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 스릴러 라이트 노벨의 흥미진진한 챕터

어둠이 짙게 깔린 서울의 마천루, 그중에서도 가장 높이 솟아오른 ‘명경 타워’의 펜트하우스. 번화가의 소음조차 삼켜버린 고요함 속, 붉은 사이렌 불빛만이 창밖으로 현란하게 번져나갔다. 스산한 긴장감이 맴도는 회장실 한가운데, 피가 흥건한 바닥 위에 한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김현석 회장. 한국 경제계의 거목이라 불리던 인물의 시신은 차가운 대리석 위에서 핏빛 얼룩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의 심장에 깊숙이 박힌 것은 작은 조각칼이었다.

“젠장, 정말 밀실인가?”
박성규 형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현장을 둘러봤다. 육중한 강철 문은 안쪽에서 굳게 잠겨 있었고, 창문은 특수 강화 유리로 밀봉되어 있었다. 환기구는 사람이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좁았고, 천장이나 바닥에는 외부 침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닫혀 있었다. 마치 김 회장이 스스로 조각칼을 심장에 박고 문을 잠근 채 죽음을 맞이한 것처럼.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자살이라면 굳이 이런 흉기를 쓸 이유가 없었다.

“문은 특수 제작된 보안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고, 지문 인식 외에는 열 수 없습니다. 내부에서 강제로 잠글 수는 있지만, 외부에서 열려면 김 회장의 지문이 필요하죠. 아니면 만능 키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회장님 지문으로 한 번 더 인증해야 합니다.”
강력계 소속 최 경장은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그럼 자살이라는 건가?”
박 형사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하지만 회장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각칼에는 회장님 지문 외에… 또 다른 흐릿한 지문이 겹쳐져 있었습니다. 분석 중입니다만, 자살이라고 보기엔 너무 석연치 않습니다.”

그때였다. 닫힌 회장실 문이 스르륵 열리더니,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섰다. 잿빛 정장 차림에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 그리고 날카로우면서도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 그의 등장에 박 형사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한 군, 자네가 여긴 왜… 벌써 도착했나?”
박 형사의 물음에 남자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박 형사님이야말로 꽤나 지쳐 보이시는군요. 밀실 살인이라니, 피곤할 만도 합니다.”

천재 탐정, 이한. 그는 경찰 소속이 아니었지만, 그의 비범한 통찰력과 추리력은 이미 수사팀 내에서 전설처럼 회자되고 있었다. 박 형사는 그를 싫어하면서도 동시에 그의 존재를 필요로 했다.

이한은 말없이 현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발걸음은 조심스러웠지만, 시선은 뱀처럼 날카로웠다. 김 회장의 시신, 흩뿌려진 피, 심지어 벽에 걸린 그림 한 점까지 놓치지 않고 훑어봤다.

“시체는 대략 두 시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조각칼은… 회장님의 서재에 있던 세트 중 하나입니다.” 최 경장이 덧붙였다.

이한은 시신 주위에 놓인 물건들을 잠시 응시했다. 깨진 찻잔 조각, 뒤집어진 의자, 그리고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태블릿 PC. 그의 시선이 태블릿에 머물렀다. 잠겨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열린 앱은 주식 시황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흥미롭군요.”
이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에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무엇이 흥미롭다는 건가?” 박 형사가 물었다.

이한은 대답 대신 김 회장의 시신으로 다가갔다. 그는 장갑을 낀 채 시신을 직접 만지지는 않았지만, 자세를 낮춰 그의 얼굴을 유심히 살폈다.

“김 회장님의 얼굴에… 불안감은 없습니다. 오히려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혹은 포기한 듯한 표정이군요.”
이한의 말에 박 형사는 다시 시신을 바라봤다. 정말 그랬다. 죽음의 공포에 질린 표정이라기보다는, 해탈에 가까운 미묘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게 무슨 의미지?” 박 형사의 물음에 이한은 고개를 들었다.
“살해당한 자가, 살해당하는 순간을 미리 알고 있었다면 어떨까요?”

그 말에 박 형사와 최 경장의 얼굴에 동시에 낭패감이 스쳤다.
“말도 안 돼! 누가 죽을 걸 알고 가만히 있나!”

“보통의 경우라면 그렇겠죠. 하지만 김 회장은 보통의 인물이 아닙니다. 치열한 경영 전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의 마지막 표정이 이토록 담담할 수 있을까요? 마치… 스스로가 이 상황을 예정했거나, 아니면 도저히 피할 수 없음을 인정이라도 한 듯이.”

이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장실 내부를 천천히 걸었다. 그의 시선은 바닥의 미세한 먼지 한 톨, 벽지의 희미한 그림자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의 발걸음이 회장실 한쪽 벽에 설치된 거대한 책장 앞에서 멈췄다. 책장은 빼곡히 책으로 채워져 있었고, 그중 한 권이 다른 책들보다 아주 미세하게 앞으로 튀어나와 있었다.

“이건… 비어있는 칸이로군요.”
이한이 손가락으로 튀어나온 책 바로 옆 공간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원래 책이 꽂혀 있었을 법한 작은 공간이 비어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책은 마치 그 빈 공간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밀어 넣은 것처럼 비스듬하게 기울어져 있었다.

“그게 뭐 대수라고.” 박 형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책장이 비어있는 것 자체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책장의 배열 방식이 흥미롭군요. 높이, 색상, 그리고 장르별로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김 회장은 결벽증에 가까운 완벽주의자였죠. 이런 사람이 자신의 서재를 이렇게 엉망으로 놔뒀을 리 없습니다. 그것도 비어있는 책 한 권 때문에 옆 책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질 정도로요.”

