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45화

차가운 공기마저 별빛처럼 부서지는 밤이었다. 스튜디오 유리창 너머로 쏟아지는 무수한 별들을 바라보며, DJ 소라는 마이크 앞에 앉았다. 늘 이 시간, 이 자리에서 수많은 이들의 밤을 위로해왔지만, 오늘은 왠지 모르게 자신의 마음이 더 시린 듯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잔잔했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이야기의 흔적이 희미하게 묻어나는 듯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소라입니다. 오늘 밤도 잠 못 이루는 당신 곁에 제가 있어요. 문득 올려다본 하늘이 너무나 아름다워서, 아니면 어쩐지 쓸쓸해서, 잠시 멈춰 서게 되는 그런 밤이죠. 어떤 밤하늘을 보셨나요? 어떤 이야기를 품고 계신가요?”

오프닝 멘트를 마치고 첫 곡이 흘러나가는 동안, 소라는 옅은 한숨을 쉬었다. 스물다섯 해 전, 그녀의 어린 가슴에 새겨진 그 밤하늘이 오늘 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때도 이렇게 별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작고 여린 손으로 서로의 손을 꼭 잡고,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기억.

잠시 후, 청취자 사연 코너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문자와 메시지가 쏟아지는 가운데, 한 통의 전화 연결이 유독 소라의 눈길을 끌었다. ‘별똥별’이라는 이름의 청취자였다. 발신음을 들으며, 소라는 알 수 없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가슴 한구석이 쨍하게 울리는 듯했다.

“네, 별똥별님, 연결되셨나요?”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다소 망설이는 듯했으나, 이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소라 DJ님. 저는 민우라고 합니다. 지금 이 순간, 너무 떨려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민우. 그 이름 석 자가 소라의 귓가를 스치자마자, 그녀의 심장이 불안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잊고 지냈던 이름, 잊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순식간에 파도처럼 밀려왔다.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소라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저에게는 오래된 약속이 하나 있어요. 아주 어렸을 때, 초등학교 3학년 때였죠. 이맘때쯤, 밤하늘에 별똥별이 쏟아지던 날이었어요. 그때 저는 한 여자아이와 함께 들판에 누워서 별똥별을 봤습니다. 그 아이는 이 라디오를 정말 좋아했어요. 언젠가 이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게 꿈이라고 했었죠. 그때 우리는 둘만의 비밀스러운 약속을 했습니다. 언젠가 다시 만나면, 꼭 그 밤처럼 별이 쏟아지는 밤에, 이 라디오를 통해 서로를 알아보자고요.”

민우의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는 그 소녀가 “별사탕”이라는 별명을 좋아했고, 헤어질 때마다 꼭 같은 노래를 흥얼거렸다고 했다. ‘별의 자장가’라는 이름의 오래된 동요였다. 어린 날의 순수한 약속은 곧 슬픈 이별로 이어졌고, 그는 그 후로 단 한 번도 그 소녀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고 했다. 스튜디오 안의 공기는 마치 얼어붙은 듯 정지했다. 소라의 손끝이 차가워지고,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는 것을 느꼈다. ‘별사탕’… ‘별의 자장가’… 이 모든 것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녀의 과거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 아이는 정말 특별했어요. 저에게는 세상의 모든 별보다 빛나던 아이였죠. 혹시 그 아이가 지금도 이 라디오를 듣고 있을까요?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저는 오늘, 용기를 내어 그 아이에게 이 노래를 신청합니다. ‘별의 자장가’. 비록 지금은 그 아이가 어디에 있는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지만, 이 노래가 들린다면, 그 아이에게 제가 아직 그 약속을 잊지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민우의 목소리는 마지막에 가늘게 떨렸다. 소라는 겨우 입술을 떼어냈다. 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려 애썼지만, 그녀의 목소리에도 짙은 떨림이 묻어났다. 심장이 발버둥 치듯 아파왔다. 그녀는, 그녀는 민우의 ‘별사탕’이었다.

“네, 민우님. 소중한 사연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약속은 세월이 흘러도, 어떤 이별 속에서도 결코 빛을 잃지 않는 것 같아요. 별들이 늘 같은 자리에서 빛나듯이요.”

소라는 겨우 다음 곡을 소개했다. ‘별의 자장가’. 멜로디가 스튜디오를 채우자, 소라는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의 민우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반짝이던 눈망울, 다정한 손길, 그리고 밤하늘에 별똥별이 떨어질 때마다 함께 외치던 약속의 말. ‘우리는 꼭 다시 만나자. 별이 가장 빛나는 밤에.’

노래가 끝났다. 소라는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그녀의 눈은 이미 촉촉했지만,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오히려 단단해진 듯했다. 민우에게 전하는 말은, 곧 그녀 자신의 고백이기도 했다.

“민우님. 그리고 오늘 밤, 이 노래를 듣고 계실 모든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떤 약속은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라지지 않아요.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별들처럼, 길을 잃지 않도록 우리를 인도하죠. 당신의 ‘별사탕’도 분명히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이 목소리가 닿는다면, 이 노래가 들린다면… 당신의 별사탕은 지금 당신과 같은 밤하늘을 보며, 같은 약속을 되새기고 있을 거라고 믿어요. 때로는 찾지 않아도, 가장 빛나는 순간에 서로를 알아보게 되는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이 오기도 하니까요.”

소라는 시선을 창밖의 밤하늘로 돌렸다. 수많은 별들 중, 유독 한 별이 그녀에게 말을 거는 듯 반짝였다. 그녀는 알았다. 민우는 그녀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도, 그를 찾아낼 것이다. 이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민우가 전화를 끊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그녀의 핸드폰에, 스튜디오 전화기에, 새로운 알림이 깜빡였다. 발신자 이름은 없었지만, 메시지는 짧고 명료했다.

“별사탕, 나 민우야. 너였구나.”

소라의 손이 덜덜 떨렸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그녀는 다시 별이 쏟아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25년 만에 찾아온 기적. 그녀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제, 무엇을 말해야 할까. 그녀의 심장은 벅찬 감격과 함께, 새로운 시작의 두려움으로 격렬하게 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