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펑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황혼이 도시를 붉게 물들이는 시간, 아르카나의 복잡한 뒷골목에 자리한 리엘의 작업실에는 톱니바퀴 돌아가는 소리와 증기기관의 미약한 숨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낡은 작업등 아래, 리엘은 돋보기 안경을 코에 걸친 채 섬세한 기계장치를 조립하고 있었다. 손끝에서 스쳐가는 황동색 부품들은 그녀의 전부였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시선은 자꾸만 창밖, 끝없이 펼쳐진 하늘을 향했다.

푸른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선들의 그림자가 붉게 타들어 가는 저녁놀에 길게 드리워졌다. 저 하늘, 그녀에게는 미지의 세계이자 동시에 가장 그리운 이가 머무는 곳이었다.

“젠장, 또 삐걱거리는군.”

작은 스프링 하나가 튀어 오르자 리엘은 낮게 중얼거렸다. 어째서인지 오늘은 만지는 것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불안감 때문일까. 아니면, 기대감 때문일까. 이 모든 감정의 근원은 단 하나, ‘그’였다.

그를 처음 만난 날은 잊을 수 없다. 아르카나 상공을 정찰하던 비행선 엔진이 고장 나 불시착했을 때였다. 구조 작업에 참여했던 리엘은 부서진 잔해 더미에서 예상치 못한 존재를 발견했다. 거대한 날개를 가진 남자. 천공의 섬, 에테리아의 전설 속 존재, ‘익인족(翼人族)’이었다.

인간과 익인족은 오랜 세월 동안 서로를 경계하며 살아왔다. 인간들은 그들을 약탈자라 불렀고, 익인족은 인간들을 욕심 많은 지상의 오염원이라 여겼다. 양쪽 모두에게 상대는 ‘적’이자 ‘미지’였다. 하지만 리엘의 눈에 비친 그는 오직 상처 입은 생명체일 뿐이었다.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은빛 깃털로 뒤덮인 날개는 피로 얼룩져 있었고, 강렬한 금빛 눈동자에는 경계심과 함께 깊은 고통이 서려 있었다.

그를 치료해주고, 은밀히 숨겨주며 몇 주를 보냈다. 처음에는 서로를 경계하며 짧은 단어만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밤이 깊어질수록, 어둠이 짙어질수록, 서로의 눈빛 속에서 같은 외로움과 이해를 발견했다. 그는 리엘에게 에테리아의 바람 소리와 구름의 노래를 들려주었고, 리엘은 그에게 지상의 기계들이 내는 규칙적인 숨소리와 인간들의 다양한 감정을 가르쳐주었다. 금지된 교감은 빠르게 깊어져갔고, 그들의 마음속에는 세상의 모든 규칙을 부수는 강력한 감정이 싹텄다.

그의 이름은 카이저. 익인족의 젊은 전사이자, 아마도 다음 부족장이 될 지도 모르는 인물이었다. 그리고 리엘은 아르카나의 변두리에서 기계들을 만지는 평범한 인간 소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위험하고, 그래서 더욱 강렬한 사랑이었다.

“…리엘.”

그리움에 잠겨 있던 찰나, 창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는 소리와 함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리엘의 심장이 발작적으로 뛰어올랐다. 고개를 돌리자, 어둠 속에서 거대한 날개를 접고 작업실로 들어서는 카이저가 보였다. 그는 항상 그림자처럼 나타났다. 인간들의 눈을 피해, 도시의 감시망을 피해, 오직 그녀에게로만.

그의 날개는 은빛 달빛을 받아 신비롭게 빛났다. 금빛 눈동자는 변함없이 리엘을 향해 강렬한 빛을 뿜어냈다.

“카이저!”

리엘은 들고 있던 스패너를 내려놓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벌려 그녀를 안았다. 단단하고 강인한 그의 몸에 안기자, 리엘은 비로소 불안했던 마음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심장 박동 소리가 그녀의 귀에 묵직하게 울렸다. 늘 그의 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안정감이었다.

“늦었잖아… 걱정했어.”

리엘이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속삭였다. 그의 몸에서는 언제나 하늘의 냄새, 차갑고 신선한 바람의 냄새가 났다.

“미안하다. 순찰대가 예상보다 많았다.”

카이저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간질였다. 그는 익인족의 전사답게 감정 표현에 서툴렀지만, 그가 그녀를 감싸 안은 팔의 힘에서, 그의 눈빛에서 모든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그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굳게 다문 입술, 날카로운 턱선, 그리고 여전히 강렬한 금빛 눈동자.

