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5화

차가운 바람, 따뜻한 온기

산모퉁이 작은 빵집에는 언제나 새벽부터 온기가 가득했다. 지훈은 갓 구운 빵들이 식어가는 빵 선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븐에서 막 나온 식빵의 고소한 향이 코끝을 간지럽히고, 창밖으로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산등성이가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늘따라 그의 마음 한구석이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며칠 전부터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어렴풋이 느꼈던 탓일까. 특히 매일 아침 문을 열기가 무섭게 찾아와 갓 구운 크루아상과 따뜻한 우유 한 잔으로 하루를 시작하던 김 여사님의 발길이 이틀째 뜸했다. 늘 밝고 정정한 모습으로 빵집의 활력소가 되어주던 그녀였기에, 그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다.

지훈은 평소 같으면 만들지 않던 빵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반죽 위를 부드럽게 오갔다. 마치 어루만지듯 섬세한 움직임 속에서 빵은 서서히 생명을 얻어갔다. 오늘 그가 만들고 싶은 것은 단순한 빵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잠시나마 따뜻한 기운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그런 위로의 빵이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흐릿하게 김 여사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따뜻한 한 조각, 작은 위로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빵집 문이 조용히 열렸다. “어서 오세요…” 지훈의 목소리가 덩달아 낮아졌다. 들어선 사람은 다름 아닌 김 여사님이었다. 그녀는 평소의 화사한 스카프 대신 낡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었고, 굽은 어깨는 마치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듯 축 처져 있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왠지 모를 물기가 어려 있는 듯했다.

“지훈 씨… 빵 좀 사러 왔는데…”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 작아서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늘 활기 넘치던 그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지훈은 가슴이 아팠다. 그는 말없이 오븐에서 갓 나온 따뜻한 우유 식빵 한 덩이를 들고나왔다. 막 구워져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식빵은 온몸으로 온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김 여사님, 오늘 아침에 특별히 구운 빵인데, 방금 나왔으니 한 조각 맛보세요.” 지훈은 빵칼로 먹기 좋게 두툼한 식빵 한 조각을 잘라 따뜻한 접시에 담아 그녀에게 내밀었다. 평소 같으면 이런 서비스를 하지 않지만, 오늘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김 여사님은 희미하게 미소 지으며 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따뜻한 빵 조각을 입안에 넣자마자, 그녀의 눈가에 맺혔던 물기가 이내 투명한 눈물방울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추억의 맛, 다시 피어나는 희망

“어머니… 어릴 적 해주셨던 빵 맛이 나는구나…” 그녀는 흐느끼듯 말했다. “우리 손자가… 서울로 이사를 갔어… 엄마 아빠 따라… 나 혼자 남겨두고… 이 빵 맛이… 우리 손자랑 처음 같이 빵 만들었던 날이랑 똑같아…”

지훈은 말없이 김 여사님 곁에 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는 그저 따뜻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빵 한 조각에 담긴 지훈의 정성과, 그 빵이 불러일으킨 추억이 그녀의 얼어붙었던 마음을 녹이는 듯했다. 김 여사님은 한참을 울다가 이내 조용히 눈물을 닦았다.

“고맙다, 지훈 씨… 이 빵… 정말 고마워. 잊었던 따뜻함을 다시 느끼게 해주는구나.”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가늘었지만, 그 안에는 잃었던 활기가 조금씩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녀는 남은 식빵을 조심스럽게 봉투에 담았다. 빵집을 나서는 그녀의 발걸음은 아까보다 훨씬 가벼워 보였다. 굽었던 어깨도 조금이나마 펴진 것 같았다.

창밖으로 김 여사님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지훈은 비로소 미소 지었다. 빵 한 조각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오늘 하루, 그녀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을 전했을 터였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오븐에서는 여전히 따뜻한 온기가 뿜어져 나왔고, 그 온기만큼이나 따뜻한 기적이 오늘도 조용히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