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 – 제409화

차가운 금속 침대 위, 이안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눈을 떴다. 흐릿한 시야 속에 천천히 드러난 것은 온통 회색빛으로 뒤덮인 낯선 공간이었다. 쇠 냄새와 소독약 냄새가 뒤섞인 공기가 폐부를 찔렀고, 손목과 발목에 채워진 차가운 구속구가 그의 상황을 명확히 알려주었다. 그는 또다시 붙잡혔다. 기억의 조각을 쫓아 헤매는 동안, 셀 수 없이 반복되어온 운명이었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마지막 기억은 불타는 도시의 잔해 속에서 겨우 한 줄기 빛을 쫓아가던 순간이었다. 그 빛은 희미한 희망인 동시에, 언제나 그를 더 깊은 미궁으로 이끄는 함정이었다. 이안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희미하게 푸른빛이 깜빡였다. ‘크로노 장치’라고 불리는 그것. 그의 시간 여행 능력을 가능하게 하는 동시에, 봉인된 기억의 열쇠이기도 한 장치였다.

갑자기, 장치가 격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푸른빛은 순식간에 붉은색으로 변하며 이안의 신경을 꿰뚫는 고통을 안겨주었다. 뇌 속에서 무언가 폭발하는 듯한 충격이 지나갔다. 환영이 아니었다. 분명한 감각의 파동이었다.

철컥… 스산한 빗소리…

차갑고 끈적한 피비린내가 코끝을 스쳤다. 귓가에는 알 수 없는 언어로 속삭이는 듯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분명 두려움에 떨고 있었지만, 동시에 절박한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이안은 눈을 감았다.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것은 또렷한 이미지라기보다는, 감정의 파편들이었다. 절망, 배신감,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죄책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가운 금속성 소리가 텅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 발소리가 다가왔다. 익숙하면서도 끔찍하게 증오스러운 발소리였다.

“깨어났군, 시간의 망아지.”

그 목소리. ‘망각자’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자였다. 과거의 시간선에서 이안의 기억을 지운 장본인이자, 그를 끊임없이 추적해온 그림자였다. 망각자의 얼굴은 늘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뱀처럼 차갑고 섬뜩했다.

“이번엔 뭘 원하는 거지?” 이안은 겨우 목소리를 냈다. 목은 갈라져 있었고,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네가 지닌 것을 원한다.” 망각자는 한 발짝 더 다가섰다. 그의 손에는 작은 장치가 들려 있었다. 이안의 손바닥에서 빛나던 크로노 장치와 공명하는 듯, 망각자의 장치에서도 푸른빛이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그 조각을, 네가 숨기고 있는 마지막 열쇠를 말이다.”

“나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어. 기억조차 잃어버린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 거지?” 이안은 필사적으로 반항했다.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만이 그의 유일한 방패였다.

“네가 잃어버렸다고 믿는 것, 그것이 바로 가장 강력한 무기이지. 방금 네가 본 것이 무엇이지? 어설픈 파편이라도 좋으니 말해 보아라.” 망각자의 목소리에는 비릿한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

이안은 망각자를 노려보았다. 망각자는 이안이 방금 겪은 기억의 파동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안의 모든 움직임, 모든 심리적 변화를 감시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덫에 갇힌 기분이었다.

그 순간, 크로노 장치가 다시 한번 미친 듯이 붉게 번뜩였다. 이번에는 단순한 감각이 아니었다. 한 조각의 이미지가 뇌리에 섬광처럼 박혔다. 낡은 사진처럼 흐릿했지만, 분명한 형태를 가진 얼굴. 그리고 그 얼굴에서 느껴지는 애끓는 슬픔.

‘지켜줘…’

어린아이의 목소리였다. 그의 기억 속에서 울려 퍼지는, 너무나도 생생하고 처절한 목소리. 그 순간, 그의 손바닥에서 터져 나온 붉은 빛은 마치 경고처럼 망각자의 얼굴을 강타했고, 이안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고통 속에서 하나의 단어를 외쳤다.

“아니… 세라!

그 이름이 그의 입술에서 터져 나오는 순간, 이안의 의식은 암흑 속으로 빠르게 가라앉았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피처럼 붉은 빛만이, 그의 잃어버린 과거가 이제 막 지독한 진실의 문을 열기 시작했음을 알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