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살과 뼈를 파고드는 듯했다. 칠흑 같은 암흑 속에서 강휘가 가까스로 쥔 야광석 조각만이 희미한 빛을 토해낼 뿐이었다. 청룡학원 지하 깊은 곳, 그 누구도 발 디딘 적 없다고 알려진 비밀 통로. 그 통로의 공기는 축축하고 무거웠으며, 낯선 흙먼지와 함께 비릿하면서도 섬뜩하리만치 달콤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마치 오래된 피와 썩은 꽃잎이 한데 뒤섞인 듯한 기괴한 향이었다.
강휘의 전신에 예민한 기감이 돋아났다. 학원에서 수련한 지환술(指環術)의 기초적인 영력 운용법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압력이 사방에서 조여 오는 듯했다. 그의 등골을 타고 오르는 냉기는 단순한 한기가 아니었다. 생경하고 거대한 힘, 알 수 없는 존재감이 꿈틀대는 기척이었다.
“젠장… 정말 여기였나.”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 며칠 밤낮을 괴롭히던 악몽, 학원 최하층에서 들려온다는 속삭임,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원형 강의실 바닥의 은밀한 균열. 모든 실마리가 이 어둠 속으로 그를 이끌었다.
통로는 완만하게 아래로 이어지다 이내 가파른 계단으로 변했다. 계단은 자연 암반이 아니라 누군가 거칠게 깎아낸 흔적이 역력한 돌이었다. 돌 틈 사이에는 정체 모를 검은 이끼들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기감이 점점 강해져… 단순한 수로가 아니었어.’
그의 내력(內力)이 미세하게 진동했다. 평소 같으면 이런 불쾌한 기운에 몸이 경직되었겠지만, 묘하게도 내력은 오히려 더 활발하게 순환하는 듯했다. 마치 오랜 갈증에 시달리던 존재가 마침내 샘물을 발견한 것처럼. 그러나 그 샘물은 독이 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예감 또한 함께였다.
“강휘! 너 정말 미쳤어? 여기 어디라고 함부로!”
갑작스러운 외침에 강휘가 화들짝 놀라며 돌아섰다. 등 뒤 어둠 속에서 설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나타났다. 그녀의 손에도 작은 야광석 조각이 들려 있었지만, 그 얼굴은 공포와 불안으로 얼룩져 있었다.
“설아? 네가 여긴 어떻게…!”
“어떻게는 무슨! 네가 어제부터 멍하니 복도만 쳐다보고 다니는 걸 못 봤을 것 같아? 밥도 안 먹고, 수업도 빼먹고! 결국 이렇게 사고 치는구나!”
설아는 그를 쏘아붙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분노와 걱정으로 떨렸지만, 강휘는 그녀의 영력 또한 미약하게 떨리고 있음을 감지했다. 이 어둠 속의 기운이 그녀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쉬잇! 목소리 낮춰. 아무도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이 여기선 너무 많아.”
강휘는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그녀를 제지했다. 설아는 입술을 꾹 다물었지만, 그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녀 역시 이곳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돌아가자. 여긴… 뭔가 이상해. 네가 찾으려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건 너무 위험해.”
설아는 그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 그러나 강휘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아래로 이어지는 어둠 속을 꿰뚫고 있었다.
“이제 와서 돌아갈 순 없어. 여기까지 왔는데.”
“네가 여기까지 온 건 충동적인 호기심 때문이야! 악몽 하나 때문에 이렇게 위험한 곳에 무모하게 뛰어든 거잖아!”
“충동? 그래, 어쩌면. 하지만 이 기운은… 내 온몸을 자극하고 있어. 마치… 아주 오래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기까지 와야만 했던 것처럼.”
강휘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는 설아의 손을 뿌리치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설아는 잠시 망설이는 듯했지만, 이내 깊은 한숨을 쉬고는 강휘의 뒤를 따랐다. 그녀는 단 한 번도 그를 혼자 위험에 던져둔 적이 없었다.
계단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야광석의 빛이 닿지 않는 저 아래에는 끝을 알 수 없는 심연이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수십, 수백 개의 계단을 내려왔을까. 마침내 통로의 끝에 거대한 돌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돌문은 보통의 암석이 아니었다. 희미한 야광석 빛에도 묘한 금속성 광택을 띠고 있었다. 표면에는 고대 문자들이 뒤엉킨 봉인진(封印陣)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었다. 기괴하고 섬뜩한 문양들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꿈틀거리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게 뭐야… 학원 그 어떤 곳에서도 본 적 없는 문양이야.” 설아가 경악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휘는 천천히 손을 뻗어 문양을 만졌다. 차가운 돌의 감촉 아래로 미세한 떨림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손바닥에서 뜨거운 열기가 치솟았다.
