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은 길고 길었다. 꿈이었을까, 환상이었을까. 창밖을 내다볼 때마다 익숙한 골목길은 변함없이 침묵했고, 웅크린 그림자 속에서 어떤 기이한 일도 벌어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귓가에 맴도는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이 그렇게 놀랄 일인가?” 그 고양이의 물기 어린 털에서 맡았던 희미한 흙냄새까지, 모든 감각이 그 순간이 현실이었음을 증명하는 듯했다.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짙은 커피 향도 내 마음속 짙은 안개를 걷어내지 못했다.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며 서성였다. 혹시, 혹시 다시 나타날까. 어리석은 기대임을 알면서도, 그 알 수 없는 설렘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단 한 번의 대화였지만, 그 짧은 순간이 메마른 내 일상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오후 늦게, 해가 기울며 붉은빛을 토해내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나는 습관처럼 창가에 놓인 낡은 의자에 앉아 아무 의미 없이 손가락으로 유리창을 더듬고 있었다. 그때, 시야 한구석에서 움직이는 검은 점이 포착되었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듯했다. 어제의 그 고양이였다. 녀석은 어제와 같은 담벼락 위에 앉아 꼬리를 살랑이며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는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었다. 녀석은 고개만 갸웃할 뿐, 도망가지 않았다. 어제처럼 두려움보다는 호기심이, 그리고 아주 조금의 기대감이 나를 감쌌다. 녀석의 눈빛은 어딘가 심드렁하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오래된 지혜 같은 것이 담겨 있었다.
“정말… 어제 일이 꿈이 아니었구나.”
내 목소리는 떨렸다. 녀석은 긴 하품을 하고는 나른하게 눈을 깜빡였다.
“놀랄 만큼 놀랐다는 얼굴이군. 어제 분명 내가 말했지 않았나?” 녀석의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어딘가 건조한 재치로 가득했다. “그래. 네가 보고 있는 나는, 말을 할 줄 아는 고양이다. 이제 좀 믿음이 가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믿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너는… 평범한 길고양이잖아.”
녀석은 피식 웃는 듯했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평범함의 기준이 무엇이지? 길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특별함을 지닌 법이다. 인간들은 스스로를 ‘특별하다’ 여기지만, 때로는 그 어떤 생명보다도 답답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들이지.” 녀석은 시선을 멀리, 지나가는 자동차 행렬에 두었다. “무엇보다, 굳이 ‘왜’냐고 묻는가? 세상의 모든 신비에 이유를 찾아 헤매는 것은 인간들의 고질병이지. 그냥 받아들이면 안 되나? 그냥, 내가 말을 할 수 있는 고양이라고.”
녀석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녀석은 옳았다. 나는 왜 그 즉시 이유를 찾으려 했을까. 단지 이 기묘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현명한 태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보다 더 피곤해 보이는군. 너무 많은 생각을 했나 보지?” 녀석은 다시 나를 보며 말했다. 그 눈빛은 단순한 질문이라기보다, 내 속마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가 있었다. 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무 많은 생각을 했어. 사실, 이렇게 누군가와 제대로 이야기를 해본 것도… 아주 오랜만이라서.”
내 입에서 나온 고백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나는 스스로가 얼마나 외로웠는지 깨달았다. 혼자 있는 시간에 익숙해져, 그 외로움마저도 일상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고양이의 말 한마디가 그 굳건한 벽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잘 나타난 셈이군. 나는 할 이야기가 많고, 볼 것도 더 많거든.” 녀석은 유유히 담벼락에서 뛰어내려, 창턱 아래 놓인 작은 화분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는 몸을 웅크리고 앉아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녀석의 시선은 다시 멀리, 저물어가는 도심의 풍경을 향했다.
“인간들은 너무 서두르지. 조용히 변하는 것들을 놓치고 살아. 보라. 저녁 햇살이 건물 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방식, 비가 오기 전 공기 중에 감도는 미묘한 흙냄새, 작은 풀잎 위를 기어가는 무당벌레의 움직임. 그런 것들이 진짜 세상의 이야기인데.”
나는 녀석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녀석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혹은 보려고 하지 않았던 세상의 작은 움직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녀석과 함께하는 이 시간은, 고요하지만 낯선 온기로 가득했다. 내 안에 닫혀있던 무언가가 아주 천천히, 부드럽게 열리는 듯했다.
길게 기지개를 켠 고양이는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짧게 눈을 맞추었다.
“자주 보게 될 거야. 다음번엔 너무 놀라지 마.”
그 말을 끝으로, 녀석은 어스름이 깔린 골목길 안으로 미끄러져 사라졌다. 나는 한참 동안 열린 창문 곁에 서서, 녀석이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았다. 마음에 작은 씨앗 하나가 심어진 듯했다. 그 씨앗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따스하고, 희망적인 감정이 나를 감쌌다. 내일, 또다시 녀석을 만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때는, 또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