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은 차가운 밤공기를 들이켰다. 수백 번도 더 겪었을 법한 평온한 시골의 밤이었지만, 그에게는 매번 낯설고 새로운 형벌과 같았다. 고요한 밤하늘에는 별들이 무수히 박혀 있었고, 그의 눈동자에는 그 별들만큼이나 셀 수 없는 질문들이 박혀 있었다. 이곳은 언제인가.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내가 잊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는 순덕 할머니의 낡은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방 안에서 이불을 개며 나직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시대와 세대를 알 수 없는, 구슬픈 가락이었다. 이안의 가슴 한켠이 저릿하게 울렸다. 늘 그랬듯이, 알 수 없는 향수가 공허한 마음을 긁어댔다.
“할머니, 그 노래는 무슨 노랜가요?” 이안이 나직이 물었다.
“응? 아, 이 노래? 아주 오래된 노래여. 내가 어렸을 적에 우리 할머니가 늘 불러주시던 곡이라네.” 순덕 할머니는 노래를 멈추고 환하게 웃었다. 주름진 얼굴 가득 어린 순수함은 이안의 마음을 잠시 위로하는 듯했다. “달님아 달님아, 내 사랑을 비춰주렴. 길 잃은 아이에게 돌아올 길을 알려주렴… 뭐 이런 가사지.”
‘길 잃은 아이.’ 그 구절이 뇌리에 박혔다. 이안은 눈을 감았다. 순간, 그의 시야에 찢어진 그림처럼 단편적인 환영이 스쳤다. 누군가의 작고 부드러운 손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었다. 온몸을 휘감는 따뜻한 온기. 그리고 아득히 멀리서 들려오는, 맑고 청아한 웃음소리. 그것은 별빛처럼 반짝였다. 동시에 거대한 중력에라도 이끌린 듯 심장이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고통이 밀려왔다.
“으윽…” 이안은 가슴을 움켜쥐었다. 숨이 막혔다. 언제나 그랬다. 기억의 조각에 다가설수록 고통은 더욱 선명해졌다. 잡을 수 없는 아지랑이처럼 흩어져버리는 잔상들. 그는 자신이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렸음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의 존재와 직결된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이안아? 왜 그래? 어디 아픈 것이냐?” 순덕 할머니가 놀라 달려왔다. 그녀의 따뜻한 손이 이안의 이마를 짚었다. 열은 없었지만, 이안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아닙니다, 할머니. 그저… 잠시 어지러워서요.” 이안은 애써 미소 지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사랑.’ 그 단어가 그의 뇌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사랑’이라니. 잊어버린 자신의 과거에 ‘사랑’이라는 감정이 그렇게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단 말인가. 그것은 누구의 사랑이었을까? 그가 사랑한 이의 것인가, 아니면 그를 사랑한 이의 것인가.
별빛이 쏟아지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별 중 유독 한 별이 더 밝게 빛나는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저 그의 간절한 마음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는 잃어버린 과거를 추적하며 수많은 시간을 헤매어 왔다. 기억을 잃은 채 떠도는 시간 속에서, 그는 늘 이 알 수 없는 그리움과 싸워야 했다.
“길 잃은 아이에게 돌아올 길을…” 순덕 할머니의 노랫말이 다시 귓가에 울렸다. 이안은 희미한 희망과 절망이 뒤섞인 감정 속에서 깨달았다. 그는 길을 잃은 아이가 맞았다. 그리고 그가 찾아야 할 길은 단순히 시공간의 좌표를 넘어선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사랑을 향한 길이었다.
그의 손이 다시금 가슴으로 향했다. 심장이 격렬하게 두근거렸다. 어쩌면 그 손을 잡고 자신을 이끌던 누군가가 아직 어딘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섬광 같은 깨달음이 온몸을 휘감았다. 기억의 심연 속에서, 하나의 이름을 향한 갈망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는 아직 그 이름을 불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그는 방향을 알 것 같았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이안은 다시금 별들을 응시했다. 밤은 깊어지고 있었지만, 그의 내면에서는 새로운 여정의 서막이 막 오르고 있었다. 이 무한한 시간의 미로 속에서, 그는 반드시 그 길을 찾아야만 했다. 그를 기다리는 존재를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을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