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진관에서 생긴 일 – 제119화

오래된 사진관에서 생긴 일 – 제119화

“사진 좀 복원해 주실 수 있으세요? 아주… 오래된 사진인데…”

김 여사님의 손에 들린 낡은 사진 한 장은 시간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듯했다. 색은 바래다 못해 형체조차 희미했고, 종이 가장자리는 닳고 헤져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위태로웠다. 현우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받아들었다. 어슴푸레하게 보이는 건 대여섯 명쯤 되는 아이들이 다닥다닥 붙어선 모습이었다.

“최대한 노력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워낙 손상이 심해서 장담은 못 드립니다.”

현우의 말에 김 여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눈빛에는 체념과 간절함이 동시에 어려 있었다.

“그 아이가… 이 사진 속에 있을 거예요. 제가 찾던 아이가…”

김 여사님의 목소리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그리움이 묻어났다. 현우는 매번 이런 사연을 접했지만, 익숙해질 수 없는 종류의 아픔이었다. 사진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사라진 시간을 붙잡으려는 사람들의 애타는 마음이라는 것을 현우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현우는 며칠 밤낮을 사진 복원에 매달렸다. 오래된 사진관의 마법 같은 기술과 현우의 섬세한 손길이 더해져 희미했던 형체들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컴퓨터 화면 속에서 아이들의 희미한 미소와 장난기 어린 눈빛이 조금씩 살아났다. 먼지처럼 바래버린 색상에 생기를 불어넣고, 찢어진 부분을 이어 붙이며 시간을 되돌리는 작업은 고되고도 신비로웠다.

아이들의 얼굴 하나하나를 섬세하게 다듬던 현우의 눈이 문득 한 아이에게 멈췄다. 맨 가장자리에 서서 고개를 살짝 숙인 채 수줍게 웃고 있는 아이였다. 현우는 왠지 모를 익숙함에 이끌려 그 아이의 얼굴을 더욱 확대했다.

그리고 그 순간,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이의 왼쪽 손목에 난 희미한 흉터. 개구쟁이 시절, 높은 담장을 넘다 넘어져 생겼던 길고 가는 흉터였다. 현우는 마치 시간을 거슬러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졌다.

“준영아…”

현우의 입술에서 저절로 이름이 터져 나왔다. 오래전 헤어진 친구, 준영이. 어린 시절, 보육원에서 함께 자라며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준영이었다. 부모님을 잃고 홀로 남겨졌던 현우에게 준영은 빛이자 그림자였다. 하지만 어느 날, 준영은 아무런 말없이 보육원을 떠났고, 현우는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그를 만날 수 없었다. 현우는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무의식 깊은 곳에서는 늘 준영을 그리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떨리는 손으로 복원 작업을 마친 현우는 완성된 사진을 조심스럽게 액자에 담았다. 다음 날 아침 일찍 김 여사님이 사진관 문을 두드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고 있었다.

“사진… 다 되었습니다, 김 여사님.”

현우는 조용히 액자를 건넸다. 김 여사님의 손이 떨렸다. 마침내 액자 속 사진을 확인한 그녀의 눈가에 주름이 깊어지더니, 이내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맞아… 이 아이야… 우리 준영이…”

김 여사님은 복원된 사진 속 준영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흐느꼈다. 그 순간 현우는 참을 수 없는 충격에 휩싸였다. ‘우리 준영이’라니. 김 여사님은 준영을 어떻게 아는 걸까? 그리고 왜 그를 찾고 있었던 걸까? 잃어버린 줄 알았던 오랜 친구가, 자신에게는 보육원 친구였던 준영이가, 김 여사님에게는 또 다른 의미의 ‘그리움’이었다는 사실에 현우는 혼란스러웠다.

“김 여사님… 준영이를…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현우의 목소리는 갈라져 나왔다. 김 여사님은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슬픔으로 가득했지만, 그 안에는 현우가 알지 못하는 오랜 사연의 깊이가 담겨 있었다.

“우리 아들이었지… 아주 잠깐이지만, 내 아들이었어. 이 사진은…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찍었던 사진이야.”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준영이가… 김 여사님의 아들이었다니. 현우는 가슴속에서 복잡한 감정들이 격류처럼 소용돌이치는 것을 느꼈다. 잃어버린 친구를 찾았다는 기쁨과, 그 친구가 또 다른 이의 지독한 그리움이었다는 사실에 대한 놀라움. 오래된 사진관이 또 한 번, 미처 알지 못했던 인연의 실타래를 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실타래는 현우 자신의 과거와도 깊숙이 연결되어 있었다.

현우는 김 여사님과 준영이 사이에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지, 그리고 이 복원된 사진이 그들에게 어떤 새로운 길을 열어줄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사진관의 오래된 카메라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한 기분으로, 그는 다음 장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