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수없이 많은 별들이 침묵 속에 반짝였고, 그 빛은 지상으로 내려와 작은 라디오 스튜디오의 유리창에 닿았다. 은하의 목소리는 별빛만큼이나 고요하고 따스하게 전파를 타고 흘렀다. 그녀의 앞에는 낡은 종이 한 장이 놓여 있었다. 오늘 밤, 별무리 님의 사연이었다.
“안녕하세요, 은하 DJ님. 저는 ‘별무리’라고 합니다. 오랜만에 밤하늘을 올려다보다 문득 형 생각이 났어요. 형은 저보다 열 살이나 많아, 어린 저에게는 세상의 전부나 다름없었죠. 밤마다 옥상에 올라가 별을 헤아리며, 형은 제게 보이지 않는 별들의 이름을 알려주곤 했습니다. 카시오페이아, 오리온,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 있는, 우리 둘만의 별자리.”
은하의 손가락이 무심코 찻잔의 온기를 더듬었다. 별자리. 오래전, 너무나 오래전의 기억이 심장 한편을 긁고 지나갔다. 그녀에게도 그런 별이 있었다. 아니, 그런 사람이 있었다. 은하의 오빠, 하준.
“어느 날, 형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제게 아무런 말도 없이. 어린 저는 그저 버려졌다고 생각했고, 한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마다 원망과 그리움이 뒤섞였습니다. 이제는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되었지만, 여전히 그날의 그림자는 저를 따라다닙니다. DJ님, 형에게 다시 손을 내밀어도 될까요? 제가 기억하는 그 별자리를, 다시 함께 찾아볼 수 있을까요?”
사연이 끝나자 스튜디오에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은하는 숨을 고르고 마이크를 향해 몸을 기울였다. 그녀의 눈은 멀리, 스튜디오 창문 너머의 밤하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별무리의 사연은 은하 자신의 이야기와 너무나 흡사했다. 그녀에게도 하준 오빠가 있었다. 열 살 차이. 세상의 전부.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존재. 그녀의 가슴속 깊이 묻어두었던 조약돌 같은 기억이 이제는 날카로운 파편처럼 돋아났다.
‘왜 그랬어, 오빠? 왜 아무 말도 없이….’
어릴 적, 하준은 은하에게 별자리를 알려주는 대신, 늘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다. 밤하늘을 보며 지어내는 상상의 이야기들. 그중에는 작은 여우별이 길을 잃고 헤매다 용감한 새별의 도움으로 고향 별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있었다. 하준은 늘 말했다. “은하야, 우리는 저 별들처럼 늘 연결되어 있는 거야.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그러나 현실은 동화와 달랐다. 오빠는 떠났고, 은하는 홀로 남겨졌다. 그 후로 수년이 흘렀고, 오빠의 소식을 어렴풋이 전해 들었을 뿐,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언젠가 오빠가 자신을 찾아오거나, 최소한 먼저 연락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침묵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 침묵은 은하의 마음속에 단단한 벽을 세웠다.
은하는 마이크를 다시 잡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평소보다 더 깊은 감정이 실려 있었다. “별무리 님, 당신의 사연은 제 마음을 깊이 울렸습니다. 길을 잃은 여우별과 용감한 새별의 이야기처럼, 때로는 우리도 길을 잃거나 홀로 남겨진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밤하늘의 별들이 서로 이어져 하나의 별자리를 이루듯, 우리 인간 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상처와 오해는 단단한 껍질을 만들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따스한 기억들이 숨 쉬고 있습니다. 어쩌면 형님도 당신처럼, 당신이 보낸 편지를 읽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라디오는 수많은 소리들을 전달하지만, 때로는 침묵 속에 담긴 진심을 듣게 합니다. 손을 내미세요. 비록 그 손이 허공을 더듬을지라도, 그 시도 자체로 이미 새로운 별자리를 그리기 시작하는 겁니다.”
은하의 말이 끝나자,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스튜디오를 채웠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았다. 수많은 별들 사이로, 유난히 밝게 빛나는 하나의 별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그녀의 휴대폰 화면이 번쩍였다. 발신인은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망설임 끝에 메시지를 열었다. 짧은 문자였다.
‘은하야, 혹시… 너도 그 별자리를 아직 기억하니? 여우별 이야기.’
은하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수년의 시간이, 수많은 밤들이 이 한 줄의 메시지에 녹아내리는 듯했다. 라디오의 불빛 아래, 그녀는 마침내 자신만의 별을 찾은 듯 미소 지었다. 밤은 깊어갔지만, 은하의 마음속에는 이제 막 새벽이 찾아오는 듯했다. 어둠 속에서, 새로운 별자리가 그려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은하였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 다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