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오 서울, 크로노스 타워의 최상층 펜트하우스. 칠흑 같은 밤하늘 아래, 도시의 숨결처럼 반짝이는 네온 불빛들이 무수히 깔린 창밖 풍경은 엽서 속 그림 같았지만, 방 안의 공기는 얼어붙은 강철처럼 차가웠다. 방 중앙에는 넥서스 코프의 수장, 한서준의 시신이 옥좌처럼 놓인 최고급 인공지능 의자에 파묻혀 있었다. 그의 이마에는 깨끗하고 둥근 구멍 하나가 정교하게 뚫려 있었다. 레이저에 의해 생긴 흔적이었다.
“류진 탐정님, 드디어 오셨군요.”
사이버수사대의 이사관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류진을 맞았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와 함께 해답 없는 난제 앞에서 무너진 엘리트의 고뇌가 엿보였다. 이사관의 뒤로 보이는 경찰 요원들은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깊은 미궁에 빠진 자들의 혼란이 서려 있었다.
류진은 코트 주머니에서 낡은 데이터 칩을 꺼내어 무심하게 씹었다. 칩에 저장된 카페인과 니코틴의 인공적인 맛이 입안에 퍼졌다. 그의 눈동자는 방 안을 천천히 훑었다. 기계처럼 냉정하고, 동시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듯한 깊이가 있었다.
“상황 보고는 받았습니다만, 직접 듣는 것이 좋겠군요. 밀실 살인이라.” 류진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이사관은 한숨을 쉬며 브리핑을 시작했다.
“피해자는 한서준 회장입니다. 어제 저녁 10시 17분, 비서와의 마지막 통화 후 이 펜트하우스 사무실로 들어와 문을 잠갔습니다. 보안 시스템은 ‘개인 모드’로 설정되어 그의 생체 인식, 즉 망막 스캔 외에는 어떤 접근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모든 출입 기록에는 그의 입장 기록만 있을 뿐, 그 누구의 침입도, 이탈도 없었습니다.”
류진은 잠시 펜트하우스의 단단한 강화 유리창을 올려다봤다. 바깥은 시속 200km의 비행 드론들이 오가는 공중 도로가 펼쳐져 있었다.
“창문은 어떻습니까?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은?”
“불가능합니다. 삼중 방탄 스마트 글라스이며, 내부에서 완전히 밀봉되었습니다. 어떤 물리적 충격도, 열 흔적도, 진동도 감지되지 않았습니다. 환기구는 성인 남성이 드나들기에는 너무 좁고, 미세한 먼지 필터까지 그대로였습니다. 어떤 외부 침입도 없었습니다.” 이사관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묻어났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사관은 한서준의 시신을 가리켰다. “피해자는 이마에 레이저 총상으로 사망했습니다. 그런데 이 방 어디에서도 레이저 무기는 물론, 어떤 종류의 무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시신에는 저항의 흔적도, 방 안에는 흐트러진 물건 하나 없습니다. 마치 모든 것이 완벽하게 정리된 상태에서, 갑자기 죽은 것 같습니다.”
류진은 이사관의 말을 들으며 방 안을 한 바퀴 돌았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세한 먼지 입자, 천장의 조명, 벽면의 스마트 디스플레이, 그리고 피해자의 책상 위 정리된 서류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흡수했다. 그는 손가락으로 생체 인식 도어락의 표면을 쓸어보았다. 매끄러운 유리 재질이었다.
“AI 보안 시스템 ‘헤르메스’는요?” 류진이 물었다.
“헤르메스는 이 타워의 모든 보안을 총괄하는 최첨단 인공지능입니다. 심지어 나노 단위의 미세한 움직임도 감지하죠. 그런데 헤르메스는 ‘이상이 없음’을 보고했습니다. 침입자도, 무기의 반입이나 반출도, 심지어 비정상적인 에너지 패턴도 감지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완벽한 밀실입니다.”
이사관은 절망적인 표정으로 류진을 바라보았다. “류진 탐정님, 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합니까? 유령이라도 다녀간 겁니까?”
류진은 대답 없이 바닥에 웅크리고 앉았다. 그의 손은 한서준이 죽은 의자 밑 부분을 더듬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방의 가장자리에 있는 유리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스마트 글라스 표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흠집 하나 없이 투명하게 바깥의 네온 도시를 비추고 있었다.
“이사관님.” 류진이 나지막이 불렀다.
“네, 류진 탐정님!” 이사관은 기대감에 찬 얼굴로 다가섰다.
류진은 손가락으로 의자 바닥의 미세한 부분을 가리켰다. “이곳에 희미한 잔류 열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헤르메스가 놓쳤거나, 아니면 감지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죠. 마치… 순간적으로 발산되었다가 사라진 에너지의 잔재 같습니다.”
이사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잔류 열흔적이라니요? 그게 뭘 의미합니까?”
