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파는 상점 – 제1192화

도시의 가장 오래된 골목, 낡은 이정표마저 희미해진 그늘 아래, ‘꿈을 파는 상점’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고독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어둠이 모든 소음을 삼키고, 별빛이 간신히 비추는 자정에 가까운 시각, 상점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방울 소리 대신, 닳고 닳은 나무 문이 삐걱이는 둔탁한 소리가 고요를 깨트렸다.

지우였다. 짙은 코트 차림의 그녀는 상점 안으로 들어서며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낡은 종이와 은은한 라벤더, 그리고 무엇보다 형언할 수 없는 아련한 기억의 냄새. 상점 안은 언제나처럼 어둠과 희미한 촛불,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유리병들로 가득했다. 병 속에는 각양각색의 꿈들이 담겨, 때로는 잔잔한 호수처럼, 때로는 춤추는 불꽃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지우 씨. 오늘은 좀 일찍 오셨군요.”

카운터 너머에서 백선생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얼굴은 세월의 흔적으로 깊게 파여 있었지만, 눈빛만은 상점 속의 꿈들처럼 맑고 깊었다. 그는 언제나 지우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지우가 이 상점을 찾기 시작한 지도 벌써 5년째였다. 매번 그녀가 찾는 꿈은 단 하나였다. ‘은지의 미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지우의 얼굴에는 평소의 공허함 대신, 어떤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차가운 손으로 코트 자락을 움켜쥐고 카운터 앞에 섰다.

“선생님… 오늘은… 다른 꿈을 찾으러 왔어요.”

백선생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다른 꿈이라… 지우 씨가 다른 꿈을 찾는 건 처음이군요.”

지우는 한숨을 쉬었다. “네. 더는… 은지의 행복했던 기억만으로 버틸 수가 없어요. 제가 너무 이기적이었다는 죄책감에… 매일 밤 잠 못 들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다. 은지, 그녀의 하나뿐인 동생은 5년 전, 스물넷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밝고 명랑했던 은지. 지우는 늘 자신만 바라보던 동생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꿈과 욕망만을 좇았다. 그리고 은지는…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다.

“제가… 제가 그때 왜 그랬을까요? 왜 은지의 말을 좀 더 들어주지 않았을까요? 왜… 왜 은지가 저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을까요?”

지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선생님, 저에게… ‘이해’의 꿈을 주세요. 은지가 왜 그랬는지… 아니, 제가 왜 그때 은지를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 수 있는 꿈을요.”

백선생은 말없이 지우를 응시했다. 상점 안의 꿈들이 잠시 흔들림을 멈춘 것 같았다. ‘이해’의 꿈. 그것은 상점에서 가장 희귀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꿈 중 하나였다. 타인의 마음속으로 들어가거나, 자신의 과거 속으로 돌아가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꿈. 백선생은 지우가 이 꿈을 찾는 날이 올 것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지우 씨… ‘이해’의 꿈은 달콤한 위로를 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씻을 수 없는 아픔을, 후회를 되새기게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껏 외면해왔던 진실과 마주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알아요…” 지우는 고개를 떨궜다. “하지만 더는 도망치고 싶지 않아요.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모든 진실을 알고 아파하는 게 나아요.”

백선생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카운터 아래의 낡은 서랍을 열었다. 서랍 속에는 다른 병들과는 확연히 다른, 검푸른 빛을 띠는 작은 유리병이 있었다. 마치 심해의 어둠을 담아낸 듯한 그 병에는 아무런 이름표도 붙어 있지 않았다. 백선생은 조심스럽게 그 병을 꺼내 지우 앞에 놓았다.

“이것은 당신이 찾아 헤매던 그 ‘이해’의 꿈입니다. 어떤 진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지, 저도 알 수 없습니다.”

지우는 떨리는 손으로 병을 잡았다. 손끝에서부터 차가운 기운이 전해져왔다. 마치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차가움이었다. 그녀는 병마개를 열고, 그 안의 검푸른 액체를 단숨에 마셨다. 액체는 목을 타고 뜨겁게 흘러내렸다. 이내 상점의 어둠 속에서 그녀의 의식이 아득해지기 시작했다.

***

눈을 떴을 때, 지우는 낯선 풍경 속에 서 있었다. 아니, 낯설지 않았다. 너무나 익숙해서 심장이 조여오는 풍경이었다. 오래된 자취방. 낡은 책상 위에는 공무원 시험 교재가 어지럽게 쌓여 있었고,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녀는 대학 졸업 후 2년째 고시생이었다. 꿈은 원대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그 시절, 모든 불만은 세상에 대한 불평으로, 그리고 자신에게 의지하려는 은지에게로 향했다.

방 한쪽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화장실이었다. 그곳에서 은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작고 조심스러운 목소리.

“언니… 언니 혹시… 요즘 힘들면 나한테 말해도 돼. 내가… 내가 언니 힘이 되어줄 수 있는데…”

지우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5년 전, 바로 그날의 목소리였다. 자신의 자존심과 불안감 때문에 은지의 작은 걱정마저 짜증으로 받아들였던 그날.

