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수채화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대로 걷다 보니, 어느새 낡은 담장과 슬레이트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오래된 골목길에 접어들었다. 담벼락 아래에는 따스한 오후 햇살을 받으며 길고양이 한 마리가 여유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녹슨 대문과 벽에 핀 이끼들이 이 곳의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뛰놀던 고향 동네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옅은 미소가 지어졌다. 골목 구석구석에 배어 있는 사람 사는 냄새와 포근한 정취가 얼어붙은 마음을 사르르 녹여주는 기분이었다. 화려하고 번듯한 도심의 빌딩 숲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위로를 받은 오후의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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