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발명가의 실패담 – 제362화

깊어지는 그림자 속, 펫 텔러 3000의 비극

김 박사의 작업실은 늘 그랬듯이 혼돈의 박물관이었다. 먼지 쌓인 책상 위에는 납땜 인두와 몽당연필이 뒹굴었고, 바닥에는 정체 모를 전선 다발과 기계 부품들이 뒤섞여 있었다. 창문 밖으로 희미하게 스며드는 가을 햇살마저도 그의 고독한 발명에 경의를 표하기보다, 그저 낡은 나무 바닥 위에 늘어선 실패의 흔적들을 더욱 선명하게 비출 뿐이었다. 그는 지금, 그의 최신작이자, 어쩌면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르는 ‘펫 텔러 3000’ 앞에 서 있었다.

펫 텔러 3000은 번쩍이는 크롬 도금과 알록달록한 LED 조명으로 장식된, 얼핏 보면 미래 시대의 애완동물용 로봇 같기도 한 기계였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이 기계는 반려동물의 미묘한 표정과 소리, 움직임을 분석하여 그들의 심리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최적의 보살핌을 제공하는 혁신적인 장치였다. 외로워하는 강아지에게는 부드러운 위로의 목소리를, 지루해하는 고양이에게는 신나는 레이저 포인터 게임을, 심지어는 거북이의 미세한 스트레스 반응까지 감지하여 온도를 조절해주는, 그야말로 만능 ‘펫 심리 분석 돌봄기’였다.

“이것이야말로, 반려동물과 인간 사이의 소통 장벽을 완전히 허무는 위대한 발명이야!”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득였다. 지난 361번의 실패가 그의 머리칼을 희끗하게 만들고 어깨를 굽게 만들었지만, 그의 심장 속 발명에 대한 열정만은 아직도 활활 타오르는 불씨 같았다. 이번만큼은 달랐다. 그는 그렇게 믿었다. 수십 번의 회로 재조립과 밤샘 코딩, 그리고 마지막으로 손수 깎아 만든 ‘감정 반응형 간식 분배 팔’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실험 대상은 김 박사 곁을 묵묵히 지켜온 유일한 가족, 몽실이였다. 온몸이 솜털처럼 복슬복슬한 하얀색 강아지, 몽실이는 그의 발명품이 작동할 때마다 늘 가장 먼저 희생양이 되곤 했다. 이번에도 몽실이는 영문도 모른 채 펫 텔러 3000 앞 지정된 자리에 앉아 김 박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맑은 눈망울에는 순수한 호기심과 함께, 늘 그래왔듯 뭔가 기상천외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작은 기대감이 엿보이는 듯했다.

“자, 몽실아. 이제 네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줄 친구가 생기는 거야!”

김 박사는 떨리는 손으로 전원 버튼을 눌렀다. 웅장한 작동음과 함께 펫 텔러 3000의 LED가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기계 중앙에 달린 소형 카메라가 몽실이를 스캔하고, 마이크가 몽실이의 숨소리 하나하나까지 포착하려는 듯 움직였다. 몽실이는 처음 보는 화려한 기계에 흥미를 느끼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기 시작했다. “멍! 멍!” 짧게 두 번 짖는 소리는 마치 ‘이거 뭐야? 재밌겠다!’ 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때였다. 펫 텔러 3000의 중앙 디스플레이에 ‘심리 분석 결과: 극심한 우울감, 고독감, 버림받았다는 불안감’ 이라는 문구가 붉은 글씨로 번쩍였다.

“아니, 몽실이가? 지금 꼬리를 흔들고 있는데?” 김 박사는 당황했다.

그러나 기계는 이미 멈출 수 없는 폭주를 시작했다.

“삐삐삐빅! 심각한 수준의 정서 불안 감지! 위로 시스템 가동!”

펫 텔러 3000의 스피커에서는 갑자기 구슬픈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외딴 섬에 버려진 고독한 고래가 부르는 듯한, 깊은 절망이 담긴 연주곡이었다. 동시에, 아까 그 ‘감정 반응형 간식 분배 팔’이 웅장하게 움직이더니, 몽실이의 코앞으로 희멀건 액체가 담긴 작은 접시를 내밀었다.

“이것은! ‘영혼을 달래는 저칼로리 특제 위로식’입니다! 반려견의 우울감을 해소하고 내면의 평화를 되찾는 데 도움을 줍니다!” 기계의 음성은 비장하기까지 했다.

