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 제715화

깊은 밤, 도시의 불빛마저 희미해지는 시간. 오래된 스튜디오 안에는 따뜻한 빛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다. 거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나무 탁자 위에는 마이크 하나가 묵묵히 서 있었고, 그 앞에는 ‘별밤지기’ DJ 지훈이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와 함께, 수많은 밤을 지켜온 사람 특유의 깊은 눈빛이 드리워져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두 시를 향하고 있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715번째 이야기입니다. 안녕하세요, DJ 지훈입니다.”

낮고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가 전파를 타고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그의 목소리에는 마치 밤하늘의 별을 한 움큼 그러모아 담은 듯한 위로와 고즈넉함이 깃들어 있었다. 715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수많은 사연이 그의 손을 거쳐 갔고, 수많은 노래들이 그의 목소리와 함께 밤하늘을 수놓았다. 오늘은 또 어떤 별이, 어떤 이야기로 밤을 밝힐까.

“오늘은 아주 오래된 친구에게서 온 편지를 먼저 읽어볼까 합니다. ‘밤하늘을 좋아하는 은하’님께서 보내주신 사연인데요… 벌써 15년 가까이 이 프로그램을 듣고 계시다고요. 고맙습니다. 편지 한 장 한 장에 담긴 진심이 제 마음을 울리네요.”

지훈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뜯었다. 봉투 안에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빛바랜 편지지와 함께, 작은 별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그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펼쳤다.

어둠 속의 별 하나

“안녕하세요, 지훈 DJ님.
이 편지가 언제쯤 도착해서 DJ님의 목소리로 읽힐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어 펜을 들었습니다. 저는 지금은 서른을 훌쩍 넘긴, 평범한 직장인 ‘은하’입니다. 제가 처음 DJ님의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던 건 열여섯 살, 한창 예민하고 세상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사춘기 시절이었습니다.”

지훈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는 아련한 눈빛으로 스튜디오의 창밖, 어둠 속에 잠긴 도시를 응시했다. 그 시절의 은하를, 그리고 그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는 듯했다.

“그때 저희 집은 시골의 작은 마을에 있었어요. 아빠는 매일 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셨고, 엄마는 그런 아빠에게 지쳐갔죠. 집안의 공기는 늘 무거웠고, 저는 제 방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밤하늘만 보며 숨죽여 울곤 했습니다. 작은 창문으로 보이는 별들은 너무나 멀었고, 저는 마치 우주 한가운데 홀로 떠 있는 작은 조약돌 같았어요.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나는 영원히 이 어둠 속에 갇혀버릴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하의 글에서는 그 시절의 쓸쓸함과 절망감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지훈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다음 문단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어요. 유난히 별이 쏟아져 내릴 것 같던 밤. 그날따라 엄마 아빠의 다툼은 격렬했고, 저는 제 존재 자체가 너무 버거웠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저는 우연히 작은 휴대용 라디오를 켰습니다. 주파수를 돌리다 익숙한 듯 낯선 목소리에 멈췄죠. 바로 DJ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그 이름조차 제 마음을 붙잡았습니다.”

“그날 DJ님은 어떤 사연을 읽어주셨어요.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딘가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에게 ‘어둠 속에서도 너만의 별을 찾아 반짝일 수 있다’고, ‘지금 이 순간의 어둠은 너를 더 밝게 빛나게 할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죠. 그리고 들려주었던 노래는… ‘별 헤는 밤’이라는 제목의 인디 밴드 곡이었습니다. 잔잔한 기타 선율과 함께 흐르던 가사는 제 마음을 파고들었어요. ‘수많은 별들 중 하나의 너, 길을 잃었대도 괜찮아. 너만의 빛을 따라가면 돼.’ 그 노래는 마치 저를 위해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지훈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의 기억 속에도 흐릿하게나마 그 노래와 그날의 사연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 시절, 자신 또한 젊은 DJ로서 수많은 고민과 번민 속에서 방송을 이어갔을 때였다. 그때 던진 작은 위로의 조약돌이 누군가의 삶에 이런 파장을 일으켰을 줄이야.

“그날 밤, 저는 이불 속에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그 눈물은 이전과는 달랐어요. 슬픔의 눈물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길을 찾은 안도감과 작은 희망의 눈물이었습니다. 저는 그날 결심했습니다. 이대로 주저앉지 않겠다고. 내 안의 작은 별을 기어이 찾아내어 빛나게 하겠다고. 공부에 더 집중하고, 틈틈이 라디오를 들으며 저만의 위안을 얻었습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저는 제가 꿈꾸던 작은 디자인 회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밤하늘을 좋아하고, 여전히 지훈 DJ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저의 디자인에도 그날 밤의 별빛이 담겨 있길 바라면서요. 그날, 제게 어둠 속에서 길을 알려준 그 별 하나가 되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게는 DJ님이, 그리고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가 가장 밝은 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저희 곁을 지켜주세요.”

밤하늘을 사랑하는 은하 드림.

편지를 다 읽은 지훈의 눈가에는 촉촉한 물기가 어렸다. 그는 잠시 말없이 마이크를 응시했다. 긴 침묵이 스튜디오를 감쌌고, 전파를 탄 그의 숨소리만이 아련하게 퍼져나갔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수많은 얼굴과 사연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던진 말 한마디, 들려준 노래 한 곡이 누군가의 삶에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지,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은하님… 이렇게 귀한 사연을 보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더 떨렸다. 그러나 그 떨림은 슬픔이 아닌, 깊은 감동과 고마움에서 오는 것이었다.

“제가 처음 이 마이크 앞에 앉았을 때, 많은 분들이 ‘라디오는 이제 끝물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었습니다. 아무리 세상이 빠르게 변해도,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따뜻한 온기만큼은 변치 않을 거라고요. 그리고 그 온기가 밤하늘의 별처럼,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작은 빛이 되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은하님의 사연을 들으니, 제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됩니다.”

지훈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것은 지난 세월에 대한 회한이 아닌, 묵묵히 걸어온 길에 대한 작은 안도감이었다.

“그날 밤, 은하님에게 별이 되어준 그 노래… ‘별 헤는 밤’이라는 곡을 다시 한번 들려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홀로 어둠과 싸우고 있을 또 다른 ‘은하’님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기억하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주위에는 언제나 당신을 비춰줄 별이 있고, 당신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는 밝은 별이 될 수 있습니다.”

지훈은 손을 들어 음악을 신청했다. 스튜디오에 잔잔한 기타 선율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별 헤는 밤’. 15년 전의 은하에게 그랬던 것처럼,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이들에게 잔잔한 위로를 건네는 노래였다.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밤하늘의 별들은 보이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 있듯이, 저도 늘 이 자리에서 여러분을 기다리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DJ 지훈이었습니다.”

노래가 끝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스튜디오의 조명은 하나둘씩 꺼져갔다. 지훈은 마이크를 바라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이 담겨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는 알았다. 이 밤에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밤에도, ‘별이 빛나는 밤의 라디오’는 누군가의 가장 밝은 별이 되어줄 것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