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어버린 시간 여행자 – 제520화

어둠 속, 희미한 별빛 조각

서하는 낡은 관측소의 차가운 금속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수천, 아니 수만 번도 더 해왔던 행위였다. 잃어버린 기억의 파편을 찾아 시간을 거슬러 왔지만, 손에 잡히는 것은 늘 모래처럼 부서지는 환영뿐이었다. 이곳은 그녀가 스물일곱 번째로 발견한 폐허가 된 시간 연구소의 잔해였다. 고요하고, 먼지투성이이며, 모든 것이 과거의 흐릿한 그림자처럼 존재했다. 유리창 너머로 짙은 남색의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지만, 아무리 시선을 던져도 익숙한 별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원래 속했던 시간대의 하늘이 아니었다.

손에 들린 것은 낡은 홀로그램 투영 장치였다. 그녀가 지나온 수많은 시간대에서 이런 장치들을 수없이 만져왔지만, 이토록 심장이 아리게 울린 적은 없었다. 장치의 중앙에는 작은 수정구슬이 박혀 있었고, 그 안에서 희미하게 빛을 잃은 먼지구름이 맴돌고 있었다. 서하는 조심스럽게 전원 버튼을 눌렀다. 끽, 하는 마찰음과 함께 장치가 겨우 깨어나듯 느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내 수정구슬에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와 천장의 돔에 닿았다. 그것은 별자리 투영기였다. 돔형 천장에 거대한 우주가 펼쳐졌다. 수억 광년 떨어진 별들이 마치 그녀의 손에 닿을 듯 빛나고 있었다.

“별….” 서하의 입술에서 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천장을 응시했다. 무수한 별들이 점멸하는 그 순간, 머릿속에서 섬광이 터졌다. ‘약속… 잊지 마….’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동시에 절박한 울림이 담긴 목소리. 누구의 목소리였을까? 사랑하는 이의? 아니면… 자신의? 가슴 한편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과 함께 익숙한 슬픔이 밀려왔다. 이 슬픔은 언제나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였다. 기억 없는 자의 숙명처럼.

투영된 별자리들 중, 유독 하나의 작은 별무리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세 개의 별이 삼각형을 이루고 있었고, 그 아래에 옅은 성운이 드리워져 있었다. 서하는 마치 홀린 듯 손을 뻗어 천장의 허공을 더듬었다. 손끝이 닿는 곳에서 차가운 공기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세 개의 별, 그리고 약속.’

그때였다. 투영기의 렌즈 부분에서 희미한 빛이 깜빡이더니, 별자리들 사이에 마치 낙서처럼 새겨진 작은 글자들이 나타났다. 고대어에 가까운, 그러나 묘하게 익숙한 문자였다. 서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문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기억을 찾아 떠나는 자여, 길 잃지 마라. 모든 것은 그 별에서 시작되리니.’

그리고 그 문자 아래, 겨우 한 글자가 더 있었다.
‘루.’

“루…?” 서하는 그 이름을 나직이 읊조렸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지만, 그 소리가 입안에서 맴돌자 온몸의 세포가 전율하는 것 같았다. 잃어버린 기억의 저편에서 아스라한 메아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루. 그 이름은 그녀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존재하지 않는 퍼즐 조각의 마지막 한 귀퉁이 같았다. 이 이름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 사랑하는 이? 동료? 아니면… 그녀 자신? 무너져 내릴 것 같은 혼란 속에서, 서하는 희망의 빛줄기를 보았다. 수백 번의 시간 여행 끝에, 마침내 길잡이가 나타난 것일까?

그녀는 투영기를 소중히 끌어안았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은 그녀의 불안한 심장을 진정시키는 듯했다. 이 별자리와 ‘루’라는 이름이 그녀의 잃어버린 과거의 문을 열어줄 열쇠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동시에 두려움도 밀려왔다. 너무나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진실은, 과연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까? 아니면 또 다른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릴까?

서하는 천장의 별들을 다시 올려다보았다. 세 개의 별이 이루는 삼각형은 이제 그녀에게 단순한 별자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약속의 징표이자, 그녀의 기억이 묻힌 곳을 가리키는 이정표였다. 잃어버린 시간을 헤매는 여행자의 여정은, 이제 이 ‘루’라는 이름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녀는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다시 한번 발걸음을 옮길 준비를 했다. 가슴속에서 솟아나는 이 희미한 희망이, 부디 이번만큼은 그녀를 배신하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