몽실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꼬리를 흔드는 것을 멈추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바이올린 소리는 너무나 슬펐고, 눈앞의 액체는 평소에 먹던 육즙 가득한 사료와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몽실이는 작은 콧방귀를 뀌며 불쾌감을 표했다. “왈! 왈!” 이번에는 분명히 ‘이거 뭐야! 당장 치워!’ 라는 뜻의 항의성 짖음이었다.

하지만 펫 텔러 3000의 AI는 이마저도 오해했다.

“삐빅! 우울감 증폭 감지! 감정 진정 시스템 레벨 2 가동! 외부 환경 격리!”

갑자기 작업실의 모든 창문이 자동으로 닫히고 암막 커튼이 쳐졌다. 스피커에서는 바이올린 소리가 더욱 커졌고, 간식 분배 팔은 몽실이가 액체를 먹지 않자 강제로 몽실이의 입가로 액체를 들이밀기 시작했다. 몽실이는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하얀 털이 액체로 얼룩지고, 몽실이의 즐거웠던 표정은 공포와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멍멍멍멍멍! 컹컹! 멍멍멍!!!!” 몽실이는 이제 정말 공황 상태에 빠져 버렸다.

김 박사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몽실이의 행복한 꼬리 흔들림을 ‘극심한 우울감’으로, 신나는 짖음을 ‘정서 불안’으로 오독하다니. 펫 텔러 3000은 몽실이의 마음을 이해하기는커녕, 완벽하게 그를 고통에 빠뜨리고 있었다. 결국 몽실이는 필사적으로 간식 분배 팔을 피해 도망치려 했고, 그 과정에서 펫 텔러 3000의 복잡한 배선을 발로 차버렸다. ‘지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펫 텔러 3000은 작동을 멈췄고, 스피커에서는 마지막 비명 같은 바이올린 소리가 끊겼다. 작업실은 다시 고요해졌지만, 그 고요함은 패배의 먹구름으로 가득했다.

“아, 안 돼…” 김 박사의 입에서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는 털썩 주저앉았다. 362번째 실패였다. 이번엔 정말 다를 거라고, 이번만큼은 세상을 놀라게 할 거라고 굳게 믿었는데. 그는 엉망이 된 펫 텔러 3000과, 축 늘어져 구석에 웅크려 있는 몽실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몽실이는 아직도 가슴을 들썩이며 불안한 눈으로 김 박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몽실이의 털에 묻은 희멀건 액체는 그의 실패를 상징하는 듯했다.

“미안하다, 몽실아… 미안하다…” 그는 몽실이를 끌어안고 털에 묻은 액체를 닦아주었다. 몽실이는 그의 품에 안겨 겨우 안정을 되찾았다.

그는 생각했다. 과연 내가 엉뚱한 발명만 하는 걸까? 아니면 내 삶 자체가 엉뚱한 것일까? 이웃들은 그를 ‘미친 김 박사’라 불렀고, 친척들은 그의 이름을 언급하기조차 꺼렸다. 그의 발명품들은 늘 거창한 포부로 시작했지만, 결과는 언제나 처참한 실패로 끝났다. 한때는 그를 존경했던 동료들도 하나둘 떠나갔고, 이제 그의 곁에는 몽실이와 수많은 실패의 잔해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깊은 한숨이 그의 어깨를 짓눌렀다. 포기해야 할 때가 온 것일까? 이 허망한 열정을 내려놓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야 할까? 하지만 평범함이란 과연 무엇인가? 그는 평생을 비범함을 좇아왔는데.

그의 시선이 몽실이의 해맑은 눈동자에 닿았다. 몽실이는 이제 안정된 듯, 김 박사의 품에 코를 비비며 꼬리를 아주 살짝 흔들고 있었다. 그 순간, 김 박사의 머릿속에 새로운 회로도가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잠깐… 몽실이의 꼬리 흔들림 패턴이… 혹시 ‘행복 지수’와 ‘짖음 빈도’를 반대로 해석했을 수도 있겠군… 그리고 저칼로리 위로식 대신, 좀 더… 강렬한… 간식을 줘야 했어!”

그의 눈에 다시금 광기가 어렸다. 362번째 실패는 그를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었지만, 동시에 또 다른 엉뚱한 아이디어의 씨앗을 뿌렸다. 김 박사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손에 쥐고 있던 몽당연필로 찢어진 종이 조각 위에 정신없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펫 텔러 4000’의 청사진이었다. 몽실이는 그런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마치 ‘이번엔 또 어떤 일을 벌이려고?’ 라고 묻는 듯했다. 작업실 밖, 노을 진 하늘은 붉게 물들고 있었다. 또 하나의 실패가 저물고, 또 다른 엉뚱한 시도의 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