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기적 – 제739화

새벽 공기에는 여전히 깊은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아침은 언제나 온기로 가득했다. 노릇하게 구워지는 빵의 향기가 좁은 골목을 따라 흘러나와 아직 잠들어 있는 마을의 코끝을 간질였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발효 반죽을 바라보던 정인의 얼굴에는 고요한 만족감이 어렸다. 빵은 그에게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에 스며드는 작은 위안이자 희망이었다.

오늘은 유독 정성껏 구워야 할 빵들이 많았다. 갓 쪄낸 단팥빵은 봉긋하게 부풀어 올랐고, 바삭한 소보로빵은 겉면에 설탕이 송골송골 박혀 영롱하게 빛났다. 그러나 정인의 마음 한편에는 아직 해내지 못한 숙제처럼 묵직하게 자리 잡은 하나의 걱정이 있었다. 어제저녁, 멀리 떨어진 도시에서 온 수연 씨의 간절한 부탁 때문이었다.

수연 씨는 초췌한 얼굴로 빵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아버지는 이 빵집의 오랜 단골이었고, 최근 병세가 깊어져 음식을 거의 드시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산모퉁이 빵집의 설화초 빵이 먹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셨다는 것이다. 수연 씨의 눈가에는 눈물이 그렁거렸다.

“정인 씨, 제발요…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드시고 싶어 하시는 게 그 빵이래요. 다른 건 아무것도 못 드시는데, 그 빵 이야기만 하세요. 한 번만, 딱 한 번만 더 만들어 주실 수 없을까요?”

설화초 빵. 그것은 빵집의 전설과도 같은 빵이었다. 이 빵집의 전대 주인인 할머니가 정인에게 전수해준 레시피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이었다. 설화초는 해발 700미터 이상, 특정 계곡의 응달진 바위틈에서만 자라는 희귀한 약초로, 매년 짧은 봄에만 잠깐 피었다가 사라지는 꽃이었다. 그 꽃잎을 따서 잘 말려 곱게 빻아 넣으면 빵에서 은은하고 독특한 향이 나며, 먹는 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효능이 있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한겨울 끝자락. 설화초는 도저히 구할 수 없는 시기였다.

정인은 수연 씨의 애끓는 부탁에 쉽사리 “안 됩니다”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할머니는 늘 말했다. “빵은 그냥 반죽이 아니야. 사람의 마음을 담는 그릇이지. 특히 설화초 빵은, 삶의 마지막 길목에서 작은 위안을 찾는 이들을 위한 빵이란다.”

밤새 뒤척이던 정인은 결국 결심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오늘 아침 빵을 굽는 손길은 바빴지만, 그의 머릿속은 온통 설화초 빵으로 가득했다. 할머니의 오래된 기록들을 뒤져보니, 설화초는 때때로 계절을 착각하고 늦가을이나 이른 봄, 이상 기온으로 인해 아주 소량 피어나기도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확률은 희박했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오전 장사를 마치고 빵집 문에 ‘잠시 쉬어갑니다’ 팻말을 걸었다. 정인은 평소 등산할 때나 신던 투박한 등산화를 신고, 보온병에 따뜻한 차를 담아 배낭에 챙겼다. 마을 사람들은 정인이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의아한 눈빛을 보냈지만, 그는 묵묵히 산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설화초가 자생하는 계곡, ‘숨은 그림자 골’이었다.

산은 아직 겨울의 옷을 벗지 못했다. 앙상한 나뭇가지들은 차가운 바람에 흔들렸고, 길가에는 지난밤 녹지 못한 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며 정인은 할머니와의 추억을 떠올렸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이따금 그를 데리고 이 길을 올랐다. “정인아, 산은 말없이 많은 것을 가르쳐 준단다. 서두르지 말고, 주변을 살피고, 귀 기울여야 해.”

숨은 그림자 골 어귀에 다다르자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음침한 기운이 감돌았다. 발아래는 미끄러운 낙엽과 젖은 흙이 뒤섞여 있었고, 간혹 얼어붙은 웅덩이가 위협적으로 빛났다. 정인은 조심스럽게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그의 눈은 오직 바위틈 사이, 이끼 낀 돌 틈새를 살피고 있었다. 희망의 징표, 설화초.

시간이 흐르고 몸은 지쳐갔다. 손발은 시렸고, 등줄기에는 땀이 식어 차가운 기운이 돌았다. 아무리 찾아도 설화초는 보이지 않았다. 이제 포기해야 할 때인가. 수연 씨의 간절한 눈빛과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말이 다시 뇌리를 스쳤다. 정인은 바위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았다. 차가운 공기가 폐 속 깊이 들어왔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의 바로 앞 바위틈에 앉았다. 그리고는 부리로 무언가를 콕콕 쪼는 듯했다. 정인은 무심코 그곳을 바라보다가 숨을 헙 들이켰다. 작은 새가 쪼던 곳, 얼어붙은 이끼 사이, 손톱만큼 작은 하얀 꽃잎이 희미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설화초였다. 그것은 마치 눈송이처럼 여리고 투명했지만, 어떤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 혹독한 계절을 견뎌낸 듯 보였다.

정인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단 하나, 정말 단 하나의 설화초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족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꽃잎을 채취했다. 한겨울에 피어난 이 작은 꽃은 그에게는 단순한 약초가 아니라, 절망 속에서 피어난 희망의 상징이었다. 마치 산모퉁이 작은 빵집이 마을 사람들에게 그러했듯이.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 정인은 빵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은 땀과 먼지로 범벅이 되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깊은 만족감과 희망이 가득했다. 채취해 온 설화초는 너무나 작아 보였지만, 그 어떤 보석보다 귀하게 느껴졌다. 정인은 서둘러 설화초를 깨끗하게 씻어 부드럽게 빻았다. 은은하고 신비로운 향기가 빵집 안에 퍼져나갔다.

새벽녘, 오직 수연 씨 아버지를 위한 빵이 오븐 속에서 구워졌다. 정인은 반죽을 빚고, 그 위에 빻은 설화초 가루를 뿌리고, 오븐에 넣어 익어가는 빵을 지켜보는 내내 기도하는 마음이었다. 노릇하게 구워진 빵은 따뜻한 온기와 함께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위로를 담고 있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그리고 그 안에 설화초의 섬세한 향이 배어든 기적의 빵이었다.

해가 중천에 뜨자마자 수연 씨가 빵집 문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서려 있었지만, 정인이 내미는 빵 봉투를 받아 드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따뜻한 빵 봉투를 품에 안은 수연 씨는 몇 번이고 고맙다는 말을 하며 서둘러 마을을 떠났다. 정인은 그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았다.

그날 오후 늦게, 수연 씨에게서 짧은 전화가 걸려왔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깊은 감동과 감사가 담겨 있었다. “정인 씨… 아버지가… 그 빵을 한 조각 다 드셨어요. 몇 주 만에 처음으로요… 오랜만에 웃으셨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정인은 전화기를 내려놓고 오븐 앞에 섰다. 빵 굽는 뜨거운 열기가 그의 지친 몸을 감쌌다. 그의 눈에는 촉촉한 물기가 어렸다. 빵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따뜻한 마음이었고, 절망 속에서도 피어나는 작은 기적이었다. 산모퉁이 작은 빵집의 하루는 그렇게, 한겨울에 피어난 작은 설화초처럼, 고요하지만 강인한 희망을 담고 저물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