“젠장… 봉인이 활성화돼 있어. 아주 강력한 힘으로 잠겨 있어.”
“그럼 더 이상 못 들어가! 잘됐네. 돌아가자, 강휘. 제발.”
설아는 희망을 품고 애원했다. 하지만 강휘의 눈은 이미 봉인진의 균열을 쫓고 있었다. 고도의 영력으로 감춰진 미세한 틈새, 봉인진의 흐름에 어긋나는 단 하나의 지점.
“아니. 틈이 있어. 이 봉인… 완벽하진 않아.”
강휘는 망설임 없이 손바닥을 특정 문양 위에 얹었다. 그리고 학원에서 배운 가장 기본적인 내력 운용술을 극도로 섬세하게 조절하여 그 틈새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서 은은한 영력의 기운이 피어올랐고, 그 기운은 돌문 속으로 스며들어갔다.
**콰아앙-!**
갑작스러운 폭음과 함께 돌문 전체가 거대한 진동을 일으켰다. 봉인진의 문양들이 섬광처럼 번쩍이더니, 이내 검은 균열들이 사방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설아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강휘는 비틀거리면서도 버텼다. 그의 눈은 봉인진의 붕괴를 주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봉인의 기운이 완전히 소멸하는 순간, 거대한 돌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안쪽으로 열렸다.
문이 열리자 쏟아져 나온 것은 빛이 아니었다. 더욱 짙어진 어둠, 그리고 끔찍하리만치 거대한 기운이었다. 그 기운은 강휘의 몸을 휘감았고, 그의 내력을 격렬하게 뒤흔들었다. 마치 수천 년 동안 억눌려 있던 거대한 존재가 마침내 숨통을 트는 듯한 압도적인 위압감이었다.
“이건… 대체…!”
설아의 목소리는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것은 거대한 원형 공간이었다. 천장은 아득히 높았고, 기괴하게 뒤틀린 암석 기둥들이 그 거대한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간의 중앙에는…
강휘의 야광석 빛이 닿는 곳. 거대한 제단이 놓여 있었다. 검고 매끄러운 재질로 만들어진 제단 위에는 거대한 수정 구슬이 올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 수정 구슬은 투명하지 않았다. 마치 시뻘건 피가 응고된 듯한 색깔로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제단 뒤편의 벽에는 거대한 벽화가 새겨져 있었다.
벽화에는 청룡학원의 창립자로 추정되는 고위 마법사들과 무림 고수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영웅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그들은 피의 수정 구슬을 둘러싸고 무릎을 꿇은 채, 마치 무언가에 제물을 바치듯 간절하게 염원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끝에서 뻗어 나간 영력의 줄기들은 수정 구슬로 향했고, 구슬 아래에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채 거대한 형체들이 엉겨 붙어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잃어버린, 끔찍하게 뒤틀린 형체들. 그들은 마치 살아있는 비명처럼 벽화 속에서 울부짖는 듯했다.
“설마… 이건…”
강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 순간, 제단 위의 피빛 수정 구슬이 갑작스러운 빛을 발하며 **쿵- 쿵-** 하는 느리고 거대한 심장 박동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공간 전체가 그 박동에 따라 진동했다.
그리고 벽화 속의 기괴한 형체들이, 마치 심장 박동에 반응하듯, 미세하게 움직이는 듯한 착각에 강휘는 비틀거렸다.
“강휘! 안 돼! 뭔가… 뭔가 나오고 있어!”
설아의 비명과 함께, 제단 아래의 그림자 속에서 핏빛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안개는 빠르게 형체를 갖춰갔고, 그 안에서 끔찍한 비늘로 뒤덮인 거대한 손톱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오래된 피와 죽음, 그리고 차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의 기운이 그들을 덮쳐왔다.
숨이 막혔다. 이 거대한 존재감은 학원 지하에 숨겨진 단순한 금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살아있는, 영원히 갇혀 있어야 할 재앙 그 자체였다.
그리고 지금, 그 재앙이 깨어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