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지의 속삭임
아르고스 호의 특수 격리실은 침묵 속에 잠겨 있었다. 두꺼운 강철문 너머, 불투명한 합금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것은 심해에서 건져 올린 듯한 기이한 암석 덩어리였다. 처음 발견했을 때부터 그랬지만, 그 ‘유물’은 모든 빛을 빨아들이는 듯한 검은색을 띠고 있었다. 표면은 매끄럽다 못해 불길하게 반짝였고, 얼핏 보면 무심하게 새겨진 듯한 문양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돋아나 있었다. 어떤 각도에서 보든 그 문양들은 시선을 붙잡았고, 그 의미를 알아내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를 유발했다.
나는 수석 과학자 이서진이었다. 내 옆에 선 함장 강도훈은 굳게 다문 입술로 유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오랜 탐사 항해에서 오는 피로와, 지금 눈앞에 놓인 미지의 존재가 주는 당혹감이 교차하고 있었다.
“어떤 분석 결과라도 나왔나, 이 박사?” 함장의 목소리는 낮고 묵직했다.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함장님. 지금까지의 모든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나의 말에 옆에 있던 보안팀장 박준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실패라니요? 대체 뭐가 그렇게 어렵다는 겁니까? 그냥 돌덩이 아닙니까?”
“돌덩이였다면, 이렇게까지 고심할 일도 없었겠죠.” 나는 박 팀장의 비아냥거림을 애써 무시하며 말을 이었다. “X-ray, 분광 분석, 동위원소 측정… 모든 물리적 분석은 무의미했습니다. 마치 이 유물이 물리적 실체가 아닌 것처럼, 스캐너는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열두 번도 넘는 시도 끝에 우리가 얻은 것은 ‘미확인 에너지 필드’라는 모호한 결과뿐이었다. 유물 주위에서는 미약하지만 일정한 주기로 파동이 감지되었는데, 그 파동은 마치 살아있는 무언가의 심장 박동 같기도 했다. 아니, 어쩌면 내가 너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들린 것일 수도 있었다.
“미확인 에너지 필드… 그게 정확히 뭔데요?” 이번에는 기관장 김태훈이 나섰다. 그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설마 외계 생명체라는 둥, 이상한 소리는 아니겠죠?”
나는 고개를 저었다. “저도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다만… 유물에 다가갈수록 미세한 두통과 함께, 저주파 소음 같은 것이 들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연구원 몇몇이 동일한 증상을 호소했습니다.”
그 말을 꺼내자마자 박 팀장의 표정이 경직되었다. “환청이라고요? 그게 정신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는 증거 아닙니까? 당장 우주선 밖으로 폐기해야 합니다, 함장님!” 그의 목소리에는 분명한 공포가 섞여 있었다.
함장은 한숨을 쉬며 격리실의 검은 유물을 다시 바라봤다. “확실한 위험 요소가 확인되기 전까지는 폐기할 수 없다. 이건 인류가 심우주에서 발견한 최초의… 어쩌면 유일할지도 모르는 외계 문명의 흔적이다. 섣부른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수 있어.”
“실수요? 아니, 지금 이미 실수를 하고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건 그저 불길할 뿐입니다! 지난 며칠간 함내 분위기가 어떻게 변했는지 아십니까? 사소한 일에도 승무원들은 날카로워져 있고, 불면증과 두통을 호소하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저것이 우리를 서서히 잠식하고 있는 겁니다!” 박 팀장은 거의 절규하듯 외쳤다. 그의 눈에는 섬뜩한 경고의 빛이 서려 있었다.
나는 박 팀장의 주장이 지나치다고 생각하면서도, 그의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 또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유물은 검은 심연 속에서 나를 응시했고,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에게 속삭였다. 깨어나면 머리가 지끈거렸고, 낮에는 이유 모를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저 과도한 업무와 심우주 항해의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지만, 마음 한편에는 찜찜함이 가시지 않았다.
그날 밤, 나는 잠 못 이루고 격리실 복도를 서성였다. 불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유물의 희미한 그림자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그 그림자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갔을 때였다.
“…이 박사님?”
나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복도 저편 어둠 속에서 박준영 팀장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고,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그는 마치 잠든 적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
“박 팀장님… 여기서 뭘 하시는 겁니까?”
“이 박사님이야말로 여기서 뭘 하고 계십니까?” 그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날카로움은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불길한 덩어리에 이끌린 겁니까? 함장님의 그 같잖은 ‘인류의 유산’이라는 명분 때문에 우리 모두가 망가질 판입니다.”
“그럴 리가요… 너무 과민 반응하시는 것 같습니다.” 나는 애써 침착하게 말했다.
박 팀장은 격리실의 유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은 흡사 증오와 공포가 뒤섞인 듯 섬뜩했다. “이 박사님은 모릅니다. 저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스며드는지. 저는 밤마다 저것이 나에게 속삭이는 것을 듣습니다. 나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두려움들을 들춰내고, 마치 먹이처럼 씹어 삼키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서서히 떨리기 시작했다. “저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의 정신을 파고들어, 서서히, 아주 서서히 우리를 파괴할 겁니다.”
“무슨 소리입니까… 박 팀장님, 정신 건강 검진을 받아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나는 그의 광기 어린 모습에 등골이 오싹했다.
박 팀장은 나를 돌아봤다. 그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이 박사님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까? 저것이 당신의 기억을, 우리의 모든 것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지금은 희미하겠지만, 곧 당신도 듣게 될 겁니다. 이 괴물이 내는 끔찍한… 유혹의 목소리를.”
그의 말은 충격적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박 팀장의 말을 되새기며 유물을 볼 때마다 왠지 모를 기시감에 사로잡혔다. 마치 내가 이미 오래전부터 저 유물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며칠 후, 함장은 함내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유물의 영향으로 인한 승무원들의 정신적 이상 증세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는 보고가 계속되었기 때문이었다. 회의실 안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더 이상 이렇게 방치할 수는 없습니다.” 박 팀장이 거친 목소리로 말했다. “함장님, 저는 유물의 즉각적인 폐기를 주장합니다.”
“폐기하기엔 너무 이릅니다.” 연구팀의 다른 과학자가 반대 의견을 냈다. “이 유물은 인류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격렬한 논쟁이 오고 갔다. 유물을 우주에 버려야 한다는 주장과, 계속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나는 과학자로서 유물을 더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내면에서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솟아올랐다. 박 팀장의 광기 어린 얼굴과 그의 경고가 뇌리에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머릿속에서, 마치 심장 박동처럼 일정한 리듬을 지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분명한 소리였다. 마치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듯한, 부드러우면서도 강력한 속삭임.
*‘더 가까이… 이해해 줘… 두려워하지 마…’*
나는 자신도 모르게 격리실이 있는 복도 쪽으로 몸을 움직이려 했다. 눈앞의 회의실 풍경이 아득해지고, 오직 그 목소리만이 나를 지배하는 듯했다. 내 심장이 격렬하게 쿵쾅거렸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갑자기 회의실의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닫혔다. 동시에 함내 조명이 순간적으로 ‘깜빡’ 하고 흔들렸다. 정적이 흘렀다. 모든 시선이 나에게로 향했다.
“서진 박사님? 괜찮으십니까?” 함장의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지만, 마치 멀리서 들려오는 메아리 같았다.
내 시선은 회의실 벽 너머, 격리실에 놓인 검은 유물을 향해 있었다. 유물은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강렬한 유혹과 함께, 심연 속으로 끌어당기는 듯한 거부할 수 없는 힘으로.
내가… 내가 저것을 *가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