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잿더미 속에서 피어난 불꽃**
차가운 어둠 속, 그의 눈은 타올랐다. 아니, 타오르고 있었다고 믿고 싶었다. 실제로는 희미하게 깜빡이는 생명 유지 장치의 비상등처럼, 꺼질 듯 말 듯 위태로운 불꽃에 지나지 않았다. 금속 찌꺼기와 부서진 회로들이 널브러진 비상 탈출 포드 안, 카엘은 자신의 육체가 더 이상 ‘살아있는 것’이라는 사실조차 버거웠다.
온몸의 신경망이 불타는 듯한 고통을 끊임없이 전송했고, 갈기갈기 찢긴 영혼은 그보다 더 깊은 심연으로 그를 끌어내렸다. 폐허가 된 그의 함선 ‘천공의 맹세’의 잔해가 핏빛 성운처럼 저 너머에 아득히 펼쳐져 있었다. 은하계 연합의 자랑이었던, 무수히 많은 별들을 수호했던 ‘별의 방패’ 함대의 기함은 이제 이름조차 아까운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모든 비극의 중심에, 그의 심장을 꿰뚫었던 칼날을 쥔 자가 있었다.
“제피르….”
메마른 입술 사이로 터져 나온 이름은 쉬이 흩어지지 않고, 차가운 포드 내부를 맴돌았다. 증오와 고통, 그리고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으로 얼룩진 이름. 한때는 누구보다 뜨겁게 불렀던, 친구이자 전우의 이름.
* * *
회색빛 강철이 사방을 뒤덮은 함교는 늘 활기와 긴장으로 넘쳤다. 전략 홀로그램이 푸른빛을 뿜어내며 전장을 실시간으로 구현했고, 수십 명의 크루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혼란스러운 정보를 정리하며 사령관에게 보고했다. 카엘은 그 중심에서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전황을 꿰뚫고 있었다.
“적 후방 전열 붕괴! 제피르, 예정대로 알파 섹터로 우회 진입 후 적의 퇴로를 차단하라!”
그의 목소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명료하고 단호했다. 수많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던 영웅, 카엘 아틀라스. 그의 지휘 아래 ‘별의 방패’ 함대는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알겠습니다, 사령관님! 제피르 함대, 지금 즉시 알파 섹터로 기동합니다! 카엘, 걱정 마라, 이번에도 네 등 뒤는 내가 지킨다!”
화면 속 제피르의 얼굴은 늘처럼 밝게 웃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이 반쯤 가려진 왼쪽 눈, 장난기 어린 미소. 카엘이 가장 신뢰하고 의지했던 벗. 서로의 목숨을 기꺼이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날의 전투는 은하계 연합의 운명을 결정할 중요한 싸움이었다. ‘어둠의 심장’이라 불리는 무자비한 해적 연합의 주력 함대를 격멸해야만 했다. 카엘의 전략은 대담했고, 제피르의 함대가 제때 도착한다면 승리는 확실했다.
카엘의 함선 ‘천공의 맹세’는 적의 본진을 향해 돌격했고, 연합 함대의 맹공에 적의 전열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내렸다. 승리의 여신이 미소 짓는 순간이었다. 그때, 통신이 들어왔다.
“사령관님! 제피르 함대가… 기동을 멈췄습니다! 알파 섹터 진입이 지연되고 있습니다!”
“뭐라고? 즉시 제피르에게 연락해! 무슨 일이냐 묻고, 예정대로 진입하라고 전해!”
카엘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제피르는 약속을 어기는 법이 없었다. 특히 이런 중요한 순간에는 더욱이. 몇 초 후, 통신 장교의 목소리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사령관님… 제피르 함대에서… 저희 함대를 향해 주포를 조준하고 있습니다!”
순간, 함교 전체가 얼어붙었다. 카엘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니, 그럴 리가 없었다. 제피르가? 자신을 향해?
“헛소리 마라! 오류다! 통신 연결해! 제피르에게 직접 묻겠다!”
화면이 전환되고, 다시 제피르의 얼굴이 나타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웃음기가 사라진, 차갑고 낯선 표정이었다. 그의 눈빛은 얼어붙은 별빛처럼 냉정했다.
“카엘. 미안하게 됐어.”
그의 목소리가 통신망을 타고 흘러왔다. 마치 심장에 얼음 조각이 박히는 듯한 차가움이었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냐, 제피르! 장난은 나중에 해! 지금 당장 포위망을 완성해!”
카엘은 애써 냉정함을 유지하려 했지만, 그의 손은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쥐었다.
“이게 장난으로 보이니? 카엘, 네 시대는 끝났어. 이제 이 연합의 ‘별의 방패’는 내가 될 거다.”
제피르의 입술이 비틀리며 섬뜩한 미소를 지었다.
