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치는 멜로디의 흔적
낡은 상점의 문을 열자, 먼지 섞인 오래된 나무 향과 희미한 곰팡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지훈은 익숙한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의 심장은 이미 쿵, 쿵, 불규칙하게 울리고 있었다. 며칠 전 얻은 몽롱한 제보—수아가 아끼던 낡은 오르골이 이 동네의 작은 골동품 가게에 팔렸을지도 모른다는—그 실낱같은 희망이 그를 이곳까지 이끌었다.
어두침침한 가게 안은 오래된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굳어진 듯했다. 삐걱이는 마루를 밟으며, 지훈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옮겼다. 켜켜이 쌓인 물건들, 빛바랜 사진들, 한때 누군가의 전부였을 물건들이 그들만의 사연을 간직한 채 놓여 있었다. 그리고, 저 구석, 어둠 속에 거의 파묻히다시피 한 진열장 안에서, 그의 시선이 멈췄다.
나무로 된 낡은 오르골. 모서리가 닳고 색이 바랬지만, 그 모습은 잊을 수 없었다. 어릴 적, 수아의 작은 손이 닿아 반짝이던 그 오르골. 그녀가 선물 받았던 생일날, 수줍게 웃으며 작은 나사를 돌리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때마다 흘러나오던 투명하고도 슬픈 멜로디. 그것은 그들의 어린 시절을 수놓은 가장 아름다운 배경음악이었다.
지훈은 유리 진열장을 열어 오르골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의 손가락이 닳아버린 뚜껑을 쓸어내렸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으로 그는 나사를 감았다. 딸깍. 작은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그리고 이내, 너무나 익숙해서 심장을 저미는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맑지만 애잔한 음들이 먼지 쌓인 가게 안에 퍼져나갔다. 그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수아. 그 이름이 혀끝에서 맴돌다 이내 목구멍으로 넘어가 쓰디쓴 침묵으로 변했다.
“그 오르골, 예쁜 멜로디가 나죠.”
깊어진 목소리가 지훈의 귓가에 조용히 다가왔다. 언제부터 그를 지켜보고 있었는지, 백발의 노인이 그의 옆에 서 있었다. 가게 주인이었다. 그는 온화한 눈빛으로 지훈이 든 오르골을 바라보았다.
“네. 아주 오래된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지훈은 애써 감정을 추스르며 답했다. “혹시, 누가 이 오르골을 가져왔는지… 기억하십니까?”
노인은 희미하게 웃었다. “기억나고 말고요. 저 오르골은 제게도 특별한 물건이었습니다. 몇 년 전, 한 젊은 여인이 가져왔었지. 아주 조심스럽게, 아끼는 듯한 표정으로. 급전이 필요하다고 했었어. 하지만 돈을 받고 나서도 한참을 만지작거렸지. 꼭, 다시 찾으러 올 것 같았는데….”
지훈의 심장이 다시 한번 거세게 뛰었다. 젊은 여인. 수아일까? 아니면 그녀의 가족? 혹시… 그녀의 딸일까? 혼란스러운 질문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 여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십니까?” 지훈은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그의 오랜 탐정 본능이 발동하는 순간이었다.
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흐음…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랬지. 푸른색 스카프를 두르고 있었던가. 아, 그리고 손목에 아주 작은 문신이 있었던 것 같아. 작은 새 모양이었던가….”
작은 새 모양 문신. 지훈은 그 순간 뇌리에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에 사로잡혔다. 수아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특히 작은 새들을 스케치하곤 했다. 그녀는 언젠가 자신도 새처럼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다고 말했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그녀가 팔에 작은 문신을 새기고 싶다고 했던가?
지훈은 오르골을 품에 안았다. 마치 수아를 다시 만난 것처럼 가슴이 먹먹했다. 그는 노인에게 오르골 값을 지불하고 가게를 나섰다. 싸늘한 가을바람이 그를 맞았지만, 그의 가슴속에는 새로운 불씨가 타오르고 있었다.
손목의 작은 새 문신. 그것은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그녀가 자신에게 남긴 마지막 실마리일까? 어둠이 깔린 도시의 불빛 아래, 지훈은 오르골의 멜로디를 다시 한번 재생했다. 애잔한 음색이 그의 귓가에 감돌며, 수아의 흔적을 쫓는 그의 오랜 여정에 또 다른 갈림길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의 잃어버린 첫사랑, 수아. 그녀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