이한은 빈 공간에 손을 넣어 그 비어있는 책 크기를 가늠했다. 그리 크지 않은 책이었다. 보통의 소설책 한 권 정도의 크기.

“사라진 책이 한 권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최 경장이 놀란 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 책은 평범한 책이 아닐 겁니다.” 이한은 눈을 감았다.
“밀실. 범인이 안에서 문을 잠그고 밖으로 나갔다. 혹은 범인이 처음부터 이 방에 없었다. 이 두 가지 전제는 모두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는 다시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아까보다 한층 더 날카로워져 있었다.
“범인은 이 방에 들어왔고, 김 회장을 살해했습니다. 그리고 이 방에서 나갔습니다. 하지만, 범인은 단 한 번도 문을 열고 닫지 않았습니다.”

박 형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궤변인가? 문을 열지도 않고 닫지도 않고 나갔다는 게 말이 돼?”

“형사님, 우리가 ‘문’이라는 개념에 너무 갇혀있는 건 아닐까요? 이 방에는 문이 하나뿐인 게 아닙니다.” 이한이 천천히 책장 뒤편을 응시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외부로 통하는 길’은 이 문 하나뿐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손가락이 책장 아래의 마루 바닥을 가리켰다. 육안으로는 식별하기 힘든, 아주 미세한 틈이 책장 가장자리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마치 책장이 거대한 문인 것처럼.

“이건… 비밀 통로입니까?” 최 경장이 숨을 들이켰다.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통로가 어떻게 범인의 도주를 완벽하게 감췄는가 하는 점이죠. 그리고 김 회장이 왜 그 통로를 통해 살해당하는 순간까지도 벗어나지 못했는가….”

이한의 시선은 다시 김 회장의 시신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 엄지손가락에 난 작은 상처를 발견했다. 피가 굳어 검붉게 변해 있었지만, 분명 새롭게 생긴 상처였다.

“회장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무언가를 지키려고 했던 걸까요? 아니면… 무언가를 설치하려고 했던 걸까요?”

이한은 조용히 김 회장의 시신 옆에 흩어져 있던 깨진 찻잔 조각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조각들을 바닥에 다시 놓았다. 깨진 찻잔 조각들이 흩뿌려진 모양새가 마치… 누군가 억지로 발을 밟아 부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파편들은 시신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었다.

“범인의 지문이 흐릿하게 겹쳐졌다고 했죠? 범인은 살해 후, 이 방에서 아주 태연하게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한은 고개를 들어 천장을 바라봤다. 펜트하우스의 천장은 그림으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그 그림 중앙에 아주 작은, 거의 눈에 띄지 않는 환풍구가 뚫려 있었다. 그러나 그 환풍구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었다. 마치 조명과 섞인 듯, 예술적으로 위장되어 있었다.

“밀실은… 깨졌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범인의 완벽한 설계는 깨지지 않았습니다.” 이한의 입가에 묘한 미소가 걸렸다. “문제는 살인 수법이 아니라, 살해당하는 순간까지도 김 회장이 이 모든 것을 수수방관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박 형사는 그의 말에 몸을 굳혔다. 이한의 통찰력은 항상 그를 소름 돋게 만들었다. 그는 단순히 트릭을 파헤치는 것을 넘어, 범인의 심리와 피해자의 상황까지 꿰뚫어 보는 듯했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갈 때, 김 회장이 결코 움직일 수 없도록 만들었을 겁니다. 물리적인 봉쇄가 아니라… 심리적인 봉쇄를 통해.”
이한은 천천히 고개를 숙여 깨진 찻잔 조각들, 그리고 김 회장의 오른손 엄지 상처를 번갈아 바라봤다.

“이 방은 완벽한 밀실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완벽하게 ‘봉쇄된’ 김 회장의 마지막 공간이었죠. 범인은 김 회장의 가장 중요한 것을 인질로 삼아, 그가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한 겁니다.”

박 형사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이한을 바라봤다. 그는 단 하나의 단서로 너무 많은 것을 읽어내고 있었다.
“그게 대체 무슨….”

“김 회장의 주식 태블릿 PC. 그리고 그 옆에 있던… 빈 공간의 책. 이 모든 것이 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김 회장이 마지막까지 손에 쥐고 있던 것은 조각칼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무언가였죠.”

이한은 펜트하우스의 어둠 속에서 홀로 빛나는 듯했다. 그의 눈빛은 맹수처럼 먹잇감을 추적하는 듯했고, 그의 추리는 이미 밀실을 넘어 범인의 가장 깊은 심연으로 향하고 있었다.
“범인은 이 방을 나갈 때, 이 비밀 통로를 이용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김 회장이 이 모든 것을 알고도 움직일 수 없었던 이유는….”

이한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은, 이 잔혹한 밀실 살인의 가장 어두운 진실을 드러낼 참이었다.
“김 회장은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파멸을 막을 수 없었던 겁니다. 마치 연극의 마지막 장면처럼 말이죠.”
그의 시선이 천장 중앙의 은밀한 환풍구로 향했다. 그 작은 구멍 너머에, 범인의 비열한 그림자가 서 있는 듯했다.
“이제 남은 건, 그 마지막 ‘한 방’을 찾는 일입니다.”
이한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그 속에는 폭풍 전야의 고요함 같은 엄청난 힘이 실려 있었다. 이 미궁 속의 살인 사건은 이제 막 진짜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