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빛 강철 골목의 심장부를 꿰뚫는 바람은 항상 날카로운 쇳내와 희미한 증기 냄새를 함께 실어 날랐다. 지면은 고운 잿가루와 부서진 잔해들로 뒤덮여 있었고, 낡은 파이프와 뼈대만 남은 건물들이 마치 거대한 유령처럼 음산한 침묵 속에 서 있었다. 강진은 닳아빠진 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녹슨 파이프를 짚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의 옆에는 황동과 구리로 된 작은 기계견, 톱니가 쌕쌕거리는 증기 소리를 내며 따라붙었다. 톱니의 외눈박이 센서는 끊임없이 주변을 스캔하며 미세한 진동이나 에너지원을 탐지했다.
“젠장, 여기서 뭐가 나올지 알아야지.”
강진의 목소리는 마른 잿바람에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 희미했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발전소의 잔해를 응시했다. ‘떠도는 돛’이라 이름 붙인 그의 조악한 비행선을 다시 띄우려면 고압 증기 조절기가 절실했다. 이 죽어가는 세상에서 하늘만이 유일한 자유의 공간이었다. 지상은 탐욕과 폐허, 그리고 알 수 없는 위협들로 가득했다.
톱니가 갑자기 멈춰 서서 낮은 웅웅거림을 냈다. 붉은 센서가 한 곳을 집요하게 비췄다. 발전소 잔해 중에서도 가장 깊숙이 무너져 내린 구역이었다. 강진은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위태롭게 매달린 철골들과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콘크리트 더미, 그리고 저 너머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오는 증기 소리가 영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톱니의 반응은 그곳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럼, 한번 가볼까. 네 눈이 틀리는 법은 없었지, 톱니.”
강진은 허리춤에 찬 톱니바퀴 문양의 만능 렌치를 한번 매만지고, 등 뒤의 증기 동력 갈고리총을 단단히 고쳐 맸다. 그는 무너진 건물 잔해를 조심스럽게 헤치고 나아가 입구를 찾았다. 거대한 강철 문은 반쯤 녹아내려 뒤틀려 있었고, 그 틈으로 냉기가 스며 나왔다.
내부는 지독한 침묵 속에 갇혀 있었다. 수십 년간 빛을 보지 못한 탓인지, 먼지가 두껍게 쌓여 발자국을 남겼다. 녹슨 파이프들 사이로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가 고요함을 더욱 강조했다. 강진은 머리 위의 전등을 켜 주위를 비췄다. 거대한 기계 장치들의 잔해가 뼈대만 남긴 채 흉물스럽게 서 있었다. 이곳은 한때 이 도시의 심장이었을 터였다.
톱니가 한층 더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한쪽 구석을 향해 뛰어갔다. 강진은 그 뒤를 따랐다. 넝쿨처럼 엉킨 전선들과 부서진 계기판 너머에, 마침내 그가 찾던 것이 나타났다. 거대한 증기 압력 조절기였다. 금속 외피는 멀쩡했고, 압력 게이지는 비록 멈춰 있었지만, 부품 자체는 손상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찾았다!”
강진의 입에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순간, 톱니가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이내 붉은 센서를 한 곳에 고정시킨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제야 강진은 주위를 둘러봤다. 조절기 바로 옆에는 거대한 철갑의 형체가 웅크리고 있었다. 먼지에 뒤덮여 그저 또 다른 기계 잔해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것은 고도로 발달한 보안 자동장치, 일명 ‘철갑수호자’였다. 육중한 몸체는 닳아빠진 강철판으로 덮여 있었고, 굵은 증기 파이프가 팔다리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 철갑 사이로 섬뜩한 붉은 광선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휴면 상태가 아니었다. ‘재활성화 중’이었다.
쉬이이익-!
철갑수호자의 몸체에서 증기가 격렬하게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묵직한 기어들이 맞물리는 소리가 울리고, 둔탁한 금속 발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그것의 유일한 광학 센서가 섬뜩한 붉은빛을 뿜으며 강진을 향해 고정되었다.
“젠장, 이런 게 아직도 살아있을 줄이야!”
강진은 갈고리총을 재빨리 뽑아 들었다. 철갑수호자는 느리지만 육중한 움직임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것의 두 팔은 증기 동력으로 움직이는 파쇄 장치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톱니바퀴가 거칠게 맞물리며 금방이라도 주변 모든 것을 으스러뜨릴 기세였다.
크르르르릉!
