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 – 제135화

기억의 파편, 멜로디의 덫

고요한 저녁, 작은 오두막에는 장작 타는 소리와 함께 나직한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서윤은 창밖의 어둠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이 점을 찍듯 밤하늘을 수놓고 있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그 너머의, 잡히지 않는 과거를 향하고 있었다. 지후는 조용히 그녀의 곁에 다가와 어깨를 감쌌다. 그의 따스한 체온이 그녀의 차가운 마음을 잠시 녹이는 듯했다.

“또 그 꿈을 꿨나요?” 지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는 서윤이 최근 겪고 있는 잦은 악몽을 알고 있었다. 그 꿈은 늘 흐릿했지만, 끝에는 알 수 없는 상실감과 함께 어떤 강렬한 빛이 번쩍였다고 했다.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꿈이 아니었어요. 그냥… 가슴 한가운데가 텅 비어버린 듯한 기분이에요. 마치 무언가 아주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데, 무엇인지도 모르는 고통이요.”

지후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안아주었다. 그의 품은 늘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기억을 잃고 이 알 수 없는 시대에 불시착한 이래, 지후는 그녀의 유일한 이정표이자 그림자였다. 그는 과거를 잃은 그녀를 보듬었고, 미래를 알 수 없는 그녀의 옆을 묵묵히 지켰다.

다음 날 아침, 그들은 어제 발견한 고문서 더미를 정리하기 위해 오두막 뒤편의 작은 창고로 향했다. 먼지로 뒤덮인 창고 한구석, 지후는 낡은 천에 싸인 무언가를 발견했다. 조심스럽게 천을 걷어내자,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나무 상자가 드러났다. 섬세하게 조각된 문양과 빛바랜 칠은 그것이 예사로운 물건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뭘까요?” 서윤이 흥미롭게 물었다. 그녀는 상자 위를 손가락으로 쓸었다. 어딘가 익숙한 듯한, 희미한 잔향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지후는 조심스럽게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보석이나 귀중한 물건 대신, 낡은 오르골 하나가 들어 있었다. 손잡이를 돌려 태엽을 감자, 금속의 삐걱거리는 소리가 잠시 창고를 채웠다. 그리고 이내, 맑고 애조 띤 멜로디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띠링- 띠리링- 띠링-

멜로디가 서윤의 귓가에 닿는 순간, 그녀의 심장이 마치 번개를 맞은 듯 격렬하게 요동쳤다. 눈앞이 흐릿해지고, 갑작스러운 어지럼증에 몸이 휘청였다. 머릿속에는 파편화된 이미지들이 폭풍처럼 몰아쳤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 누군가의 흐느낌… 이별을 알리는 듯한 먼 종소리… 그리고 밤하늘 가득 펼쳐진,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기이한 별자리.

“서윤! 괜찮아요?” 지후가 놀라 그녀를 부축했다. 서윤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에서는 이유 모를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고통스러웠지만, 그 고통의 근원을 알 수 없어 더욱 절망스러웠다.

멜로디는 계속 흘러나왔고, 서윤의 기억 파편들은 더욱 선명해졌다.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희미한 실루엣, 그리고 그 실루엣이 마지막으로 속삭인 듯한 한 마디. 그러나 그 음성은 물속에 잠긴 듯 아득하여,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이 멜로디… 이 별자리…” 서윤은 흐느끼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건 내 기억이에요.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이에요… 하지만 왜 이렇게 아프죠? 왜…”

그녀는 오르골을 든 지후의 손을 필사적으로 잡았다. 멜로디는 그녀에게 고통스러우면서도 잊을 수 없는 유혹이었다. 이 멜로디가 그녀의 과거로 이끄는 유일한 실마리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기억의 심연 속에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지후는 오르골을 멈출까 망설였다. 멜로디가 그녀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잃어버린 과거를 되찾는 열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마 멈출 수 없었다. 서윤은 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불안과 동시에 깊은 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멈추지 말아요… 더 들어야 해요… 제발…”

그녀의 간절한 외침에, 지후는 다시 태엽을 감았다. 맑지만 슬픈 멜로디가 다시 창고를 울렸다. 서윤은 눈을 감았다. 그녀는 이제 어둠 속에서 다시 한번, 그 이름 모를 별자리와 함께 찾아오는 기억의 조각들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잔혹한 진실을 담고 있든 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