꿈속의 지우는, 실제 그날의 지우처럼 냉담하게 대꾸했다. “너나 잘해. 난 괜찮아. 네 걱정 들을 여유 없어. 제발 나 좀 내버려 둬.”

화장실 문틈으로 은지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그림자는 어깨를 움츠린 채 더욱 작아 보였다. 지우는 꿈속의 자신이 아닌, 관찰자로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자신의 말 한마디가 은지의 어깨를 얼마나 짓눌렀는지, 그때는 알지 못했다.

장면이 바뀌었다. 은지의 방이었다. 좁은 공간에 놓인 침대 위, 은지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낡은 그림책이 들려 있었다. 지우가 어릴 적 가장 좋아했던 그림책이었다. 은지는 책장을 넘기며 그림들을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작게 중얼거렸다.

“언니는… 이 꿈을 꾸고 있었는데… 내가 방해가 되면 안 되지…”

은지의 눈빛은 슬픔으로 가득했다. 절망보다는, 깊은 체념과 언니에 대한 미안함이 섞인 눈빛이었다. 지우는 그제야 깨달았다. 은지는 자신이 언니의 꿈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언니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자신이 사라져야 한다고, 어린 마음으로 착각했던 것이다.

장면은 빠르게 흘러갔다. 은지가 썼던 일기장 페이지들이 스쳐 지나갔다. ‘언니는 빛나는 사람인데… 난 너무 평범해서…’, ‘언니의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언니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모든 문장 속에는 지우를 향한 무한한 사랑과, 그 사랑만큼 깊은 자기비하가 담겨 있었다. 지우는 은지가 자신의 그림자가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빛을 더 빛나게 하려 스스로를 희생했던 것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마지막 장면. 은지가 집을 나서기 전, 현관문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발걸음을 내딛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지우는, 꿈속에서 그 모든 순간을 다시 살아내며, 자신의 무심함이 얼마나 큰 칼날이었는지를 깨달았다. 은지는 도움을 청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지우는 그것을 밀쳐냈다.

***

“흐읍… 흐윽…”

꿈에서 깨어난 지우는 숨을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흥건했고, 눈물은 이미 얼굴을 타고 흘러내려 턱을 적시고 있었다. 상점의 희미한 촛불 아래, 그녀는 마치 막 태어난 아기처럼 가늘게 떨고 있었다.

백선생은 따뜻한 찻잔을 내밀었다. “괜찮으십니까, 지우 씨?”

지우는 차를 받아들었지만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괜찮지 않아요. 이렇게나… 이렇게나 제가 잔인했었다니…”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동안 5년 내내 그녀를 짓눌렀던 죄책감의 실체가 눈앞에 선명하게 드러난 순간이었다. 은지가 자신을 떠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은지를 밀어냈다는 고통스러운 진실이었다. 그녀는 은지의 죽음 앞에서 항상 ‘왜’라는 질문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 ‘왜’는, 자신에게로 향했다. ‘내가 왜 그랬을까?’

하지만 동시에, 지우의 마음속에서는 아주 미세한 균열이 생겨났다. 그 균열 사이로 작은 빛줄기가 스며드는 것을 느꼈다. 은지의 눈빛과 일기, 그리고 마지막 순간의 모습 속에서 그녀는 절망적인 자기희생이 아닌, 언니를 향한 순수한 사랑을 보았다. 은지는 그 순간에도 언니의 행복을 바랐던 것이다. 그것이 지우에게는 또 다른 아픔이면서도, 이상하게도 위안이 되었다.

“선생님…” 지우는 애써 눈물을 닦아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전과는 다른 어떤 단단함이 실려 있었다. “은지는… 절 미워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를 위해… 그랬던 거겠죠.”

백선생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이해의 꿈은 정답을 주지 않습니다. 다만, 당신이 그동안 외면했던 진실의 조각들을 보여줄 뿐이죠. 그리고 그 조각들을 맞추는 것은 오직 당신의 몫입니다.”

지우는 백선생의 말을 되새겼다. 그렇다. 은지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 자신의 죄책감도 쉽사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은지의 마지막 선택 뒤에 숨겨진 깊은 사랑을 보았다. 그것은 그녀를 용서하라는 은지의 무언의 메시지 같았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고, 이제는 은지를 가슴에 품고 살아가라는.

“이젠… 은지의 미소 꿈은 사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지우는 비로소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몸이 조금씩 데워지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그 꿈을 제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백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든 꿈은 당신 안에 있습니다, 지우 씨. 상점은 그저 잠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뿐입니다.”

지우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눈은 여전히 붉었지만, 5년 동안 갇혀있던 슬픔의 감옥에서 한 발짝 벗어난 듯, 어딘가 가벼워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과거에 갇힌 채 은지의 행복한 기억만을 소비하며 살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아픔을 받아들이고, 은지가 자신에게 남긴 사랑을 기억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차가운 밤공기가 상점 문을 열고 들어서는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러나 더 이상 그 공기는 그녀를 짓누르지 않았다. 지우는 뒤돌아보지 않고 어둠 속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걸음걸이는 조금은 흔들렸지만, 분명히 앞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새로운 꿈 하나가, 아주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피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