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은 익숙한 고요함 속에 잠겨 있었다. 해가 길어지는 초여름 저녁, 창문 너머 아파트 단지의 소음은 저 멀리 그림처럼 흐릿했다. 손안의 커피는 식어 있었지만, 그녀는 미동도 없이 그저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하루, 예측 가능한 내일들. 어쩌면 그 평온함이 그녀를 더욱 외롭게 만들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때였다. 야옹.
아주 작고, 그러나 분명한 소리. 지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착각인가? 그녀의 아파트는 1층이 아니었고, 베란다 아래로 고양이가 올라올 리 만무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한번. 야옹. 이번엔 좀 더 가깝게, 애처롭게 울리는 소리였다.
지영은 조심스럽게 베란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의 화분들 사이에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는 작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털은 윤기를 잃었고, 몸은 앙상했다. 한쪽 귀 끝은 찢어져 있었고, 겁에 질린 듯한 눈은 불안하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길고양이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올라왔을까.
고양이는 지영의 시선을 느끼자 움찔하며 몸을 더욱 작게 웅크렸다. 지영은 어릴 적에도, 어른이 되어서도 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었다. 그녀에게 길고양이는 그저 길가에 사는 생물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작은 생명체의 눈에서 읽히는 절박함에, 그녀는 왠지 모를 동정심을 느꼈다.
“괜찮아….”
자신도 모르게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고양이는 여전히 경계했지만, 지영의 목소리 탓인지 움직임을 멈췄다. 지영은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참치캔 하나가 눈에 띄었다. 고양이가 먹을 수 있을까. 작은 그릇에 물과 참치를 조금 덜어 베란다 바닥에 놓았다. 그리고는 몇 걸음 물러서서 고양이가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거리를 두었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고양이는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다가왔다. 그 작은 코가 그릇 위를 킁킁거리더니, 이내 허겁지겁 참치를 먹기 시작했다. 먹는 내내 고양이는 불안한 눈으로 지영을 힐끔거렸다. 지영은 그저 조용히 고양이가 식사를 마칠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참치 한 캔을 게눈 감추듯 비우고, 물까지 마신 고양이는 훨씬 안정된 모습이었다. 이제 지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찢어진 귀와는 어울리지 않게, 그 눈동자는 묘한 깊이를 담고 있었다. 마치 그녀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니?”
지영은 자신도 모르게 고양이에게 말을 걸었다. “배는 고팠을 거고… 어디 기댈 곳도 없었겠지.”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부드러웠다. “나도 가끔 그래. 너무 지치고, 모든 게 버겁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
그 순간, 고양이가 놀랍게도 갸르릉 소리를 내며 지영을 향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그리고는 천천히 몸을 돌려, 꼬리를 살랑이며 지영의 발목에 제 몸을 비볐다. 그 따뜻하고 작은 체온이 지영의 다리에 닿자, 그녀의 심장이 갑자기 따뜻한 물로 가득 차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놀라움에 굳어 있던 지영은 천천히 몸을 숙여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드럽고 가느다란 털의 감촉이 손끝에 닿았다. 고양이는 만족스러운 듯 눈을 감고 지영의 손길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너도 나처럼… 외로웠구나.”
지영은 고양이의 말 없는 대답에서, 어쩌면 자신만이 느꼈던 감정들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위안을 얻었다. 이 작은 생명체는 단순히 배가 고파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어쩌면, 어쩌면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아온 것은 아닐까. 그날 밤, 지영의 잠 못 이루는 밤은 처음으로 따뜻한 온기로 가득 찼다. 그녀는 알 수 없는 기대로 가슴이 설렜다. 다음 날 아침, 이 작은 고양이가 여전히 그녀의 베란다에 머물러 있을지, 아니면 또 다른 특별한 이야기를 가져올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