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첫사랑을 찾는 탐정 – 제1325화

오래된 서랍 속, 한 줄기 빛

강우진은 그의 사무실 의자에 깊숙이 몸을 파묻었다. 자정의 희미한 불빛 아래, 책상 위에는 수없이 많은 사진과 서류, 낡은 지도들이 마치 그의 인생을 형상화한 듯 펼쳐져 있었다. 25년. 잃어버린 첫사랑, 윤지은을 찾아 헤맨 시간은 이제 그의 육신과 영혼에 짙은 흔적을 새겼다. 매일 밤, 그는 고독과 싸우며 과거의 조각들을 맞춰왔지만, 거대한 퍼즐은 좀처럼 완성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지독한 갈증이었다. 그녀의 흔적에 대한, 그녀의 미소에 대한, 그녀의 존재에 대한 목마름.

그의 눈은 흐릿하게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지은을 만났던 그 시절의 순수하고 빛나던 자신은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남은 것은 오직 탐정 강우진, 끈질기게 과거를 파헤치는 그림자뿐이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늦은 시각에 울리는 벨소리는 언제나 불길하거나 혹은 예상치 못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수화기를 들었다.

“강 탐정님, 이 밤중에 죄송합니다. 저, 예전에 지은이네 동네 살았던 최복순 할머니예요.”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우진은 순간 몸을 일으켰다. 최복순 할머니는 지은의 어머니와 친분이 깊었던 이웃으로, 몇 년 전 우진이 지은의 행방을 묻다 만난 적이 있었다. 그 후에도 간혹 연락을 주고받으며, 그녀는 우진에게 작은 위로가 되어주곤 했다.

“할머니, 무슨 일이세요? 이 시간에.”

“아이고, 이걸 말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다가… 오늘 꿈에 지은이 엄마가 나왔지 뭐니. 글쎄, 갑자기 오래된 기억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거야.”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옅은 흥분이 느껴졌다. 우진의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 수많은 허탕과 실망 속에서도, 그는 이런 순간을 위해 살아왔다.

“어떤 기억이요, 할머니?”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지은이가 말이야… 고등학교 2학년 때였나? 얘가 갑자기 도자기를 배우겠다고 한 적이 있었어. 그 엄마가 혀를 끌끌 차면서, ‘쯧쯧, 저 녀석이 뭔 도자기냐’ 했었지. 그런데 지은이가 꽤 진지했었나 봐. 한 달 정도 다녔던 것 같아. 그때 그 공방 이름이… 아, 뭐라고 했더라? 아차산 밑에 조그만 간판 없는 공방이었는데… ‘흙심’이었나? 아니, ‘고요한 흙’이었던가?”

‘도자기 공방.’ 우진은 이 정보를 처음 들었다. 지은은 항상 그림을 좋아했고,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조용한 아이였다. 활발하게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했다. 하지만 어릴 적 기억이란 늘 불완전한 법.

“혹시 그 공방 위치나, 정확한 이름을 기억나세요, 할머니?”

“아이고, 그게 문제여. 그때는 아차산 어귀에 그런 공방이 몇 군데 있었는데… 지은이네 엄마가 한 번 데려다주고 왔다고 그랬었어. 거기 원장님이 좀 특이한 분이라고 했던 것도 같고… 죄송해요, 더는 생각이 안 나네.”

전화는 끊겼지만, 우진의 심장은 걷잡을 수 없이 뛰었다. ‘고요한 흙’ 혹은 ‘흙심’. 아차산 어귀의 간판 없는 공방. 25년 만에 찾아온, 너무나도 작은, 그러나 어쩌면 가장 큰 단서였다.

아차산 자락의 희미한 그림자

다음 날 동이 트기도 전에, 우진은 차를 몰아 아차산으로 향했다. 동이 트자마자 그는 아차산 일대의 오래된 동네를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재개발로 사라진 곳도 많았지만, 아직 옛 모습을 간직한 골목들도 드문드문 남아 있었다. 그는 과거의 지도를 뒤져가며, 당시 지은이가 살았던 집에서 아차산 쪽으로 향하는 경로를 추측했다.