류진은 일어서서 스마트 글라스 벽면을 향해 걸어갔다. 그의 눈은 스캔 모드로 전환되었는지, 희미한 푸른빛이 감돌았다. 그는 벽의 한 지점을 응시하더니, 손가락으로 그곳을 톡톡 두드렸다.
“이 스마트 글라스는 단순한 창문이 아닙니다. 도시의 에너지를 흡수하고, 실내 온도를 조절하며,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로 기능하는 다목적 에너지 패널이죠.” 류진의 설명은 차분했다. “이사관님, 이 방에서 레이저 무기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애초에 무기가 없었다면요?”
이사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기가 없었다니요? 그럼 한서준 회장은 어떻게 레이저에 맞은 겁니까?”
류진은 빙그레 웃었다. 그의 입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갔다.
“이 방을 둘러싼 거대한 에너지 패널, 바로 이 스마트 글라스 자체가 무기였던 겁니다.”
이사관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말도 안 됩니다! 창문이 사람을 죽였다고요?”
“정확히는, 창문처럼 보이는 이 에너지 패널이 강력한 에너지 포커싱 기능을 이용해 특정 지점으로 레이저를 발사한 겁니다.” 류진은 한서준의 시신을 다시 한 번 쳐다봤다. “한서준 회장의 이마에 난 구멍은 외부에서 발사된 것이 아니라, 방 안에서, 그것도 저 창문에서 발사된 레이저의 흔적입니다. 발사 후에는 에너지 패널의 기능이 다시 디스플레이나 온도 조절 모드로 돌아가면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기’의 존재 자체가 사라진 거죠.”
“하지만… 그럼에도 밀실입니다. 범인은 어떻게 나간 겁니까? 그리고 헤르메스는 왜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한 거죠?” 이사관은 여전히 납득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류진은 생체 인식 도어락으로 다시 걸어가, 그 표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그리고는 특수 제작된 소형 스캐너를 꺼내어 도어락에 밀착시켰다. 스캐너 화면에 복잡한 데이터 그래프가 빠르게 움직였다.
“헤르메스가 ‘이상이 없음’을 보고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류진은 스캐너 화면을 주시하며 말했다. “헤르메스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니까요.”
“정상적이라니요? 살인이 벌어졌는데!”
“생체 인식 도어락은 한서준 회장의 망막 스캔으로 잠겼습니다. 그리고 헤르메스는 그 기록을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류진은 스캐너 화면을 이사관에게 보여주었다. “여기, 미세한 잔류 에너지 패턴이 감지됩니다. 일반적인 생체 스캔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인공적인 간섭의 흔적이죠.”
그는 방금 전 자신이 씹던 데이터 칩을 바닥에 던졌다. 칩은 미세한 연기를 내며 사라져갔다.
“범인은 한서준 회장의 망막 정보를 복제한 합성 생체 인식 필름 같은 것을 이용해 문을 열고 나갔을 겁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떻게 문이 다시 안에서 잠겼느냐 하는 것이죠.”
류진은 천장의 구석, 아주 작고 눈에 띄지 않는 공기 청정 장치처럼 생긴 기기를 가리켰다.
“이사관님, 저것은 단순한 공기 청정기가 아닙니다. 초소형 홀로그램 프로젝터입니다. 범인은 미리 저 장치를 설치해 두었고, 한서준 회장의 망막 정보까지 입력해 두었겠죠.”
이사관은 기기를 올려다봤다. “홀로그램 프로젝터… 설마!”
“네. 범인은 살인을 저지른 후, 복제된 망막 정보로 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원격으로 저 홀로그램 프로젝터를 작동시켰을 겁니다.” 류진은 마치 범인이 눈앞에 있는 듯 설명했다. “프로젝터는 한서준 회장의 망막 홀로그램을 정확하게 생체 인식 센서에 투사했고, 센서는 이를 ‘한서준 회장이 안에서 문을 잠근’ 것으로 인식한 거죠. 헤르메스도 완벽한 생체 정보가 감지되었으니, 아무런 이상을 보고할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류진은 방 전체를 다시 한 번 스캔하듯 훑어봤다.
“밀실은 이렇게 깨졌습니다. 창문은 무기였고, 홀로그램은 범인의 퇴로를 감춘 장막이었죠. 결국, 첨단 기술이 범행을 숨겼지만, 그 잔여물이 진실을 말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사관은 멍한 표정으로 방 안을 둘러봤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이 완전히 새롭게 보였다. 밀실의 단단했던 벽이, 류진의 몇 마디 말에 의해 허상처럼 무너져 내리는 순간이었다.
“그럼… 범인은…!”
류진은 그의 말을 끊으며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네온 불빛 아래, 또 다른 미스터리를 품은 듯한 도시가 고요히 숨 쉬고 있었다.
“이제, 그 홀로그램 프로젝터의 내부 기록을 분석하고, 한서준 회장의 망막 정보를 복제할 수 있었던 자를 찾아야 할 때입니다.”
사건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네온 그림자 아래, 천재 탐정 류진의 예리한 시선이 범인의 다음 움직임을 꿰뚫으려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