철갑수호자가 괴성을 지르며 강진을 향해 돌진했다. 거대한 팔이 휘둘러지는 순간, 강진은 재빨리 옆으로 몸을 날렸다. 그가 방금 서 있던 자리에 거대한 파쇄 장치가 콘크리트를 부수고 깊은 흠집을 남겼다.
“톱니, 시선을 끌어!”
강진의 명령에 톱니는 망설임 없이 철갑수호자의 다리 사이로 빠르게 파고들었다. 톱니의 작은 몸체로는 수호자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없었지만, 성가신 쌕쌕거림과 센서 불빛으로 수호자의 주의를 분산시킬 수는 있었다. 톱니의 붉은 센서가 번뜩이며 수호자의 다리를 계속 스캔했다.
강진은 수호자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느리지만 예측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휘둘러지는 파쇄 장치. 그는 공격을 피하는 동시에 수호자의 약점을 찾아야 했다. 녀석의 덩치와 속도를 볼 때 정면 대결은 불가능했다.
그때, 강진의 눈에 수호자의 등 뒤에서 희미하게 김을 뿜어내는 증기 배출구가 들어왔다. 저곳이 핵심 동력원이거나, 적어도 그 통로일 것이라고 직감했다.
“저기다!”
강진은 기회를 엿봤다. 철갑수호자가 톱니에게 주의를 빼앗긴 사이, 그는 갈고리총을 발사했다. 갈고리는 천장의 튼튼한 철골에 정확히 박혔고, 강진은 곧바로 몸을 띄워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그는 밧줄을 타고 흔들리며 수호자의 등 위로 착지했다.
캉-!
발밑의 강철판이 둔탁한 소리를 냈다. 철갑수호자는 등에 무언가 올라탔다는 것을 감지했는지, 미친 듯이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강진은 튀어 오르는 몸을 간신히 지탱하며 허리춤의 만능 렌치를 뽑아 들었다.
배출구 주변의 닳아빠진 나사들을 풀고 강철판을 뜯어내자, 내부의 증기 라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진은 렌치를 휘둘러 가장 굵은 파이프를 강타했다.
피이이이익-!
고압 증기가 격렬하게 뿜어져 나왔다. 철갑수호자는 몸을 더욱 크게 요동치며 포효했다. 강진은 증기에 데일 뻔했지만, 악착같이 파이프를 움켜쥐고 렌치로 균열을 더 넓혔다. 거대한 기계 팔이 등 뒤로 뻗어와 강진을 잡으려 했지만, 톱니가 수호자의 센서에 뛰어올라 빛을 가로막으며 교란했다.
“조금만 더!”
강진은 마지막 힘을 짜내 렌치를 파이프 깊숙이 쑤셔 넣고 뒤틀었다. 금속이 찢어지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파이프가 완전히 파열됐다. 고압 증기가 마치 분노한 괴물처럼 뿜어져 나왔고, 철갑수호자의 움직임이 급격히 둔화되었다.
크으으으으……
수호자의 유일한 센서의 붉은빛이 깜빡이다 이내 꺼졌다. 거대한 몸체가 휘청거리더니, 굉음과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진동이 건물을 뒤흔들었고, 천장에서 먼지와 잔해가 쏟아져 내렸다.
강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수호자의 등에서 내려왔다. 온몸이 쑤시고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톱니는 다친 곳 없는지 걱정스러운 듯 강진의 다리에 몸을 비볐다.
“괜찮아, 톱니. 덕분에 살았다.”
그는 쓰러진 수호자 옆에 떨어진 조절기를 집어 들었다. 예상대로, 부품은 완벽한 상태였다. 이 조절기 하나면 ‘떠도는 돛’을 다시 하늘로 띄울 수 있을 터였다.
두 사람은 천천히 발전소 잔해를 빠져나왔다. 잿빛 하늘은 여전히 회색빛이었다. 지평선 너머로 희미하게 붉은 노을이 깔려 있었지만, 그 빛마저도 먼지와 연기 속에 흐릿하게 번질 뿐이었다. 강진은 조절기를 단단히 움켜쥐었다. 작은 승리였지만, 이 황량한 세계에서 이런 작은 승리들이 쌓여 하루하루를 버티게 했다.
그때, 강진의 눈에 멀리 지평선 끝에서 희미하게 깜빡이는 주황색 불빛이 들어왔다. 그건 분명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무언가의 빛이었다. 또 다른 수색대일까, 아니면 더 위험한 존재일까.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래, 아직 끝이 아니야.”
강진은 중얼거렸다. 그의 눈빛은 잿빛 세상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이글거렸다. 톱니가 그의 다리 옆에서 쌕쌕거렸다. 그들의 여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