운 비밀의 문턱에 서 있었다.
“정말 여기에 있을까?”
소아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시선은 마을 뒷산 자락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허물어져 가는 낡은 오두막에 닿았다. 일명 ‘장씨 할배의 빈집’.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귀신이 나온다며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아는 알고 있었다. 이 집에 잠든 것이 귀신이 아니라, 시간 속에 묻힌 진실이라는 것을.
문을 열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먼지 냄새가 코를 찔렀다. 등불의 빛은 공간을 밝히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소아의 눈은 익숙하게 어둠 속을 헤집었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고 집 안으로 들어선 그녀는 곧장 안방으로 향했다. 지난번 옥분 할머니가 흘렸던 낡은 사진 조각, 그리고 그 위에 희미하게 새겨진 글자 ‘숨겨진 방’.
소아는 쭈그리고 앉아 마루 바닥을 꼼꼼히 살폈다. 손가락 끝에 거친 나무의 질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내, 다른 부분보다 미세하게 들뜬 나무판자를 찾아냈다. 숨을 죽이고 힘을 주어 들어 올리자, 삐걱이는 소리와 함께 틈이 벌어졌다. 그 아래에는 생각보다 깊은 공간이 드러났다.
먼지와 거미줄로 뒤덮인 상자 하나가 그곳에 놓여 있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낡은 상자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소아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꺼내 등불 가까이 가져갔다. 뚜껑을 여는 순간, 삭막한 침묵 속에서 그녀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안에는 누렇게 바랜 천 조각에 싸인 무언가가 있었다.
천을 걷어내자 나타난 것은 낡은 가죽 일기장과 몇 장의 빛바랜 사진들이었다. 일기장의 표지는 이미 글자가 지워져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내지는 아직 온전했다. 소아는 떨리는 손으로 첫 장을 펼쳤다. 연필로 쓰인 작은 글씨들이 눈에 들어왔다.
‘1973년 8월 17일. 그날의 비극은… 마을을 집어삼켰다. 하준이는, 내 아기는… 사라졌다. 모두가 강물에 휩쓸려 갔다고 했다. 하지만 난 믿을 수 없었다. 그 애는… 살아있을 거야.’
소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하준이. 이 이름은 옥분 할머니의 옛이야기 속에서 들었던 이름이었다. 할머니는 항상 그 이름을 되뇌며 알 수 없는 슬픔에 잠기곤 했다. 소아는 다음 장을 넘겼다.
‘1973년 9월 5일. 마을 회의. 장로들은 결정을 내렸다. 하준이의 존재를 지우기로. 이 아이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마을 전체가 위험해질 거라고. 나는 반대했다. 내 아기를, 어떻게… 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단호했다. 지키지 못하면 모두가 죽는다고. 그래서… 나는 거짓말을 했다. 하준이는 죽었다고. 내 심장은 찢어졌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다.’
소아는 숨을 들이켰다. 마을 전체의 위험? 거짓말? 일기장의 글은 점점 더 충격적인 진실을 암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기장 속 사진들을 집어 들었다. 그중 한 장은 젊은 시절의 옥분 할머니가 갓난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었다. 그 아이의 볼록한 볼에는 작은 점이 선명했다. 소아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하준이는 죽지 않았다. 마을의 비밀은 한 아이의 실종이 아니라, 그 아이의 존재를 은폐한 거대한 거짓말이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옥분 할머니가 있었다. 소아는 일기장과 사진들을 품에 안고 망설임 없이 오두막을 나섰다. 밤하늘의 달빛 아래, 그녀의 발걸음은 옥분 할머니의 집으로 향했다.
옥분 할머니의 집 마당에는 한밤중에도 은은한 등불이 켜져 있었다. 소아는 심호흡을 하고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저 소아예요. 잠시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시 후,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옥분 할머니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의 눈은 이미 잠에서 깬 듯 초롱초롱했지만, 동시에 어딘가 불안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소아는 조용히 방으로 들어섰다. 할머니는 소아가 품에 안고 온 낡은 상자를 보자마자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손이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이게… 이게 어디서….”
할머니의 목소리는 갈라졌다. 소아는 바닥에 조심스럽게 상자를 내려놓고 일기장을 펼쳤다. 그리고 사진 한 장을 할머니에게 내밀었다. 젊은 시절의 할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사진이었다.
“하준이죠? 이 아이… 강물에 휩쓸려 죽지 않았어요. 그렇죠, 할머니?”
소아의 질문에 옥분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의 눈가에 주름진 피부가 파르르 떨렸다. 오래도록 굳게 닫혀 있던 마음의 문이 강제로 열리는 고통이 역력했다. 할머니는 사진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마침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한숨 속에는 수십 년간 억눌러온 슬픔과 후회, 그리고 체념이 담겨 있었다.
“그래… 그 아이는… 죽지 않았어.”
할머니의 고백은 나직했지만, 소아의 심장을 강하게 울렸다. 그녀는 숨을 죽이고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날… 폭우가 쏟아지던 밤, 마을 전체가 무너질 것 같았지. 그때 하준이는 갓난아기였어. 그런데 마을의 주술사… 그분은 하준이가 이 마을에 엄청난 불행을 가져올 ‘별을 품은 아이’라고 했어. 그 아이가 자라면 마을이 재앙에 휩싸일 거라고….”
옥분 할머니의 목소리가 점차 흐느낌으로 변해갔다. 그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소아는 아무 말 없이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손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마을 사람들은 두려워했어. 그래서… 그래서 나에게 거짓말을 강요했어. 하준이를 강물에 휩쓸려 죽었다고 말하고, 그 아이를 멀리 보내버리자고… 다른 곳에서 키우자고… 그래야 마을이 산다고….”
할머니는 고개를 떨구었다. “나는… 나는 내 아기를 살리고 싶었어. 그래서 그렇게 했어. 모두를 속이고, 내 아기를… 다른 집으로 보냈어.”
소아는 충격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아이의 삶을, 그리고 한 어머니의 존재를 통째로 지워버린 잔혹한 선택. 하지만 그 선택은 아이를 살리기 위한, 마을을 지키기 위한 고뇌의 결과였다.
“그럼… 하준이는 어디로 갔어요?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소아의 목소리가 떨렸다. 할머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눈물로 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 깊은 곳에는 형언할 수 없는 결심 같은 것이 빛나고 있었다.
“그 아이는… 건강하게 잘 자랐단다. 그리고… 그리고 지금 이 마을에… 살고 있어.”
마지막 말은 메아리처럼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소아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하준이가 살아있다니? 그것도 지금 이 마을에? 누구?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녀가 아는 마을 사람들 중 누가 그 오랜 비밀의 주인공이란 말인가?
옥분 할머니는 소아의 손을 꽉 잡았다. “내가… 내가 다 말할 수는 없단다. 아직은… 때가 아니야. 하지만 너라면… 네가 이 아이를 찾을 수 있을 거야. 네가… 이 오랜 굴레를 끊을 수 있을 거야.”
할머니의 눈빛은 간절했다. 소아는 혼란스러움과 동시에 거대한 진실의 무게에 짓눌리는 듯했다. 그녀의 눈은 방 한편에 놓인 낡은 사진첩으로 향했다. 옥분 할머니가 숨겨온 또 다른 비밀의 흔적처럼 보였다. 하준이는 누구인가? 그리고 그 아이가 마을에 가져올 불행이란 대체 무엇인가? 따뜻한 줄로만 알았던 이 시골 마을의 심장은 지금, 차갑고 거대한 비밀의 장막 아래에서 위태롭게 뛰고 있었다.
소아는 다시 한번 심장이 격렬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진실은 이제 막 그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한 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