수많은 골목과 낡은 건물들을 지나,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담쟁이덩굴로 뒤덮인 낡은 벽돌 건물이었다. 건물 앞에는 작게 새겨진 나무 간판이 흐릿하게 보였다. ‘고요한 흙’.

우진의 심장이 또다시 쿵, 하고 울렸다. 기적 같았다. 최복순 할머니의 희미한 기억 속에서 피어난 단서가 그를 이곳으로 이끌었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유리는 먼지로 뿌옇게 흐려져 있었다. 안을 들여다보니 작업 도구들이 널려 있었고, 한쪽에는 굽다 만 듯한 도자기들이 놓여 있었다. 분명 운영 중인 곳이었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두드렸다. 한참 후에야 안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낡은 문이 삐걱이며 열렸다. 희끗한 머리의 중년 여성이 그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가 ‘고요한 흙’ 도예 공방이 맞습니까?”

“네, 맞아요. 그런데 지금은 수업 중이 아니라서…”

“죄송하지만, 혹시 20여 년 전에 이곳에 다녔던 윤지은이라는 학생을 기억하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여인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녀는 우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굳게 닫혔던 표정을 조금 풀었다.

“윤지은이요… 이름은 좀 희미한데,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 같기도 해요. 키가 크고 조용했던 학생. 도자기에 꽤 재능이 있었죠.”

우진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지은이 맞았다. 이 여인은 분명 지은을 기억하고 있었다.

“혹시… 그 학생이 남긴 작품이나 연락처 같은 건 없을까요?”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안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공방 안은 흙냄새와 함께 은은한 향이 감돌았다. 한쪽 벽면에는 수많은 도자기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여인은 진열장 중 한 곳을 가리켰다.

“이 작품들 대부분은 꽤 오래된 거예요. 특히 저기, 저 벽돌색 유약을 쓴 찻잔 세트 기억나요. 윤지은 학생이 만들었던 건데, 그 찻잔 안에 작은 그림을 그려 넣었죠. 연필로.”

우진의 시선이 그녀가 가리킨 찻잔 세트에 꽂혔다. 투박하지만 정성이 느껴지는 찻잔이었다. 그리고 찻잔 안쪽 바닥에, 연필로 그린 듯한 아주 작은 스케치가 보였다. 어린 시절, 지은이가 스케치북에 자주 그리던, 그의 뒷모습이었다.

그의 눈가가 뜨거워졌다. 25년 만에, 그는 그녀의 숨결이 닿았던, 그녀의 손길이 스쳤던 흔적을 발견했다. 찻잔을 조심스럽게 꺼내든 우진은 그 안쪽 바닥에 희미하게 쓰여 있는 글씨를 발견했다.

‘늘 같은 자리, 늘 같은 꿈. – 지은.’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작게, 숫자들이 쓰여 있었다. 그것은 분명 전화번호였다. 그의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다. 여인은 우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 학생이 졸업하기 전에, 여기 오시는 분들께 전해달라고 했었어요. 언젠가 누군가 자신을 찾으러 온다면, 이 찻잔을 보여주라고… 그리고 이 번호는… 그 아이가 떠나기 전에, 혹시나 해서 남겼던 연락처예요. 아마 지금은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요.”

우진은 찻잔을 소중하게 감싸 안았다. 25년의 기다림. 수많은 밤의 좌절과 절망이 이 작은 찻잔 하나로 위로받는 기분이었다. 그녀가 남긴 번호. 희미한 희망의 실낱이 이제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찻잔 안의 번호를 눌렀다. 신호음이 울렸다. 그리고,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낯설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목소리. 우진은 숨을 들이켰다. 지은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