“네 명성은 너무 눈부셨어. 모든 별이 너만을 바라봤지. 나는 늘 네 그림자였고. 하지만 이제, 그 그림자를 찢어버릴 시간이야.”
그의 말은 청천벽력과도 같았다. 믿을 수 없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가, 목숨을 맡겼던 전우가, 이런 말을 내뱉다니.
“닥쳐! 이 미친 자식아!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나 지껄이는 거냐!”
“물론이지. 네가 ‘어둠의 심장’과 내통하여 연합을 배신하고 전우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다는 명분 하에, 네 함대를 파괴하는 중이지.”
“뭐…?”
카엘의 뇌리가 혼란에 빠졌다. 배신? 자신을 배신자로 몰아?
그때였다.
쩌어어엉—!
강렬한 충격이 함선을 강타했다. 제피르 함대의 주포가 ‘천공의 맹세’를 정확히 명중시킨 것이다. 보호막이 터져 나가는 비명과 함께, 함교 내부의 조명들이 번쩍였다. 통신이 끊어졌다.
함선 내부의 비상 경보가 울려 퍼졌다. 붉은 불빛이 모든 것을 뒤덮었고, 여기저기서 폭발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피해 보고! 피해 보고! 사령관님, 함선 동력 코어가 위험합니다! 통제 불능입니다!”
“탈출 포드 준비해! 전 크루원, 탈출 포드로 이동하라!”
카엘은 이성을 잃지 않으려 애썼다. 그 순간에도 크루원들의 생명을 먼저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눈은 여전히 제피르의 함대를 향하고 있었다. 친구의 함선에서 뿜어져 나오는 포화는 자비가 없었다.
“탈출 포드는 준비됐습니다! 사령관님도 어서!”
수석 장교가 다급하게 외쳤다. 카엘은 마지막으로 제피르의 함선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아주 희미하게, 제피르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별의 인사처럼, 승자의 조롱처럼.
카엘은 이가 갈렸다. 육체의 고통보다 더 큰, 영혼을 찢어발기는 듯한 배신감과 치욕이 그를 집어삼켰다. 그는 겨우 몸을 움직여 비상 탈출 포드에 몸을 던졌다. 쾅! 닫히는 문 너머로 ‘천공의 맹세’가 산산조각 나는 섬광이 마지막으로 보였다.
* * *
“크윽…!”
현재로 돌아온 카엘은 이를 악물었다. 그날의 기억은 여전히 생생했고, 그를 불태우는 연료가 되었다. 차가운 포드 안, 그의 몸은 상처투성이였고, 생명 유지 장치는 간신히 꺼져가는 불씨를 지키고 있었다. 연료는 바닥을 드러냈고, 산소는 희박해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그는 살아남았다. 제피르, 너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겠지. 은하계 연합은 영웅 카엘 아틀라스의 장렬한 최후를 기리며,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었겠지.
하지만 나는, 살아있다.
카엘은 자신의 몸을 간신히 움직여 조종석 앞으로 기어갔다. 부서진 패널과 깨진 화면들. 모든 것이 망가진 듯 보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한 곳을 응시했다. 조종간 옆, 손바닥만 한 크기의 검은색 패널. 연합의 표준 장비가 아닌, 카엘이 직접 설계하고 탑재했던 비상 시스템이었다.
피 묻은 손가락으로 패널을 더듬었다. 오랜 시간 동안 잠들어 있던 시스템을 깨우기 위해, 그의 지문과 망막 스캔이 필요했다.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눈을 가늘게 떴다.
삐빅-!
길었던 정적을 깨고, 희미한 전자음이 울렸다. 검은 패널에 푸른 불빛이 번쩍이며 작은 화면이 떠올랐다.
`긴급 비상 시스템 – 코드: 오디세이. 재기동 대기 중.`
카엘의 입가에 피 섞인 미소가 번졌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이 시스템은 단순한 비상 시스템이 아니었다. 그의 모든 비밀, 모든 정보, 그리고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준비했던 마지막 카드였다.
“오디세이… 내 친구여… 드디어 때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갈라졌지만, 그 안에는 뼈저린 결의가 담겨 있었다.
“제피르. 네가 쌓아 올린 모든 것을, 내가 가진 모든 것을 걸고, 너에게서 빼앗아 주마. 네가 내게 안긴 이 고통보다 더한 고통을 맛보게 해주마. 나는 돌아갈 것이다. 그리고 네 심장에, 이 배신자의 낙인을 똑같이 찍어 줄 테다.”
오디세이 시스템의 화면이 깜빡이며, 작은 글씨들이 빠르게 스크롤되기 시작했다. 비상 탈출 포드의 잔여 에너지와 산소량은 이제 단 몇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카엘의 눈은, 그 어떤 희망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피어난, 복수의 불꽃이었다. 그리고 그 불꽃은 이제, 은하계 전체를 불태울 맹렬한 화염이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