“정말 위험했어. 요즘 인간들의 감시가 더 삼엄해졌어. 익인족과 관련된 소문이 도는 것 같아. ‘하늘에서 온 그림자’라고…”

리엘의 목소리에 걱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카이저의 표정이 굳어졌다. “우리 쪽도 마찬가지다. ‘지상의 벌레들’이 에테리아에 접근하려 한다는 첩보가 들어왔어. 양쪽 모두 경계 태세가 최고조에 달했다.”

그의 말에 두 사람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 사랑이 얼마나 위태로운지, 얼마나 큰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 자체가 양쪽 종족에 대한 배신이었다. 발각되는 순간, 그들은 둘 다 파멸할 것이었다.

“우린… 정말 괜찮을까?”

리엘이 그의 손을 잡으며 물었다. 그녀의 손은 기계를 만지는 거친 손이었지만, 카이저의 거대한 손 안에서는 여전히 작고 여렸다.

카이저의 금빛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리엘의 눈동자를 깊이 응시했다. “모르겠다. 하지만, 너를 포기할 수는 없어.”

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 어떤 위협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강철 같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도… 나도 마찬가지야, 카이저.”

리엘은 그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그들의 손가락이 얽히는 순간, 작업실 한구석에 세워져 있던 낡은 증기 압력계가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늘이 붉은색 경고 구역으로 치솟았다.

“젠장, 이게 무슨…!”

리엘이 놀라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바깥 거리에서 쩌렁쩌렁 울리는 확성기 소리가 들려왔다.

— “경고! 경고! 서부 구역에서 미확인 비행체 발견! 익인족으로 추정됨! 전 병력 즉시 출동하라!” —

갑작스러운 외침에 리엘과 카이저의 얼굴이 동시에 굳어졌다. 그들의 심장이 다시금 격렬하게 요동쳤다. 미확인 비행체. 그것은 틀림없이 카이저가 타고 온, 혹은 그를 기다리는 익인족의 소형 비행체일 터였다. 혹은 그를 추격하던 인간들의 최신형 비행정일 수도 있었다.

“카이저…!”

리엘이 다급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 그의 금빛 눈동자는 순식간에 차갑고 날카로운 전사의 눈빛으로 변해 있었다. 그는 창밖, 도시의 소란스러운 상공을 응시했다. 밤의 장막이 깊어지는 도시 곳곳에서 비행선 엔진 소리가 급하게 커지고, 수색등이 하늘을 휘저었다.

“내가 미끼가 되어 유인하겠다.”

카이저의 목소리는 낮고 침착했지만, 그 안에 도사린 위험천만한 결의가 리엘의 심장을 조여왔다.

“안 돼! 너무 위험해! 저들은 너를 잡으려 할 거야!”

“잡히지 않아. 너를 두고 갈 수는 없다, 리엘.”

그가 리엘의 뺨을 감싸며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그녀를 향했다. 이별의 불안감과 함께 알 수 없는 결연함이 그의 얼굴에 스쳤다.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리엘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표정에서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읽었다.

“더 이상 이렇게 숨어 지낼 수는 없어.”

카이저가 리엘의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는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놓았다. 그의 거대한 날개가 작업실의 협소한 공간을 가득 채우며 천천히 펼쳐지기 시작했다. 깃털 하나하나가 경고등의 붉은빛에 반사되어 섬뜩한 아름다움을 뽐냈다.

“우리는 이제… 선택해야 할 때가 왔다.”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작업실 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무장한 아르카나 병사들이 총구를 겨눈 채 들이닥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익인족을 발견했다는 흥분과 함께,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대한 충격이 교차했다. 인간 소녀와 익인족 전사.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리엘과 카이저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무슨 짓이냐! 인간이 익인족과 결탁하다니! 반역이다!”

병사들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고함을 질렀다. 그들의 시선은 이제 카이저를 넘어, 리엘에게도 살기를 띠기 시작했다.

카이저의 금빛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는 리엘을 자신의 뒤로 숨기며 병사들을 향해 낮게 으르렁거렸다. 작업실 안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는 듯했다. 그의 날개가 바람을 가르며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감히… 내 여자를 건드리지 마라.”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훨씬 더 낮고 위협적이었다. 얽힌 운명, 금지된 사랑. 그 모든 것이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위기의 순간이었다. 이 비극적인 막을 어떻게 헤쳐나갈 수 있을까? 리엘의 손은 카이저의 등에 닿아 있었고, 그녀의 심장은 그의 날개가 일으키는 거친 바람처럼 거세게 뛰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