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393화

오래된 책갈피

하진은 낡은 가죽 수첩을 닫았다. 창밖으로는 해 질 녘의 붉은 노을이 도시를 물들이고 있었다. 책상 위에는 그가 지난 며칠 밤낮으로 들여다보았던 빛바랜 사진 한 장과, 손때 묻은 한 권의 시집이 놓여 있었다. 서연이 가장 아끼던, 그리고 그에게 선물했던 시집이었다. 수첩에는 마지막으로 그녀의 소식을 전해준 익명의 제보자가 언급했던 작은 단서가 적혀 있었다. ‘미술과 책의 숲’.

“미술과 책의 숲이라니….” 하진은 중얼거렸다. 지난 20여 년간 서연의 흔적을 쫓으며 수없이 많은 단서를 파헤쳤지만, 그녀의 행방은 늘 안개처럼 흩어졌다. 어쩌면 이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피로감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하지만 동시에, 심장 깊은 곳에서는 억누를 수 없는 희미한 기대가 차올랐다. 그녀를 향한 그의 감정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결코 스러지지 않는,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과 같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시집을 펼쳤다. ‘바람이 스치는 들판에 서서’라는 시의 한 구절에 서연이 직접 그려 넣었을 법한 작은 새 그림이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녀의 손길이 닿은 흔적들은 하진의 마음을 아련한 과거로 이끌었다. 열여덟 살의 서연은, 마치 이 작은 새처럼 자유롭고 순수했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햇살 같았고, 그녀의 눈빛은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였다. 그 시절의 모든 순간이 생생하게 하진의 눈앞에 펼쳐지는 듯했다.

“서연아…”

그때 시집에서 얇은 책갈피 하나가 스르륵 떨어졌다. 하진은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본 적 없는 책갈피였다. 아니, 정확히는 어딘가 낯익은 듯하면서도 이 시집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느낌이었다. 종이로 만들어진 평범한 책갈피였지만, 한쪽 귀퉁이에 아주 작고 정교하게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것 같은, 하지만 숙련된 화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붓 터치였다. 한적한 시골 풍경 속 작은 오두막과 그 오두막을 둘러싼 울창한 숲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림 아래에는 알아보기 힘든 필체로 ‘미술과 책의 숲’이라는 문구가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하진의 눈이 커졌다. 수첩에 적힌 단서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문구였다. 단순한 우연일까? 아니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책갈피를 시집 안에 넣어둔 것일까? 서연의 물건을 정리하던 중 발견된 시집이었기에, 이 책갈피가 후대에 삽입되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서연의 흔적일까? 아니면 그녀의 딸, 혹은 아들이 그린 것일까?

그는 책갈피를 든 손을 들어 올려 노을빛에 비춰보았다. 종이의 질감, 색감… 모든 것이 묘한 이끌림으로 다가왔다. 그림 속 오두막의 모습은 어딘가 익숙한 듯했다. 어린 시절 서연과 함께 놀러 갔던 외할머니 댁 근처의 작은 별장과 닮아 있었다. 그 별장은 이미 오래전에 폐허가 되었을 터인데….

하진은 황급히 돋보기를 찾아 책갈피를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오두막 문 옆에 아주 희미하게, 거의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었다. 오래된 주소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옆에는 조그만 원형의 마크가 찍혀 있었다. 그는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쳐 지나가는 기억을 붙잡았다.

그것은 서연이 학창 시절 미술 수업 때 만들었던 작은 도장과 같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졸업 후 잠시 일했던, 지금은 사라진 작은 화방의 로고와도 닮아 있었다.

“이럴 수가…” 하진은 숨을 들이켰다. 393화에 이르러서야, 그는 비로소 잃어버린 실타래의 한 끝을 잡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책갈피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었다. 누군가에게, 혹은 자신에게 보내는 암호와 같은 것이었다. 마치 서연이 남긴 마지막 지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그는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그 별장의 주소는, 어쩌면 그녀가 지금 머무는 곳을 가리키는 것일지도 몰랐다.

하진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발신자를 알 수 없는 제보자가 말했던 ‘미술과 책의 숲’이라는 의미를 곱씹으며 낡은 수첩에 적힌 주소를 찾아 지도 앱을 켜기 시작했다. 희망과 불안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그는 20여 년간의 긴 여정의 끝이 정말로 눈앞에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긴 기다림 끝에 마주할 현실이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녀는 여전히 그가 기억하는 그 모습 그대로일까?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첫사랑은 여전히 그의 심장을 뜨겁게 만들고 있었다. 지도의 목적지가 반짝이는 순간, 하진의 눈빛은 결연하게 빛났다.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단서일지도 모른다. 그는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