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공기가 폐부를 스쳤다. 빛바랜 금속 기둥들이 앙상하게 뼈대를 드러낸 회색빛 도시의 잔해 속에서, 리안은 오랫동안 잊힌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1326번째 시간의 파편 속에서, 그의 발걸음은 여전히 끝없는 사막 위를 걷는 것처럼 무거웠다. 그가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들은 마치 부서진 거울 조각처럼 산산이 흩어져, 어디서부터 다시 맞춰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곳은 ‘시간의 무덤’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거대한 아카이브의 폐허. 한때 모든 지식이 저장되고 분류되던 첨단 문명의 심장부였으나, 이제는 과거의 영광을 비웃듯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와 먼지, 그리고 정체 모를 기계음만이 공허하게 울리는 장소였다. 리안은 이곳에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며칠 밤낮을 헤매고 있었다. 그의 직감은 이 폐허의 심장부에 그가 잃어버린 조각 중 하나가 숨어 있다고 속삭였다.
그는 무너진 데이터 서버들을 지나, 한때는 인류의 역사를 기록했을 홀로그램 기록 장치들의 파편들을 건너뛰며 나아갔다. 수많은 시간대를 떠돌며, 그는 파괴와 재건, 절망과 희망을 목격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의 내면의 공허함을 채워주지 못했다. 그의 영혼은 언제나 불안한 평형을 유지하며, 단 하나의 기억 조각, 단 하나의 얼굴, 단 하나의 음성을 갈구했다.
마침내, 그는 홀로 빛을 잃지 않은 작은 방에 다다랐다. 다른 곳들과 달리, 이곳은 비교적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낡고 오래된 콘솔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작은 장치가 하나 있었다. 그의 손이 닿자, 장치에서 미약한 전원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과거의 미약한 숨결이 닿는 듯했다.
조심스럽게 먼지를 털어내자, 장치의 표면에 새겨진 문양이 드러났다. 그것은 마치 복잡하게 얽힌 별자리 같기도 하고, 동시에 흐르는 강물 같기도 한 형상이었다. 그 형상을 본 순간, 리안의 심장이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마치 그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 문양을 기억하는 것처럼 격렬한 반응이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희미한 전등이 깜빡이더니, 공중에 홀로그램 영상이 투사되었다. 그것은 복잡한 도면이나 데이터 시퀀스가 아니었다. 오직 하나의 풍경이었다. 눈부신 햇살 아래,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그 나무는 마치 하늘에 닿을 듯이 거대했고, 수많은 가지마다 연분홍빛 꽃들이 만개해 있었다. 그 풍경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동시에 너무나도 슬펐다.
그는 그 풍경을 본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잊혀진 시간의 장막이 한순간 걷히는 것 같았다. 연분홍빛 꽃잎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환상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 그 환상 속에서, 그는 희미한 실루엣을 보았다. 작고 여린 손이 그 나무의 굵은 줄기를 어루만지는 모습. 그 손끝에서 전해지는 따스한 온기가 그의 텅 빈 가슴을 사무치게 했다.
“이… 이곳은…” 리안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는 그 풍경을 어디선가 보았다는 확신에 사로잡혔다. 아니, 본 것이 아니라, 그곳에 ‘있었다’는 강렬한 기시감이었다. 흐릿한 영상 속에서, 그는 무언가를 들었다. 어린아이의 맑고 고운 웃음소리, 그리고 다정하고 나지막한 목소리. ‘걱정 마, 우리는 언제나 함께할 거야.’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번개처럼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햇살 아래, 그 거대한 나무 아래서, 한 소녀가 그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소녀의 머리에는 연분홍빛 꽃으로 엮은 화관이 씌워져 있었다. 그리고 소녀의 옆에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러나 얼굴은 흐릿했다. 마치 누군가 고의적으로 지워놓은 것처럼.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그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고통 속에서도, 그는 그 기억의 파편을 놓치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붙들었다. 그것은 처음으로 선명하게 다가온, 오직 그만을 위한 기억이었다. 이 거대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를 잃어버린 미아가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존재였다는 증거였다.
홀로그램 영상은 희미해졌지만, 그 연분홍빛 나무와 소녀의 웃음소리는 리안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깨진 콘솔 위에서 희미하게 빛나던 장치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듯 깜빡이더니, 완전히 꺼져버렸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꺼지지 않는 불씨가 피어올랐다.
그는 일어섰다. 몸은 여전히 지쳐 있었지만, 그의 눈빛은 이전과는 달랐다.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방랑자의 눈빛이 아니었다. 이제 그는 무엇을 찾아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된 자의 눈빛이었다. 그 연분홍빛 나무가 있는 곳. 그리고 그 소녀가 있는 곳. 그곳이 바로 그의 잃어버린 시간의 시작이자 끝일 터였다.
폐허의 그림자 속에서, 한 존재가 리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검은 후드를 깊이 눌러쓴 그는 리안의 모든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장치가 들려 있었고, 그 장치에서는 방금 리안이 보았던 연분홍빛 나무의 홀로그램 영상이 희미하게 재생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존재의 입가에는 알 수 없는 미소가 번졌다.
‘드디어, 네가 그 기억을 보았구나.’
낮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바람 소리에 섞여 사라졌다. 리안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이미 폐허 저 너머, 기억의 파편이 가리키는 미지의 미래를 향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 위한 여정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