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달은 숨죽인 듯 차가운 은빛을 쏟아냈다. 이안은 낡은 망루의 가장 높은 층에 기대어 서 있었다. 희미한 달빛이 그의 지친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웠고, 그 그림자는 이안의 복잡한 심경처럼 흔들렸다. 아래로는 고요한 도시가 잠들어 있었지만, 이안의 마음속에서는 폭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아리, 그의 아리. 그녀가 돌아온 지 벌써 한 달. 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가 알던 아리가 아니었다.
창백한 손가락이 망루의 차가운 돌벽을 쓸었다. 이안의 시선은 망루 아래, 특별히 보호된 방에 갇혀 있는 아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녀는 잠들어 있었을까, 아니면 여전히 공허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을까. 돌아온 그녀는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 같았다. 아름답고, 완벽했지만, 영혼이 없었다. 미소는 어색했고, 목소리는 메아리처럼 텅 비어 있었다. ‘영월’이 그녀를 되돌릴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했다. 그러나 그 대가가 너무나도 가혹했다.
이안의 눈은 어둠 속에서도 빛나는 아련한 빛을 찾았다. 그림자술사들의 고대 기록에 따르면, 영월은 그림자 세계와 현실 세계의 경계가 가장 희미해지는 밤이었다. 그때, 오직 진정한 달의 아이만이 그림자의 속박을 끊고 영혼을 되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는… 거대한 희생이 뒤따른다고 했다.
그는 품속에서 작고 낡은 나무 조각을 꺼냈다. 아리가 어릴 적 그에게 선물했던, 서툰 솜씨로 조각된 새 모양의 장난감이었다. 그의 엄지손가락이 조각의 표면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때의 아리는 얼마나 생기 넘치고 사랑스러웠던가. 그녀의 웃음소리는 햇살 같았고, 그녀의 눈은 별빛을 담고 있었다. 지금의 아리에게서는 그 어떤 빛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안…”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그는 돌아보지 않아도 그가 누구인지 알았다. 그림자술사의 원로이자 그의 스승인 카이였다. 카이의 눈빛은 언제나처럼 침착했지만, 그 속에는 깊은 연민이 스며 있었다.
“아리는… 어떠합니까?” 이안은 묻고 싶지 않았던 질문을 던졌다. 마치 대답을 듣는 순간, 그의 마지막 희망마저 산산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여전히…” 카이의 목소리는 조용히 갈라졌다. “여전히 그림자에 잠식되어 있다. 영월의 기운이 그녀를 깨울 마지막 기회다. 하지만 너도 알지 않느냐, 그 대가를.”
이안은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마셨다. 그 대가. 아리를 되찾기 위해, 그녀를 그림자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그가 지불해야 할 것은 그의 그림자였다. 그의 힘, 그의 존재의 근원. 그것을 포기하면, 그는 더 이상 ‘이안’이 아닐 터였다. 하지만 아리가 없는 ‘이안’은 애초에 의미가 없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안의 목소리는 굳건했다. “저는 아리를 되찾을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카이는 한숨을 쉬었다. “너의 그림자는 너의 일부다. 그것을 포기하면 너는… 빛만 남은 존재가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를 감지하고, 그 속에서 힘을 얻던 네가, 그림자를 잃으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소멸할 수도 있고, 영원히 방황할 수도 있다.”
이안은 고개를 들었다. 달빛은 여전히 차갑고 잔인하게 망루를 비추고 있었다. 그는 고대 기록에서 읽었던 끔찍한 경고들을 떠올렸다. 그림자를 잃은 자는 세상의 균형을 깨뜨리고, 결국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릴 수도 있다는 예언. 그러나 아리를 잃는 것만큼 끔찍한 것은 없었다.
그는 카이에게서 돌아섰다. 그의 시선은 다시 아래층의 아리에게 향했다. ‘아리야, 내가 너를 다시 찾을게. 설령 내가 그림자가 되어 너의 발밑에 스러진다 해도.’
달이 망루의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렸다. 마치 이안의 결의가 밤하늘에 새겨지는 듯했다. 내일 밤, 영월이 뜨면 모든 것이 결정될 터였다. 그의 그림자는 그녀의 영혼과 춤추게 될 것이다. 생사의 경계에서, 존재의 의미를 걸고서.
그는 망루의 난간을 잡았다. 손끝에서 차가운 돌의 감촉이 느껴졌다. 멀리서 밤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희미한 속삭임을 전해왔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슬픔의 노래 같기도 했고, 다가올 운명의 서곡 같기도 했다. 이안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의 그림자는 달빛 아래에서, 이제는 혼자가 아닌, 또 다른 그림자와의 춤을 준비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